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울 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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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 views어려움 당할 때 감사 감사하지 않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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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 감사
환난, 감사
시편 77:6-15
어려울 때 감사
주제: 환난, 감사
스코틀랜드의 시각 장애인으로 유명한 설교자 조지 마테슨(George Matheson)이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저의 ‘가시’에 대해서는 결코 감사드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의 장미들에 대해서는 천 번이나 감사드렸지만, 저의 가시에 대해서는 한 번도 감사드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은 십자가를 지고 있지만 미래의 세계에서 보상받을 것을 내다보고 살았습니다. 이제 저에게 저의 십자가의 영광을 가르쳐 주옵소서. 저의 가시의 가치를 가르쳐 주옵소서. 제가 고통의 길로 주님에게 나아왔다는 것을 보여 주옵소서. 저의 눈물이 저의 무지개를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 주옵소서.”
마테슨이 시각 장애라는 ‘가시’에 얼마나 많이 찔렸겠습니까? 시각 장애의 가시에 대해서 누가 감사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는 그저 주님이 재림하시면 내세 천국에서나 시각 장애의 가시 때문에 흘린 눈물을 주님께서 닦아 주실 것을 희망으로 품고 살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내세 천국에서가 아니라 오늘 여기에서, 시각 장애가 해결된 상태가 아니라 시각 장애의 가시가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차원 높은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여러분이 당하는 어려움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려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가시가 여러분을 주님께로 인도해 준 값진 도구였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눈물이 실상은 여러분의 삶을 일곱 가지 색깔로 아름답게 꾸며준 여러분의 무지개였다는 것을 알고 감사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시편 77편의 시인 아삽은 2절에서 “환난 날에” 이 시를 읊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는 2~4절에서 너무 고통스러워서 위로 받기를 거절했다고 했습니다. 환난 중에 하나님을 생각하고 불안하고 근심하면서 마음이 상했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셔서 그는 너무 괴로웠고, 너무 괴로워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은 이런 고통을 당해 보셨습니까? 위로 받고 싶어도 위로 받을 데가 없는 고통을 당해 보셨습니까? 고통 문제를 두고 하나님을 생각하면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상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고통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해서 괴로운 적이 있었습니까? 아니 지금 이렇게 괴로운 일을 당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어려움을 당할 때, 7~9절에 나오는 시인의 질문이 여러분의 질문이라는 생각이 드시지 않습니까?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 인자하심이 길이 다하였는가, 그 허락(약속)을 영구히 폐하셨는가, 하나님이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 긍휼을 막으셨는가.”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습니까? 아닙니다. 이사야 49장 14~15절에 하나님은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ㅇ낳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약속을 어기십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시편 103편 13~1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피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곧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예레미야 애가 3장 22~23절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로 버리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은혜는 무궁무진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약속을 어기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새로운 은혜를 베푸시는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는 하나님에 대해서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시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 다시는 은총의 해를 떠오르지 않게 하실 것처럼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 희망의 봄이 절대로 오지 않게 하실 것처럼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샘이 다 말라버린 것처럼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단비가 다시는 내리지 않을 것처럼 생각됩니다.
우리가 왜 감사하지 않습니까?
일이 잘 될 때는 일을 잘 되게 하신 하나님을 망각하고 마치 내가 잘 해서 잘 된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고한 바와 같습니다.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신8:17~18).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이 아무리 잘 되게 하셔도 더 잘 되면 좋겠다는 우리의 욕심에 차지 ㅇ낳기 때문에 우리는 감사하지 않습니다. 일이 잘 될 때는 이렇게 교만과 탐욕 땜ㄴ에 우리가 감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왜 감사하지 않습니까?
