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의 길에는 생명이 있고 죽음은 없다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6 views
Notes
Transcript
휴양지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국적인 문화와 끝없이 펼쳐진 자연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모든 고민이 한 순간에 날아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지상 낙원이 따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기서 천년만년 살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소통하는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소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탓에 대화 과정이 그리 순탄치 만은 않았습니다. 그래서 손에서 번역기를 떼지 못했던 웃지 못할 사연이 있었습니다.
때마침 호텔에 문의를 해야할 상황이 왔고, 궁금해 하는 부분들을 문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호텔리어가 능숙한 말로 ‘한국 분 이세요?’ 라고 물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덕분에 저희가 원하는 바를 잘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게 되었습니다. 정말 반가웠습니다. 알고보니 한국인 방문이 잦았던 호텔이었고 호텔측에서 한국인이지만 영어를 잘하는 호텔리어를 고용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남은 용건을 처리하기 위해 그 한국인 호텔리어를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는 저는 이국 땅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한국분이시나봐요? 여기서 뵈니 반갑군요' 라는 인사를 건넸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싸늘했습니다. 분명 눈웃음으로 인사하며, 고상한 단어와 친절한 말투로 저희 용무를 처리해 주었지만, 그 호텔리어가 분주한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귀찮아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빠르게 용무를 마무리 하고 다시 호텔 방으로 올라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참 여유가 없어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타지에서 생활하는 게 결코 녹록치 않아서 그런가라고 생각하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말은 마음의 초상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은 마음의 상태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의 상태가 분주하면 그가 어떤 말을 내뱉든 그의 말에서는 분주함이 나타나지기 마련입니다. 그의 마음의 상태가 불안하면 그 사람이 아무리 활짝 웃으며 말을 건넨다 하더라도 그에게서는 불안함이 담겨 나오기 마련입니다. 말을 통해서 그 사람의 마음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말을 통해서 숨은 속내도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활짝 웃으며, 반가운 얼굴로 이야기 한다고 하더라도 그 의도가 불순하면 그 말은 상대에게 불편함만 줄 뿐입니다. 표현되어지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의도가 상대방에게 전달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바른 말을 해주고 싶다면 바른 의도와 바른 마음을 가지고 말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상대방에게 바른 말이 전달됩니다.
그럼 그리스도인은 어떤 말을 해야 하는가? 재론의 여지가 없이 그리스도인 또한 바른 의도로 바른 말을 해야 합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진실을 말해야 하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배려하며 친절을 베푸는 말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생각해보면 그리스도인들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중 마음씨 좋다는 사람이라면 그 친절과 호의는 한번쯤 느껴봤을 법도 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이라면 한 걸음 더 나아가 생명의 말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잠언을 살펴보고 있습니다만 잠언은 각 구절이 하나의 교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연결된 하나의 교훈이라고 하기보단 각각의 교훈들로 이루어진 교훈의 모음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늘 본문에서 전반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의인과 악인의 말'에 관한 교훈입니다.
본문 속에 나오는 의인의 말을 살펴 보면, 그들은 진실(17절)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진실은 진리를 말합니다. 즉 의인은 진리만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또, 말이 영원하고(19절), 친절하다고(25절) 말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은 이러한 언어로 인해 사람의 병을 고치고(18절), 평화와 기쁨이 넘치며(20절), 이웃을 바른 길(26절)로 이끈다고 합니다.
반대로 악인의 말을 살펴보면, 어리석음을 폭로(23절)한다고 말합니다. 또, 악인은 거짓을 일삼으며(17절) 칼로 찌르듯 아픔을 주는 말(18절)을 하고, 이웃에게 해를 입히며 그들이 바른 길로 가지 못하도록 방황하게 한다(26절)고 합니다.
