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와 집의 구원
Notes
Transcript
사도행전 16:25-34
제목: 세례와 집의 구원
서론
10월 29일까지 세례/입교 신청을 해야 하죠. 2주 뒤에 11월 5일은 성례주일입니다. “성례주일”은 공식 용어는 아니고 편의상 만든 단어인데, “성례”를 행하는 주일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개신교에서 성례는 세례와 성찬이 해당되죠. 그리고 입교도 엄밀히 말해서 성례는 아니지만 성례주일에 입교식을 같이 하고 있죠. 그만큼 입교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거예요.
저는 성례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례주일 시즌이 되면 항상 성례를 주제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성례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죠. 세례와 성찬입니다. 교회의 중요한 전통 중에 하나가 바로 “성례”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교회의 진정한 부흥은 성찬의 부흥에서 시작된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중요합니다.
복습한다는 생각으로 성례의 개념에 대해서 짧게 다루겠습니다.
복습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제정하신 규례”라는 뜻입니다. 성례는 한 마디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성례가 왜 중요하냐면, 성례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신분증이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신분증이 있으면 국가는 우리의 안보를 책임져 주죠.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의 신분증은 우리의 영적 안보를 책임지신다는 하나님의 보증입니다. 물론 성례는 구원의 조건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받아야 하는가? 성도의 의무이기 때문이에요. 우리의 영적인 유익이 되고 자양분이 되기 때문에 성례를 시행해야 합니다.
왜 영적인 유익이 되냐면, 성례는 “보이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연약해서 때로는 말씀이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구현되는지 눈으로 포착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은혜가 메마르게 되기도 해요. 이러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시청각 자료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게 바로 “성례”입니다. 말씀이, 구체적으로는 십자가의 능력이 어떻게 우리에게 임하는지 눈으로 볼 수 있으니까 “보이는 말씀”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 신분증을 다른 말로 은혜언약의 “표”(sign)와 “인”(seal)입니다. 이건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례는 “표와 인”입니다. 여기서 “표”는 무엇이냐면, 겉으로 드러난 표시를 의미합니다. 신분증을 예로 들자면 신분증에 기록된 것들이 모두 “표”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표시입니다. 그리고 “인”은 무엇이냐면 이 사실을 법적으로 공표하고 확증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즉 “인침을 받았다는 것”은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누리는 은혜를 절대로 빼앗길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전환요소
자, 그런데 여러분 마음 가운데 항상 이런 질문을 갖고 있을 거에요. 세례/입교를 받았다고 다들 축하해 주기는 하는데 기쁘지가 않죠. 성찬을 시행하는데 감동적이지도 않아요. 그냥 교회 전통이니 상징적인 의미만 있겠지, 이런 마음으로 보통 무념무상 한 상태로 임하죠. 교회에서 중요하다고 하니까 중요한 건 알겠는데 이게 기쁨으로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고, 저 또한 이런 시절이 짧지 않게 있었습니다. 오늘은 세례에 대해서 다룰 건데, 세례/입교식이 우리에게 얼마나 감동적이며 기쁜 것인지 여러분들게 전달하려고 합니다.
먼저 세례의 의미를 짚고 넘어갑시다. 세례란,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상징하는 의식입니다. 대부분은 유아세례를 받았죠. 여러분의 의지와 생각이 있기 전부터 이미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새 생명을 얻은 의인입니다(갈 3:26-27). 예수님께서는 이 의식을 거행하라고 제자들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에 이 의식이 오늘날까지 교회에 남겨져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야 해요. 이것이 단순히 상징적인 의식이기만 하다면 우리의 감정과 감동과 상관없이 종교적인 의식 절차를 거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이 세례/입교식은 종교적 의식을 뛰어넘어서 우리에게 엄청나게 큰 기쁨을 안겨준다는 겁니다. 그래서 세례/입교식이 있는 주일에는 모든 연령이 통합예배를 드리는 것이죠. 세례/입교 대상자 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거예요. 이 사실을 제가 증거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AD 50~52년 경에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떠납니다. 예루살렘에서 터키를 지나 그리스까지 이르는 경로로 전도여행을 다녀오게 되는데, 현재 터키의 아키사르인 두아디라라는 지방에서 바울이 한 귀신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면서 바울과 실라가 누명을 쓰고 고문을 받고 감옥에 투옥됩니다.
감옥에서 한밤 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자 큰 지진이 나서 수갑이 풀려지고 모든 유치장 문이 열리게 되었어요. 당시에 죄수들이 도망가면 간수들은 엄청난 큰 형벌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간수가 인생을 포기하고 자살을 시도합니다. 그러자 바울이 다급하게 소리 지르면서 “우리 도망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간수가 두려워 떨면서 엎드린 상태로 바울과 실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간수가 죄수들이 도망가지 않으면 그냥 “땡큐”이러면 되는데, 간수가 두려워한 이유는 바울이 아닌 자신이 감옥에 갇힌 신세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간수의 신세는 감옥에 갇혀 있던 바울과 실라보다 자유로운 신세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보다 간수가 더 억압되어 있었습니다. 정작 죄수들이 풀려나자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어야만 했던 간수의 절망적인 상황이 정말 누가 구속되어 있는 사람인지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시대에 스스로 옥죄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인스타충, 인플루언서들 보면 자유로워 보이죠? 쇼츠나 릴스에서 춤추는 사람들 보면 즐거워 보이죠? 아니요, 그들은 인스타그램이라는 감옥에 갇혀있는 거예요. 세상이 더 자유로워 보이고, 그리스도인이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그래서 더 억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트라우마와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성공, 성취라는 목표를 이루어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어요.