일이 잘 안 될 때에는 하나님이 나를 영원히 버리시고 다시는 은혜를 베푸시지 않을 것처럼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바로 그곳입니다. 사람은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것은 극단적인 생각입니다. 하나가 잘 못 되면 다 끝장났다는 것도 극단적인 생각입니다. 현재의 어려움만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영원히 버리셨다고 생각하는 것도 극단적인 생각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하나님이 나를 영원히 버리셨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여 착각의 늪에 빠지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그럴 때에 술이라도 마시고 고통을 잊고(drink it away) 싶지만 그럴 수도 없습니다. 실컷 웃고 고통을 잊어버리고(laugh it away) 싶어도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부르짖어 기도하고 고통을 잊고(pray it away) 싶어도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해도 여전히 마음이 무겁습니다. 하나님께 호소해도 여전히 마음이 개운치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러실 수가 있는가 싶어 기가 막혀서 말도 안나옵니다. 말이라도 나오면 속이라도 시원하련만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고난 속에 갇혀, 슬픔 속에 갇혀, 고민 속에 갇혀, 갈등 속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이런 고민과 갈등의 늪에서 빠져 나오는 길이 없습니까?
시인은 10절에서 “이는 나의 연약함이라” 하면서 고민의 늪에서 처벅처벅 걸어 나옵니다. ‘아이쿠! 내가 생각을 잘못했구나! 아! 내가 하나님을 잘못 생각했구나!’하고 고민의 늪에서 빠져 나온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고통 중에 ‘하나님이 나를 영원히 버리셨구나. 하나님이 내게는 더 이상 은혜를 베푸시지 않는구나’하는 생각이 드실 때에 성령께서 여러분 속에서 그 생각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바로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 때에 잘못된 생각을 고집하지 마시고 “이는 나의 연약함이라”고 하면서 빠져 나오셔야 합니다. ‘아이쿠!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하고 빠져 나오셔야 합니다.
시인이 고민과 갈등의 늪에서 빠져나올 때에 ‘내가 이렇게 해야지(I will...)이라고 하면서 의지적으로 빠져 나옵니다. 11절에서 시인은 ’내가 기억할거야(I will remember...surely I will remember)라고 합니다. 12절에서 시인은 ‘내가 묵상할거야’(I will meditate)라고 합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는 고민과 좌절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내게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10~12절에서 시인은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전능의 오른손으로 복을 베푸신 여러 해들) 곧 여호와의 옛적 기사(wonders)를 기억하여 그 행하신 일을 진술하리이다 또 주의 모든 일을 묵상하며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고통 중에 고민과 갈등과 좌절의 늪에서 빠져 나와 감사의 땅으로 올라오는 길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내게 베푸신 복들을 기억하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환난에 묶여 있지 말고 과거의 영광으로 날아올라 가야 합니다. 현재 계씨지 않는 것 같은 하나님의 새장에 갇혀 있지 말고 과거에 놀라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의 창공으로 날아올라가야 합니다.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십니다(히13:8). 과거에 내게 은혜와 자비와 축복을 베푸신 하나님께서 지금 일시적으로 어려운 나에게 반드시 곧 은혜와 자비와 축복을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기억할 것을 촉구합니다. 구약의 모세도 기억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신8:2).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신8:18).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하셨음을 기억하라”(신15:15).
신약의 베드로도 하나님을 기억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위포밈네스코-remember)하려 하노라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라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한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벧후1:12~15).
성경은 우리에게 기억하라고 할 뿐 아니라 깊이 생각하라, 즉 묵상하라고 합니다. 다윗은 “복 있는 사람은...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했습니다(시1:2). 묵상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섭취하고 소화하는 것입니다. 소가 먹은 음식을 되씹어 소화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되씹어 소화하는 것입니다. 묵상하면 깊어지고 깊어지면 삶의 가치와 의미를 음미하며 삽니다.
