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
Notes
Transcript
서론
서론
“손가락 하나를 세워 꼼지락거려 보세요. 바로 그 순간 여러분은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를 간질이고 있는 것입니다.” 앤드루스(존 홉킨스 대학교의 명예교수)
이 말을 다르게 설명하면, 거미줄의 어느 부분을 만져도 거미줄이 흔들리는 것 같이 세상은 전체적으로 연결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유명한 미국의 전 농구선수였던 찰스 바클리는 뛰어난 농구 실력 만큼이나 다혈질로 유명한 선수 였습니다. 선수들과 심판과 몸싸움과 설전을 벌이는 일이 잦았습니다. 청소년들이 당신을 롤모델로 생각 하니 조금만 자제하라는 여론에
“나는 누구의 역할 모델도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정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유타 재즈의 칼 맬론은 이렇게 대꾸했다. “찰스, 넌 얼마든지 역할 모델을 부정할 수 있어. 하지만 그건 네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 우리가 선택할 문제가 아니라, 선택되는 거니까 말이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좋은 역할 모델이 되느냐 나쁜 역할 모델이 되느냐 뿐이거든.” 바클리 본인이 좋든 싫든,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만은 사실이다. 사람에 따라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명인사들의 행동이나 태도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2000년 3월, ‘러브버그’라는 컴퓨터 바이러스가 전 세계 수많은 기업체들의 서버를 다운시켰다. ‘I LOVE YOU'라는 이메일을 여는 순간 바이러스는 사용자의 주소록을 통해 눈 깜짝할 사이에 수백만 대의 컴퓨터를 감염시켰다.
아주 작은 말과 행동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 주변에 영향을 주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긍정적인 영향력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이 작은 것의 큰 영향력에 대해 비유로 말씀 하십니다. 주님의 비유 속에 숨겨진 지혜와 옳바른 믿음의 길에 대한 깊은 깨달음 얻으시기를 축원 합니다.
1.작은 믿음
1.작은 믿음
오늘 본문 초반부에 나오는 작은 믿음은
다른 말로 작은 배려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저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할찐대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매이우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나으리라
여기서 작은 이라는 것은 ‘미크론' 영어의 마이크로의 어원이 되는 말입니다. 아주 작은 물체나 신분적으로 아주 낮은 사람을 의미 합니다. 성경적 표현으로 ‘소자' 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 소자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나를 믿는 이" 라고 지칭 하십니다.
또다른 단어 ‘스칸달리죠' 실족케 하다 라는 단어는 걸려 넘어지게 하다, 죄를 짓게 하다 외에도 배척하다, 버리다 라는 뜻도 포함하는 단어 입니다.
아주 힘이 없고 약한 사람 또는 믿음이 약한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거나 죄를 짓게 하거나 배척하여 따돌리고 버리는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행위는 의도치 않게 벌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미워해서 죄를 짓고 넘어지게 유도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배척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런 행위에 대한 벌은 무엇일까요?
“연자 멧돌을 그 목에 매이우고 ....”
느와르 영화에나 나올 법한 아주 잔혹한 살해 방법으로 딱 떠오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런 사형제도가 있었다는 기록을 알지 못합니다. 아마도 아암리에 저질렀거나, 단순한 비유의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이 잔혹한 형벌이 의미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타인을 실족케 하고 죄짓게 하고 배척하고 버리는 사람의 그 화가 연자 멧돌 메고 바다에 던져진 것보다 살아남기 힘든 죄다 라는 무서운 말씀 입니다.
사람이 무거운 멧돌을 목에 메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영화에서는 종종 살아 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현실에서는 거의 살아 돌아올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입니다.
연자멧돌을 목에 메고 바다에 던저져 살아 돌아올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차라리 이 경우는 희박하지만 가능성이 있지만 소자를 실족케 하는 것은 용서 받을 가능성이 더 희박하다는 말입니다.
사람에게 못되게 대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특히 힘없고 가난한 사람이면 더 그러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그 사람이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쉽게 정죄하거나 미워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세월호 사건 이전에 이미 엄청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1993년 서해페리호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때, 선장과 선원이 도망 갔다는 오보가 온 매체를 통해 나갔습니다. 수배령을 내렸지만 찾지 못했고 나쁜 사람들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했습니다. 몇 일후 선장을 포함한 전원이 배안에서 시신으로 발견 됩니다. 언론은 사과기사 한줄로 넘어갑니다.