그러면 내가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내가 죄수들을 잘 간수하는 목표를 실패하면, 나는 죽은 목숨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럴 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28절입니다.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네 몸을 상하지 말라! 내가 여기 있어!” “너의 삶은 포기되지 않았어!” 예수님께서 다급하게 소리지르시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외치고 계세요. 마치 자살하려는 사람을 붙잡는 구조대원처럼.
제자들이 배 위에서 강풍을 만났을 때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막 6:50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간수는 이러한 예수님을 본 것입니다. 물론 간수도 바울이 이적을 베풀고 귀신도 쫓아내더라 하는 소문도 들어서 무서웠다는 의견도 있지만 다 추정이에요. 확실한 건 간수는 예수님을 만났어요. 먼저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났어요. 삶에 소망이 없는 나의 처지를 아시고 “자결을 하지 말라!”고 크게 소리쳐서 나를 막으시는 분은 내 삶을 구원하실 분이시구나 라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는 것이죠.
그러니까 간수가 “내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해야 구원을 받습니까?”(정확한 번역)라고 질문하자 바울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다 같이 읽어볼까요? 본문 31절입니다.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핵심은 이겁니다. 내가 예수를 믿으면 나만 구원을 받나요?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 집(오이코스)이 구원을 받아요. 명심하세요, 여러분. 집에 불신자가 있으신가요? 이 말씀을 아멘으로 받으셔야 돼요.
‘아니, 만약에 가족이 예수를 안믿고 파렴치한 행동을 일삼는 악인이어도 구원을 받는다는 겁니까? 그럼 뭐하러 예수 믿어요?’ 물론 분명한 것은 당연히 개인이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한번 봅시다.
고전 7: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여기서 말씀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부정한 것보다 거룩함이 더 강하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우리 집이 전부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이 무엇이냐면, 나로 인해서 내 가족과 친지와 지인의 구원의 문이 열렸다는 거예요. 심지어 지적 능력이 부족한 지적장애인이라든지 유아도 포함됩니다.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했을 때 여기서 “집”은 “오이코스”인데가족 구성원 뿐만 아니라 유아, 노예, 장애인과 같은 연약한 존재 모두를 포함하는 거예요. 이제 나의 말과 행실을 보고 가족 구성원들과 친구들, 유아까지도 모두 구원의 문이 열렸다는 거예요. 내 말과 행실이 연약하고 범죄하는데도,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여러분 주변에 닫혀있던 구원의 문을 활짝 열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고, 이게 세례로 나타나는 겁니다.
그래서 간수가 복음을 듣자마자 그 즉시 세례를 받고 자기 가족들도 그 즉시 세례를 받습니다. 33절 읽어봅시다.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여러분, 보세요. 가족 구성원들이 처음 복음을 들었는데, 복음에 대해서 바로 완전히 이해했을까요? 그렇지 않겠죠. 여기에는 안 나와 있지만 그 간수의 집에 유아도 있었으면 유아도 포함이고 노예도 있었으면 노예도 포함이라는 겁니다. 그들이 모두 세례를 받았다는 거예요.
이게 무엇을 의미하냐면, 구원은 하나님의 작정과 약속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이 믿음에 선행합니다. 그를 구원하시기로 하신 하나님의 그 결단과 작정이 우리의 믿음에 선행해요.
이 사실을 ‘세례’로서 확증하고 공공연하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세례가 하나님의 약속의 증표가 되는 것이죠. “이제 세례와 입교를 받은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더 가까워졌습니다. 열방이 여러분을 통해 주께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라는 선포를 교회의 권위를 통해서 공표하는 거에요. 출 19:5에서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세계를 하나님의 집으로 정하셨어요.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아무리 연약한 교회라도, 사도의 신앙고백을 계승한 교회, 그니까 이단이 아니라면,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에요. 그러므로 세례/입교를 통한 교회의 공표는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2천년이 넘도록 우리에게 잘 보존시켜주시고 남겨주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우리와 우리 교회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함입니다. “너 자신을 포기하지 마. 내가 너를 택했어. 내가 너를 통해서 너의 가족과 지인과 지역과 열방을 구원하기로 작정했어.” 이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직접 남겨두신 거예요. 그래서 전에는 간수와 같았던 내가, 이제는 세상에서 자기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간수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세례를 남겨두신 것입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교회 건물도 현대적으로 변하고 찬양 스타일도 변하고 교회 문화도 변했지만, 세례 성찬 만큼은 달라지지 않았어요. 이것만으로도 예수님께서는 실존하신 분이시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의 증거가 됩니다. 세례/입교식의 존재 자체가 은혜입니다. 따라서 모두 참석하고 축하해 줄 수 있는 것이죠. 세례는 거듭남의 의미로서, 입교는 이미 택함 받은 백성이지만 이제 하나님 나라의 공식적인 일꾼이 되었다는 공표로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죠. 그리고 회중은 세례/입교를 받는 사람을 보고,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가 폐하지 않았구나 라는 은혜를 얻게 됩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계시록 3:8절 말씀입니다.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거창한 말과 행동을 통해서만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여러분의 작은 삶과 행동 그 자체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고 계세요.
특히 “부정한 것보다 거룩함이 더 강하다”는 약속의 말씀을 꼭 붙드세요. 여러분이 세상보다 훨씬 강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고 여러분의 그리스도인의 양심대로 행동하는 일에 위축되지 마세요. 여러분이 이겨요. 이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약속입니다. 무조건입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믿지 않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거룩한 영향력을 이미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축되지 마시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으로 작은 행실을 통해서 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네 몸을 상하게 하지 마! 내가 여기 있어!”라고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시는 예수님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은혜를 더욱 기대하면서 세례/입교에 많이 참여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