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가지마

히브리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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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히 3:7-19
제목: 오늘은 가지마
주제: 오늘 자체가 구원의 증거다.
목적: 하나님의 오늘을 결단하게 하소서.
평형깨기
오늘 말씀 제목이 “오늘은 가지마”입니다. ‘벤’이라는 여가수가 불러서 유명해진 노래인데, 원래는 임세준 노래입니다. 가사 내용이 이래요.
“이제 아무렇지 않아. 너와 눈을 맞춰도.” 그런데 후렴 가사는 이래요. “오늘은 가지마. 오늘만 가지마. 오늘만 더 옆에 있어주면, 나 잊을 수 있어.”
이상한 게 느껴지나요? 아무렇지 않다고 하면서 오늘은 가지 말라고 애원하고 있는 상황이죠. 모순되는 상황입니다. 아무렇지 않으면 가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런 상황이 아니에요.
이런 상황이 왜 만들어질까요? 머리로는 헤어져야 한다는 걸 아는데, 감정적으로는 아직 해결이 안되었기 때문이죠. 막상 실제로 얼굴을 보니까 헤어질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 모순되는 상황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가 “오늘은..”입니다. “일단 오늘만”, 이런 표현에서 자신의 모순이 드러나는 것이죠.
우리가 새롭게 히브리서를 들어가는데요, 히브리서가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책입니다. 머리로는 하나님을 잘 믿으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아는데, 현실 세계에서는 그게 너무 힘들어서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거나 교회를 떠나고 싶은 유혹이 우리를 괴롭힐 때가 많다는 것이죠.
“도대체, 하나님을 아는 것이 내 삶에 무슨 의미가 있지? 무슨 메리트가 있지? 하나님을 알면 우리 삶에 대해서 잘 안다며? 그런데 왜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지? 왜 더 나아지지 않지?” 이러한 의문이 생긴다는 거에요. 그렇죠? 우리 영적 근력을 키우자고 특새도 했는데, 그 영적 근력으로 신앙생활을 잘 지탱하고 있나요?
여러분, 만약에 하나님을 아는 것이 내 삶에 어떠한 메리트도 없다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단순히 천국에 가기 위한 티켓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삶에, 학업에, 직장에, 관련되어 우리에게 직접 하시는 말씀이 되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과 분리되어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여기서부터 위기의식을 느껴야 해요. 하나님과 분리되어 산다고 하면, 나중에 천국 가는 것은 나중 문제이지, 지금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을 잃어버리고 절망만 하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인데, 여러분, 그런 인생 살고 싶으세요? 우리가 이렇게 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히브리서의 핵심 내용입니다.
이런 문제를 히브리서 편지를 받는 수신자들도 똑같이 느꼈습니다.
갈등심화
히브리서 편지를 받는 수신자들은 이미 많은 압박과 차별을 겪고 있어서 믿음으로 살아내기 어려웠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도 알겠는데, 전혀 삶에 메리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믿음을 포기하거나 배교를 하기 시작했어요. 하나님에 대해서 회의감을 갖기 시작했어요.
이런 회의감이죠. “믿음 자체가 없는 건 아닌데, 신앙생활 그만하고 싶고 하나님 없는 것처럼 살고 싶고, 차라리 하나님이 없다고 믿어보며 살고 싶고, 왜 남의 인생만 더 잘되는 것 같지? 내 인생은 대체 왜 원하는 대로 굴러가지 않지?”라는 분노와 의문에 휩싸이게 되는 순간이 오게 돼요. “하나님께 크게 잘못한 건 없는 것 같은데 내 성적은 왜 이러지? 내 환경은 왜 이러지? 내 외모는 왜 이러지?”
이렇게 우리 안에서 발생하는 신앙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극복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흔들리는 그들을 설득하고 다시 돌아오게 하는 임무를 갖고 있는 거예요. 7-11절의 내용인데요, 길지만 한 번 읽어봅시다.
