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03 금요기도회: 요한복음 8: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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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언제나 저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둠에 있던 저희를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어둠 속에서 구원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살아가면서 계속 다시 예전에 있던 어둠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하나님. 이런 저희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다시금 빛이신 예수님께 돌아가 생명의 길로 가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날마다 빛이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을 즐거워하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복음 8:12–19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바리새인들이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이에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어느덧 2023년도 2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남은 2달 동안도 하나님과 풍성한 교제를 누리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말씀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는 왕이다!”라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말한 것을 여러분이 듣는다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심지어 그 사람은 장난이 아니라 진심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아마도 대다수는 자신이 왕이라고 말한 사람을 이상하게 쳐다보거나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취급할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마치 예수님이 이런 모습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 본문의 배경은 이스라엘의 명절인 초막절의 시기입니다. 7장 2절에서 초막절이라고 말하고 있고 오늘 본문은 7장과 계속 이어지는 본문이기 때문에 여전히 초막절인 상황 속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초막절이 오늘 본문을 해석하는 것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초막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지내던 때를 기념하는 명절입니다. 그리고 이 초막절에 제사장이 실로암에서 물을 길어 성전데잔 옆에 있는 항아리에 채웁니다. 이 예식을 통해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조상들에게 물을 공급해주신 것을 기억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예수님은 7장 37-38절에서 “목마른 자는 내게로 와서 마시라 그러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막절에 제사장들은 매일 저녁 여러 개의 큰 초를 가져다가 성전 안에 있는 여인의 뜰을 환하게 밝힙니다. 이러한 예식을 통해 광야에서 자기 조상들을 빛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셔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기념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불기둥으로 광야 생활 동안 인도하신 것을 기념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빛이신 예수님을 따라갈 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신 불기둥을 따라가 생명을 얻은 것처럼 어둠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구원의 빛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바리새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잡기 위해 안달이 나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예수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13절입니다.
“너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너의 증언은 참되지 않다.”
바로 자기 스스로에 대해 증언하는 것은 유효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언틋 보면 바리새인들의 주장은 그저 예수님이 미워서 근거 없이 하는 말처럼 보이지만,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어떤 증거가 유효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 이상의 증언이 있어야 합니다. 신명기 17:6 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죽일 자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으로 죽일 것이요 한 사람의 증언으로는 죽이지 말 것이며
바리새인들은 이 율법을 들어서 예수님의 말에 반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예수님도 바리새인과 똑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31 을 보시면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을 그대로 가져와서 반박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본다면 예수님이 틀렸고 바리새인들이 맞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습니까? 바리새인들의 주장의 근거는 율법에도 있고, 심지어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도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주장이 더 타당해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정답을 알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틀리고 예수님이 맞다는 것을요.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의 말씀이 맞는지 보겠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주장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14절입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은 오히려 내가 나를 위해 증언해도 내 증언이 참되다고 말씀하십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앞에서는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셔놓고 여기서는 내가 나를 위해 증언해도 내 증언이 참되다고 말씀하십니다. 서로 모순되어 보입니다. 그런데 전혀 모순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증언은 예수님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14절 뒤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권위는 성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신적 권위이기에 참되고,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참되지 않습니다. 앞에 5장 31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문맥상 5장 31절도 예수님은 성부의 뜻을 전하는 신적 권위를 지니고 계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자신이 다름을 15-16절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15-16절을 쉬운 말로 바꿔서 말하면 이렇습니다. “너희는 사람의 겉모습으로만 보고 판단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설령 내가 판단해도 내가 독자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전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목수의 아들이고 왕처럼 보이지도 않는 초라해보이는 예수님의 겉모습만 보고 “저자는 메시야가 아니다. 어찌 저렇게 초라해보이는 사람이 우리의 구원자겠느냐. 우리의 구원자는 화려하고 다윗처럼 아주 용맹한 장군과 같은 모습일텐데 말이야.”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뜻에 둔 판단이 아니기 때문에 틀렸고, 하나님의 뜻을 둔 예수님이 맞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신적 기원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 무지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의문이 드는 점이 발생합니다. 아까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근거로 예수님의 말을 반박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율법을 초월하거나 율법을 어긴 것일까요? 이것의 정답도 그렇지 않다입니다. 17-18절을 보시면 예수님의 증언은 율법에도 충족한 증언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자신과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를 근거로 삼으셨습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두 세 사람의 증언이 있어야 한다는 율법의 요구에도 아버지와 아들, 이렇게 둘이 증언하고, 그 증언이 온전히 일치하기 때문에 충족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전하시기 때문에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신 증언이 참되기도 하지만, 율법의 요구에도 충족되는 증언이었습니다.
그러자 이 ‘아버지’를 언급한 예수님의 말씀에 바리새인들은 “너의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한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라고 대답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아버지가 누구이신지 알지 못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목수인 요셉의 아들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이들에게 “내 아버지를 너희가 알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신 걸까요.
그 이유는 바리새인과 예수님이 말하는 아버지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말하는 예수님의 아버지는 요셉이 맞습니다. 6장 42절에서도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아버지는 땅의 아버지인 요셉이 아니라, 하늘의 아버지인 하나님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서도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신적 기원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19절을 통해 예수님께서 알려주시는 것은 자신과 아버지가 하나임을, 즉 일체임을 계시하십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뜻이 곧 예수님의 뜻이 됩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인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의 빛인 구원자이심을 명백히 증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증언은 어느 측면으로 봐도 참 증언입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구원자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바리새인들에게 구원자는 화려하고 왕으로 태어나 이스라엘을 최강대국으로 만들어줄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진짜 구원자는 이런 모습이 아니라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전체를 보시면 알겠지만, 예수님은 계속해서 자신이 구원자임을 나타내십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바리새인들이 계속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지 않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구원자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빛’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빛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살아가면서 바리새인과 같은 생각을 할 떄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내 삶이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습니다. 여전히 삶은 힘들고 해야할 것들은 많습니다. 심지어 더 어려운 상황 속에 처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이 구원자가 맞긴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더라도 예수님은 구원자이십니다. 우리는 이전에 바리새인들과 같이 예수님을 세상의 빛, 구원자로 믿지 않던 자들입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세상의 빛이신 구원자로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믿음은 우리의 의심을 넘어섭니다.
또한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것에 의문을 품을 때가 있습니다. “에이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효과가 있겠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매우 부유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이 딱히 필요한 것 같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을 비춰본다면 어떻습니까? 예수님만이 어둠 속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생명의 빛이십니다. 모든 사람은 어둠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벗어나게 해 줄 빛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자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말입니다. 초막절에 제사장들이 비추던 빛은 구원받은 백성인 이스라엘만 비추는 빛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비추는 빛이십니다. 어둠 속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빛이신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가난한 자든 부유한 자든 모든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헤메고 있기 때문에 빛이신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이전에는 어둠에 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라는 빛이 우리에게 비춰졌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아직까지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빛이신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이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고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빛이신 예수님을 전하고 살아가면서 내 생각과는 다른 구원자의 모습이더라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라는 사실을 믿어 그 안에서 의심은 걷히고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기억하며 같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생각과는 달랐기 때문에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지 않았지만, 우리는 감사하게도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내 생각과는 다르더라도 언제나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믿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또한 우리 주변에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우리가 빛이신 예수님을 전해 이 사람들이 광야의 불기둥을 따라가 생명의 길로 인도된 이스라엘처럼 빛이신 예수님을 따라 생명의 길로 인도되게 해달라고 이 시간 같이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