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스터디 레위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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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에 대한 첫번째 오해는 어렵다는 것이다.
레위기가 기록 되었을 당시의 문화 역사 언어를 이해하는것이 레위기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레위기에서는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레위기에서 피채 먹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먹는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이건 다음시간에…
레위기가 어렵다고 느끼는 또하나는 오늘날 이것이 나와 우리와 상관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레위기 당시 제사를 지내는 것도 아니고 유월절과 같은 절기를 지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레위기의 내용을 알 필요성을 못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구약성경에 하나님의 말씀 율법은 613개 밖에 되지 않는다. 이스라엘 당시 그들이 지켜야 하는 율법이 613개 밖에 되지 않는다. 613개가 적다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 법을 다 합치면 몇만개가 되지 않겠는가? 하나님 나라를 구성하는 법이 613개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래서 놀라운 것이다.
그리고 레위기에 나오는 법은 247개 밖에 되지 않는다. 거기에 제사장이 지켜야 할 율법은 25개이고 제사에 대한 율법은 63개 밖에 되지 않는다. 굉장히 의외이다.
그리고 제사에 대한 율법 규례인 63개의 규레를 가만히 보면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것은 레위기에 나온대로 제사를 지내보면 안다는 것이다. 10년 이상 레위기 법대로 제사를 지내본 목사님의 말인데 제사를 레위기 법대로 드리면 절대로 못드린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질문이 생긴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것들이 생략되어 있다.
그러기에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렇다면 레위기 기록 목적이 무엇인가? 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절차 하나 틀리지 않고 단 하나도 틀리지 않고 100% 완벽하게 제사를 지내길 원하신다면 레위기를 이렇게 기록하면 안된다.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도 너무 많은 것들이 생략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서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정말 원하시는 것이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완벽하게 규례를 율법을 지키는 것이 기록 목적이라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왜 이렇게 많는 것들을 생략하셔서 기록하셨을까? 자세히 완벽하게 기록하지 않으셨을까?
그러기에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하나의 규례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시작하겠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실 때 정결하게 만드셨다. 깨끗하게 만드셨다. 클린하게 만드셨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신 첫번째 상태는 정결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결의 상태가 쉽게 변한다는 것이다. 정결의 상태가 쉽게 깨진다. 그래서 정결의 상태가 깨지면 부정한 상태가 된다. 부정한 상태가 되면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왜그런지 아는가? 하나님은 어떠시기 때문인가?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아는가? 부정한 상태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에 의하면 부정한 상태로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나아가면 그자리에서 죽는다.
그렇다면 정결한 상태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는가? 있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기에 문제는 무엇인가? 부정한 상태이다.
출애굽기 29:46 이 말씀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신 목적이 나와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신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그들에게 거하시기 위해서 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재하시기 원하신다. 거하시기 원하신다.
그런데 중요한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임재하시기에 합당한 상태 정결의 상태를 계속 유지하면 좋겠지만 정결의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부정하게 되면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여러분은 오늘 정결한가? 부정한가?
기도하면 된다. 하나님 오늘 이시간 저희에게 임재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지 못했던 기도가 바로 ‘하나님 입재하여 주옵소서’ 이다. 그것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모른다.
정결은 원래 상태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부족함 연약함이 있다.
그것은 정상적인 것이다.
욕심은 죄인가? 아닌가?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는 것은 죄인가? 아닌가?
욕심자체가 죄가 아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가 되는 것이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이렇게 권면했다.
에베소서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새번역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화가 나는 감정 자체가 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정결의 상태에는 우리의 연약함이 있다. 이것이 정상이다.
물론 이 연약함은 죄가 되기 쉽다. 그래서 그것을 다루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정결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신앙생활에서 정결이 목적이라면 그 삶은 절대로 만족함이 없다.
정결은 쟁반위에 구술이 있는 상태와 같다. 계속해서 불안하다. 안정감이 없다. 계속해서 신경쓰다가 잠깐만 한눈을 팔면 정결이 깨지는 것이다. 그것이 정상이다.
그처럼 정결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정결은 계속해서 집중해야 한다. 그래서 피곤하다. 그래서 그 정결의 상태를 유지 하기 어렵다.
그러기에 우리 삶의 목적이 정결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하시기 위해 출애굽 시키셨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 백성이 정결을 지키지 못해 부정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하나님이라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시 정결하게 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는가? 안주겠는가?
당연히 주셨다.
그렇다면 부정한 사람이 정결하게 되는 방법은 무엇인가?
먼저 정결한 사람이 부정하게 되는 경우는 무엇인가? 죄, 연약함, 부지중 실수이다.
그렇다면 죄로 인해 부정하게 된 사람이 정결하게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제사이다.
그러면 연약함, 부지중 실수로 인해 부정하게 되었다면 정결하게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것은 의식이다. (옷을 빨고 저녁까지 기다리는 어떤 의식으로 정결을 회복한다.)
이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정결로의 회복이 무조건 제사를 통해서가 아닌 것이다.
여튼 죄로인해 부정해진 사람이 제사를 통해 정결을 회복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사는 목적인가? 수단인가?
