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욥1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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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3년 11월 14일 화요일 새벽
1.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2. 찬송가 365장 마음 속에 근심있는 사람
3. 성경봉독 : 욥기 10장 1-22절
4. 말씀선포
1. 도입
1) 절실함
사람이 절망 가운데 절실해지면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합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말입니다. 예전 한 드라마를 보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해외연수간다 말하곤 첫 날부터 연락이 두절된 겁니다. 처음엔 아빠도, ‘도착하면 연락한다 했지만 짐 풀고 바쁜가 보다.’ 생각하며 하루, 이틀을 보냅니다. 하지만 긴 시간 연락이 되지 않아 걱정되는 마음에 실종신고를 하고, 또 경찰의 늦은 대응과 미지근한 반응에 직접 찾아 나섭니다. 자신의 가게도, 삶도 그리고 남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한 채로 말입니다.
처음 그 장면을 보면서 그 장면이 그리 와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악한 자를 징계하는 장면들을 보며 일종의 시원함을 누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애가 있는 지금에 와서 그 장면을 다시 생각해보니 징계하는 장면도 그리 시원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아빠와 그곳에 갇혔던 아들이 얼마나 절망 가운데 있었는지,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지에 포커스가 잡히며 제 마음이 다 아팠습니다.
드라마 속 아버지도 모든 것을 내려 놓아, 절실함으로 아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제게 동일한 상황이 온다면 저 역시 그럴꺼 같습니다. 절실하게 제 딸을 찾아 나섰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욥도 그랬습니다. 자신에게 처한 이 상황이, 저주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보며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2. 욥의 절실함
1) 하나님을 끊임 없이 묵상하라
욥은 하나님 앞에 다 내려놓은 절실함으로 다가갑니다. 왜 하나님은 악인의 꾀를 허용하시나, 자신의 자녀는 괴로움 가운데 놓이도록 허용하셨는지 묻습니다. 근거 없는 절실함도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7절 입니다. “주께서는 내가 악하지 않은 줄을 아시나이다 주의 손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자도 없나이다.” 주님은 내게 죄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아시고, 주님 손에서 나를 벗어나도록, 끊어내도록 만들 자가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아 고백합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는 시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땅을 만드셨으며 주관하심도 잘 알았습니다. 무엇보다 생명이 하나님께 있음을 그는 고백합니다. 12절입니다.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나를 보살피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하나님께서 생사를 주관하시며, 우리의 호흡도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뿐만 아니라 악을 징벌하는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공의의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이지요. 어떻게 고백합니까? 14절부터 16절 입니다. “내가 범죄라면 주께서 나를 죄인으로 인정하시고 내 죄악을 사하지 아니하시나이다 / 내가 악하면 화가 있을 것이오며 내가 의로울지라도 머리를 들지 못하는 것은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 내 환난을 내 눈이 보기 때문이니이다 / 내가 머리를 높이 들면 주께서 젊은 사자처럼 나를 사냥하시며 내게 주의 놀라움을 다시 나타내시나이다” 죄를 극히 싫어하시는 하나님의 모습도 욥은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
이런 욥의 고백과 시야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평상시 안일한 상황 가운데에서만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시야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늘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는 자” 여야 합니다. 늘 하나님을 생각해야 가능케 됩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버릇은, 습관은 그만큼 무섭다는 겁니다. 계속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늘 하나님을 생각하고 묵상하는 버릇이, 습관이 우리게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세 살 버릇 여든 가듯, 우리가 하나님을 보는 모습이 이어져 가지 않겠습니까?
욥은 자신의 가장 절망스러운 상황 가운데 하나님을 절실히 찾았고 부르짖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욥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절실히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의 매일이 늘 하나님을 찾는 모습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바라옵기로는 저와 여러분의 오늘 하루가, 여전히 하나님을 찾는 습관 가운데 놓여진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또 하나님을 찾지 못한 어제를 보냈다면, 괜찮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을 찾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가장 쉬운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루의 감사 일기를 쓰는 것이 방법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나의 하루, 하나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감사를 누리게 하셨는지를 말입니다.
2) 다른 이들의 표본이 되라
더 나아가 다른 이들에게 모방할 수 있는 표본이 되어야 합니다. 욥의 세 친구는 당시 문화에 맞게 조언을 했으며 욥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됩니까? 고난도 잃음도 하나님의 뜻을 고백하던 그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까? 차라리 태어나질 말았어야 한다며 원망하지 않습니까? 그만큼 다른 이의 행동을 보며 모방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합니다.
어제 어린이집에 학부모 상담을 다녀왔습니다. 가장 좋은 스승은 부모라 말합니다. 또 기독교 세계관 강의를 들으며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러주었습니다. 왜요?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삶을 나누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모방하기 가장 좋은 표본으로 부모를 꼽기 때문입니다.
아엘이는 아직 너무 아기지만, 간혹 하는 행동을 보며 저희의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이처럼 우리의 모습을 통해 신앙을 보고 배울, 우리의 자녀와 또 초신자들이 우리게 있습니다. 그들에게 잘못된 신앙이 아닌 옳은 신앙을 모방하도록 표본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라옵기로는 오늘 하루, 먼저는 내가 하나님을 끊임 없이 묵상하는 자가 되도록 간구하시고 더 나아가 나의 삶을 통해 자녀와 지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표본을 보여주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세상 가운데 절망으로 낙담한 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참된 자유와 위로와 기쁨과 격려를 보여주는 자가 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 어떤 추억들로 채워질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음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뜻에는 결코 실수가 없음도 우리는 압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 실수가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뜻을 구하며 매순간 묵상하는 삶 되길, 그리고 그런 삶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모방의 표본이 되는 삶의 전도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5. 기도제목
1) 말씀을 가지고
- 매순간 하나님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지혜와 뜻을 구하게 하소서.
- 자녀와 지인들에게 신앙의 표본을 보이는 자가 되게 하소서.
2) 삶을 위해서, 그리고 각자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 이번 주 있을 동행다락방을 통해 ‘교회의 이벤트’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표본’을 보이는 시간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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