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13. 새벽예배. 까닭이 없지 않습니다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 view
Notes
Transcript

찬송가 337장 - 사도신경 - 성경봉독

욥기

17 그가 폭풍으로 나를 치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깊게 하시며

18 나를 숨 쉬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을 내게 채우시는구나

19 힘으로 말하면 그가 강하시고 심판으로 말하면 누가 1)그를 소환하겠느냐

20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하리니 가령 내가 온전할지라도 나를 정죄하시리라

21 나는 온전하다마는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 생명을 천히 여기는구나

22 일이 다 같은 것이라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온전한 자나 악한 자나 멸망시키신다 하나니

23 갑자기 재난이 닥쳐 죽을지라도 무죄한 자의 절망도 그가 비웃으시리라

24 세상이 악인의 손에 넘어갔고 재판관의 얼굴도 가려졌나니 그렇게 되게 한 이가 그가 아니시면 누구냐

25 나의 날이 경주자보다 빨리 사라져 버리니 복을 볼 수 없구나

26 그 지나가는 것이 2)빠른 배 같고 먹이에 날아 내리는 독수리와도 같구나

27 가령 내가 말하기를 내 불평을 잊고 얼굴 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지라도

28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 주께서 나를 죄 없다고 여기지 않으실 줄을 아나이다

29 내가 정죄하심을 당할진대 어찌 헛되이 수고하리이까

30 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하게 할지라도

31 주께서 나를 개천에 빠지게 하시리니 내 옷이라도 나를 싫어하리이다

32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 내가 그에게 대답할 수 없으며 함께 들어가 재판을 할 수도 없고

33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

34 주께서 그의 막대기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그의 위엄이 나를 두렵게 하지 아니하시기를 원하노라

35 그리하시면 내가 두려움 없이 말하리라 나는 본래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니라

서론

우리의 인생에 찾아오는 고난에 대해서 성경이 말하는 바를 잘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이 무엇이 있을까요?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고난은 변장한 축복입니다”?
유명한 작가 C.S Lewis는 고난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음성의 확성기입니다.” 이런 표현들이 가리키는 바를 우리 성도님들 모두 잘 짐작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의 삶에 고난을 허락하실 때가 있고, 그 고난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가신다는 것이며, 그 고난을 통과하며 우리는 더욱 깊어지고 단단해지고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돌보심 속에서 우리에겐 고난이 유익이 된다는 말이지요.
아… 너무나 달콤해 보이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고난이 내게 찾아온다면 이것보다 써서 뱉어버리고 싶은 것이 없습니다. 누구라도 제 3자의 입장에서야 마치 달관한 사람처럼 아무런 고통이나 부대낌 없이 고난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을 수 있지만, 이게 직접 당사자의 입장이 되어보면 달라집니다. 당사자에게 고난은 늘 속수무책의 고통이요 아픔이요 슬픔이요 절망일 수 밖에 없어요. 우리에게 고난이 찾아오면 별 수 없습니다. 고난 속에서 몸으로 때우며, 그 고난의 의미를 몸소 알아가는 방법 외에는 달리 다른 방도가 없습디다.
일단 고난에 대한 서론적인 설명은 여기까지하고 마칩시다. 그렇다면 이 고난이라는 것은 언제 혹은 누구에게 찾아오는걸까요? 조금 더 정답을 맞추시기 쉽게 질문을 바꿔봅시다. 하나님은 언제 혹은 누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걸까요? 많은 성도들이 이 부분에서 착각을 합니다. 고난은 전부 우리가 잘못했을 때에, 회개가 필요한 자에게 찾아오는 것이라고만 생각하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잘못했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훈계하시려고 사랑의 매로서의 고난을 주실 때가 분명 있습니다만, 고난이 꼭 그렇게만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오늘부터 함께 새벽에 나눌 욥기의 주인공을 보십시오. 과연 그가 뭔가를 잘못해서 그 큰 고난을 맞이하게 되었습니까?

