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15 바이블 스터디 레위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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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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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 : 드려도 되고 안드려도 되는 것 기름과 유향 이것은 기쁨을 상징한다. 성경 전체를 봐도 유향과 기름은 다 들어간다. 그러나 두가지 경우에만 들어가지 않는다. 첫번째 의심의 소제이다. 시제법 민수기 5장에 의심의 소제 에는 기름과 유향을 빼게 되어 있다. 또하나 속죄제로 드릴때 기름과 유향을 빼게 되어 있다.
속죄제 : 대제사장과 온이스라엘이 범죄 하였을 때 숫송아지를 재물로 바쳤다. 이때 다른 제사들과 다른 것은 희생제물의 피를 가지고 성소 안으로 들어가서 지성소 휘장 앞에 일곱 번 그 피를 뿌린 뒤에 분향단의 네 뿔에 그 피를 발랐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머지 피들은 번제단 밑에 쏟았다. 그리고 재물을 번제단 위에서 전부 불살라야 했기에 제사장 의 몫으로 주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스라엘의 족장 된자가 속죄제를 지낼 때 숫염소 피는 번제단 뿔, 번제단 바닥
그냥 이스라엘 백성 개인이면 암양, 암염소, 희생제물의 기름 부위만 번제단 위에서 불살랐다. 그렇기 때문에 나머지 부위는 제사장들이 먹을 수 있었다. (번제단의 남쪽 뜰)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제사에서 희생제물을 잡는 장소는 동일하다. 성막 입구에서 바라볼 때, 번제단의 오른 쪽, 곧 성막의 북쪽 뜰이었다.
4가지 제사의 방법
화제 : 불에 태우는 것
요제 : 흔들어 드리는 것이다. 주로 화목제를 드리는 중에 희생제물의 가슴 부위를 하나님께 바칠 때.
거제 : 하나님 앞에서 들어 올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첫 곡식의 십일조. 우리가 올린다는 것은 드린다는 의미이다.
전제 : 이것은 직접 제사를 드려보면 알 수 있는데 제물이 불에 잘 타지 않는다. 처음에는 잘 타지만 그것을 완전히 태우지 못한다. 그래서 꺼져가는 불을 다시 살리기 위해 그래서 재물이 끝까지 다 탈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제사가 완성되는 것이 전제의 목적이다.
사도바울이 죽기 전에 감옥에서 죽을 것을 직감하고 유서와 같이 남긴 글이다.
디모데후서 4:6–7 (NKRV)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네로 박해로 말미암아 기독교가 부흥하지 못하고 점점 줄어들었다. 성령의 불이 꺼져가는 것 처럼 보이는 상황이었다. 정말 많은 기독교인들이 배교하였다. 그때 바울이 자신의 삶을 전제로 드린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 말은 바울 자신의 생명을 구걸하지 않고 온전히 희생한다는 말임과 동시에 그로 인해 꺼져가는 기독교의 불이 다시 타오를 수 있기를 바라는 고백인 것이다. 영광이 아니라 희생인 것이다.
그렇다면 제사를 순서를 한번 보는시간을 갖겠다.
레위기 1장을 보겠다.
제사는 누가 드리는 것인가? 내가 드리는 것이다. 제사장이 하는 것은 피를 뿌리고 조각난 재물을 번제단에 올려 놓는 것이다.
레위기 1:1–8 (NKRV)
1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3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
4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5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6 그는 또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7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제단 위에 불을 붙이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8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레위기 1:9 (NKRV)
9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하나님은 악인의 죽는 것도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신 분이다.
에스겔 33:11 (NKRV)
11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그런데 왜 하나님이 짐승이 잔인하게 죽는 것을 보면서 기뻐하시는 것인가? 하나님의 눈에는 한마리의 소가 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가 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사의 과정에서 한가지를 빼면 도축과 다를 것이 없다. 그 한가지가 무엇인가? 짐승에게 손을 대고 안수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사가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우리가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칼을 꺼내어 우리의 심장을 찌르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내어 피를 사방에 뿌리고 나를 태워야지만 내가 지은 죄에 대한 진노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이 죄이다. 우리는 은혜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제사가 없다면 우리가 죽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제사를 만드신 것이다.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은 내가 지은 죄값을 내게 묻고 싶지 않으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짐승에게 전가 시키는 것이다. 우리의 죄를 전가시킬 때 무엇도 따라 움직이는가? 하나님의 진노이다.
