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17 금요기도회: 로마서 4: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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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도 저희를 금요기도회 자리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희에게는 의로운 모습이 단 한치도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건 오로지 저희의 연약함과 죄 밖에 없음을 또한 고백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의롭게 만드시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믿습니다. 오늘도 이 그리스도를 의지해 하나님께 나아가니 저희를 받아주시고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시옵소서. 오늘도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고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사모하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 기도회도 함께하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서 4:16-25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로마서 4:16–25 NKRV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알아가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만일 누군가가 여러분을 찾아와 “내가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기업을 만들건데, 나와 같이 일하자”라고 제안한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일을 전혀하고 있지 않고 돈이 한푼도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상황인데 나와 같이 일해서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기업을 만들자고 하는 이 사람의 말을 현실적으로 여러분은 믿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을겁니다. 대기업은 커녕 조그마한 회사조차도 만들 수 없는,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아브라함이 이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가 믿었다고 말합니다. 전혀 현실성이 없는 것을 아브라함은 어떻게 믿을 수 있었을까요? 그가 대단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일까요?
18절의 시작은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라고 시작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랄 수 없는 상황 속에 있었습니다. 18절의 시작처럼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이었습니다. 왜냐하면 19절에서 말하듯이 아브라함은 나이가 100세이며 사라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희망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앞에서 대기업을 만들자고 말한 사람의 예화보다 더 희망이 없는 상황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약속을 들은지 25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습니다.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기한이 없는 약속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라면 이 약속을 믿을 수 있을까요? 당장 1년 뒤에 지키겠다는 약속도 우리는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25년이었습니다. 아마 아브라함도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는 할까 라면서 의심하진 않았을까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현실적으로 자신의 상속자가 엘리에셀이라고 생각하고, 하갈과 결혼해 이스라멜을 낳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듯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대단해서였을까요? 그리고 그가 확신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일까요? 오늘 본문 19-21절에서도 마치 아브라함, 그의 믿음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가 가진 믿음이 대단했기 때문에 약속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믿음 그 자체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의 내용과 대상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아브라함이 무엇을 믿었는지와 누구를 믿었는지가 중요합니다.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는 것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입니다. 왜 그런지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17절을 보시면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시라는 겁니다. 저는 처음에 이 본문을 대했을 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을 경험했나?”하는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육체의 부활을 아브라함이 경험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연구하다보니 인간 육체의 부활이 아니라 죽은 것에 생명을 부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9절을 보시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아브라함과 사라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의 상태는 죽은 것과 같은 상태였습니다. 바울은 바로 아브라함은 자신에게서 가능성을 찾고 믿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생명을 불어넣으실 수 있는 분이심을 믿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두 번째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이시라고 17절 끝에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에서 유로의 창조를 떠올립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심은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이와는 조금 다릅니다. 이 말의 정확한 의미는 하나님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마치 그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부르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으로부터 많은 자손이 생기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지금은 비록 자손이 존재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이 자손들을 반드시 존재하도록 하시는 분이심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른다는 것은 미래에 이미 존재하도록 만드셨다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은 많은 자손은 커녕 자녀 한 명조차 가지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미래에 이미 존재하도록 만드실 수 있는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에도 아브라함의 믿음의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와 같이 18절에서 “바라고 믿었으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약속을 미래에 성취하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19-21절입니다. 19절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자신과 사라의 몸이 약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실현하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은 약하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절에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우리가 알듯이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약해진 때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아브라함의 생애를 연대기순으로 자세하게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일생의 기본적인 형태와 방향이 아브라함 자신이 아닌 하나님께 있음에 초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20절 하반절에서 이와 같은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은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함으로써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다시금 하나님 중심적 믿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 에서 바울은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음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살아야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최상의 길은 하나님을 위해 어떤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약속들을 이루실 것임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또한 22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의로 여기셨습니다.
더 나아가 이 아브라함의 믿음은 우리와 동떨어진 믿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입니다. 4장 앞부분에서 바울은 왜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인지에 대해서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시작인 16절에서 아브라함이 받은 그 은혜에 우리가 상속자임을 말하였습니다. 또한 23절과 24절에서 바울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로 여겨진 것이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도 위함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믿음과 우리의 믿음이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연관이 있을까요? 이에 대한 바울의 답변은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은 24절에서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음으로 우리가 의롭게 여겨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이 자신의 몸이 죽은 것 같은 중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듯이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우리의 조상이 되며 아브라함이 받은 의가 우리의 의가 됩니다. 그리고 25절에서 말하듯이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불의하게 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의롭게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의롭게 되는 것에 단 한 발자국도 다가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일을 그리스도께서 하셨고, 그리스도께서 획득하신 의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의롭게 됩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를 의롭게 여겨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약속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었던 하나님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동일한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을 의롭다하신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의롭다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이 넘어집니다. 신앙생활을 하지만 자꾸만 죄에 걸려 넘어집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자꾸만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우리의 이런 연약한 모습을 볼 때에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긴 하실까, 하나님이 나를 미워하시진 않을까, 내가 어떻게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을까, 내가 하나님을 정말 믿기는 하는 걸까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는 결코 우리의 힘으로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의롭게 되는 것은 오늘 본문에서 말하듯이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의인입니다. 우리가 의인이 된 것은 내 힘으로, 내가 잘 해서가 아니라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으면 의롭다 여겨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내가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다는 나의 능력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여겨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께로 오십시오. 그분이 우리를 아브라함을 의롭다하신 것처럼 우리를 의롭다 여겨주십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획득하신 의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꼭 믿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말씀을 두고 같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 믿음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리스도를 통해 전달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내 힘으로가 아닌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셨다는 것에 감사하는 기도를 합시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지만 실패하고 좌절하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습을 자책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그리스도께서 획득하신 의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이 시간 같이 이 두 가지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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