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론10_양자 Adoption

강웅산 교수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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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여정은 법정적으로 의인된 것에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총까지 이어진다.

1. 양자 교리 논의의 역사

종교개혁 후 청교도와 WCF 전통이 양자 교리를 강조한 것은 칼빈의 영향이다. 윌리엄 에임스는 “신학의 정수”에서 양자 교리를 칭의와 구별하였으며, 칼빈과 청교도 신학을 잇는 WCF도 제12장에서 양자 교리를 다뤘다.
양자 교리를 다루지 않은 학자: 찰스 핫지, 카이퍼, 바빙크, 벌코프, 호크마 양자 교리를 다룬 부류와 학자: 청교도, WCF, 머레이, 박형룡

2. 성경신학적 접근

양자 교리는 구약에서부터 면면히 흐르고 있는 중요한 사상이다.
출애굽기 4: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신명기 14: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이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이사야 63:8 “그가 말씀하시되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호세아 1:10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구약 언약을 특징하는 신정통치(군주-봉신/백성) 관계는 점진적으로 아버지와 자녀의 친근한 관계로 옮아간다(그러나 잠정적이고 한시적이다). 양자 교리는 신약에 들어오면서 훨씬 확정・구체・중심적인 개념이 된다.
양자 됨의 특권을 구현하셨으며, 알리신 분은 그리스도시다. 아버지-자녀 관계가 그를 통해 성취되었고, 말씀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소개하셨다.
예수님의 천국복음은 잃어버린 자녀를 향한 것이며,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주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다. 이것은 탕자 비유를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탕자는 아버지의 아들이기에 회개하게 되고, 아버지는 아들이기에 그의 죄를 용서(칭의)하게 된다. 이 비유는 아버지-아들의 관계를 전제하며, 신분의 회복과(눅15:24) 아들 됨의 특권(눅15:22) 즉 칭의와 양자 교리를 담고 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향해 하나님을 “너희 아버지"로 부르셨는데, 여기서 너희는 그리스도를 통해 가능케 된 자녀이다.
갈라디아서 4:4-5”은 구약에서 신약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양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그리스도를 통해 결국 하나의 역사로 완성됨을 말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갈라디아서 4:6”은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다고 적고 있다. 구원서정이 구속사에 근거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볼 때, 구속사의 진행은 우리로 아들 되게 하는데 그 목표를 두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아들의 명분은 구속역사의 점진적 성취의 특성을 반영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4절의 “때가 차매”는 이스라엘(구약)과 성도(신약) 사이의 역사적 점진성을 반영한다.
로마서 9:4”에서 양자 개념에 관한 옛 것과 새 것의 차이는 원리의 차이(질적 차이)라기 보다 점진적으로 커지는 정도의 차이를 말한다. 구약 성도들도 하나님의 자녀였지만, 신약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 의미를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 차이다.
갈 4”과 “롬 9”에서 바울이 말하는 것은 유대인들이 누렸던 특징이다. 언약 밖에 있던 우리(이방인)은 모세의 율법 하에서 옛 것을 경험하던 자들이 아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언약 밖에서 완성된 언약 안으로 들어 온 자들이다(엡 2:2). 언약 밖에 있던 우리에게 자녀 됨이란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단번에 종말론적 성취를 누리게 된 것이기에 더 큰 은혜라고 할 수 있다(cf. 롬8:14; 갈3:26; 계21:7).
구원은 법적 신분 변화와 가족 관계, 가족 관계의 특권을 포함한다. 그 특권은 신약에서 “유업”이라고 부른다(고전6:9, 10, 15:50; 갈3:18, 4:1, 7, 5:21; 골3:24; 히11:9; 약 2:5; 벧전 3:9; 계 21:7). 신약의 “유업”은 아들 된 자들이 특권의 총합이며, 구약 이스라엘에게 주었던 “분깃”의 총합이다.
아버지와 아들 된 관계는 구속계시의 점진적 진행 속에서 드러난 사실이다. 영원한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통해 우리도 그와 함께 한 아들들이 된 것이다. 로마서 8:17a“자녀이면 또한 상속자(후사) 곧 하나님의 상속자(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후사)니”

