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되게 하신 예수님 (에베소서 2: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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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성령에 붙들려 평안 가운데 설교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기대하라!
자연스럽 도입 & 자연스런 전달 & 적당한 설명 & 적절한 예화 & 강력한 적용

도입 2'

- 오늘 저는 조금은 무겁고 긴장된 마음으로 이곳에 섰습니다.
- 상황이 그런 것 같애요. 두렵고 떨립니다^^
- 하지만,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부족한 사람을 통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 함께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주님께 나아가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하실 일을 보길 원합니다.
- 요즘 뉴스를 보면,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좋은 뉴스보다는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우리의 걱정거리가 되는 뉴스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 EX: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인해서 우리가 다 걱정을 했는데요. 그 전쟁은 아직도 끊나지 않았고, 오히려,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정권의 전쟁이 발발을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더 큰 전쟁으로 번지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 EX: 한국 뉴스를 봐도, 비슷해요. 그렇게 싸웁니다. 정치인들이 여와 야가 되어 싸우구요. 보수정당은 또 그 안에서 싸우고, 진보정당은 그 안에서 또 싸웁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그 정치라는 장르를 코메디로 보더라고요. 그러면, 재밌다는거죠^^
- EX: 우리 주변에 있는 인간관계를 봐도, 비슷해요. 서로 싸우고 험담하고 미워하는 모습이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모습보다 훨씬 많습니다.
- 그러면, “나”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떻죠?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관계는?
- 더 나아가서, 교회 지체들과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본문 설명 & 메시지: 하나되게 하신 예수님 (14-17) 9-10'

- 사도 바울은 지금 에베소 교인들에게 편지하고 있다. 그런데 특히 오늘 본문에서는 이방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 당시엔 유대인들이 아니면 다 이방인이었다. 지금 우리도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이방인이다.
- 예전에는 유대인들이 우리같은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무시했었다. 더럽고 불결한 존재라고 여겼다.
- 그리고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이 교만한 사람들이고 여겨서 싫어했다. 그리고 오지도 않을 메시아를 기다리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여겨 싫어했다.
- 본문의 표현처럼, 서로 원수된 자들이었다.
~ 그런데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원수된 자들을 하나되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1) 화평이신 예수님께서 하신 일