본론

욥기 1장에는 욥에 대한 소개가 나옵니다. 성경은 욥에 대해 그가 어떤 자였다고 소개합니까?
욥기 1:1–5 NKRV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그에게 아들 일곱과 딸 셋이 태어나니라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 그의 아들들이 자기 생일에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의 누이 세 명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더라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어마어마하지 않습니까?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습니다. 악에서 떠난 자였습니다.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였습니다. 성경의 인물 중에 욥과 비견할 수 있을만큼 칭찬받은 자는 몇 되지 않습니다. 이런 욥에게 하루아침에 고난이 찾아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그가 잘못했기 때문입니까? 그에게 회개가 필요했습니까? 아닙니다. 도대체 욥에게 왜 고난이 찾아온걸까요? 이 고난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욥기는 결코 쉽게 그 결론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무려 마흔 두 장이나 되는 분량으로 그 고난의 의미를 서서히 드러내갑니다.
아직 욥기를 막 묵상하기 시작한 우리는 고난의 의미에 대해 아직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인데, 그것이 1장과 2장에 은근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욥기 1:6–12 NKRV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욥기 2:1–6 NKRV
또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서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와서 여호와 앞에 서니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 왔나이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의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성도 여러분들께는 하나님이 어떻게 보이십니까? 하나님은 사탄의 요구에 순순히 “그렇게 해보거라”라고 답하십니다. 진지하게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이것이 욥을 향한 고난의 시작이었으며, 우리를 향한 고난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없이 그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음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자 그렇다면, 고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이 욥에 대해 무관심해 보이시고 무책임해 보이십니까? 아니면 뭔가 욥을 향한 은근한 기대가 있어 보이고 자신감이 있어 보이십니까? 욥기를 읽으며 하나님이 후자의 모습으로 보였다면 잘 보신겁니다. 하지만 욥을 향한 기대와 뭔가 상당한 자신감이 묻어날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은 전지하셔서 결말을 알고 계시기에 이 고난을 통과하여 빚어지게 될 욥의 모습을 기대하실 수 있고,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어떤 방해도 받지 않으시고 결말을 이뤄내실 것이기에 이 고난을 통해 더욱 깊어진 모습의 욥으로 만들어 낼 자신감이 있으시지만, 욥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욥은 이 일의 결말을 모르니 이 고난의 의미를 모르는 채 속수무책으로 구르는 수밖에는 없고, 욥은 비록 동방에서 가장 훌륭한 자라고 하나 연약한 인간이기에 이 고난을 훌륭하게 통과해낼 재간이 없어 그저 하나님의 손에 자신을 맡기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헌데, 이 의미를 모른다는 것, 도무지 까닭을 모르겠다는 것이 사람을 정말 미치게 합니다. 욥에게도 고난 중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17, 18절을 함께 좀 읽어봅시다.
욥기 9:17–18 NKRV
그가 폭풍으로 나를 치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깊게 하시며 나를 숨 쉬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을 내게 채우시는구나
욥은 지금 빌닷의 말에 대답하고 있습니다. 빌닷에 욥에게 뭐라고 말했었냐 하면, 8장 1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욥기 8:11 NKRV
왕골이 진펄 아닌 데서 크게 자라겠으며 갈대가 물 없는 데서 크게 자라겠느냐
우리말 속담에 뜻이 똑같은 속담이 하나 있습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 빌닷은 욥에게 “네가 잘못한게 있으니 벌을 받는거다. 그러니 회개해라.”라고 말했던거죠. 욥의 입장에서는 울화통이 치밀어 오를 수 밖에 없는 말입니다. 욥이 자녀를 잃고, 재산도 잃고, 끔찍한 병까지 앓는 와중에 과연 자기를 돌아보지 않았을까요? 이것이 자신의 죄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안했겠습니까. 하지만 아무리 자신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아도 욥은 자기의 잘못이 이유가 되지 않음을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욥이 원통해하며 나는 지금 도무지 까닭을 알지 못할 고난을 당하고 있다고 대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대답을 이어갑니다. 19절부터 31절까지가 죄다 한탄입니다. 욥의 말을 요약해서 실감나게 전해드리면 이런 말들이 됩니다. “까라면 까야지 별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런데 내가 이유는 좀 알고 구르고 싶다.”
19절입니다.
욥기 9:19 NKRV
힘으로 말하면 그가 강하시고 심판으로 말하면 누가 그를 소환하겠느냐
번역이 참 어렵습니다. 이것은 번역자의 탓이 아니라, 욥기가 원래 번역하기가 고약하기로 유명합니다. 이럴 때는 다른 번역본을 참고하면 도움이 많이 됩니다. 새번역 버전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19  강한 쪽이 그분이신데, 힘으로 겨룬다고 한들 어떻게 이기겠으며, 재판에 붙인다고 한들 누가 1)그분을 재판정으로 불러올 수 있겠느냐?