7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8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9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11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어떻게 설득하고 있는 것인지 요약하면, “과거 출애굽 봐라, 그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어. 그런데 현실이 하나님이 보여주신 약속과 다르다고 해서 자기 입맛대로 살다가 엄청 혼났어. 그런데, 하나님께서 약속을 안지키셨니? 아니야.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셨어. 그런데 왜 하나님의 약속과 현실의 괴리를 만드셨을까? 바로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하기 위함이야”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 너희는 오늘부터라도, 지금부터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와!”라고 호소하는 거죠.
출애굽을 통해서 얻는 교훈은 무엇이냐면, 우리의 삶이 광야와 같이 무료하고 지루하고 힘들고 어렵고 피로하고 신앙생활로 인해 삶이 불편하고, 이러한 모든 과정은,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는 증거가 아니라, 나를 구원하셨다는 증거라는 거예요.
즉, 오늘 히브리서 기자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는 것은 이겁니다. 오늘이 주어진 것 자체가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는 증거이며, 더 나아가서는 여러분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는 증거이고, 여러분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여러분을 계획하신 것부터 여러분을 구원하셨다는 증거이고, 더 나아가면 여러분이 살아갈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 여러분을 구원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에게 인생이 주어진 것 자체가 구원의 증거입니다. 우리는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출애굽 백성과 같기 때문이에요.
이걸 한 마디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사는 날 동안이 모두 구원의 증거이다” 이게 13절에 나옵니다. 함께 읽어봅시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여기서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가 어떤 뜻이냐면, 어제는 어제가 오늘이었죠? 내일 되면 내일이 오늘이 될 거예요. 그래서 창조 이후의 모든 시간을 뜻합니다. 정리하자면 오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이 세상 살아가는 모든 날 동안에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는 거예요. 여기서 ‘완고하다’는 마음이 딱딱해지다라는 뜻입니다. 마음이 딱딱해져서 하나님께 돌아가는 생명력을 잃은 상태에요.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의 핍박과 고난에 시달려서 하나님을 벗어나고 싶어할 때, 이걸 극복하는 방법은, “우리에게 오늘은, 즉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순간은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증거이다”라는 걸 확신하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 굳이 이러한 무료한 삶과 신앙이 전혀 인생에 도움이 안되는 이러한 삶을 허락하시지 않고 우리를 구원하시면 되잖아요? 이런 삶이 구원의 증거라는 게 안믿기는데요?
요즘 놀이터에는 정글짐이나 뺑뺑이 같은 놀이기구가 별로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놀이터가 “노잼”이래요. 그 이유는 요즘 놀이터는 안전과 학부모의 입김 때문이라고 해요. 안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만약 어린이 부주의로 사고가 나기라도 하면 관계자들 모두가 소환되어서 배상책임을 몰아붙이는 분위기이라서 이런 놀이기구를 설치하는 걸 피한다고 합니다. 놀이기구의 위험성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재미, 도전정신 자극, 다쳤을 때의 고통을 이겨내는 훈련 등의 가치들을 배울 수 없게 된 상황이죠. 그런데 유럽이나 서양 선진국들은 “최소한의 손상은 아이가 배우는 과정”, “어린이는 놀이를 통해 위험에 대응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면서 안전만큼이나 위험도 중요한 가치로 두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위험한 놀이기구를 타면 균형감각, 높이감각, 정신력, 단결력, 또 다치면서 겪는 고통이 모이고 모여서 성장하며 마주할 위험과 고난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는 것이거든요. 이런 과정을 통해 용기를 배우는 거죠.
그래서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에게 결단을 촉구하고 계세요. “너, 어떤 걸 택할래? 그냥 재미없게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면서 사소한 문제도 극복 못하는 어른이가 될래? 아니면 나랑 재밌게 정글짐을 타면서 어른이 될래?”
