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에게 배우는 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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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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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요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야 한다.
인간 스스로에 대해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
따라서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인간의 비참함을 알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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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의 연습을 방해하는 장애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축복이 큰 만큼 그것을 누리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장애물의 위력 역시 강합니다.
<자주 오해하는 성경 말씀들>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정의와 공의로 행하여
저당물을 도로 주며 강탈한 물건을 돌려 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지켜 행하여 죄악을 범하지 아니하면 그가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지라
그가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반드시 살리라 이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음이라 하라
죄인이 원하면 언제든지 회개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때 비로소 회개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디모데전서 1:15 (NKRV)
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이 말씀에서 “죄인”은 사도 바울처럼 회개하고 악한 생활에서 돌이킨 자를 가리키는 것이지, 여전히 악한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자들을 뜻하지 않습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이 말씀은 의인이 죄에 빠진다는 뜻이 아니라 그의 악한 원수의 계략에 빠진다는 뜻이요, 따라서 하나님이 그를 그 계략으로부터 구원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이사야 64:6 (NKRV)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사실 우리의 선행이 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의에 비하면 더러운 옷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받으셨기 때문에 그것을 흰옷이라 부르는 것입니다(계 3:18). 표범의 반점(렘 13:23)이나 더러운 옷(슥 3:4)과는 거리가 먼, 빛나는 깨끗한 세마포라 부르는 것입니다(계 19:8).
야고보서 3:2 (NKRV)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요한 사도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요일 3:9)라고 말했습니다. 즉 그들은 고의적으로 더러운 죄 가운데 살지 않고, 오히려 자기 안에서 자기를 지배하는 죄로 인해 괴로워하며 삽니다.
죄를 습관적으로 지으며 사는 사람은 누구든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딤후 2:19)라고 말했습니다.
중생한 자들은 죄를 범하되 고의적으로 범하는 것이 아니라 약하기 때문에 범합니다. 그리고 죄를 범한 후에는 그 죄를 회개합니다.
눅 23:43 (NKRV)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읽고 육에 속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회개한 도적은 낙원에 이르는 축복을 받았어. 그렇다면 나도 죽는 순간, ‘주여,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라고 말하면 구원을 받을거야.” 그러나 만일 그때 구원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날에 많은 사람들이 “주여, 주여” 하고 주님을 부르겠지만 주님은 그들을 모른다 하실 텐데 말입니다(마 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이 땅에서 마지막 순간에 회개할 수 있다는 것만 믿고 있다가 지옥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회개하려 하지만 너무 늦어 회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일이 없도록 유의하십시오.
로마서 5:20 (NKRV)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참으로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이어서 하는 말을 들어보십시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 6:1-2)
따라서 이 약속의 말씀은 참 회개한 심령 이외의 사람에게는 사실 어떤 은혜도 약속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주 오해하는 주요 교리들>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됨”
그것은 선행이 비록 칭의에는 필수가 아니지만 구원에는 필수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 알 만한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이후 선행의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그는 구원받을 수 없을뿐 아니라 사실 영생을 얻도록 예정된 자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롬 2:6; 고후 9:6; 계 22:12)
나무가 항상 열매를 맺고, 태양이 항상 빛을 발하고, 불이 항상 열을 내고, 물이 항상 수분을 함유하고 있듯이 우리를 의롭게 하는 믿음에는 항상 선행이 뒤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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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 교리와 작정 교리”
‘내가 이미 구원을 얻도록 예정되었다면 나는 어차피 구원을 받을 것이고, 지옥에 떨어지도록 예정되었다면 무슨 짓을 하든 아무 소용이 없을 거야. 그러니까 경건한 행위를 해서 뭐하겠어?’
그러나 여기에서 알아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목적뿐 아니라 수단까지도 예정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누군가가 구원을 얻도록(목적) 예정하셨다면(벧전 1:9) 그는 또한 먼저 부르심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도록(수단) 예정되었다는 것입니다(롬 8:29-30; 요 15:16).
베드로 사도는 구원을 얻도록 택함받은 자들은 또한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을 받도록 택함받았다고 말합니다(벧전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만일 성령의 선하신 뜻에 따라 복종하여 죄를 멀리하지 않고 있다면 하나님의 예정을 탓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죄와 반항을 탓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돌아온다면 하나님이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처럼 기꺼이 받아주실 것입니다.
“선을 행할 자유 의지의 부재”
“사람에게는 선을 행할 자유 의지가 없다”는 교리를 들을 때 육에 속한 사람은 마치 자신의 타락한 본성을 억제하거나 제압할 힘이 자기 안에 전혀 없는 듯 타락한 의지에 자신을 다 맡겨버립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을 죄를 만드신 장본인으로, 인간을 이런 필연 속으로 몰아넣으신 분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러나 그는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즉,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가 하려고만 했다면 얼마든지 죄를 범하지 않고 똑바로 설 수 있는 자유 의지를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아울러 인간이 자신의 자유 의지를 남용하여 스스로는 물론 그 자유 의지마저 상실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타락 상태에 빠진 인간은 죄를 행할 자유 의지는 갖고 있으나 선을 행할 자유 의지는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한심하게 잃어버린, 게다가 다시 회복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다시 회복시켜주실 의무가 하나님께는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거듭나면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즉시 은혜를 주시어 그의 의지를 선하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자유하게 하신 방식대로 자유 의지를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136page(타락 이후 율법과 계명을 다 지킬 수 없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