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출애굽기 13:17-22)

정규설교(출애굽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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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1 금요기도회
제 목: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본 문: 출애굽기 13:17-22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19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20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1. 도입
스마트 폰의 뇌, 약물 중독자의 뇌와 비슷하다.
YTN 사이언스에 소개된 영상의 제목입니다. 요즘은 어른부터 아이를 막론하고 스마트 폰을 가까이 하고 살아갑니다. 마치 스마트 폰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처럼 여겨집니다. 영상에서 길거리에서 무작위로 사람을 만나 ‘스마트 폰’없는 삶이란?‘ 질문으로 인터뷰를 하니 사람들의 대답은 ’스마트 폰 없이는 못 살죠‘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한 전문의가 이렇게 말합니다. “스마트 폰에 중독된 사람의 뇌를 보면 약물 중독자의 뇌와 비슷한 형태를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휴대폰을 사용할 때 나오는 호르몬이 약물에 중독되었을 때에 나오는 호르몬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때 나오는 특정 호르몬이 부족해지면 뇌는 중독 대상을 찾으려는 행동을 유도하며, 끊임없는 쾌락을 추구하는 고통을 낳는다고 합니다.
어느 순간 우리는 휴대폰을 도구로 사용하기보다, 휴대폰에 중독되어 끌려 다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요즘은 ‘디지털 디톡스’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디톡스라는 ‘해독’을 의미하는 말입니다.원래 우리 몸의 축적된 독소를 뺀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디지털 디톡스라는 말은 스마트폰 사용시간을 줄이고 피로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디지털 디톡스, 스마트폰 중독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노력으로 ‘불필요한 휴대폰 알림 끄기, 하루나 이틀 동안 스마트 폰 없이 살기, 휴대폰에 SNS등 관련 어플 삭제하기, 짧은 영상으로 이루어진 컨테츠인 ’숏폼‘을 멀리하기’등의 노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휴대폰이니까 그것을 끊어내는 것이 쉬울까요?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스마트 폰은 그래도 나을 수 있습니다.
정말로 마약과 같은 잘못된 약물에 노출된다면 그것을 끊어내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을 끊어내려고 했을 때 금단 증상들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어떤 금지 약물에는 한 번의 투약만으로도 중독 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과거 마약과련 전과가 있는 연예인 부활 그룹의 ‘김태원 씨’는 자신이 겪은 금단 증상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나중에 그거 끊을 때 뱃속으로 막 괴물이 들어온다”,
“한 벽에 파리고 다 이렇게 보인다”
“현실에서 가위 눌려서 산다고 생각하면 된다”등 자신이 겪은 금단 증상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 중독의 길로 가서는 안될 것을 조원합니다.
왜입니까? 중독에 빠지기는 쉬우나,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은 너무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중독되는 것은 스마트 폰이나 금지 약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 중독되어 살아가기도 합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을 보시면
약4: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라고 기록합니다.
“세상과 벗된 것이”에서 ‘벗’이라는 말은 원어의 의미에서 ‘사랑하는’, ‘좋아하는’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사랑하고 좋아하면 그 대상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 원합니다. 세상을 벗이 된 사람은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을 좋아하여 하나님 보다 더 많은 시간을 세상에서 보내고자 합니다.
그래서 세상과 벗된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까지 세상을 좋아하는 사람은,
세상에 중독되어 살아가고 있다고 밖에 표현한 길이 없습니다. 중독된 세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중독에서 벗어나고자 세상에서 좋아하던 것들이 생각나고 다시 세상으로 이끌려 가기 때문입니다.
129총동원을 통해 많은 분들이 예배의 자리로 나아오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세상과 벗하며 살아가고 있던 사람들, 세상에 중독되어 살아가는 분들을 그 세상의 매몰됨에서 건져 예수님께로 인도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중독에서 나올 때 있는 금단 증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전에 장기 결석자를 심방해서 어떤 성도님이 교회에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수년을 쉬다가 오셔서 한 두주 좋아하셨는데,
갑자기몸이 다치고 어려운 일이 생기니 교회에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병원으로 심방을 가니 내가 교회 나갔기 때문이다라고, 내가 교회 나갈 때마가 이런 일이 생긴다면 다시 불신앙으로 돌아갔습니다. 점점 사람이 이상하게 변하시더니 어느날 그렇게 평범한 분이 머리도 이상하게 빠끌빠글하게 복고, 집에 찾아가도 문을 열어 주지 않습니다.
