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과 지혜가 그에게 있고

욥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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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도 너희만큼은 안다. 2. 하나님이 나를 조롱거리로 만드셨다. 3. 모든 지혜와 권능은 하나님의 것이다.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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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너희만큼은 안다

욥과 세 친구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오늘 본문에서 욥은 친구들을 경멸합니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하던 그가 경멸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친구들의 말과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위로하겠다고 찾아왔으나 친구들은 욥에게 상처만 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욥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습니다. 욥의 처참한 상황을 보고 공감하는 척하지만 결국엔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만 합니다.
친구들에게는 권선징악이라는 신념이 있습니다.
“너가 잘나가다가 이렇게 된 것은 너의 죄 때문이야"라는 이야기만 합니다. 하지만 욥은 이 원리로 설명되지 않는 일을 당했습니다.
그가 지은 죄로 인한 결과가 아니라, 1장에 기록된 대로 사탄이 하나님의 허락 하에 진행한 믿음의 도전입니다.
죄로 인해 벌을 받은 것이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친구들은 욥의 이야기를 듣지 않습니다. 모든 책임이 욥에게만 있다는 말을 되풀이합니다.
(쉬고)
아마 여기 계신 분들도 대화가 되지 않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 때 어떤 감정을 느끼셨나요? 굉장히 답답하지 않으셨나요?
대화라는 것은 서로를 존중하며 듣고 답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죠. 일방적인 내 생각만 쏟아내고 맞다라고 우기는 것은 대화라고 볼 수 없습니다.
대화가 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면 정말 답답합니다. 더 이상 교제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까지 갖게 합니다.
(쉬고)
지금 욥은 굉장히 힘들고 비참한 상태입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상황에 대한 판단과 원인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가 아니라, 그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친구들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욥은 친구들이 ‘교만하다' 생각합니다.
자신들만이 세상의 지혜자이고, 자신들의 말만이 세상을 대표하는 지혜라고 하는 세 친구들을 듣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욥이 그들을 향해 “너희만 참으로 백성이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함께 죽겠구나" 라고 비꼬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친구들에게
“너희만큼 나도 배울만큼 배웠어. 너희들이 하는 말은 어린아이들도 알 정도로 평범한 이야기야"
“죄를 지었으면 그에 대한 댓가를 받는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아" 라고 말합니다.
(쉬고)
이처럼 아무런 공감 없이 기계적인 답변을 하면 안됩니다. 오히려 상대에게 상처만 줄 뿐입니다.
MBTI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으실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T와F라는 기질이 나오는데, 이성적인 사람은 T 공감력이 뛰어난 사람은 F입니다.
T와 F는 표현 방식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를 당한 친구가 있으면, T는 이렇게 반응합니다.
“보험은 들어놨어? 몇대 몇이야? 누구 과실이야? 당장 병원부터 가. 합의금은 얼마 받아?”
F는 “괜찮아? 많이 다치지는 않았어? 어떻게 사고가 난거야. 많이 아프지?”
사건을 바라보고 대하는 표현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죠.
(쉬고)
공감을 바라고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이성적으로 접근해서 해결방안부터 제시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더 큰 상처를 주고,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하도록 합니다.
욥을 대하는 친구들의 자세가 이랬습니다.
자신들의 말만이 옳고, 욥은 틀렸습니다.
권선징악의 논리에 따라 욥은 지금 망해가고 있는 중입니다. 오로지 그의 잘못입니다.
(쉬고)
그들이 정말로 욥을 잘 알았다면, 욥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살아왔는지를 곁에서 보고 알고 있었다면 이런 논리를 펼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욥을 찾아와 그의 상처를 후비고 더 찢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조롱거리로 만드셨다.