사회에 지탄을 받는 이들 조차도 우리는 쉽게 판단 하고 미워해서는 안됩니다.
설령, 그들이 죄를 지었다고 해도 뉘우칠 시간을 주고 회개하면 용서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사랑과 포용을 베풀라고 말씀 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그리고 반복되는 죄를 지는다 하여도 용서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만일 하루 일곱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죄를 짓는 다고 똑같이 원수 갚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2.작은 자의 믿음
2.작은 자의 믿음
작은 소자를 실족케 하지 말고
가벼히 미움을 품지 말고,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락는 주님의 가르침에 제자들은 어떻게 반응을 했을까요?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믿음을 더해달라'
사도들은 작은 자를 사랑과 포용으로 대하는 것이 큰 믿음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삶 속에서 실천하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미션이라고 생각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에 대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너희가 그런 사랑과 포용의 삶을 사는데 필요한 것은 큰 믿음이 아니다.
그저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된다.
그 믿음은 작아 보이지만 사실 그 믿음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어마 어마 하다 라는 말씀 입니다.
내 주변에 작은 소자나 아니면 다가가기 쉽지 않은 홈리스나 전과가 있거나 날이 서 있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상처 받고 버림 받은 짐승 처럼 으르렁 대는 사람들을 만난다면 그 사람들을 우리 주님은 어떻게 대할까요?
우리가 모퉁이 사역을 하고 우리 일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 할 때 가장 필요한 자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종의 자세 입니다.
바로 섬기는 자세 입니다.
7-10 까지의 말씀은 바로 이 종의 자세, 섬기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작은 소자를 사랑하고 포용하는 일은 거창한 믿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작은 자의 자세 즉, 종의 자세로 섬기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겨자씨와 같은 믿음이고 이 믿은 사람을 변화 시키고 뽕나무가 바다에 던저져 심기우는 산전벽화의 놀라운 개벽보다 더 큰 일을 한다는 것을 말씀 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섬김 사역을 하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사람의 행색이나 그 사람의 첫인상과 말투와 때론 성숙하지 못한 인품을 만날때 그들을 낮게 보거나 내가 주는 사람 입장에서 그 사람들을 받는 사람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와 관련해서 종의 자세는 이래야 한다고 말씀 합니다.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 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힘들게 밭에서 일하고 양을 치고 왔다고 해서 주인과 동석에 앉아 주인 행세를 하는 종이 없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주인 수발 들고 섬기는 일을 하고 나서 먹는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례를 바라지도 않는 것이 종의 자세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스스로 종이 된 사람들 입니다. 대우를 받기 위해 주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상석에 앉아 대우를 받고 섬김을 받는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바가 아닙니다.
사람들의 칭송을 받을 것이 없는 빛도 없고 이름도 없는 일에 자청하여 섬기는 것이 우리의 가장 높은 덕목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을 섬기고 나면 댓가나 사례나 인사치례를 받기 보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라고 주님은 가르치십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것 뿐이라 할찌니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연차가 오래 되신 교회의 어른이 만약에 사람들의 칭송을 사양하고 항상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일하고 그저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하고 남을 높여주는 분이 있다면 다른 교인들의 눈에 얼마나 존경스럽고 귀감이 되겠습니까?
이런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종의 마음으로 섬기는 사람에게는 큰 믿음 작은 믿음의 구분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사명을 위해 집중합니다.
Owura Kwadwo
이 나라의 미래인 아이들을 가르쳐한다는 사명감이 있는 선생님은 컴퓨터가 없어도 아이들을 가르쳐야 겠다는 사명감으로 칠판에 그려서 라도 워드프로세서 사용법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소망이 없는 중에도 소망을 찾아내고
하나님이 하시겠다 하면, 뽕나무가 바다에 스스로 가서 심기워지든 산이 들려 옮겨지든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순종하는 종의 자세로 섬기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바라지 못하는 중에 바라는 것
Hope against hope
종의 자세로 섬기려는 마음만 있다면
겨자씨 한알처럼 작아보여도 그것이 그 어떤 큰 믿음 보다 귀중한 믿음 입니다.