짐승이 흠이 없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의 흠 없음이 내게도 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때문에 하나님께서 흠 없는 재물을 그렇게까지 요구하시는 이유는 누구를 위해서인가? 우리를 위해서 이다.
시간이 흘러 이제 이러한 제사로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가?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신 것이다. 말이 좋아 이땅에 보내신 거지 사실은 우리를 위한 희생재물로 이땅에 오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 전가 시키라는 것이다. 아까도 이야기 했듯이 우리의 죄가 전가되면 무엇까지도 전가되는가? 죄에게 쏟아져야 할 하나님의 진노도 같이 전가 되는 것이다.
나에게 똣아질 마땅한 하나님의 진노가 예수님한테 쏟아지게 하는 방법밖에는 우리에게 다른 방법은 없다. 이게 바로 십자가 이다.
그러면 내 죄를 예수님께 전가시키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바로 믿음 이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이땅에 오셨다는 것을 예수님이 내 구원자이심을 믿는 것이다.
세상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 가장 나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 도 있다. 자기가 지은 죄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예수님한테 전가시킨 나쁜 사람이라고, 네.. 정말 나쁜 사람들이 예수님 믿는 사람들 이다. 우리는 정말 나쁜 사람이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의 죄를 전가시킨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무엇이 내게 전가 되겠는가? 흠 없음이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의이다. 그래서 내가 죄인에서 의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의인된 것은 의롭게 살아서 인가? 믿어서인가? 믿어서 의인이 된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거룩 - 정결 - 부정
정결한 상태에서 부정하게 되는 경우는 죄, 연약함 실수 이렇게 두가지이다.
죄로 인해 부정하게 된 것은 제사를 통해서 정결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부지중의 실수로 인해 부정해 진 것은 제사를 드리지 안아도 된다. 옷을 빨고 저녁까지 기다리는 의식으로만으로도 정결의 상태로 회복이 된다.
제사의 목적은 부정하게 된 사람이 정결한 상태로 회복(돌이키는)데 목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 도구이다. 제사를 통해 정결을 회복한 사람이 거룩한 하나님께로 나아가라는 것이다. 그러기때문에 우리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거룩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여기서 말하는 제사는 오늘날로 말하는 모든 종교 의식이다. 그러기에 우리 인간의 힘으로 도달 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는 정결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거룩이다.
그렇다면 거룩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
출애굽기 29:43 (NKRV)
43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으로 말미암아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
말씀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작은 지성소 성소가 거룩해지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으로 회막이 거룩해 진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임재이다. 그러기에 거룩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 이다. 여기서 말하는 회막이 무엇인지는 다 알거라 생각한다. 성막, 증거막, 회막 다 같은 말이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미디안 광야에서 부르신다. 그리고 나온 모세에게 말씀하시길 “네가 선 이곳은 거룩한 땅이니 신을 벗어라” 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그것은 거짓말이다. 미디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전까지 간 적도 없기에 그곳에 성막도 없고 그러기에 그곳에서 예배를 드려본 적도 없고 오히려 다른 신들에게 제사를 드렸던 우상숭배의 땅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하시는 말이 “네가 서있는 땅이 거룩한 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곳은 오히려 죄 된 땅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곳을 거룩하다고 말씀하신다. 이유는 무엇인가? 그곳에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거룩과 세속을 구분짓는 것은 어떤 환경이나 상황 또는 내가 가지고 있는 직분이 아니다. 그 기준은 하나님의 임재이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이 거룩한 이유는 무엇인가? 교회라는 타이틀이 있어서 그런가? 그렇지 않다. 그 타이틀이 거룩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거룩을 보장해주는 유일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 이다.
그러기에 거룩한 장소와 세속적인 장소를 구분짓는 기준도 하나님의 임재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면, 내가 지금 교회에 있는거, 직장에 있는거, 길거리에 있는거, 차안에 있는거 카페에 있는 거 어느곳이 가장 거룩한 장소가 되겠는가?
