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과 결혼 / 요 4:6 / 찬송가 289장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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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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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한 주간의 시간들을 보내고, 토요일 새벽을 깨워주셔서 예배의 자리로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아버지, 우리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볼 때에, 수많은 악한 결단들을 해왔음을 고백합니다. 처음부터 악한 의도로 결단하기도 하였고, 좋은 의도였지만, 결국엔 악한 의도였던 죄악의 결단을 해오며 살아왔습니다. 주님, 생명의 결단을 하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믿고, 더 깊이 알아가겠다는 그러한 결단을 하지 못했던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죄악된 결단들 속에서 어떠한 저항도 할 수 없었지만, 생명의 결단을 하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이제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께 우리의 생명을 바치겠다고, 예수님께만 우리의 삶을 투자하겠다고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주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날씨가 점점 추워지며, 연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교회 가운데 올해를 잘 마무리하고, 내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주님 지혜를 허락하여 주셔서, 예수님 안에서 올바르게 교회가 걸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창조과학세미나를 열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버지, 우리 다음세대들이 올바른 세계관을 가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돈을 주는 것보다 물질을 남겨주는 것보다 올바른 세계관, 복음을 남겨줄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을 유산으로 남겨줄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악한 세대 앞에서 맞서 싸울 수 있는 복음을 가르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우리 교회 환우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왜 저들에게 이러한 고통과 아픔을 주셨는지 하나님의 계획 앞에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장 선하게 인도하여 주실 것이라 믿고, 저들의 아픔을 치유하여 주시고, 저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고,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갈 수 있도록 주여 역사하여 주옵소서. 눈물을 닦아주시고, 품어 안아주시고, 함께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주일 전날을 준비합니다. 몸을 잘 사용하게 하여 주시고, 욕심으로 무리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온전히 주일날 말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마음 가운데 사모함을 더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말씀 듣습니다. 오늘 말씀 듣고, 예수님 만나고, 그 예수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예수님과 함께 걸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구원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서론
서론
하나님의 말씀은 4장 6절 요한복음 입니다. 우리 같이 말씀을 두 번 읽겠습니다. (읽음) 하나님께서 저희들을 예배의 자리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새벽을 깨워 이 곳에 오신 우리 귀한 성도 여러분들을 우릴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수많은 설교들을 들어보면 때때로 그 설교 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그 설교자 인생 스토리나 예화들만 기억에 남을 때가 있습니다. 최근에 아이들한테 제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를 보면 뭐가 생각이 나냐고 질문했습니다. 제가 가장 듣고 싶었던 대답은 복음, 아니면 예수님 이었지요. 그러나 결과는 안경, 공룡, 뽀로로, 탕후루 간식 이러한 대답이 나왔습니다. 굉장히 아쉽지만, 인정해야겠죠.
다시 돌아와서 설교자가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 설교 시간에 이야기하면, 끝나고 그 이야기만 머리 속에 남을 때가 있는 것이죠. 그 결혼 이야기가 재미있었기 때문에, 남았던 것일수도 있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고, 흥미로운 주제이기 때문에, 인상이 깊은 것이죠. 누구랑 결혼할지, 어떻게 결혼까지 가게 되었는지, 결혼할 때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결혼하고 잘 살고 있는지 정말 수많은 작은 이야기들이 터져나옵니다. 성경에서도 이렇게 결혼에 대해서 여러 곳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가만히 성경에서의 결혼을 살펴보니까 굉장히 뜬금없는 단어 하나가 튀어나오는 겁니다. 무엇일까요? 바로 우물입니다. 우물과 결혼. 정말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데, 성경 안에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겁니다.
본론
본론
이삭, 야곱, 모세 이 세 명의 인물들 모두 우물에서 짝을 만나게 결혼하게 되었지요. 물론 이삭은 아브라함의 종이 대신해서 우물에 갔지만, 어쨌거나 우물이라는 장소는 자연스럽게 결혼을 임사하는 그런 장소라는 겁니다.
11 그 낙타를 성 밖 우물 곁에 꿇렸으니 저녁 때라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올 때였더라
이렇게 이삭의 짝을 찾아줄 아브라함의 종이 우물가에서 리브가를 만나게 되었고요.
1 야곱이 길을 떠나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2 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 떼가 누워 있으니 이는 목자들이 그 우물에서 양 떼에게 물을 먹임이라 큰 돌로 우물 아귀를 덮었다가
야곱도 마찬가지로 이 우물에서 라헬을 만나게 됩니다.
15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모세도 역시 우물 곁에 앉았다가 이것을 계기로 십보라를 아내로 얻게 됩니다.