복음선포
세상의 관점에서 오늘은 앞서 서론에서 “오늘은 가지마”라는 노래에 나온 것처럼, 머리와 감정의 모순을 발견할 뿐이에요. 그래서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오늘”입니다. “오늘만 하자, 오늘만 좀 놀자”,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오늘은 무엇인가요? 똑같은 광야의 환경인데, 똑같은 삶인데, 똑같이 학교 다니는데, 신앙과 현실의 괴리가 일치돼요. 이 괴리 자체가 구원의 증거이기 때문이죠.
우리의 현실 자체가 구원의 증거라는 것을 굳게 붙잡는 방법을 살펴보고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니지만 3장 1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무엇을 생각하라고요? 예수입니다. 예수님 안에 우리의 인생과 우리가 참여할 영광이 다 나타나 있어요. 빌립보서 2장에 이런 말씀이 있죠.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우리와 완전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그 인간 예수께서 기적과 설교를 통해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졸지에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가장 가혹한 고난을 당하시고 심지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짧은 33년의 인생 안에, 우리가 평생 겪을 흥망성쇠가 다 압축되어 있어요. 우리가 가장 잘 될 때부터, 죽음까지이죠. 너무나 닮지 않았습니까? 왜 닮았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라서 그래요. 우리에게 어떤 위로를 주시기 위함이거든요. “아, 내가 하나님을 닮았구나, 내가 예수님을 닮았구나!” 여러분, 여러분의 무료한 인생 조차도 예수님을 닮았어요. 여러분의 고민과 힘듦이 예수님을 닮았다고요.
얼마 전에 아내와 초음파 사진을 찍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애가 계속 팔을 들고 있어서 얼굴을 제대로 찍을 수가 없는 거예요. 결국 얼굴이 다 가려져서 사진이 찍혔습니다. 이걸 아내가 보고 뭐라고 말했냐면, “여보, 누가봐도 여보 아들이네요. 여보 잘 때랑 포즈가 똑같아요.”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제가 잠버릇이 좀 안좋은데, 많은 경우 팔을 들고 잡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초음파에 비춰진 제 아들의 모습이 제가 잠을 잘 때의 포즈랑 똑참인 거예요. 아내의 말을 들었을 때 제 기분이 어땠는지 아세요? 좋더라고요. 누가 봐도 내 아들이라서. 나랑 닮아서, 너무 좋더라고요.
여러분, 이게 여러분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기분이라고 저는 확신해요. 여러분은 하나님과 닮았어요. 누가 봐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예수님을 보면 되는 거예요. 예수님은 죄를 안지으셨는데요? 대신에 모든 죄의 형벌을 받으셨죠. 그리고 부활하셨어요. 그러면 우리도 어떻게 되는 겁니까? 부활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계획에는 우리의 죄가 사라지고 부활체를 입고 완성된 여러분, 완전 예수님과 닮아 있는 여러분의 모습이 있는 거예요. 예수님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쇠잔한 삶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예수님을 보면, 세상과 환경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아무런 메리트가 없어 보이는 믿음의 삶을 포기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비전제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신앙과 현실의 괴리를 해결하는 방법, 핍박과 고난이 있는 현실의 모든 삶 자체가 구원의 증거이다, 그리고 이걸 굳게 붙잡는 방법은 우리 인생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을 계속 생각하는 것이다. 이걸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오늘은 가지마”였죠. 세상의 관점에서는 자아분열의 과정이지만, 성경의 관점으로는 오늘은 모든 살아가는 날을 의미한다고 했어요. 그러니 여러분이 죽는 날까지 절대 하나님을 떠나가지 마세요. 15절 읽어봅시다.
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완고하지 않기로 결단하세요. 신앙과 현실이 괴리가 느껴져서 하나님의 법을 떠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이 괴리가 느껴지는 현실 자체가 마치 정글짐을 타는 것과 같이 우리를 성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증거라는 것을 믿겠다고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세상이 아닌 예수님께 속한 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닮은 자녀들입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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