다똑같은 것이다. 동일하게 거룩한 장소이다. 그러기에 이것이 인정이 된다면 교회에서의 말과 직장에서의 말이 같아야 하고, 교회에서의 행동과 가정에서의 행동이 동일해야 한다. 왜냐하면 동일하게 거룩한 장소 이기 때문이다. 거룩을 구분하는 기준은 하나님의 임재이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이 있는 곳을 거룩한 곳으로 만들길 바란다.
아무 의미없는 찬양으로 거룩해지지 않는다. 하소연만 있는 기도로 거룩해지지 않는다. 그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면 그곳이 거룩한 곳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룩한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의 직분이 내 삶의 거룩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우리의 거룩은 오직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룩한 직업은 무엇인가? 목사 선교사 이런 사람들만 거룩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그곳에서 하는 모든 일이 거룩한 직업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여러분에게 맡겨진 일이 성직이 되게 하여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임재를 밀쳐내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죄" 이다. 죄와 하나님의 임재는 함께 갈 수 없다. 거룩한 임재는 언제나 죄를 짓누르게 한다. 반대로 죄는 임재를 멀리하게 한다. 죄는 언제하 하나님의 임재를 밀쳐내게 되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사람들만다 나타나는 특징은 죄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죄를 은밀하게 즐기면서 하나님을 사모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언제 어떻게 임하실지 모른다. 그러기에 우리는 부정해지기 무섭게 빨리 정결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계속해서 정결과 부정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유대인들은 레위기를 암송한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무엇이 부정하게 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 무엇을 먹으면 안되는지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어디를 가면 안되는지 어디는 가도 되는지 이것이 머리속에 박혀 있다. 레위기 11장에 음식예절 13장에 나병과 같이 부정한 병에 대해서 이들은 너무나도 잘 알 고 있다.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 것이 신약의 마태복음이다. 머리속에 레위기 법이 통채로 박혀있는 그들에게 당신들이 그렇게 기다렸던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라고 소개하는 책이 마태복음이다.
마가복음은 다르다. 로마 박해 가운데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쓰여진 책이 마가복음이다.
누가복음은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 전달된 책이 누가복음이다.
요한복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기에 각각의 복음서의 수신자의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당연한것이다. 청중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레위기에 대한 사상이 머리에 박혀 있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 성경이 마태복음이다. 마태복음은 시간순서대로 쓰여있지 않았고 옴니버스로 쓰여져 있다.
5-7장은 예수님의 설교, 8-9장 예수님의 기적, 13장은 예수님의 비유를 모아놨다. 대신 누가복음은 연대기로 기록되어 있다.
마태복음에서 설교 기적은 모두다 유대인 당신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를 이야기 하고 있다. 다 살펴보지는 못하고 기적만 보면 도표 거룩-정결-부정 이 표에 의하면 부정한 사람이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가면 어떻게 되는가? 죽는다. 그래서 마태복음의 첫번째 기적에 누가 나오는가 하면 부정한 사람중에 가장 부정한 사람 그누구도 부인 할 수 없는 부정한 사람인 나병환자가 나온다. 마태복음 8장 이다.
마태복음 8:1–2 (NKRV)
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2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기대하는 것이 있다. 이들이 알고 있는 것은 부정한 사람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면 죽는다. 그러니깐 지금 예수님 앞에 나병환자가 나왔다는 것은 예수님이 거짓 메시야 임을 밝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유대인들은 뒤에서 나병환자가 죽나 안죽나만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병환자가 죽었는가? 살았는가? 살았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상황이 통쾌한것이다. 부정한 사람이 살아 있으니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긴다.
마태복음 8:2–3 (NKRV)
2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여기서 말하는 깨끗이 정결이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는가? 예수님이 손을 내밀어 부정한 나병환자에게 대신다. 거룩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부정한 나병환자에게 손을 댔다 그랬으면 레위기 법에 의하면 나병화자가 그 자리에서 죽어야 한다. 그런데 죽지 않는다. 대신 어떻게 되는가?