이처럼 구약 성경에서 우물이라는 장소에서 남자와 여자가 만났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결혼하게 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보충해서 조금 더 설명하면, 우물에서 짝이 될 여자와 만나고, 그 여자는 상대방 남자에게 물을 주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여자는 가족들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이죠. 그 다음에 결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이렇게 되는 건 아니지만, 이러한 흐름대로 가는 것이죠. 그렇다면 구약에서의 우물과 결혼이 왜 중요한 것일까요? 우리는 왜 우물이 결혼을 암시한다고 알아야만 하는 겁니까?
이러한 비슷한 사건이 신약에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의 만남이지요. 당연히 4장 요한복음을 읽고 있는 독자들, 저와 여러분들은 지금 4장에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에서 만나는 것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겠습니까? 아 지금 예수님이 저 사마리아 여인과 결혼하려고 만나신 것일까?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예상했던 ‘그런 결혼’은 아니었던 겁니다. 육적인 결혼이 아니었던 것이죠. 어떤 결혼이 펼쳐지는 겁니까? 영적인 결혼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우물에서 물을 달라고 요청하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곧바로 당황하였지요. 예수님은 유대인이었고, 자신은 사마리아 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결혼은 커녕 서로 상종도 못할 사이였습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이 둘의 사이는 굉장히 멀어진 사이였지요. 그렇기에 처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유대 땅에서 갈릴리로 갈 때에 사마리아 땅을 밟지 않고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 예수님이 사마리아 땅을 지나가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과 영적인 결혼을 하게 될 이 사마리아 여인을 보면 굉장히 충격적인 여자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여인은 남편이 5명이나 있었고, 지금 함께 있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여기서 이 여인에 대해서 깊이 알아야 합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을 가만히 보면 우리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지요. 이 당시에는 여성들의 인권이 거의 없었던 시대입니다. 그렇기에 이 사마리아 여자가 주체적으로 남편들을 갈아치운 것이 아니었던 것이죠. 이 여인은 그저 수동적으로 사회가 만들어낸 구조 속에서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저 그렇게 버려지고, 또 버려지고, 그렇게 버려지며 살아갔던 것입니다. 이 당시에는 과부가 되면 거의 최하층의 사람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죽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에, 이 여자는 버려지고, 또 버려졌지만, 계속해서 다른 남편을 찾아야 했던 겁니다.
이 여자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우리도 죄인으로서 죄악이 만들어낸 구조 속에서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저 죄가 하라는 대로 수동적으로 꼭두각시처럼 죄를 짓고 살아가지 않습니까? 자기 의지를 갖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죄악의 구조 속에서 가만히 죄만 짓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죄악의 폭력 앞에 우리는 가만히 고통당하며 그렇게 죄를 지으면서 죄악을 따라 지옥에 가고 있는 자들이 아니겠습니까? 사마리아 여인은 우리 죄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우리에게 누가 찾아오신 겁니까? 우리의 진짜 신랑이신 예수님이 우물에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물을 달라고 하시는 겁니다. 우리와 사마리아 여인은 당황하며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진짜 신랑이신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이제 우리에게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주시는 것이지요. 그렇게 예수님이 주시는 물을 마시며 우리는 그 죄악에서 벗어나게 되는 겁니다. 죄악의 사슬에서 풀려나서 이제 진짜 신랑이신 예수님과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메시야, 그리스도, 구원자 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진짜로 결혼해야 하는 그 진짜 신랑을 드디어 알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이 기쁜 소식을 알게 된 여인은 동네로 달려가서 자신의 영적인 결혼 소식을 알리게 됩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은 동네 사람들은 이제 예수님께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되지요. 이제 동네 사람들도 예수님과 영적인 결혼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세상의 구주, 구원자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오늘 이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여 주신 우리의 진짜 신랑,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진짜로 결혼해야 하는 분은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과 결혼하게 된 우리들은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동네 사람들에게 달려가는 것이지요. 이웃들과 동료들에게 달려가는 겁니다. 그리고 외치는 것이지요. 진짜 신랑이 오셨다고. 진짜 신랑이신 예수님이 오셨다고. 그 예수님과 결혼해야 한다고. 그 예수님에 대해서 들어보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웃과 동료들에게 외치기 전에 이것부터 해야 합니다. 우리의 진짜 신랑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죄악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구원자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는 그 진짜 결단을 하지 않았던 죄악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모르는 가장 큰 죄악을 끊어내고, 회개하고, 이제 예수님을 깊이 알아가는 자로서, 이웃과 동료들에게 생명의 물을 주신, 진짜 신랑 예수님을 기쁨으로 소개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이 시간 주기도문하심으로 예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