<< 14-15a 읽기
- 예수님은 존재 자체가 화평이신 분이시다. 우리를 화평케 하신 분!
- 본문에서 계속 반복되는 표현이 있다. "둘을 하나로" "둘로 하나를 만드사" 거의 매구절 반복됨 (4번)
- 여기서 둘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리킨다. 정확하게는,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
- 화평 그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하나되게 하셨다.
!! 서로 다른 존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놀랍고 신비한 진리의 말씀을 바울이 전하고 있다.
- 원래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율법이라고 하는 중간의 막힌 담이 있었다. 그것이 그들을 원수되게 했다.
- EX: 미국에 집들을 보면, 집 사이에 fence가 있다. 서로의 privacy를 위해서 fence를 세운 거죠. 서로 구분하기 위해서! 당연한거죠.
- 그런 것처럼,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중간에 막힌 담이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자기의 육체로, 즉,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 막힌 담을 허무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 둘을 하나되게 하셨다.
- 우리 주변을 보면, 항상 주변 분위기를 밝게 하고, 모임에서 어떤 갈등이 있을 때, 갈등을 잘 중재하고, 서로 연결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을 peace maker라고 부른다. 그런 사람이 이 시대에 필요합니다. 그렇죠?
- 그런데 인류 역사상 최고의 Peace Maker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Peace, 화평 그 자체이신 주님께서 분쟁이 많고 갈등이 많은 이세상에 친히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화평을 이루셨어요.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그 안에서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 그래서 주님의 별명 중에 하나가 "평강의 왕"
<< 이사야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느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Prince of Peace" (평강의 왕자)
- 우리 예수님은 이런 분이시다.
~ 그런데 둘을 하나되게 하신 목적이 있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두가지 목적!
2) 이 둘을 하나되게 하신 두가지 목적 (15b-16)
- (ㄱ) 첫번째 목적: 이 둘을 하나의 새로운 존재로 창조하기 위해서!
<< 15b 읽기
- 하나의 새로운 사람을 짓기 위해서 그러셨다고 합니다.
- "짓다": 더 정확하게는 "창조하다는 단어"입니다.
- 둘이 하나 되는 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창조의 능력으로 새로운 존재를 만드심!
- "한 새사람"은 교회를 가리킨다.
- 이제는 더이상 유대인과 이방인이 아니예요. "교회"라고 하는 하나의 존재가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이제는 모두 교회예요!
- (ㄴ) 두번째 목적: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고!
<< 16절 읽기
- "한 몸": 연합을 강조! 교회를 가리키는 표현! 예수님이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그 예수님의 한 몸이 되었다.
- 한 몸으로, 하나된 존재로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려고! 중간에 막힌 담을 허무셨다.
3) 균형있는 이해
- 첫번째 목적과 두번째 목적은 달라요. 이 두가지 목적을 균형있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을 하나되게 하신 첫번째 목적은 우리를 먼저 교회라고 하는 하나의 새로운 존재로 지으시는 것! 두번째 목적은 이 둘이 하나되어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려는 것!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계실 때, 단순히 우리와 하나님을 화평케하려는 목적만 있지 않았다. (수직적인 관계회복)
- 예수님의 마음에는 우리가 서로 하나되게 하려고 십자가를 지시는 목적도 있었다. (수평적인 관계회복)
- 오늘 본문은 이 두가지 목적을 함께 강조하고 있어요.
!! 정리하면요. 예수님은 그 자체로 화평이신데, 유대인과 이방인을,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하면, 우리 모두를 먼저 하나되게 하셨고, 하나된 모습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
- 이게 오늘 본문의 메시지입니다!
- 이게 하나님께 의미가 있어요. 마치 이런 상황과 비슷해요.
- EX: 명절이 되어 두 자녀가 부모님께 찾아감
- 한국사람들은 명절이 되면, 자녀들이 부모님께 찾아간다. 미국에서도 추수감사절이 되면 그렇게 한다.
- 어떤 부모에게 두명의 자녀가 있다고 가정하자.
- 명절에 부모님을 찾아감 / 관계가 좋지 않아서 따로 찾아감 / 아무리 좋은 선물을 드리고,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더라도 부모님을 슬프다.
- 하나되어 함께 찾아올 때, 부모님이 기쁘다.
>>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하나되지 못한 상태로, 하나님께 진심으로 나아가더라도, 의미가 없다. 하나님의 기쁨이 온전치 않음
>> 하나된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께 의미가 있고, 기쁨이 된다.
<< 17절 힘있게 읽기
- 예수님께서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당시의 이방인) 평안은 전하셨고, 가까이 있는 자들 (유대인) 에게도 평안을 전하셨다.
- 오늘 본문에, 화평이란 말도 많이 나오고, 평안이라는 말도 나오는데, 다 같은 단어를 다르게 번역한 겁니다.
- “전하다"는 단어는 “복음을 전하다”라는 말로 사용될 때만 특별하게 쓰이는 단어입니다.
- 그러니깐 주님께서 오셔서 복음을 전하셨는데, 그 복음은 바로 “화평의 복음"이었습니다.
!! 우리 예수님은요. 그 존재 자체로 화평이시고, 화평을 선포하셨고, 십자가로 친히 화평을 이루셨다.
- 존재적으로도 화평이셨고, 그 메시지의 내용도 화평이었고, 죽음으로 이루려고 했던 것도 화평이었다.
!! 화평 그 자체이다! 서로 하나되어 연합된 모습을 기뻐하시는 분이세요.
~ 그렇다면, 그 주님을 믿는 우리들은 어떻해야 되겠습니까?
~ 주님께서 주님 안에서 한 몸 되라고, 교회를 세우셨어요. 그러면 교회는 어떻해야 되겠습니까?

적용: 교회의 하나됨 강조 12-13'

