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았다 하나 죽은 교회
사데는 난공불락의 도시였으나 BC 546년에 페르시아의 고레스에게 점령당한 후에 그리스를 거쳐 마침내 로마에게 점령되면서, 독립된 국가의 수도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으며, 이러한 과정으로 인해 사데는 많은 전쟁을 치러야 했다.9) 특히 호전적인 리디아 왕국의 수도로서 리디아 왕국이 일으키는 각종 전쟁에 앞장서야 하는 입장이었다.10) 설상가상으로 AD 17년에는 엄청난 지진이 일어나 사데를 초토화시키고 말았는데,11) 플리니우스는 이 지진을 역사상 최악의 재앙이라고 평가한다.12) 이러한 최악의 재앙 후에 도움이 절실했던 순간에 사데는 로마 제국 황제인 티베리우스의 지원을 받아 신속하게 재건에 성공했다.13) 이러한 과정은 사데가 로마 제국과 얼마나 밀착될 수 있는 환경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 정치적 특징은 다음 단락에서 살펴볼 종교적 특징과 직결된다.
사데의 재건을 위해 로마 제국이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은 그 도시의 시민들에게 로마에 대한 긍정적인 정서를 형성해 주었고, 이로 인해 사데는 로마 제국 황제와 매우 밀착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이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관계를 기반으로 사데가 보여준 가장 대표적인 반응은 황제에 대한 충성이었는데, 이것은 지진이 일어난 지 불과 9년만인 AD 26년에 황제 숭배를 위한 신전 건축을 확보하기 위해 열 개의 다른 아시아 도시와 경쟁하는 방식으로 드러나게 되었다.14) 이러한 정황은 사데의 재건 속도가 매우 빨랐다는 의미도 되겠지만, 사데라는 도시 공동체에 로마 제국의 영향력이 얼마나 즉각적으로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데는 전쟁과 자연적 재난을 겪으면서 “죽음과 불멸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15) 이것이 1절에서 “죽음”과 “생명”이 대조되어 나타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