제사가 목적이 될 수 있는가? 제사를 지내는 것 자체가 목적인가? 그렇지 않다.
제사를 지내는 목적은 부정해진 사람이 제사를 통해 원래 상태인 정결의 상태로 회복이 되어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깐 제사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제사 자체를 목적으로 두는 순간 율법주의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목적은 제사가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제사를 통해 인간을 거룩하게 할 수 있는가? 없는가? 없다.
제사는 정결까지다. 제사는 원래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거룩하게 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이번 레위기를 통해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 종교의식으로 도달 할 수 있는 것은 정결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거룩해 질 수 있는가? 우리가 그 완전한 의를 소유 할 수 있는가?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것이 거룩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레위기를 통해 5번이나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우리가 감히 어떻게 거룩해 질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 완전한 의가 있는가? 그것이 가능한가? 단 하나의 불순물도 우리 안에 없는가? 우리 인간은 그럴 수 없다.
그렇다면 왜 불가능한 것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가?
하나님이 요구하신다는 것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거룩해질 수 있겠는가?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거룩해지는 방법은 레위기에 없다는 사실이다.
어디에 있는가? 바로 출애굽기에 있다.
왜 그런지 아는가?
레위기 1:1 을 보기 원한다.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그런데 원어에 있는 단어 하나를 한글 성경에는 빠졌다. 그것이 바로 제일 처음 단어인데 그것이 바로 “그리고” 이다.
그래서 원어대로 해석을 하면 “그리고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가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전의 책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전의 책이 무엇인가? 바로 출애굽기이다.
레위기는 출애굽기와 연결된 책인 것이다.
이말은 레위기를 알기 위해서는 출애굽기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출애굽기를 아주 잠깐만 언급하겠다.
출애굽기라고 하면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탈출 한 것만 생각하는데 그것은 옳지 않다.
출애굽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은 사건이다.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내산 언약이다. 19-24장이다.
여기서 말하는 언약은 단순히 약속정도의 개념이 아니다.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언약은 이렇다.
예레미야 2:2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언약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결혼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신랑, 이스라엘 백성을 신부로 비유한다.
이렇게 결혼을 했다면 그 다음에 무엇이 필요한가? 결혼을 왜 하는가? 같이 있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혼 한 다음에 무엇이 필요한가? 함께 머물 집이다.
그래서 출애굽기 25장부터 무엇이 나오는지 아는가? 25-31장까지 성막에 대한 설계도가 나온다. 청사진이 나온다. 그런데 여기에 2개가 나오는데 성막과 제사장이다. 성막은 하나님의 방인 지성소와 사람의 방인 성소로 나뉘어져 있다.
그래서 32-40장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성막을 완성한다. 그러자 40장 마지막에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임한다. 그리고 출애굽기가 끝난다.
여기서 우리가 잘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2가지 청사진을 보여주시는데 성막과 제사장이다. 그런데 출애굽기 40장까지 제사장에 대해서 나오지 않는다.
그냥 성막만 나온다.
그래서 출애굽기를 자세히 읽었으면 끝이 찜찜한 것이다. 제사장에 대해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제사장에 대해서는 어디에 나오는가? 레위기 이다.
레위기 1-7장
제사에 대한 청사진이 나온다.
8-9장
제사장의 청사진 대로 제사장 위임식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첫 제사가 드려진다. 다시말해 제사장과 제사의 완성이 되는 것이다.
9장 마지막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
그래서 흥미로운 것은 출애굽기와 레위기의 패턴이 같다. 출애굽기와 레위기를 구분해서 해석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레위기를 알기 위해서는 출애굽기를 알아야 한다. 특별히 19장 이후부터는 같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성막을 만들 것을 명령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 성막을 만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조금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 있는데
40장이다. 성경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은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40장을 보면 계속해서 반복해서 나오는 말이 있다. 게 무엇인지 알겠는가?
말씀하신대로 되니라. 이것을 보면 떠오르는 사건이 있는가? 바로 창세기 1장 이다. 말씀하신대로 되니라
그러니깐 성막이 완성되는 것이 마치 천지를 창조하셨던 것 과 같이 놀라운 일인 것이다.
그래서 성막이 완성된 후 어떻게 되는가? 출애굽기 40장 34-35절 이다.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닾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성막이 완성되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히 임한다. 그 하나님의 영광이 어느정도냐하면 모세가 성막에 들어 갈 수 없을 정도였다.
모세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가? 무려 40일동안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하나님의 언약을 받았던 사람이 바로 모세이다.
그런데 그런 모세조차도 성막에 들어 갈 수 없을 정도였다. 한번 상상해보길 바란다.
성막이 완성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게 임하였고 모세 조차도 성막안으로 들어 갈 수 없었다.
그리고 레위기 1:1이 시작되는 것이다.
레위기 1:1
“그리고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다. 만약에 출애굽기 40장을 모른다면 이 말씀이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그냥 하나님이 지나가던 모세를 부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성막 앞에서 감히 들어 갈 수 없는 그 모세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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