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나라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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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2:1–13 NKRV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1.배경

야고보서는 모든 신약성경들중에 가장 먼저 쓰여진 신약서신입니다. 이 당시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의 회당에서 자주 강론하며 말씀을 나눴던 때 입니다. 그렇다보니 유대인들이 많이 있었고 당시 유대인 회당에서 흔히 행해지는 관습들도 사람들이 알고 있었고 그대로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부와 명성을 하나님의 절대적인 복의 기준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부와 명성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인데에 반해 그렇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께 저주 받은 사람으로 여겨지곤 했습니다. 부자들은 자신이 하나님께 복 받았으며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금반지와 값비싼 옷으로서 사람들에게 나타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부자들을 보며 하나님께 복받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부자들앞에 조아리며 지극정성으로 대우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께 저주 받은 사람으로 여기고 함부로 홀대하기 일쑤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과 같이 그런 굴욕적인 말까지 서슴치 않았습니다. 이렇게 양극화되어 부자들은 갈수록 더욱 교만해지고 부와 명성이 쌓이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갈수록 더욱 비참해지고 슬퍼졌습니다. 비록 유대인 사회에서 이런 현상이 당연한 것일지라도 예수님을 믿어 진리를 알게된 사람들에게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고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택하셔서 영원한 나라를 유산으로 주십니다.”

신명기 26:12

12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신명기 26:13

13 그리 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가 성물을 내 집에서 내어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기를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명령대로 하였사오니 내가 주의 명령을 범하지도 아니하였고 잊지도 아니하였나이다

신명기 27:19

19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시편 68:5

5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이와 같이 하나님은 가난한 자와 사회적 약자인 고아와 과부들과 나그네들을 모두 긍휼히 여기시고 뿐만 아니라 너희가 내 백성이라면 나의 뜻과 마음에 합당하게끔 행동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모세오경을 어릴때부터 달달달 외우는데 분명히 이 말씀을 알텐데도 불구하고 왜 이대로 실천하지 않았을까요? 그들은 자기의 성공, 부와 명예를 위한 비중이 너무 크다보니까 이런 모든 말씀을 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아주 독해져야합니다. 나누지도 말고 사람에게 연민의 감정도 느껴서는 안됩니다. 유대인들은 성공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애써 무시하는 것입니다. 돈과 명예를 사랑하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중에서 꼭 지켜야할 율법이 있고, 지키지 않아도 되는 율법이 있다고 합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동일하게 순종을 요구하는데도 불구하고, 본인들이 형편과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서 어떤 율법은 지키기도 하고 안지키기도 합니다. 그들이 가장 지켜야할 율법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압니까? 바로 안식일 규범 준수입니다. 그들은 지금도 안식일에 관련된 규범만큼은 목숨을 걸고 지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관한 이상한 미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도 안되는 개똥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식일이 무엇입니까?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생긴 것이며 그분을 위해서 제정된 날입니다.
Matthew 12:8 NKRV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분은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의 기간을 마치시고 스올에 들어가는 날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 날은 창조주이신 예수님께서 모든 인간들을 위해 희생하시고 모든 일을 마치시고 완성시키신 날입니다. 천지창조 때에 엿새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 칠 일에는 안식하신 것과 같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새 창조입니다.
Jeremiah 31:21–22 NKRV
처녀 이스라엘아 너의 이정표를 세우며 너의 푯말을 만들고 큰 길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을 마음에 두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반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둘러 싸리라
하나님께서 이전에 없던 ‘새 일을 이미 창조하셨다' 라고 나와있습니다. 즉 이미 일어난 일입니다. 시공간을 초월하신 하나님은 이미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바로 그 때에 모든 것을 보셨고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거룩한 한 날을 명명하셔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안식일’ 입니다. 하나님께서 엿새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시며 그 날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냥 단순히 쉬었기 때문에 한 날을 거룩하게 하신 것입니까? 그 날이 거룩하게 된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바로 모든 창조 행위가 마쳐지고 완성된 날이며, 하나님께서 모든 창조를 완성하시고 스올에 내려가서 안식하신 날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구원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일은 이전에 없던 일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새 창조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오셔서 그 일을 완수하시고 스올에 내려가서 안식하셨습니다. 그 날이 바로 일곱째 날인 안식일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상에 말씀하시기를 ‘다 이루었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모든 창조를 완전히 끝내신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의 새 창조 사역을 완수하신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일곱째날에 스올에 들어가서 안식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식일'이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날이 거룩한 이유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혈을 흘렸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 보혈로 당신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셨으며,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이런 숭구한 희생보다도 거룩한 것이 있겠습니까?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신 데에는 모두 이런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예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안식일의 의미가 다 파악되었습니다. 이제 안식일은 끝났습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이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 새 창조가 일어났습니다. 바로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건입니다. 이제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며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며 그 분을 찬양하고 영원한 부활을 사모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안식후 첫 날을 기념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지키는 바로 주일, 일요일이 바로 예수꼐서 부활하신 날을 지키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과거에 여전히 머무르면서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고, 우리는 안식일이 완성된 것을 보고 부활하신 날을 지키며 찬양하고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본인들이 가장 숭고하고 지키고 있다는 그 안식일 마저도 헛되이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그 어느것도 제대로 지키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모든 의미와 뜻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진리와 생명과 하나님이 없는 그들이 이제 의지하고 붙잡아야 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세상뿐입니다. 세상의 명예와 부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100대 부호에 유대인이 많이 있고, 노벨상 수상자에 유대인들이 많습니다. 네, 유대인은 거기에서 희망을 찾고 삶의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진리를 보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찾아야할 것은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의 것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참 된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썩을 것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영원한것들에 투자하기 때문에 부와 명예를 찾지도 가지지도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평범한 삶을 살거나 조금은 못한 가난한 삶을 삽니다. 그렇다고 굶지는 않지요.

