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과 지혜가 그에게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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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욥과 세 친구들의 첫번째 논쟁의 마지막 부분이다.
욥에게 세친구들은 신학적인 입장에서 그의 고난을 이야기한다. 죄가 있으니 고난을 당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사실 이 세 친구와의 논쟁은 욥이 하나님께 항변하는 것이 시발점이 되었다. 세친구는 욥이 당한 고통이 너무 커서 자신들이 어떤 위로의 말 조차 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 앞에서 같이 힘들어하며 밤낮을 7일 동안 함께 땅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지속되는 고통이 욥을 너무 힘들게 한 것인지 그가 하나님께 항변하기로 내가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하나님께 신음한다.
그러나 욥이 원하는 것은 단 한가지 나의 이 소리를 들으시고 직접 그 얼굴을 뵈옵길 원하는 것 뿐이었다. 무슨 말이든 정말 사랑하는 그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길 바랐을 뿐이었다.
그러나 함께 있던 세친구의 귀에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말로 들렸다. 하나님을 찾는 간절한 소리가 하나님을 욕하는 것으로 들린것이다.
이에 그 세친구들은 7일 밤낮 침묵하며 함께 한것을 깨뜨리고, 욥에게 하나님을 모욕하는 죄를 묻기 시작한다. 엘리바스, 빌닷, 소발 순서로 점점 욥에게 가혹하리 만치 정죄의 잣대를 세운다. 그러나 그들의 기준에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것이 아닌 그저 신학적 지식으로 이해한 것이었고, 심지어는 인과율,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따른다는 세상의 지배적인 신념을 기저에 깔고 하나님을 비인격적인 존재화 한것이었다.
처음에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욥을 비난하였고, 그 다음에는 그의 자녀들의 죽음조차 매도하였고, 마지막으로는 자신의 무죄함을 토로하는 욥의 진실함 마저도 정죄하며 악에서 벗어나야 하나님의 얼굴을 그에게 보일 것이라 꾸짖는다.
이제 욥은 더이상 그들과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냉소적인 말투로 그들에게 말한다.
너희가 없으면 세상의 지혜가 없겠구나. 내가 몰라서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 할 수 없는 복잡한 이 현실이 어찌됨인가 주께 여쭙고 있는 것이 아니냐. 이 세상을 보라 악인들이 잘 살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주 앞에서 신실한 자가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된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 모든 생사화복의 주권자는 오직 하나님이시라.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온 세상이 다 아는 것이며 심지어 너희가 나에게 말한 하나님의 주권은 의인에게 복을 악인에게 화를 이런 단순한 법칙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닌 주권자 되신 하나님의 뜻에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 라고 반론한다.
욥은 하나님을 비난하고 욕한 것이 아니라 그 생사화복의 진정한 주권자 되심을 알고 믿었기에 하나님께 자신의 고난이 어찜인지, 그리고 그 답을 얻고자 신음한 것임이 드러났다.
이처럼 우리또한 욥의 고백과 같은 고백이, 욥의 믿음과 같은 믿음이 있어야 할 줄로 안다.
욥은 이 세상의 통치자가 하나님이심을 관념적이거나 피상적으로 믿은 것이 아니라 실제 자신의 삶 속에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찾아 왔음에도 그 안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나와 함께 하고 있음을 알고 믿었다.
내가 화를 당하더라도, 그 화가 계속적으로 지속되고 심지어 평생을 따라다녀도, 그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하심은 반드시 있다는 그 믿음을 잃지 말아야할 것이다.
또한 그 믿음을 가졌다고 해서 무조건 참으라는 것은 아니다. 그 힘들고 어려운 이 순간을 가감없이 주 앞에 고백할 수 있어야한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무례함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무례함이 아니라 진실함이다. 다만, 그 고백과 부르짖음 속에 주께서 보여주시는 나의 뿌리 깊은 죄악들이 떠오른다면 자복하며 진실되게 더욱 부르짖으며 회개하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되셔서 우리와 소통하시는 인격의 하나님이시기때문이다. 하나님은 진정으로 사죄하는 자녀를 매정하게 쫓아 내시는 분이 아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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