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티니(청년부 블레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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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blessing - 내 인생의 데스티니(Destiny)를 발견하려면(엡1:18-19)
이번 주 말씀을 준비하는데, 귀한 시 한편이 생각났습니다. 정현종 시인이 쓴 방문객이란 시입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저는 교회를 개척하고 난후, 이런 마음이 들 때가 참 많았습니다. 개척 하고 나서 교회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를 찾는다는 것이 참 귀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한 사람 한 사람마다 그 안에 기록된 인생들이 참 놀랍다는 것입니다. 들여다보면 사연없는 인생이 없고, 눈물 없는 인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정말 인생의 벼랑 끝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인생이 새로워진 분들 정말 많이 보았습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분들이 그런 분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내일, 미래가 새로워지는 은혜가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2023년 blessing 주일입니다. blessing 말그대로 여러분의 삶을 축복하는 그런 주일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다시 한 번 축복주시길 원합니다. 원해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을 복주시고 축복하기 위해서 여러분을 이땅 가운데 창조하셨습니다. 정말 우리 인생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사랑 가운데 태어난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들의 삶속에는 이런 은혜, 사랑, 이런 축복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을까요? 1 자신만의 데스티니를 발견해야 합니다.
저는 신앙생활 가운데 우리 인생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어 중의 하나가 바로 데스티니라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데스티니: 운명, 숙명, 사명, 소명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영은 갈망이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갈망과 함께, 내 인생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내 인생의 숙명이 뭘까? 왜 테어났을까? 내 사명이 뭘까? 이게 데스니티입니다. 다른 말로 나를 향한 창조주의 계획, 이게 데스티니입니다.
본문을 보세요, 바울이 기도한 것입니다. 엡1: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엡 1: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여기서, 부르심의 소망, 이것이 바로 데스티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로 하여금 이걸 알기 원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역하면서 평생 이걸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는 분들도 보았습니다. 정말 안타까운데요.
그러면 목사님, 그 데스티니가 뭡니까? 세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인간은 데스티니를 이루어갈 때 행복하고, 반대로 데스티니와 멀어질수록 허무(공허)해진다. 하나님이 원래 플랜 것이 있는데, 그 목적을 찾으면 너무 행복하지만, 찾지 못하면 어떤 성공, 어떤 돈이 있어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자라서 이런 경우 참 많이 보았습니다. 누구보다 성공해서 돈도 벌고 좋은 집 좋은 차 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무 마음이 공허하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유아인이라는 배우가 마약 때문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근데 그 전에 어떤 프로에 나왔는가하면, 나혼자산다라는 프로입니다. 이 친구가 집이 보니까, 3층인데, 58억입니다. 별로 안 놀라시는데, 그런데 그 배우가 그렇게 돈이 많고 세상말로 성공했는데, 자꾸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들은 부러워하는데, 자기는 너무 공허/허무하다. 그때 그의 고백입니다. 결국 최근에 마약 혐의로 들어간 것입니다. 여러분 왜 그런 것일까요? 자신의 데스티니를 발견하지 못한 것입니다.