그런데 교회에서 이런 사람들을 천대하고 차별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아니 이게 말이 됩니까? 유대인처럼, 세상의 우상을 쫓는 사람들처럼 부와 명예로서 사람들을 판단하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제가 봤을 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무언가를 단단히 착각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사람 안에는 진리도 없고, 하나님도 없고, 생명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교회는 다니고 있어도 죽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겸손하게 검소하게 살면서 가난과 천한 자리를 전혀 어려워하지 않는 숭고한 정신을 가진 사람을 칭찬해야 합니다. 궁궐에 있는 것을 불안해하고, 작은 초가집에 있는 것을 만족해하는 사람을 보며 칭찬해야 합니다. 그 사람은 숭고한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부와 명예에 무릎을 꿇지 않고 낮고 가난한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어 사랑을 나누는 그 사람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존중해야만 합니다. 유대인의 회당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의 교회 안에서만큼은 이런 일이 행해져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부와 명예와 외모로 판단하는 그런 하찮은 짓거리는 하지 맙시다. 우리 그 사람의 숭고한 영혼을 바라보며 칭찬하며 사랑하는 사람이 됩시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과 함께하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이 말을 늘 진실된 참 된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 옛날에 영국의 한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파티>
이와 같이 우리 주객전도되어, 예수님을 위한 파티 자리에서 도리어 예수님을 쫓아내는 사람은 되지 맙시다. 교회가 이 일을 감당하지 못하면 교회가 존재하는 의미는 없어집니다.

여긴 지금 교회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본심은 가난한자와 장애인과 자연과 아기와 노인을 대할 때에 나옵니다.

우리 스스로를 속이지 말고, 낮은 곳에서 더욱 더 진실되게 행동하고, 혼자 있을 때에도 경건함의 끈을 놓지 말며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부끄러워서 지옥으로 스스로 빠져들어가는 자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차별금지법

오늘의 주제는 차별이 없는 정의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거 하나만 짚고 넘어갑시다. 차별금지라는 아주 그럴싸한 명목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이 차별금지법의 요지는 동성애를 허용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와 공평은 절제가 주어지는 가운데에서 행해져야 합니다. 절제가 없는 자유는 방종이며 타락입니다. 이들은 악을 ‘차별금지'라는 그럴싸한 외투로 속인것입니다. 우리가 총기소지를 허용하지 않아야 폭력이 절제되는 것과같이, 마약을 근절해야 사람들이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는것 같이, 이런 동성애와 같은 악법들을 허용하지 않아야 죄악이 절제됩니다. 오히려 진정한 차별은 사람의 내면보다 외모만보고 판단하며 무례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동성애자들을 두고 차별한다, 안한다 라고 말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에서는 특히나 분별력이 더욱 요구됩니다. 여러분들,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참 된 분별력을 가져서 세상의 다양한 죄악에서 자기 몸을 잘 지키고, 진리는 진리로서 사랑하고, 거짓은 거짓으로서 미워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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