이 의인과 악인의 대조에서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은 의인의 말은 나의 영혼 뿐만 아니라 내 이웃의 영혼을 살릴 수 있는 반면에, 악인의 말은 내 영혼 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영혼까지 죽음으로 이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의인의 마음 속에는 참된 생명이 살아 숨쉬는 반면에 악인의 마음 속에는 이미 죽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은 메아리와 같습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축복의 말과 생명의 말을 하기 시작한다면 그 생명은 더 크게 증폭되어 나에게 더 큰 생명과 기쁨으로 되찾아 옵니다. 하지만 상대에게 악한 말과 거짓을 말하기 시작하면 그 잿더미 같은 죽은 말은 나에게 더 크게 다가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내뱉은 말로 인해 가장 크게 피해를 보는 사람은 실제로는 자기 자신입니다. 생명을 전하는 자는 날마다 생명 속에 거할 수 있지만, 악한 자는 죽음 속에서 빠져 나올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생명의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우리 마음에 생명을 품을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 생명이란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때 비로소 생명의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착한 말이나 우리의 노력이 아닌 오직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 안에 온전히 거할 때 그때 비로소 우리의 두 입술에서 생명의 말이 나가게 될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지 않는 사람에 비해 고상한 말과 상냥한 말을 합니다. 저는 23살에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면서 교회에서 욕 한번 제대로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초신자들도 교회에 오면, 친절함과 고상함에 놀라며 감탄을 자아내곤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새신자들은 실망을 자아내며 교회를 떠나곤 합니다. 왜냐하면 그 상냥하고 고상함 속에 생명 즉,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포장은 잘 되어 있으나 세상 사람들처럼 마음에는 이기심과 욕망이 들 끓기 때문입니다. 또,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은 입에 달고 살지만 실제로는 남보다 내 자신만을 지극히 사랑하여 남에게 헌신을 하기보다 내 자신의 실리만을 더 많이 챙기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서의 한 말씀처럼 그들이 입으로는 이웃에게 평안을 외치지만 마음 속으로는 그들을 해치려는 이중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에 생명이 흘러 갈 수 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순전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우리 자신의 욕망과 이기심으로부터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우리안에 품기 시작할 때, 우리를 통해서 생명이 흘러가며 많은 이들이 주께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얼마 전에 저희 학교 채플에 하나로드림교회의 송혜연 목사님께서 오셔서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이 목사님께서는 탈북민으로 이북에서 넘어오셔서 저희 학교를 졸업하시고 영등포구에 교회를 세우시고, 탈북민을 위한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송혜연 목사님께서는 말이 얼마나 쩌렁쩌렁하고 힘이 있으시던지 온 예배당에 그 목사님의 소리로 가득찼습니다. 하지만 저희 전도사님들을 압도한 것은 그 목소리가 아니였습니다. 그 목소리 안에 있던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이 저희 모두를 압도했습니다. 송 목사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성경에는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말씀이 들어가면 사람이 바뀝니다. 이 말씀이 들어가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당장 저 북한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때려 엎고 싶고, 동상도 깨부수고 싶은 이 분노의 마음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나의 분노가 치유가 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누군가 나를 향해 총을 겨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그 사람을 향해서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용기 있는 사람이 됩니다.’
이 분의 이 말씀은 많은 저를 비롯한 많은 전도사님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습니다. 그리고 그 불씨는 채플 이후 한 전도사님과 한 식사 자리에까지 이어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살아보자’고 다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송혜연 목사님께서 품으신 생명의 말씀이 저희 전도사들의 마음안에 생명으로 다가 온 것입니다. 그 목사님을 통하여 수많은 전도사들이 각자의 교회로 돌아가 생명을 흘려 보냈을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입니다. 어쩌면 지금도 그 생명의 불씨는 이어지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생명력있는 의인의 말은 그 자체로 절대 소멸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생명이 생명을 낳고, 그 생명이 생명을 낳습니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십시다. 그리고 그 생명의 말을 우리가 처한 그곳에 전하기 시작하십시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를 통해 수 많은 이웃들이 바른 길로 돌아오며, 우리의 말을 통하여서 많은 사람들이 진리 가운데로 돌아와 자유케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의의 길에는 생명이 있고, 죽음은 없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