접붙임을 받은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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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는 우리의 삶을 통찰하고 돌아볼 때에 많은 도움이 되어주는 성경 중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이 교회가 일상 속에서 겪는 일들에 있어서 본받을만한 가르침들을 적어놓은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들어 더욱 주변에서 누군가를 속이거나 미워하는 소식, 질투나 분노 그리고 살인에 이르기까지 안타까운 소식들이 많이 들려옵니다. 우리는 모두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평화와 생명'을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에베소서가 필요합니다.
오늘의 말씀에는 이러한 현상들의 이유가 잘 나타나있으며 또 해결책이 있습니다. 이 저녁에 우리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은혜를 누리며 함께 중보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보편적인 인간; 우리는 모두 죽었다.
보편적인 인간; 우리는 모두 죽었다.
사도바울은 그, 예수님께서 너희, 교회된 모두를 살리셨도다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서 ‘죽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모두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입니다. 이 죽음은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참된 생명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관계를 깨트렸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던 아담과 하와는 이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찬양하기 위해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하지 못하게 된 것은 죽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이들이 여전히 숨을 쉬고 먹고 자고 아이를 낳으며 930년을 살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죽었는데 살아있다는 것은 제가 이해하기에 참 어려운 표현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의 비유말씀을 보다가 이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에서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을 때는 살아있습니다. 양분도 공급받고 또 열매도 맺습니다. 그런데 가지가 포도나무 없이 살겠다고 선언하며 떨어진 순간 가지는 당장은 살아있는것처럼 보이나 죽은 것과 다름이 없게 됩니다.
이 때에 가지가 할 수 있는 것은 당장 살아가기 위해 내게 조금이라도 양분을 줄 수 있는 것들을 끌어모으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명의 근원'이 없기 때문에 그 가지는 결국 잠시 뒤에 매말라 죽게 됩니다.
우리 모두의 본래 상태는 포도나무에서 떨어진 가지와 같습니다. 나무에게서 생명을 공급받지 못하는 우리는 죽음의 증상, 현상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떻게든 살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다 빨아들이고 흡수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속임수와 거짓말, 원망과 남탓,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을 떠나서 살게 된 것, 가인과 아벨 사이에서 있었던 질투와 살인 등으로 나타납니다. 나무에 붙어있으면 평화였으나 이제는 삶 자체가 전쟁터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바울은 2-3절에서 죽음의 현상들을 이렇게도 표현합니다.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다.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는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 사탄을 의미합니다.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행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끊어진 우리는 내 자신의 안위와 당장 지금의 만족을 채워주는 것들을 진리로 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며 요즘 우리에게 들려오는 안타까운 소식들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당연한 일들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인간이 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종말과 공동체를 생각하는 삶이 아니라 현재와 나만의 이득을 생각하는 삶을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생명에 대한 말씀을 듣거나 생명 안에 거하려 할 때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 또한 지극히 정상입니다. 바울의 말처럼 우리가 다 그 허물과 죄 가운데 죽었고 죽은 채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죽음의 길을 걷고있는 존재, 하나님이라는 나무에서 떨어져나온 가지, 하나님의 피조물이지만 진노의 자녀가 바로 인간입니다. 부모에게 진노를 산 자녀가 어떻게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선물; 구원
하나님의 선물; 구원
‘그러나'. 4절의 도입에 이 단어가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적 부모님과 다투거나 혼나는 일이 있습니다. 서로 서먹한 그 사이를 다시 회복해주시는 쪽은 언제나 부모님이셨습니다. 자녀와 부모의 관계에서 보통 먼저 희생하는 쪽은 부모입니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그저 자식이라는 이유로 말입니다. 진노의 자녀인 우리와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3절까지는 인간의 현주소와 위치에 대해서 말해주었다면 4절은 하나님은 누구신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이 안에는 그리스도를 죽이시고라는 의미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하였기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죄와 허물로 뒤범벅이 된 자녀의 모습을 아버지는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관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성품이 공의이시기 때문에 심판은 필요했습니다. 죄 없는 아담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가 막힌 방법을 생각하십니다.
죄 없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인간으로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죄가 되어 으게 하시고,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살리시고 하늘로 올리심으로 이를 확증하셨고, 이 성육신과 대속의 은혜로 죄로 죽어진 우리도 살리셨습니다. 이것을 믿기만 하면, 예수의 공로로 말미암아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자녀가 잘못했을 때에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고 용서함에 있어서 자식이 한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자녀가 사랑받는 이유는 그저 부모가 사랑하기로 결심했기 때문 입니다. 자녀는 용서받을만 한 자격이 없습니다. 이처럼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진노의 자녀인 우리도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바울은 은혜라고 표현합니다.