친구들을 경멸하며 그들에게 “너희만 지혜자다"라고 말하던 욥이 말을 멈추고 탄식하기 시작하죠.
평생동안 그는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모두가 그와 관계를 맺고 싶어했고, 그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모든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릅고 흠 없다 인정해주셨던 욥"이었는데,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는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쉬고)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 가장 힘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고난을 받으면 하나님이 징계하신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말을 해도 세 친구처럼 반응하면서, 믿지 않고 고난 당하는 사람을 비난하기 때문에 말할 수 없습니다.
이 것은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을 당해 괴롭고 힘들고 슬픈 것은 나인데,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차갑습니다. 거기에서 또 상처를 받습니다. 억울함이 더 쌓여 갑니다.
그래서 혼자 삭히고 지나갈 때가 많습니다. 입을 열어도 주변에선 비아냥과 조롱 그리고 손가락질만 돌아오기에 굳이 말하지 않고 혼자 울때가 많습니다.
(쉬고)
욥은 2가지를 탄식합니다.
첫째,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잘 살아간다.
둘째, 사람이 사람에게 죄를 짓고, 사람이 하나님에게 죄를 지어도 문제 삼지 않으신다.
(쉬고)
이렇게 탄식 할 수박에 없었던 이유는 본인이 지금 망했기 때문입니다.
의롭게 살려 노력했고 늘 하나님과 가까이 하려 했던 자신은 망했고, 오히려 자신을 비난하고 무시했던 사람들이 더 잘되고 있기 때문이죠.
또한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 어떤 심판도 내리지 않는 것 같아 보였기에 자신에 처한 상황을 해석하며 이런 탄식을 한 것입니다.
(쉬고)
하지만 욥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잘 살아가는 것은 맞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하나님을 위해 살려고 하는 사람들의 삶이 오히려 더 힘들때가 있습니다. 이 질문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불법을 행함에도 잘 사는 사람들에게 즉결심판을 내리셔야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죄에 대한 심판은 분명히 하십니다. 하지만 또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죄를 뉘우치고 돌아올 때까지 또 기다려주시기도 합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잘 되는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승승 장구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끝 날. 마지막 날까지 지연됩니다. 그들이 돌아올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이 하나님에게 지은 죄를 문제 삼지 않으신다.
맞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의 원칙에 예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 죄에 대한 결과를 물으십니다.
여기에서 변수는 나 자신입니다.
마지막 날. 심판의 날이 언제인지 모르기에 우리는 긴장을 풀고 마음놓고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죄를 짓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은 죄를 문제 삼지 않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충분한 시간을 주시고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욥은 자기가 처한 상황에 따라 하나님을 잘못 해석하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내버려 두는 분이 절대 아니십니다.

모든 지혜와 권능은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일들은 사실 어떤 일이던지간에 하나님의 계획과 통치 아래에 있습니다. 그 것을 믿고 우리가 오늘 본문을 본다면 “욥을 향한 세 친구들의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모든 지혜와 권능과 계략과 명철이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지혜로운 분이 하신 일은 누구도 번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시기로 작정하신 일은 그대로 진행하십니다.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쉬고)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의 지혜와 완전히 다릅니다.
16절. 하나님의 절대적 권력은 누구도 넘볼 수 없고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사람이 감히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두에게 공평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모사(고관들)을 벗겨 끌고 가십니다.”
“재판장들을 어리석게 하십니다.”
“왕들의 허리춤을 풀고 끌고 가십니다.”
“제사장을 벗겨 끌고 가십니다.”
(쉬고)
하나님은 죄에 대한 심판을 반드시 하시는 분이며, 죄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으십니다. 다만 그 분의 일하심이 내가 원하는 때와 맞지 않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의며 정의라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쉬고)
욥이 하나님을 잘 못 이해하고 탄식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욥은 그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놓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에 근거해 정의와 공의 그리고 사랑의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상황을 비참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인데도 불구하고, 욥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끝까지 붙듭니다.
(쉬고)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과 삶의 모습은 다 다릅니다. 누구하나 쉽다 말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하나님께서 계시다면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너무하다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쉬고)
이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어도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계획과 통치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저보다 더 많은 신앙과 삶의 고비를 견디고 버텨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죄송하지만 성도님들보다 적은 연수를 살아온 저도, 여러 고비와 고난들을 견뎌 왔습니다. 그 때는 정말 죽을 것처럼 힘든데 돌아보니, 그 것조차 하나님의 은혜였더라구요.
(쉬고)
하나님을 붙들면 붙들수록 우리의 삶에는 더 큰 믿음의 도전과 신앙의 고비가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두려워하지 말고, 물러서지 말고, “지금 그 자리에 세워주신 하나님을 붙드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버틸 힘과 살아갈 능력은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꼭 기억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쉬고)
“이해할 수 없어도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계획과 통치 아래 바른 길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 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는 오늘 하루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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