1) 적용
>> 우리 교회는요. 예수님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 엡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2) 현실적인 상황
- 그런데 이게 사실 쉽지 않다.
- “하나된다”라는게 서로 싸우지 않기만 한다고 되는게 아니다. 서로 마음이 오고가고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수준에 가야 사실 하나된 것이지 않느냐? 그래서 쉽지 않습니다.
- EX: 몇년 전에 있었던 일인데요. 저를 포함해서 세명의 목사님들이 세미너리 체육관에서 근육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복근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왕짜 만드는 것이 쉽지가 않다.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다른 목사님이 오셨어요. 키가 크시고 멋진 목사님이시지만, 몸이 그렇게 좋은 목사님은 아니셨어요.
- 그런데 갑자기, “그게 어려워요?” 이러시는 거예요. 자기는 왕짜가 있대요. 그러면서 자신의 배를 만져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 만질 때는 왕짜 근육이 있어요. 근데 그 왕짜가 그 왕짜가 아니예요. 볼 때는 전혀 보이지가 않는 왕짜. 살이 덮여있는 왕짜. 그러니깐 기준이 다른 거예요.
- 하나됨이라는 것이 그냥 싸우지 않고 분쟁이 없다고 하나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준은 더 높죠.
- 우리 교회 이름이 한마음교회다.
- 처음 우리교회 왔을 때, 교회 이름이 너무 좋았다.
- 그런데 어떻게 보면, 교회를 다니면 다닐 수록 부담스러울 수 있는 이름이다. 이름대로 이루어 내기가 쉽지 않은 이름.
- 마치 태어났는데 내 이름이 “하버드"인 것과 비슷하다. 처음엔 좋았는데..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될 수록...
- 교회가 하나되는 것 그 이름처럼 쉽지 않다. 모든 인간은 연약한 죄인이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서로 싸우게 되어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서로 싸우는 겁니다. 죄 지을 때만 하나되는 것이 인간의 자연적 본성이다.
- 더군다나 사람이라는 존재가 다 달라요. 다양해요.
- 우리 교회 안에는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다.
- 세미너리 & 평신도 / 세미너리 (목사님 & 전도사님) / 비지니스 & 직장생활 / 상대적으로 연세가 있으신 분 & 젊은 사람들 / 자녀들이 많이 자라서 여유가 조금 사람들 & 육아에 지쳐 있는 젊은 부부들
- 다 달라요. 상황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고, 삶의 자리가 다릅니다.
- 그래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 그럼에도 우리가 함께 믿는 주님이 화평이시고, 우리가 주님 안에서 하나되기를 간절히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3) 십자가
!! 서로 다른 우리가 하나될 수 있는 비결은 우리 각자가 복음에 붙들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 밖에 없습니다. 다른 비결이 없어요.
>> 특별히 우리교회는 이름이 한마음교회이기 때문에, 무조건 십자가를 붙들어야 합니다. 다른 것을 붙들수가 없습니다.
- 오늘 본문에서도 이 십자가가 다양한 표현으로 반복되고 있는데요.
<< 엡 2:13 "멀리 있는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 엡 2:14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 엡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 그리스도의 피로, 자기 육체로, 십자가로 (X2)
- 우리 주님은 그냥 우리를 하나되게 하신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자신의 육체로, 피로, 십자가에서 죽음의 고통을 감당하심을 통해서 우리를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무겁게 여겨야 합니다.
- EX: 드라마 무빙 // 초능력자들의 이야기 // 류승룡의 역할 // 회복능력 / 별명이 괴물 / 그의 애환 또는 불만 / 사람들이 자기가 안 아픈 줄 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몰라준다.
- 예수님 생각이 났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것을 안다. 그리고 전능하신 분이 우리를 위해 죽었다고 생각해서.. 예수님의 희생과 고통에 대해 좀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고뇌에 찬 기도를 생각해보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피하고 싶으셨을 만큼 십자가의 자리는 고통의 자리였다.
- 육체의 고통, 영혼의 고통, 하나님 아버지와의 교제가 단절되는 고통, 하나님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저주받는 고통,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한번에 받아내야 하는 고통, 이 모든 고통을 십자가에서 홀로 감당하셨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것이 우리의 하나됨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 예수님께서 십자자에서 자기 육체를 통해 우리를 하나되게 하신 것을, 무겁게 여겨야 한다.
>> 그리고 그것을 무겁게 여긴다면, 우리는 서로 하나되어야 하는 이 가치를 결코 가볍게 여길 수가 없다.
- 십자가를 바라볼 때, 나의 악함이 보인다. "나도 문제가 있구나"라고 고백하게 된다. 겸손해진다. 서로를 품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생긴다.
- 십자가를 바라볼 때, “저사람을 위해서도 주님이 죽으셨구나. 나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구나. 저사람도 주님의 피값으로 사신 귀중한 하나님의 형상이구나. 자녀구나” 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4) 인용하고 적용하기 <담장 이미지>
- EX: 영국의 성공회 목사님 J.C. 라일 인용 (마이클리브스, 복음의 사람들, 140)
- "우리 서로를 갈라 놓는 신념의 장벽은 가능한 한 낮게 유지하십시오. 그리고 자주 그 위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 서로를 갈라 놓는 장벽이 저마다 있다. 그런데 그 장벽을 최대한 낮게 유지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대한 자주 그 위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나누라는 거죠.
- 모든 관계마다 그 장벽이 상황에 따라서 올라갔다 내렸갔다가 한다. 그런데 악수할 정도로는 유지를 하라는 것입니다.
- 서로 멀어지려는 상황이 생길 때마다, 그 장벽이 높아지려고 할 때마다, 십자가를 생각하라. 십자가를 생각하면, 담장이 낮아진다.
- 그리고 그 담장이 낮아질 때,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라! 그 손을 꽉 잡아라! 다시는 그 담장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 질문: 이시간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보면 좋겠어요.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은 없는가? 여러분의 여러 관계들 사이에? 교회 지체들 간에 막힌 담은 없나요? 어떤 담이 있습니까?
- 나와 다른 성향? 나와 다른 경제적 환경? 나와 다른 나이대? 나와 다른 관심사? 나와 다른 신앙적 배경? 예전에 저 사람으로부터 받았던 상처? 아니면 먼저 다가갈 수 없는 나의 용기 없음? 아니면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나의 율법적인 태도가 담장은 아닙니까?
>> 기억해야 한다. 주님께서 이미 허무셨다. 이미 하나되게 하셨다.
- 그런데 우리의 죄성 때문에, 연약함 때문에, 쓴 뿌리 때문에, 사탄의 공격과 속임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우리 사이에 “가상의 담”을 만들어서, 서로를 안아주지 못하고 있다.
>> 더이상 그 어떤 것도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그 피로 이미 허무셨습니다.
>> 그래서 우리는 매일같이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매순간! 담장이 올라올 때마다! 십자가 죽으심으로 주님께서 그 담을 허무셨다는 것을 믿고, 우리가 스스로 세운, 속아서 세운, 그 가짜 막힌 담을 무너뜨려야 한다. 그래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생각해봐야 합니다. 내가 더 다가가야 할 사람은 없는가? 내가 돌아볼 사람은 없는가? 내가 용서해야 할 사람은 없는가?
>> 화평이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오셔서 화평을 전하시고, 피흘려 화평을 이루신 것처럼, 나도 주님 같은 peace maker가 되어서, 내가 희생하고, 참고, 먼저 다가가야 할 사람은 없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 부담 가지지 말고, 서로를 향해 조금씩 한발자국씩 다가가면 됩니다. 한마디부터! 인사 먼저 하고! 기도하고! 서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체들이예요.
>> 서로에게 관심을 두고, 서로를 돌아보고, 하나됨이라는 그 목표를 향해서 함께 나아갈 때, 그렇게 하나되어 한몸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 기뻐하실 줄로 믿습니다.

