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05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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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은 왜?
고난은 왜?
여러분 오늘도 한주간의 삶을 잘 마치고 이 자리로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인 모든 분들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깨닫고 삶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든 친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한 두달정도 읽었던 열왕기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바로 욥기라는 말씀이죠.
여러분들은 욥기 하면 어떤 내용들을 알고 있나요? 엄청난 고난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 또 유명한 구절인 정금같이 나아오리라 라는 내용도 알고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단 우리가 욥기의 내용을 계속 볼 것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욥기가 어떤 성경인지를 함께 알아보고, 오늘의 말씀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우리 친구들, 다들 국어 공부 잘 할테니까, 어떤 글들을 분석하려면 먼저 장르를 알아야 할 거에요. 우리가 지난번까지 보았던 열왕기상 같은 성경은 역사적 내용이 담긴 내러티브 장르라고 할 수 있겠고요, 몇달전 보았던 로마서와 같은 말씀은 편지글의 형식을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욥기는 어떤 장르일까요? 오늘 읽은 말씀의 부분만 보면 그냥 산문형식으로 되어있죠? 그렇기에 열왕기상 처럼 내러티브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욥기의 구성을 잘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을 넘어서서 3장부터 보면, 글의 형식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각 인물들의 말들이 마치 시와 같이 기록이 되어 있죠.
결국 욥기는 처음과 마지막을 제외하고 나머지 주요 내용들은 인물들의 대화를 노랫말처럼 적은 시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마치 뮤지컬과 같은 것이겠죠. 처음에 나레이션이 프롤로그로 배경을 설명해주고, 그 후에 각 인물들이 자신들의 말들을 노래하듯 이야기하는 그러한 형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 욥기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요? 여러분들이 아시는 바로는,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은 욥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고 알고 계실 것 같아요.
하지만 주된 내용은 더 큰 내용입니다. 고통 속에 있는 욥에게 세 친구가 찾아오고, 욥이 그 세친구와 하나님에 대해, 또한 고난과 시험에 대해 열띠게 토론을 하는 그러한 내용이 바로 이 욥기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욥기는 사실 매우 심오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 우리가 읽은 부분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프롤로그인 1장과 2장의 내용들을 살펴보면서 욥에게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시며,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주고자 하시는지를 함께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첫부분인 1절부터 보시면, 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라고 소개합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죠.
욥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자였기 때문에, 세상에서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자녀들은 아들 일곱과 딸 셋, 즉 10명의 아들이 잇었고, 소유물도 양 칠천, 낙타 삼천 등등 많은 가축들과 종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상적으로도, 하나님 앞에도 훌륭한 사람이었죠.
이어서 4절과 5절에서는 욥이 왜 그렇게 칭찬을 받는지 그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욥의 자녀들이 자기 생일에 집에서 함께 잔치를 하고 누이들도 그 자리에 함께하죠.
이것을 보면, 욥과 그의 가정이 정말 화목하고 즐겁게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라는 것을 볼 수 있죠.
그런데 여기서 욥의 행동에 주목해야 하죠. 잔치가 끝나면 욥이 자녀들을 불러서 성결하게 하기 위해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다는 거에요. 혹시나 자녀들이 자신이 모르게 하나님을 욕하고 죄를 지었을지 몰라 그것을 용서받기 위한 제사를 드렸다는 거에요.
이것만 보아도 욥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볼 수가 있겠죠. 자신이 하나님 앞에 온전한 것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들까지도 하나님 앞에 온전하도록 했다는 거에요.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가족 공동체를 어떻게 이끌어가시기를 바라시는지를 알 수 있어요.
모든 가족 공동체가 하나님 안에서 화목하고 즐겁게 살아갈 것, 그리고 가정의 머리된 부모가 자녀들의 신앙을 위해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여기서 유아세례라는 것 받은 친구가 있나요? 아마 믿는 부모님이 계신 친구들이라면 유아세례를 받았을 수도 있을텐데, 이 역시도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있는 거에요. 부모된 자로서 자녀의 신앙을 위해 열심히 양육하겠다는 의미로 자녀에게 세례를 주는 것이죠.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볼게요. 6절에 보면 장면이 전환이 됩니다. 바로 하늘 회의 장면이 등장하죠.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 앞에 섰는데, 사탄도 그들 가운데 왔다라는 거에요.
아마 이 부분이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거에요. 사탄이라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인데, 왜 천상 회의에 모습을 드러내느냐는 것이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어요. 사탄이 원래는 올 곳이 아닌데, 몰래 침입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원래 사탄이 그 회의에 참석 대상자였을 수도 있겠죠.