어려운 일이 어떤 이유인지를 저도 모르겠습니다.
우연히 일어난 일인지, 사단의 역사인지 잘 모릅니다.다만 하나님께 나아올 때그분들이 스스로 잘 정착하기는 쉽지 않음은 알고 있습니다.
129를 통해 한번 데리고 왔으니 끝이다 생각하지 마시고,
그분들이 어려움을 이기고 잘 정착하기를 위해 기도하시고 믿음이 자랄 때까지 조력해주실 수 있는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
오늘 본문의 말씀에도 애굽에 매몰되어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옵니다.
그들이 129총동원을 통해 주님의 전으로 한걸음 나아온 분들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애굽을 떠나는 믿음의 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그 걸음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믿음의 걸음을 지속적으로 걸어가고, 내 딛은 걸음을 거두어 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믿음의 걸음을 걸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본문의 말씀을 통해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2. 본론
1) 첫 번째 믿음의 걸음을 멈추지 않고 걸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신 길이 가장 좋은 길임을 믿어야 합니다.
17절에서 18절 상반절까지 보시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출13: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출13: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아멘.
17절을 다시 보시면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으니”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길을 인도하시는데, ‘가까운 길’이 있는 것을 알지만 의도적으로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음을 말해줍니다.
제 짧은 생각에는 여기까지 나온 것도 대단하다.
“애굽에서 노예로 살며 힘들고, 또 애굽에서 적응해서 새로운 곳을 향하여 가는 길이 두려울 것이기에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하다.” 라며 칭찬해주고 또가장 쉽고 안전한 길을 그들을 인도했을 것 같습니다.그런데 하나님은 쉽고 가장 빠른 길로 그들을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하나님은 그들을 홍해 광야 길로 돌리는 방법을 선택하셨습니다.
여러분 애굽으로 가는 길은 가장 가까운 길은
불레셋 사람들이 거주한 길이었습니다.블레셋 사람들은 강한 병사들을 가진 호전적인 민족입니다.그리고 여호수아 13장에 보면 5개의 도시, 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가드, 에그론의 동맹도시였습니다.물론 그들을 강하고 호전적입니다.
강한 블레셋 사람들이 있는 길은, 그들의 강력함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갈 수 없는 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일으킨 기적 몇 가지이면, 그들이 길을 열기에 충분합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하나님은 그들에게 쉬운 길, 빠른 길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이는 분명한 하나님의 의도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약속의 땅을 향해 이제 갓 믿음의 발걸음을 떼고 있는 그들에게
쉽고 화창한 길이 아니라 광야 길을 인도해 하시는 것 일가요?
17절 하반절부터18절 상반절을 보시면,
출13: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출13: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라고 기록합니다.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었을 경우 애굽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길을 돌려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유를 밝힙니다. 그들의 연약함 때문에 그들에게 가장 좋은 길을
하나님께서 선택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돌아가는 시간동안 단순히 길을 걸어가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광야의 길을 걸어가고, 또 정복의 과정을 통해서 그들은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이 배움을 통해 그들은 그들에게 앞으로 주어질 땅을 다스릴 능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빠른 길이 아니라 돌아가는 길을 통해
거저 얻어진 축복이 아니라애쓰고 노력하는 삶을 통해 그 능력을 키워갑니다.
우리에게 축복이 주어져도 그것을 잘 관리하고 지킬 능력이 없으면 축복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축복을 잘 관리하고 다스릴 능력이 있는 자는
더 많은 축복이 올지라도 감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돌아가는 길을 통해 그들에게 이 능력을 키워나가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에 혹여 돌아가는 길을 만나는 것처럼 보일 지라도,신실하신 하나님 의지하고 복된 길을 걸어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2) 두 번째 믿음의 길을 멈추지 않고 걸어가기 위해서는
척박한 길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 길은 단순히 돌아가는,
조금 더 시간이 많이 걸리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광야라는 척박한 지역입니다.