둘째, 데스티니는 우리의 생각보다 크다. 모세의 데스티니가 뭘까요? 출애굽의 사명입니다. 모세가 이것을 만나자 너무 당황했습니다. 자신의 사이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베드로의 데스티니가 뭘까요? 초대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베드로가 너무 놀라지 않았을까요? 셋째, 데스티니는 장벽을 돌파하는 힘이 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 만났습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데스티니를 발견하죠? 그것은 유럽 복음화의 꿈입니다. 그런데 고난과 역경과 문제의 장벽이 있었습니다. 그 문제를 뛰어넘었습니다. 고난과 시련이 있어도 뛰어넘습니다. 이게 데스티니의 힘이라 것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새로운 한 주간, 여러분의 삶속에 이런 하나님이 계획.데스티니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은 여러분만의 데스니티를 알고 있습니까? 아니 질문을 바꾸면, 여러분은 요즘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왜 만족과 기쁨과 감사가 없을까요? 그렇다면 여러분 이걸 한번 점검하셔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데스티니를 발견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정말 내가 창조주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발견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앞서도 이야길 했지만, 인간의 영은, 하나님으로 채우지 않으면 다른 것으로 채우게 되어 있습니다. 왜, 배우들이 저렇게 돈을 많이 벌고, 저렇게 좋은 집에서 마약을 할까요? 안채워지는 것입니다. 만족이 없는 것입니다. 제 인생에 정말 감사했던 것은 제 인생의 데스티니를 발견한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가난한 시골 출신이고 목회자의 그림자도 없는 집안이지만, 지금도 후회함이 없습니다. 왜냐면 제 인생의 데스티니를 알기 때문입니다. 꼭 남들처럼 좋은 차, 집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제안에 다 표현못할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제 인생의 데스티니로, 제가 가야 할 길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여러분만의 데스티니가 아닐까요? 여러분, 우리 인생은 돈 좀 더 벌면 행복하고 아파트 좀 더 크면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정말 오늘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여러분만의 데스티니가 아닐까요? 여러분만의 인생계획, 창조주 하나님의 플랜. 저는 진심으로 이 예배를 통해서 여러분 인생의 분명한 데스티니를 발견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 그렇다면 이 데스티니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3 창조주이신 그 분을 만나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데스티니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내 인생을 디자인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의 만족하지 못하는 갈망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정표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우리의 갈망은 하나님에 의해서만이 만족이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외면하고 세상이 가리키는 ‘잘못된 이정표’를 따르게 되다. 그 잘못된 이정표 중의 대표적인 것이 돈이다. 참 의미있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성경 눅19장에 보면, 자신의 이정표를 잘못 알았던 한 사람의 이야길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삭개오의 이야기입니다. 눅19:1-2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자 말씀에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그는 당시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당시 세리는 매국노입니다. 일제 앞잡이처럼 매국노가 되어서 당시 로마의 개가 되어서 살았던 사람이 세리이고, 그 세리장이 삭개오입니다. 원문에 보니 그냥 조금 부자가 아니라 엄청난 부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일까요? 삭개오는 무슨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고 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삭개오에게 없는 게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감사, 행복,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같았던 그에게, 감사/행복/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그때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목말라 있었던지, 당시 천민이나 올라가는 돌무화과 나무위에 이 삭개오가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위에 올라간 삭개오를 부르셨습니다. 삭개오야, 내려오라... 여기서 내려오라는 의미가 여러 가지가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네가 밟고 있는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 그리고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며 누구의 것을 속였으면 4배나 갚겠습니다. 당시 속이면 2배면 족했습니다. 4배도 주겠다는 것입니다. 돈밖에 모르던 삭개오가 돈을 내려놓았습니다. 그의 인생의 이정표바 바뀐 것입니다. 그의 인생의 의미, 목표, 인생관, 그의 데스티니가 바뀐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을까요? 아니 내 인생은 언제 이렇게 변화가 시작될까요? 저는 예수님을 만날 때 우리 인생이 (정확하게 만들 때) 변하는 줄로 믿습니다. 아니 정말 내 인생의 데스티니,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그 분에게 들었을 때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데스티니, 내 인생의 가장 정확한 인생의 계획을 들을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저는 오늘 이 예배를 통해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분을 통해 여러분의 데스티니, 여러분의 창조주의 계획을 발견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무리 반주) 한 이야기만 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인생의 목표를 서울대로 두고 살았던 한 수학도가 있었습니다. 원래 이 목사님의 아버지는 서울대 수학과 교수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서울대 교수이니까, 당연히 이 목사님은 서울대를 가야 한다고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그 계획을 따라살았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서울대만 가면 인생이 행복하고 모든 것이 즐거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그 학교를 갔습니다. 그런데 서울대를 들어간 6개월만에 그 행복에 금이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좋았습니다.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그런데 행복이 6개월이 채가질 않았습니다. 좀 방황하다가 그래도 이 길이 맞겟지 하면서 다시 미국의 명문 버클리에 가서, 수학박사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자기가 찾는 기쁨과 행복이 거기에도 존재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남들이 생각하던 대학갔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난 왜이러지... 그런데 기도하던 중에 자기 인생을 향한 데스티니를 발견하게 됩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이 신비한 경험은 내 속에 중요한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함이 생긴 것입니다. 나에게 경쟁이란 애증이 섞인 단어였습니다. 경쟁을 통해 내가 원하는 행복과 성공을 하나씩 성취해 가지만 동시에 경쟁은 나를 피말리게 합니다. 쉼없는 삶'의 피곤함을 알지만 경쟁 외에 다른 길이 있나? 하나님을 알기 전까지 나는 경쟁 외에 내 인생에 행복과 성공을 가져다 주는 다른 길을 알지 못했습니다. 더 암울 한 것은 대학에 들어오면서, 이 유일해 보였던 경쟁과 성취의 길마저 사실은 신기루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내안에 소망의 빛'이 들어오면서 다른 길 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길은 경쟁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서야 만 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이 길은 나를 창조하신 분께서 나만을 위해 만들어 놓으신 길이었습니다.
