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지킵시다(삼상1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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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마음을 보시는 주님
마음을 보시는 주님
어제 한 청년과의 대화속에서
현시대 사람들이 도파민에 빠져있다는 이야기.
영상도 숏폼, 유투버들의 짧지만 강력한 재미, 흥미 주는 영상
오래 오래 두고 보아야 아름다운 것이 있는데 이제는 그것을 지겨워 함. 스쳐지나가는 것에 몰입을 함.
그래서 휴대폰을 보면 관심이 있어서 찾아 보는 것도 있지만 아무 목적없이 계속 화면만 넘기는 일이 생김.
사람을 향해서도 오래오래 만나면서 그 사람의 내면에 관심을 가지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보다는 외모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무엇을 좋아하실까.
베드로전서 3:4 썩지 않는 온유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속 사람을 단장하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입니다.
그 근거의 말씀이 사무엘이 주님의 명령을 받고 다윗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사울이 하나님의 마음을 잃게 된다.
사무엘도 사울때문에 마음이 상했다. 사무엘과 사울은 너무도 친밀한 사이, 사무엘은 최초 왕을 세우고 왕과 정치를 하는 사사, 사울은 최초의 왕
사무엘상 15:35 그 다음부터 사무엘은, 사울 때문에 마음이 상하여, 죽는 날까지 다시는 사울을 만나지 않았고, 주님께서도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다.
하나님이 이미 정해놓은 이새의 아들을 찾아가라고 사무엘에게 임무를 맡김,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는 사람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하심
사무엘은 무작정 이새의 가족을 만나러 간다. 누군지 알지 못한다.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도 모른채 암송아지 한마리와 기름만 가지고 떠난다.
사울을 왕으로 세울때와 정 반대의 일이다.
사울에게 기름부을 때는 하나님이 사울 한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그와 식사를 하고 교제를 하고 그리고 그 다음날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운다.
그러나 두번째 왕을 찾으러 가는 길은 너무 다르다. 무작정 떠난다. 누군지 모른다.
이새의 아들들을 만났다. 이새는 아들 일곱을 차례대로 사무엘에게 소개를 한다. 마치 알고 있는듯.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아주 조금씩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교훈: 우리는 하나님께 결과의 대해 알고 싶어하고 결과의 대한 음성을 듣고 싶어 함, 사무엘은 아무것도 모름. 그저 그가 가야 하는 한 걸음만 알고 있을 뿐.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 결과의 대한 기도보다 지금 내가 어떻게 한걸음을 때야 할지 물어야 하고 그 한걸음을 순종해야 한다. 결과를 향해 순종하지 않는다.
사무엘은 먼저 아들 엘리압을 만난다. 첫눈에 반했다.
엘리압을 보고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시려는 사람이 정말 주님 앞에 나와 섰구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님께서 무엇이라 하는가?
7절에서 너는 그의 준수한 겉모습과 큰 키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내가 세운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처럼 그렇게 판단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
이것은 사울을 만날때와 반대된다. 사무엘이 이 훈남이 엘리압이 하나님이 세운 사람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사울을 만났을 때 가졌던 느낌때문이다.
9장 2절에서
성경전서 새번역 9장
그에게는 사울이라고 하는 아들이 있었는데, 잘생긴 젊은이였다.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그보다 더 잘생긴 사람이 없었고, 키도 보통 사람들보다 어깨 위만큼은 더 컸다.
두번째, 세번째… 일곱모두 아니었다. 이새는 막내 다윗을 빼고 모두 보여주었다. 그러나 사무엘은 다윗을 기다리겠다고 한다.
양떼를 지키던 다윗을 불러 오고 드디어 만났다. 다윗을 막내라고 소개한다. 이 막내라는 말은 “작은자"라는 의미, 사울은 “큰자"로 소개되어 반대 되는 소개이다.
모든 것이 대조적이다. 사울은 밭에서 소를 모는 농부였다.
다윗은 목동이었다. 이스라엘이 유목민에서 정착민으로 바뀌면서 농업이 훨씬 더 중요해졌다. 목축은 3디 업종에 속했다.
목동이라는 직업을 언급한 것은 왕의 대한 예언적 것이다.
양을 돌보는 목자, 왕의 역할이 목자의 역할, 함무라비법전에도 왕을 목자라고 표현을 한다.
드디어 막내, 작은 자, 목동,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는 사람 다윗이 왔다.
사무엘이 보는 눈, 하나님이 보는 눈이 교차된다.
사무엘이 보는 눈=눈이 아름답고 외모도 준수한 붉은 얼굴(압살롬처럼)
하나님이 보는 눈=7절, 나 주는 중심을 본다. 바로 이사람이다.
여전히 다윗도 외모가 출중하지만 하나님이 보신 것은 외모가 처음부터 아니었음. 하나님은 그 외모때문에 다윗을 선택한 것이 아님
목자의 마음을 보셨음. 다윗이 양을 돌보는 마음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마음을 하나님께 두는 것이다. 마음을 온전히 드리지 않으면 어떤 것도 받지 않으신다. 메튜헨리 목사는 마음을 드리는 것이 전부를 드리는 것이라고 말하고 하나님께
“아버지, 제 마음을 온전히 받으소서. 원래부터 주님 것이었습니다. 제 마음을 소유하시고 그속에 주님의 보좌를 세우소서"라고 고백하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마음을 하나님앞에 가져야 할까.
자원하는 마음: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인 것(출애굽기 35:5 “너희의 소유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택하되 마음에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 곧 금과 은과 놋과”
부드러운 마음: 온순하고 순종적, 딱딱하고 고집스럽지 않음(역대하 34:27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을 가리켜 말한 것을 네가 듣고 마음이 연약하여 하나님 앞 곧 내 앞에서 겸손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깨어진 마음: 모든 실패와 죄에 대해 슬퍼하는 것(시편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
연합하는 마음: 모든 감정을 하나님 중심(시편 86:11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기쁜마음:주님을 항상 기뻐하는 것(잠언 15:15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이 마음을 지키는 사람은 물질적으로 번영(신명기 32:15“그런데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
하거나 고난가운데 있거나 사회가 어지럽거나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거나 시험에 들었거나 심지어 죽음을 맞이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위태로움에 있을때 마음만 지킬 수 있다면 우리는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신앙은 머리로 믿는 신앙과 손으로 믿는 신앙
머리로 믿는 신앙-성경을 배우는 일, 죄를 알게 하거나 양심을 찌르게하거나 영혼을 살피는 것은 빠져 있음
손으로 믿는 신앙-봉사와 사역이라는 이름으로 동원, 반복적으로 일하게 함.
아더핑크목사 왈
마귀의 교활함,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쌓게 해 준다며 끝없이 반복되는 모임에 참석시키고 쉴새없이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책과 신앙도서를 읽으라고 함,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며 소위 봉사라 불리는 온갖 잡다한 일을 시킵니다. 마귀는 여러분을 이 둘 중 하나에 빠뜨려 결국 주님이 맡긴 가장 중요한 일인 “마음 지키기"에 전혀 신경쓰지 못하게 합니다.
다같이
그 무엇보다도 너는 네 마음을 지켜라.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잠 4:23.
오늘날 우리는 육신이 극성스럽게 요구하는 것을 들어 주느라 마음을 무시했다. 마음의 중심을 통해 선택한 다윗의 고백
시편 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