▶ 낮에는 태양 볕이 뜨겁도록 내리 쬐고 밤에는 너무나 추운 곳이 광야입니다.
▶ 이스라엘 백성이 이 광야라는 곳에서 자신의 힘만으로는 얼마 동안 길을 걸어가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척박한 땅에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21절과 22절을 보시면 함께 읽겠습니다.
출13: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출13: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아멘.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며 구름 기둥으로 그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비추어 주셔서 인도해 주십니다.
척박할 것 같은 그 길,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하고, 포기되어질 것 같은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게 됩니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신명기 29장 5절을 보시면
신29:5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라고 기록합니다.
사십년을 입은 옷과 신발이 낡아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몇 년만 조금 거친환경에서 옷을 입고 신발을 신으면 금방 망가집니다. 아이들의 옷은 더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29장 5절에서 지칭하고 있는 너희는 남녀노소를 막론한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말합니다. 그 모든 사람의 의복과 신발이 낡지 않았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척박한 땅도 걸을만한 땅이 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 이러한 복이 임하고 있는 줄 믿습니다. 척박한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여전히 믿음의 걸음을 걷게 하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떼어내고 생각하면
‘척박한 땅, 척박한 환경’만 바라보게 됩니다.
인생을 계산해 보고,미래를 계산해 보아도 보여지는 것은 ‘척박한 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길을 걷듯이 우리도 인생의 광야길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하나님의 은혜를 넣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부모님께서 나이가 들어가시면서도 농사를 지으십니다.
하루는 대화를 했는데 양파를 심는데 다음 수확할 때 가격 전망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척박한 땅’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래도 ‘우리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지 모르는 주어진 일을 자신을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은혜를 빼어버린 전망은 척박한 땅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넣은 전망은, 척박함 속에서도 우리를 웃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성경 속 요셉의 인생을 살펴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요셉이 하나님 은혜없이 그 인생을 바라보고 묵상했다면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형제에 대한 원망,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부모의 대한 원망, 자신이 억울한 누명을 쓰께한 주인의 여자와 그 억울함에 아무도증언해주지 않는 동료에 대한 원망 척박한 삶의 현실만 묵상하게 됩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 인생에 척박함에 하나님을 끼워넣습니다.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동침을 요청했을 때
그는 그냥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 39장 7절에
“내가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외치며
죄의 자리를 박차도 뛰쳐나갑니다.
그에 삶에 하나님의 은혜를 소망하고 그 은혜 안에 살고있는 요셉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과 자녀의 삶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경기가 어렵고, 물가는 안 오른 것이 없이 오른다고 합니다. 세상의 진단은 척박한 땅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광야의 척박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을 걷게 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척박한 인생에서도 여전히 걷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광야 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진 은혜는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은 광야 길에 은혜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에게 인생의 광야 길에서 주어지는 은혜는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에게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은 무엇일까요? 바로 내 옆에 있는 믿음의 사람이요. 동역자입니다. (서로 인사해 보겠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이 보내주신 나의 구름 기둥과 불 기둥입니다)
내가 척박한 땅에 서 있어 추위를 느낄 때 온기 있는 말로 위로해주는 동역자,내가 척박한 땅에서 인생의 뜨거운 분나와아픔을 느낄 때에 나에게 시원한 그늘이 되어줄 수 있는 동역자 바로 우리가 함께 신앙생활하고 있는 내 옆 사람, 내 구역 식구, 내 믿음의 동역자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누가 보내주셨습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앞서 가시며 우리가 걸음을 걷도록, 길 일어버리지 않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척박한 땅을 걸을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를 발견하며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리며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3) 마지막 세 번째 믿음의 길을 멈추지 않고 걸어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택한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출애굽의 과정에서 한가지 이상한 일 발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미 죽은 요셉의 유골을 취하여 가지고 길을 떠납니다.
이게 무슨일일까요?
출애굽기 앞선 성경을 보면 출애굽을 준비하여 유월절을 지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에서
굉장히 긴박함을 보여집니다.
▶ 누룩없는 무교병을 먹으며,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히 급히 음식을 먹습니다. 긴박함입니다. 그리고 또
▶출애굽기 11장에 보면 그들이 출애굽 할 때 애굽 사람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여 얻게 합니다.