16년 전 학자로서의 커리어를 접고 목회를 선택했을 때 내 인생은 규격을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의 예측에서 벗어난 길이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합니다. 돈이 많아서 행복한 것도, 사람들의 인정이나 명예를 얻어서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행복합니다. 여러분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다 목사되어야 한다 그 이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분의 마지막 말을 들어보세요, 내 인생에 행복과 성공을 가져다 주는 다른 길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내안에 소망의 빛'이 들어오면서 다른 길 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돈이 많아서, 인정과 명예를 얻어서 그게 아닙니다. 그런데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데스티니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한번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만의 데스니티, 사명,숙명을 발견하셨습니까? 이거 하다 죽어도 좋을 소명, 사명을 발견하셨습니까?
여러분,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잘못알고 있는 기독교의 진실이 하나가 있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가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열심히 나가야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여러분에게 말씀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여러분, 언제 우리 인생의 데스티니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창조주이신 그 분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우리 인생은 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을, 여러분을 지으신 그 분에게 들어 보십시오. 그리고 저는 여러분이 오늘 이 예배를 통해, 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분으로부터 여러분의 데스티니를 들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구원초청1. 이 가을 제가 이번 주 말씀을 준비하면서 어떤 말씀이 좋을까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이 말씀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들안에 다 이 고민들이 있지 않습니까? 나는 정말 잘 가고 있는가? 나는 정말 잘 살고 있는가? 아닌 내 인생의 데스티니를 뭘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여러분만의 데스티니가 아닐까요? 돈좀 더 벌면 행복하고 아파트 좀 더 크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정말 오늘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여러분만의 데스티니, 여러분만의 인생 계획, 창조주 하나님의 플랜을 아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여러분, 내 인생의 데스티니,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그 분에게 들었을 때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데스티니, 내 인생의 가장 정확한 인생의 계획을 들을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오늘 이 시간 예수님이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근데 이 문은 여러분만 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신뢰의 대상을 옮긴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는 여러분은 자신을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오직 예수님만 의지하고 믿겠다는 뜻입니다. 셋째,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진정 내 인생의 구원자요, 주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목사님, 정말 제 인생에 변화가 필요합니다. 제 인생의 새로움이 필요합니다. 목사님, 제 인생이 살아가는 목적, 이유, 데스티니를 알고 싶습니다. 목사님 그 분을 만나게 도와 주옵소서. 이런 분들이 계시다면, 여러분 손을 들어 한 번 표현해 주십시오. 옆사람 절대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 눈을 감아주십시오.
영접기도- 주 에수님, 저는 죄인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제 자신을 믿고 살아왔습니다.
저의 죄를 회개하오니 용서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저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시고, 또 한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다.
지금 이시간, 제 마음의 문을 엽니다. 예수님이 제 마음에 들어오셔서, 저의 구주와 주님이 되어 주십시오. 주님 제 인생의 데스티니를 알려 주십시오. 이제부터 제가 하나님앞에 설 때까지 저의 삶을 인도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