성경에서는 이 은혜를 ‘접붙임'이라는 단어로도 표현합니다. 떨어져나온 가지를 다른 나무에 붙여놓으면 생명을 공급받을 수 없었던 이 가지는 접붙임받은 나무에서 생명을 공급받게 됩니다. 우리 모두 생명이 없는 죽은 가지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라는 나무에 접붙임을 받게 되어 생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그런데 이 접붙임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능력있는 원예사가 하지 않으면 쉽사리 성공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다시금 생명에 접붙일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고 말해줍니다. 마찬가지로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계속해서 6절에서 바울은 ‘일으키사', ‘하늘에 앉히신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곧바로 완전해지지 않습니다. 넘어집니다. 자주 주저앉습니다. 예수로 덮어씌워졌지만 아직 죄인이기에 여전히 연약하고 무너집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달리다굼', ‘사랑하는 자여 일어나 함께가자'하고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시는 은혜를 우리는 경험합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재활훈련을, 회복의 발걸음들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걸음을 잘 걸어내면, 우리의 사도신경의 고백대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과 함께 앉아서 다스리는 영광을 주시겠다고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참으로 예수님과 함께 살아났고 예수님과 함께 살고있으며 예수님과 함께 살아날 것입니다.
구원의 이유; 지으심의 목적의 회복
구원의 이유; 지으심의 목적의 회복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 안에서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구원은 정확히는 믿음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구원에, 하나님과 관련되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함께 나누고 있는 설교도, 찬양과 연주도, 우리의 생활과 교제도 예수가 아니면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며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저와 여러분을 선택하셔서 구원이라는 선물을 주셨을까요? 바울은 7절 이하로 그 이유에 대해 말해줍니다. 여러 세대에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나타내기 위함이라. 2000년도 더 전부터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의 역사가 내려온 이유는 저와 여러분에게 은혜의 풍성함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이 모든 성경의 사건이 여러분을 위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또한 이 선물은 우리에게서 그치지 않고 다음세대로, 다음세대로 계속해서 흘러가게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설교하고 찬양하는 이유는, 우리가 전도에 힘쓰는 이유는, 우리가 다음세대를 세우는 데에 온 힘을 다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교회를 잘 드러내기 위함입니까? 나의 나됨을 드러내기 위함입니까? 나의 어떠함을 드러내기 위함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이유는 이 은혜의 풍성함을 감사하고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주는 선물을 받을 때에 우리가 취할 태도는 단지 감격하고 감사를 표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그것을 자랑할 때에 우리는 받은 어떤 것이 아니라 준 사람을 자랑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내가 받을만 하기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생각해서 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8절에서 9절까지 구원 자체는 자랑할만 한 일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나누었다시피 우리의 어떠함으로 생기거나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실제로 초대교회때나 지금도 구원받은 사건 자체만을 강조해서 교회에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이 많은 것을 봅니다. 저와 여러분은 구원받음에 대해 생각할 때에 나는 선택받았다는 교만함보다, 나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영생이라는 선물을 허락하신 성삼위 하나님께 감사하며 오히려 더욱 낮아지고 겸손해지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끝으로 바울은 10절에서 문단을 마무리합니다. 10절의 말씀은 고린도후서 5장 17절의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로 회복되었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회복된 본래의 정체성은 ‘예수 안에서 선한 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선한일과 하나님의 일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그리고 우리 삶을 통하여 살펴보았듯 우리의 본성은 죄와 허물이기 때문에 행위로는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없으며 동시에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원래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넘어지지만 그것이 죄임을 깨닫고 점점 더 선한 일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설교하고 전도하며 구제하고 살아내며 세상과는 반대로 살아내는 이유, 선한 일과 하나님의 일에 힘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제 이 땅의 것이 아닌 참된 생명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죽은 채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척박한 삶에서 영원한 생명을 선물받은 삶, 구원받은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구원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은혜를,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사랑을 여러 세대에 나타내어야 합니다. 오늘과 앞으로의 모든 삶에 말씀으로 힘을 얻어 천국을 살아내고 확장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결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사랑으로 인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살려졌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있으며 살아날 것입니다.
교회되신 여러분,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어디에 계십니까? 또 무엇을 말하고 계십니까?
예수를 모르기에, 생명이 있는 나무에 접붙임받지 않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죄와 허물 가운데에 거합니다. 그들의 입술이 죽음의 말들을 쏟아냅니다. 죽음의 현상들이 가득합니다.
죽었던 가지인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라는 나무에 접붙임받아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이 죽음이 가득한 참혹한 땅에서 죽음이 아닌 생명을 선택하고 거해야 합니다. 또 죽음이 아닌 생명을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이렇게 살기에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연약하지만 예수님께서 일으켜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을 그 날까지 우리가 함께 기도하고 힘쓰며 예수의 일과 하나님의 일에 힘쓰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