종의 자세로 섬기려는 마음만 있다면
소자를 사랑하고 용납 할 수 있습니다.
3.소수의 믿음
3.소수의 믿음
로또에 당첨되어 하루 아침에 벼락 부자가 된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다들 아시다시피, 잘 묻어두고 원래의 삶의 패턴을 유지한 소수의 사람 외에 대다수는 불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그야말로 로또 보다 더 큰 행운을 얻은 10명의 사람이 등장 합니다.
이 이야기는 앞선 비유들과 달리 규모가 작은 것이 아니라, 그 수가 적은 것을 이야기 합니다.
10명의 나병환자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명에 따라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려 가는 중에 깨끗하게 낫습니다.
치료 받은 사람은 10명인데, 그 중에 사마리아인 하나가 돌아와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감사의 표시 까지 하는 모습을 보시고 주님은 묻습니다. “아홉은 어디 있느냐?”
참 뼈아픈 말씀 입니다.
은혜 받았다는 사람은 참 많은데,
정작 주님께 돌아와 영광돌리고 사례하고 감사하는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한명의 나음을 받은 사마리아인은
나음을 받을 뿐 아니라, 믿음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 믿음은 사도들이 주님께 구하던 그 믿음과 같은 믿음 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가만히 앉아서 큰 믿음 달라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돌아와 찬양하고 헌신하고 또 그 발아래 엎드리는 실제적인 변화와 행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구하고 긍휼과 기도의 응답을 구하던 그 아홉은 어디 갔느냐? 오늘 주님이 묻고 있는 것입니다.
10명이 선물로 받은 것은 나병치료 였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1명의 사마리아인 나병환자였던 그는 믿음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 믿음에 대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나를 구원할 믿음을 받은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과의 관계가 시작된 것입니다.
나병 치료 받고 떠난 9명은 예수와 관련이 없지만
믿음 즉 예수를 믿게 된 그 한 사람은 구원까지 받게 된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병, 현재의 문제, 어려움과 문제 해결이 아니라, 사실은 그 일들을 통해 하나님을 발견하고 영광돌리는 그 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믿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돌아와 영광돌리고 감사올리는 믿음
사도들이 구하였던 그 믿음을 더하는 또 다른 방법은
바로 돌아와 영광돌리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며, 하나님의 주시는 놀라운 일들을 체험하고 인도하심을 만나도 영의 눈이 없으면 그저 지나치게 되고 행운으로 치부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분명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임을 알게 된다면 예배의 자리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영광돌리고 감사하게 됩니다.
아홉이 될 것인가?
한 명이 될 것인가?
결론
결론
지금까지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은 우리 삶 속에서 사랑과 포요을 실천 하는 신앙의 도전 속에서 꽃피운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작은 자가 되어 섬기는 종의 모습을 가질 때, 거창한 뽕나무 옮기는 신앙 보다 더 큰 일 바로 소자를 살리는 영혼을 살리는 일도 할 수 있으며, 사람의 칭송이 아닌 무익한 종으로서 장차 하나님의 칭찬과 상급을 바라봐야 할 것을 배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아홉이 아닌 한 명이 되어 영의 눈으로 하나님의 행하신 놀라운 일을 행운이 아닌 감사의 제목으로 찾아내고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께닫고
예배의 자리로 돌아와 영광돌리고 감사하는 자에게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주심을 배웠습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 까지 승격을 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다가 배와 함께 장렬히 생을 마감 했던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의 동상에는 ‘영국인 답게(Be british)' 라는 문구가 세겨져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작고 크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 다운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땅히 베풀어야 할 사랑을 베푸시기 바랍니다.
마땅히 종의 자세로 섬기시기 바랍니다.
마땅히 돌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믿음을 소유 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믿음을 소유하면 비록,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주안에 영적으로 풍성하고 기쁜 삶으로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넓으신 은혜와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하심과
성령의 감동감화 역사 하심이
우리교회와 주님의 귀한 자녀들과 그들의 생애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찌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