또 어떤 학자들은, 여기서 사탄이라고 기록된 단어가 사탄 그 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분들도 있더라구요. 정확하게는 고발자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죠.
저는 이 부분에 있어서는 여러분들에게 열어놓도록 하겠습니다. 실제로 이 존재가 사탄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아요. 그가 사탄이더라도 결과적으로 그 존재가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그가 그렇지 않더라도 그가 전하는 말들을 보면,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항하는 주장을 하고 있기에 그 의미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자 그럼, 그 사탄, 혹은 고발자가 어떤 내용을 전하는지 보시죠.
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물으십니다. 어디서 왔느냐, 그가 대답하죠 땅을 두루 돌아보면서 여기저기 다녀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으시죠. 욥을 잘 봤느냐, 그만한 사람이 없다. 욥의 존재를 자랑하시는 것이죠.
그러자 사탄 혹은 고발자가 자신의 주장을 시작합니다. 하나님, 어찌 욥이 하나님을 아무런 까닭 없이 경외하겠습니까. 이게 다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 모든 축복이 사라진다면,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도리어 욕을 할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십니다. 다만 그의 몸에만은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하시죠.
우리가 여기서 또 집중하여 볼 것이 있죠. 그렇다면 하나님이 사탄과 내기를 한 것이냐?
언뜻 보면 그렇게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다시금 확인해볼 필요가 있어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죠. 또한 언제 어디서나 계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욥에 대해서 전혀 모르실까요? 아마 그렇지 않으실 것입니다. 욥의 믿음을 알고 계시고, 그가 어떠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지 또한 알고 계시며, 그가 사탄의 말대로 고난을 당하더라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알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의 계획을 허락하셨을까요?
그것은 사탄에게 욥의 강한 믿음을 보여주고자 하심일 것입니다. 너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를 믿고 따르는 이들이 그렇게 약하지 않다라는 것을 알게 하도록 하신 것이겠죠.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바로 욥 스스로로 하여금 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더 잘 깨닫고 더 잘 섬기도록 그의 믿음을 성장시키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욥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욥이 다른 친구들과 토론을 하게 되는데요, 이후 하나님은 토론 과정에서 욥이 잘못 행한 부분들을 꾸짖기도 하십니다.
결국 그 역시도 사람이기 때문에 어딘가 부족함이 있다라는 것이겠죠. 하나님은 욥의 그 부족함을 성장시키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이 내용을 통해서 우리는 한가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죠. 바로 우리에게 고난이 찾아오는 이유입니다.
이제 욥에게는 사탄에 의한 엄청난 고난이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욥의 입장에서는 이 고난이 왜 찾아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죠. 그렇기에 이 고난의 원인에 대해서 자신의 친구들과 엄청난 토론을 하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우리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들이 찾아올 때가 있어요. 그 고난은 욥처럼 큰 고난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냥 지나갈 수 있는 고난일 수도 있겠죠.
그 고난의 크기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가 여기에 나타난 것입니다. 사탄의 계획을 허락하시면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크심을 깨닫도록 하고자 하시는 것이며, 그 고난으로 우리 스스로가 회복하여 더 큰 믿음을 갖도록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욥에게 어떤 고난이 찾아오게 될까요? 오늘 읽은 말씀 이후에 그 내용이 등장합니다.
바로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죠.
가장 먼저 욥의 종들이 스바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어서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양과 또 다른 종들을 죽이죠.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이번에는 갈대아 사람들이 낙타를 빼앗고 칼로 종들을 죽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욥의 자녀들이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던 도중 큰 바람이 집을 무너뜨려 모든 자녀들이 죽게 됩니다.
정말 사탄이 말한 그대로 욥이 이룬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리고만 것이죠.
요즘말로 억까도 이런 억까가 없습니다.
여기서 하나만 일어나도 큰 슬픔일텐데, 모든 것이 연달아 닥치게 되니, 욥의 입장에서는 기절을 안한것만 해도 다행인 수준이겠죠.
그런데 여기서 욥의 행동이 대단합니다. 제가 말씀 그대로 읽어드릴게요.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대단하죠. 하나님을 전혀 욕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한다라는 거에요. 정말 엄청난 믿음이죠.
아마 사탄의 입장에서는 욥의 이 모습이 꼴사납게 느껴졌을 거에요. 자신의 주장이 틀리게 되었으니까요.
그러자 사탄은 다시 한번 하나님께 도전합니다. 2장에서 하나님께서 욥을 칭찬하시니,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그가 그렇게 한 것은 자신의 몸이 온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의 몸을 치시면 분명히 하나님을 욕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다시 그 일을 허락하십니다. 다만 욥의 생명만은 해하지 말라는 단서와 함께 말이죠.