결론 2'

<불신자를 향한 메시지>
지금 이곳에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아직은 없는 분이 계실 거예요.
그런데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기 원합니다.
그런데 진정한 평안은, 오늘 말씀처럼, 화평 그 자체이신 예수님께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3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시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친히 세우신 교회 공동체의 멤버가 될 수 있습니다. 큰 축복입니다.
이 공동체 안에서 하나됨을 누리고, 함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하나되어서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놀라운 특권을 누리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꼭 믿으셔야 됩니다. 오늘 그러한 은혜가 있기를 기도하고 축복합니다.
- 마지막 구절입니다.
<< 2:18 크게 읽자 “이는 그(예수님)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나되신 하신 목적이자 결과예요. 이 모습을 보시려고 그렇게 고통받으시면서 죽으신 겁니다. 이 모습을 보시려고.
- 삼위일체적인 표현. 멋진 표현이예요.
-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었다.
- 한 성령 안에 서로 묶여 있다.
- 한 아버지를 둔 영적인 가족공동체입니다.
>>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하나되어 하나님께 나아가길 원하십니다.
>> 쉽지는 않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고 의지할 때, 서로 하나되게 하시는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 올해 우리교회의 표어가 예배의 회복인데, 예배 때마다 하나되어, 한마음으로, 우리 아버지께 나아가는 놀라운 은혜가, 그 영광이 충만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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