한 기사를 보니 체코 하늘에 한 방송인 겸 인풀루언서가 13억 5000만원을 뿌린 적이 있습니다. 영화 홍보를 위해 계획한 행사에서 아무도 우승자가 없자, 하늘에 돈을 뿌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돈을 뿌리게 되자 사람들이 정신없이 달리며 돈을 줍기 시작합니다. 주우면 다 자신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1장 2절과 3벌을 보시면
출 11:2 백성에게 말하여 사람들에게 각기 이웃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시더니
출 11:3 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또 그 사람 모세는 애굽 땅에 있는 바로의 신하와 백성의 눈에 아주 위대하게 보였더라
아멘.
13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또 그 사람 모세는 애굽 땅에 있는 바로의 신하와 백성의 눈에 아주 위대하게 보이게 하십니다.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니
▶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사람에게 구하면 얻고 구하면 얻는 놀라운 장면이 연출됩니다.
▶ 그리고 마지막 재앙을 면하기 위한 준비로 위해 유월절을 준비하는 아주 분주한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 또 조금 있으면 애굽을 떠나야 합니다.
그런데 그 긴박한 순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죽은 요셉의 유골을 찾고,
그 유골을 메고 애굽을 떠날 준비를 하고 또 애굽을 떠날 때 그 유골을 가지고 갑니다.
도대체 왜 이토록 긴박한 순간 이런을 행할까요?
창세기 50장 24절에서 2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저 한절 여러분 한절 읽겠습니다.
창세기 50:24-25
창50:24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창50: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아멘.
긴박한 순간 이스라엘 백성들이요셉의 유골을 찾고 메고 가나안 땅으로 간 이유는
요셉이 맹세시킨 언약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 먼저 ‘자신의 유골을 가지고 올라가라“ 맹세를 하게 한 요셉은 자신의 생명이 다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이맹세하신 땅, 약속한 땅에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실 것을 알고 믿고 있었습니다.
▶ 그리고 그 순간이 되면 그곳으로, 약속하신 땅으로 “자신의 유골을 메고 올라갈 것은 약속”하게 합니다.
요셉에게 애굽은 자신의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곳이었습니다.
요셉이110세에 죽었으므로, 가나안에서 17년을 살았지만 애굽에서는 80평생을 살았습니다. 이제는 마치 고향과도 같은 곳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왜, 죽어서라고 가나안으로 가기를 원할까요?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께서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머물게 하신 약속하신 땅은
가나안’이라는 분명한 인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인식이 그가 죽어서도 믿음의 걸음을 걷게 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믿음의 걸음을 멈추지 않고 나아갈 수 있습니까?
▶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요셉은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란
정확한 인식이 있었기에 죽어서도 믿음의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 요셉과 이 맹세를 기억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분주하고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요셉의 유골을 찾고,가지고 애굽 땅을 탈출합니다. 그들은 또 무엇을 기억했기 때문입니까?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인식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왜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장결자들이 한번 오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왜 또 예배의 자리에 나와야 합니까?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기억할 때
‘우리는 요셉의 유골을 메고 약속의 땅으로 가는 믿음의 백성들처럼,
우리의 주변 사람을 데리고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임을 기억하시고 약속의 땅 향하여 믿음의 걸음을 걸어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첫 번째 들은 말씀을 위해서
1) 하나님 안에서 주어진 우리의 삶이 모습이 가장 좋은 길로 믿고,
광야와 같은 척박한 상황일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소서.
2) 하나님의 백성임을 기억하고 세상과 벗하지 않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갖게 하소서
두번째 교회를 위해서
1) 129 총동원으로 오신 장결자와 새 가족이 지속적인 신앙생활을 이어가게 하소서
2) 기관별 찬양대회 등 연말 진행되는 사역이 안전하고 풍성한 사역이 되게 하소서
3) 교육부서 교사와 아이들이 성령 충만한 생활 하게 하소서
4) 담임목사님을 비롯한 교역자를 위해서
5) 당회원과 교회의 모든 성도들을 위해서
세 번째 교회의 환우 그리고 각자 개인 기도제목을 위해서
1) 환우들의 건강 회복을 위해서
2) 각자의 기도제목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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