3. 양자의 기독론적 근거

성도의 자녀 됨은 그리스도의 아들 됨 안에 있다.
로마서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바울은 이 구절을 통해 영원한 아들이신 성자 하나님이 이제 부활을 통해 온 천하에 아들로 확인되셨음을 천명했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부르는 일은 구속사적 진행과 맞물려 있다. 복음서의 기록 목적은 예수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아들로 드러나는 의도와 연관이 있다(막1:1; 11). 구속사와 구원서정의 관점에서 볼 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드러나는 것은 구속사이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구원서정의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드러나야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기 위한 목적에 맞추어 있다.
복음서는 지속적으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드러내고 있다. 귀신들린 자들을 통하여(마8:29),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를 본 제자들을 통하여(마14:33), 베드로의 고백을 통하여(마16:18), 하나님의 음성을 통하여(마17:5). 그러나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은 십자가의 죽음에서 반대되었다. 유대인들이 죄목으로 삼은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칭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조롱했다. 그러나 예수께서 죽으실 때 백부장과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의 입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언급되었다.
사도들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증언하는 것을 핵심으로 두었다. 로마서 1:4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양자 교리의 관점으로, 우리를 위하여 아들이 되시는 양자 사건으로 말하고 있다. 이것을 기독론적 양자 사건이라고 한다. 부활은 우리를 위하여 양자 됨을 완성한 사건이며, 부활에 양자 됨이 있는 것이고, 그리스도가 아들 되심 속에 우리의 아들 됨이 있는 것이다.

4. 양자의 신학적 특징

4.1. 양자의 의미는 창조-재창조 구도를 반영한다.

그리스도의 중보적 사역을 통해 구약의 창조주 아버지가 재창조주의 아버지가 되신다. 엡1:4-5 창조는 재창조를 향해 진행하도록 의도되었고, 재창조는 양자 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구절에서 “그리스도 안"이 강조되는데, 재창조는 “그리스도 안"을 전제하고 있고 양자 됨도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
양자 됨은 하나님의 주권과 연결되어 있는데, 아담 안에서 아담의 아들들로의 창조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재창조를 향한 진행에 아버지의 기뻐하시고 비밀스럽고 강한 뜻이 있다.

4.2. 양자의 가치는 이스라엘 역사가 지니는 특수성에 담보되어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의 자녀 됨과 그들의 역사는 불가분적이다(롬9:4). 그들의 역사는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갖는 역사이다. 시내산 언약에서부터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군주-백성의 관계에서 아버지-자녀의 관계로 진행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구약 백성이 그랬듯 언약 역사와 연속성의 의미를 갖는다. 구약 백성은 완성을 바라보았지만, 우리는 이미 완성된 양자의 명분을 누린다.

4.3. 양자 됨은 더 이상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의 것이 되었다.

현재의 것이라 함은 적용과 누림을 말한다(갈4:1->갈4:4-5: 때가 차매 종과 다름 없던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아들의 명분을 얻게 됨). 현재적 특징은 성령(아들의 영)이 아들들의 영에게 양자 됨을 증거함으로써 가능하다(바울:갈4:6; 롬8:15). 바울에게 있어서 양자의 현재적 특성(구원서정)은 아들의 영의 내주하심에 따른 결과이다.

4.4. 양자의 특권에는 개인적 차원 뿐만 아니라 공동체적 차원이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자들의 집합이 교회이다. 에베소서에 따르면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교회를 이루는 것을 가족 됨으로 설명된다(엡 2:19). 그리스도는 소망이 없던 이방인이 수직적으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고, 수평적으로는 유대인과 더불어 한 가족이 되게 하셨다. 양자의 영을 소유함으로써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한 가족(권속)이 되었다. 양자의 의미는 개인적 친밀함을 넘어 공동체 결속을 가능케 하는 근거이다.

5. 양자와 중생의 관계

요한복음 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2절과 13절의 관계를 보면, “하나님의 자녀"는 곧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다. 중생이 하나님의 자녀 됨의 성질로 규정되고 있다.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를 “하나님께로 난 자”로 설명한다(요일 3:10; 5:1-2). 하나님께 난 자들은 낳으신 자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은 다른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한다. 하나님께로 난 자들인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요일 4:7). 하나님의 자녀(양자)와 하나님께로 난 자(중생)의 의미에서, 중생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되고, 양자를 통해 하나님 가족의 일원이 된다.

양자 교리의 실천적 의미

전에는 외인이었고 원수였던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됨으로써 아들의 신분에 맞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아들의 특권은 자유이다. 갈라디아서는 아들 신분의 특징을 종과 대비하여 자유를 부각시킨다. 종의 아들은 육체, 시내산, 율법으로 대변되는 반면, 자유자의 아들은 약속, 예루살렘, 복음으로 집약된다. 아들 된 자들은 아버지 앞에서 종처럼 자유를 어려워하지 않는다. 아들은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않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한다.
아들은 언제든지 아버지를 부를 수 있다. 아들은 기도를 통해 언제든 아버지를 부를 수 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시는 영이 우리 안에서 “보증”(엡1:14)이 되시므로 그 영의 내주를 힘입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타종교에서 기도는 막연한 대상에 비는 행위이지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우리 아버지시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신다. 우리를 너무도 잘 아시는 분, 우리의 필요가 무엇인지 아시는 아버지께 하는 기도이므로 더욱 친근해지고 깊은 사랑의 교감이 오가는 인격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아들에게 기도란 인격적인 교감을 나누는 특권이면서 의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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