사탄은 욥에게로 가서 그의 몸을 칩니다. 그러자 그의 몸 모든 곳에 종기가 나게 되죠.
욥은 종기로 인해 몸이 너무 가려워 질그릇 조각으로 계속 몸을 긁어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상황이 온 것이죠.
그러한 상황이 벌어지니 욥의 아내조차도 이런 말을 합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온전함을 지키려고 하느냐,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그냥 죽는게 나을 것이다.
아내가 그렇게 말할 정도이니 욥의 상황이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느낄 수가 있겠죠.
하지만 그 말에도 욥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말은 어리석은 말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하나님께 복을 많이 받았으니 화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라고 하면서 그 상황에도 하나님을 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욥의 친구들이 찾아옵니다. 자신의 친구에게 정말 엄청난 재앙들이 연이어 찾아왔으니, 그를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죠.
그들은 엘리바스와 빌닷, 그리고 소발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멀리서 욥에게 다가오는데, 욥의 모습이 얼마나 비참한지 친구들이 욥을 알아보기조차 어려웠다라는 거에요.
그러자 친구들은 소리질러 자신의 옷을 찣고 먼지를 머리에 뿌리는 행동을 통해 욥의 이 비극을 함께 슬퍼해줍니다.
그리고 칠일동안 욥과 함께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 못합니다.
그리고 3절부터 욥이 고통 중에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는 것으로 토론이 시작하게 되죠. 그 내용은 다음주에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오늘 욥기의 프롤로그라고 할 수 있는 1장과 2장의 내용을 통해 욥이라는 한 인물에게 벌어진 엄청난 사건들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라면 과연 이런 고통을 견뎌낼 수 있을까?
아마 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사실 성경의 욥도 그러하지만, 이런 고난을 당한 이들은 참 많습니다. 구약의 호세아라는 인물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해 음란한 여자, 즉 몸을 파는 일을 하는 여인과 결혼하도록 하여 가정을 이루게 하시죠. 호세아는 그의 삶동안 그 여인이 바람을 피고 하는 일들로 인해 많은 고통을 당합니다.
초대교회에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어간 수많은 신도들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일제의 배교 위협 앞에서도 죽음으로서 신앙을 지켜냈던 주기철 목사님도 계십니다.
어떤 이들은 왜 하나님께서 그러한 일들을 주시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것처럼 하나님의 모든 일에는 그의 크신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가 앞서 욥에게 고난이 임한 원인을 보았던 것처럼, 호세아도 그의 삶을 통해 타락한 이스라엘을 보이고자 하셨다라는 원인이 있었고, 초대교회의 수많은 순교를 통해 교회가 더욱 강해질 수 있었고, 주기철 목사님은 오랫동안 우리 한국 교회의 신앙을 나타낼 모범된 모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각자의 삶을 사용하시며 그의 선한 뜻을 이루십니다.
앞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사탄과 한 것이 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보았었죠? 하나님께서는 이미 욥이 어떻게 할 것임을 다 아셨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에게 고난을 주도록 허락하신 것은, 그가 그것들을 다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견뎌낼 수 있고, 이겨낼 수 있는 고난만을 우리에게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앞서 나눴던 질문, 우리는 과연 이러한 고난을 견딜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우리는 다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견딜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왜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고통을 주셨다라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반드시 감당할 수 있기에 주셨다라는 것일 테니까요.
오늘 여기 계신 우리 모든 친구들이 그것을 잘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냥 고난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이겨낼 수 있기에, 또한 우리가 그것을 통해 더욱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기에 허락하신다는 것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 속에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운 마음들이 있을 수 있어요. 견디기 힘든 시련으로 여겨질 수 있다라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사탄에게 그의 목숨을 허락하시지 않으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지켜주시고, 우리가 이를 이겨낼 수 있도록 함께하십니다.
결국 우리가 이 모든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것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승리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 계신 모든 친구들, 하나님께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도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시고, 또한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공동체를 의지하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능히 그 고난들을 이겨낼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고, 여러분들은 그것을 통해 더욱 신앙의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주에 수능시험이 있죠? 아마 우리 11기 친구들 많이 긴장되고 걱정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또한 여러분 곁에 우리 하임 공동체가 있음을 잊지 마세요. 여러분이 어떠한 모습이든,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사랑하시고, 우리 공동체 또한 여러분을 사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 또한 우리 공동체의 사랑을 기억하며 이번 한주간, 우리 모든 하임 공동체가 각자의 자리에서 승리할 수 있는 그런 귀한 우리 공동체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찬양: 주만 의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