(용감한 마음)(Braveheart)라는 영화에 “모든 사람들은 죽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진짜 사는 것이 아닙니다!”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모든 사람들이 죽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살기는 사는데 삶의 의미와 가치를 음미하면서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를 묵상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답게 보람되게 살지 못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고 묵상하면서 고민과 좌절의 늪에서 빠져 나옵니다. 그는 드디어 13~15절에서 정상적인 신앙고백을 다시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도(길)는 극기 거룩하시오니 하나님과 같이 큰 신이 누구오니이까 주는 기사(wonders)를 행하신 하나님이시라 민족들 중에 주의 능력을 알리시고 주의 팔로 주의 백성 곧 야곱과 요셉의 자손을 구속하셨나이다.” 하나님의 길이 지극히 거룩하다는 것은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그대로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의 백송을 능력의 팔로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우리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과거에 약속대로 구원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시기 때문에 지금의 고통에서도 우리를 건져내실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아무리 큰 고통을 당한다 하더라도 과거에 약속하신 말씀대로 구원하신 하나님이 현재의 고통에서도 건져내실 것입니다. 과거에 구원하신 하나님이 지금 일시적으로 고통을 당하게 하신 것은 그 고통이 우리에게 구원의 방편, 성숙의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아기를 목욕시킬 때 아기는 죽는다고 웁니다. 엄마가 아기를 깨끗하게 씻어주는 것은 아기가 건강하게 잘 자라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아기는 무섭고 아프다고 웁니다. 아기가 아무리 울어도 사랑하는 엄마는 아기를 목욕시킵니다. 우리가 고통 중에서 아무리 힘들다고 호소해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서 우리의 때를 닦아 내십니다. 아기가 자기를 목욕시키는 엄마의 사랑에 감사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고통을 통해 우리를 씻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대구(codfish)를 담아 운반하는 탱크 속에 메기를 집어 넣었습니다. 메기는 대구의 천적입니다. 대구들을 멀리 운반하는 동안 대구들은 메기 때문에 계속 정신을 차려야 했습니다. 대구들은 메기 때문에 계속 팔팔했습니다. 혹시 메기에게 물릴까 끊임없이 경계를 하지 않으면 언제 물어 뜯길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것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대구들으 ㄴ출발할 때처럼 생생하고 신선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통의 메기를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생생하고 팔팔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고통의 메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뛩벌 몇 마리를 우주선에 태웠습니다. 무게가 없는 무중력 상태에서 벌들이 어떻게 되는지 실험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우주 공간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벌들도 둥둥 떠다녔습니다. 뛩벌들은 무중력 상태에서 너무 편하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뛩벌들은 일을 안 해도, 몸부림치지 않아도, 야생 조류의 공격을 받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편했겠습니까? 그러나 너무 편해서 3일 후에 뛩벌들은 다 죽었습니다. 실험 결과는 이런 말로 요약 보고되었습니다.
“뛩벌들은 유영을 즐겼으나 살아남지 못했다.” 뛩벌들은 날개를 사용하지 않고, 즉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살도록 되어 있지 ㅇ낳았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은 편안한 장미꽃 침대에 누워서 놀도록 되어 있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로부닝 역경을 통과하는 동안에 시험을 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완악하게 고집을 부리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정금같이 나오도록 연단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욥23:10).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모난 부분을 다듬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강하고 담대하게 선한 싸움을 싸우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 모두를 영적인 챔피언으로 만들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gsksla 편에 서서 믿음의 태도만 유지하면 어떤 일을 당하든지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한 결과를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역경 중에도 감사할 수 있고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추수감사 주일을 맞이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 해 동안 우리에게 복 주시고 인도해 주신 것을 깊이 생각하고 기억하면서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어렵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어려움을 통해서 우리를 씻어주시고, 정신 차려 팔팔하게 하시고, 우리 모두를 인생의 챔피언으로 만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고통 속에서 흘리는 여러분의 눈물이 여러분의 삶을 아름답게 꾸며주시는 하나님의 무지개입니다. 어려울 때도 감사하십시오. 어려울 때 감사하는 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감사할 때는 보통 사람들보다 더 크게 감사하십시오.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서게이 브린(Sergey Brin)이 스탠포드 대학교 대학원생으로 있던 1998년에 구글을 만들었습니다. 현재 통계에 의하면 구글은 OO개 국어로 약 OO여 억 페이지의 정보를 제공해줍니다. 구글 사용자들이 1개월에 구글을 사용하는 시간은 OOO백 만 시간이라고 합니다. 구글이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끌이 이렇게 커졌습니까? 본래 구글은 1이라는 숫자 뒤에 0을 100개 붙이는 숫자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숫자를 고르세요’라는 테스트에서 14나 98을 생각할 때 페이지와 브린은 구글을 고르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페이지와 브린이 구글을 소르기로 결심한 것처럼 여러분도 감사하실 때에 구글식으로 크게 감사하기로 결심하십시오 어려울 때도 감사하시고, 구글식으로 크게 감사하셔서 큰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