20절도 읽어드리겠습니다.

20  비록 내가 옳다고 하더라도, 그분께서 내 입을 시켜서 나를 정죄하실 것이며, 비록 내가 흠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분께서 나를 틀렸다고 하실 것이다.

욥은 지금 하나님께 상당히 불만이 많습니다. 도무지 까닭을 모르는 고난에 억울해 죽겠는데, 하나님을 향해 잘못하시는 거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더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었을겁니다.
22절입니다.
욥기 9:22 NKRV
일이 다 같은 것이라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온전한 자나 악한 자나 멸망시키신다 하나니

22  나에게는 모든 것이 한 가지로만 여겨진다. 그러므로 나는 “그분께서는 흠이 없는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다 한 가지로 심판하신다” 하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제 욥은 자기가 지금까지 믿고 의지하며 알던 하나님이 과연 맞는가? 하며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의인을 선대하시고 악인을 심판하시는 분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자신에게 이런 까닭 모를 고난이 닥쳐왔으니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이 “나는 이제 하나님이 온전한 자나 악한 자나 똑같이 대하시는 분이라고, 온전한 자에게나 악한 자에게나 똑같이 고난을 주시는 분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고 했던 것이지요.
욥이 이 고난 속에서 가장 바라고 소원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그 답이 32-35절에 나옵니다.
욥기 9:32–35 NKRV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 내가 그에게 대답할 수 없으며 함께 들어가 재판을 할 수도 없고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 주께서 그의 막대기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그의 위엄이 나를 두렵게 하지 아니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리하시면 내가 두려움 없이 말하리라 나는 본래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니라
앞선 욥의 말을 요약하면 “까라면 까야지 별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런데 내가 이유는 좀 알고 구르고 싶다.”가 된다고 했습니다. 32-35절의 욥의 말을 요약하면 이렇게 됩니다. “계급장 떼고 한 번 속 시원하게 얘기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욥의 마음의 소원을 불순하게 받아들이지는 마십시오. 욥은 묻고 싶은겁니다. 따지고 싶은거예요. 그래서 이게 도대체 무슨 까닭이며,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설교를 쓰며 정말 소름돋는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2018년 11월에 제가 욥기를 묵상하며 하나님 앞에 한참 씨름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심경을 일기로 적어뒀었거든요. 공교롭게도 날짜가 딱 이맘때입니다. 제 일기의 내용을 잠깐 읽어드려도 되겠습니까?
교회에서 맡겨주신 4년 간의 전도사로서의 사역도, 학교에서 맡겨주신 4년 간의 채플 인도자로서의 사역도, 또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당신의 뜻대로 살아가려 애쓰던 일상도 어느 때부턴가 삐걱대기 시작하다가 모든게 무너져버렸다. 어디다 내놓을만큼 대단하게 이룬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 하나 이뤄가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그리고 여정마다 함께 하셨던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며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
올해의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것이 무너져가기 시작했다. 사역이 버겁게 느껴지고,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안 좋은 상황들이 계속해서 삶 속에 펼쳐지고,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침묵이 시작되었다.
모든 것이 맞물려 최악으로 치닫는 것을 겪으며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생각되었다.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끝없이 하나님께 매달렸지만 당신은 여전히 침묵하고 계시다. 금식도 여러 번 했었다. 홀로 밤 중에 산에 올라 부르짖기도 했었다. 명설교자라 불리는 목사님들의 설교도 찾아 들었다. 아마 안해본 것이 없을 것 같다. 한 말씀만 해주시면 제가 순종하겠다고 가슴을 치며 기도하던 밤들, 어디에 계시냐고 부르짖던 밤들, 이럴거면 차라리 데려가시라 울부짖던 밤들을 당신은 가슴 아프게 외면하신다.
하나님만이 의미를 만드신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