예수님이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어떻게 되었는가? 깨끗하여 졌다. 부정했던 그 사람이 정결하게 되었는데 그 어떤 제사없이 정결하게 되었다. 부정한 사람이 정결한 사람이 되기 위해선 항상 제사가 필요하였는데 지금 눈앞에서 예수님의 손이 닿자 부정했던 그 사람이 정결 해졌다. 이 광경을 본 유대인은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너무 혼란스럽지 않겠는가? 그래서 마태복음에서는 접촉을 강조한다.
요한복음은 말씀을 강조한다. 나사로를 무엇으로 살리셨는가? 말씀으로 살리셨다. 요한복음 처음이 어떻게 시작하는가? 태포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니깐 말씀으로 오신 하나님이인 예수님을 강조하는 것이다.
마태복음은 접촉을 강조한다. 9장 20절이다. 아주 유명한 여자가 등장하는데 혈류병을 앓고 있는 여자다. 혈류증은 레위기 법에 의하면 부정한 병이다.
마태복음 9:20–22 (NKRV)
20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혈루의 근원이 말라 제사 없이 정결로 갔다가 거룩으로 갔다.
그 다음에도 한번 보자.
마태복음 9:23–25 (NKRV)
23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24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25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지금 이 소녀는 죽었다. 죽음은 레위기 법상으로는 부정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어떻게 하시는가? 그 소녀의 손을 잡는다. 그랬더니 그 소녀가 살아난다. 예수님의 손이 닿자 마자 부정한 소녀가 정결을 지나 거룩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성취되었다고 마태복음은 이야기 하는 것이다.
(NKRV)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제사를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제사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예수님이 완성시키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제사뿐만 아니라 제사와 하나님의 임재 두가지를 완성시키신 것이다. 다시말해 과거 구약의 모든 율법과 제사를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을 성취하신 것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이 나를 만지던, 내가 예수님을 만지던 부정했던 우리가 정결을 지나 거룩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마태복음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레위기 이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 바로 레위기인 것이다. 예수님이 성취하신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가 레위기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레 위기 1-7장에는 5가지 제사에 대해서 나온다. 그런데 잘 보면 두부분으로 나눠진다.
1:1-6:7 , 6:8-7 5가지 제사가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순서만 달라지고 나머지는 같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같은 내용을 두번 기록한 것인가? (나눠드린 유인물에 제사법에 추가 보완적인 내용를 기록했다고 하는데 그것 지우시길 바란다. 수정한다고 했는데 수정이 안되어 있다.)
그건 본문을 보면 알 수 있다.
레위기 1:1-2
1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그러니깐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한 것이다.
레위기 6:8–9 (NKRV)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라 번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번제물은 아침까지 제단 위에 있는 석쇠 위에 두고 제단의 불이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 할 것이라
이것은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인가? 아론과 그의 자손이다. 다시말해 제사장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앞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했을 때 제사를 지내는 방법이고, 뒤에는 제사장이 죄를 범했을 때 제사를 지내는 방법을 말씀하신 것이다. 제사장이지만 부정해진 사람의 신분으로 또 다른 제사장 앞에 제사를 지내는 장면이다.
1-7장에는 5가지 제사가 2번 반복 되는데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지내야 하는 제사, 두번째는 제사장이 드려야 하는 제사에 대해서 말한 것이다.
8장은 최초의 제사장 위임식이 나온다. 레위기 8장 이전까지는 제사장이 없었다. 이 세상에 처음으로 제사장이 세워지는 장면이다. 그러나 전에 이야기 한 것과 같이 그 순서와 절차는 레위기에 없고 출애굽기 29장에 언급 되어 있다.
참고로 알면 좋을 것이 관유라고 아는가? 관유는 기름을 부어 임명하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기름을 부어 임명하는 것, 기름부음을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인가? 혹시 아는가?왕, 제사장, 선지자 이다. 이 세직분을 기름부어 임명한다. 그래서 기를부음을 받은자 이것이 메시야의 원래 뜻이다. 따라서 메시야란 왕, 선지자, 제사장 이 세직분이 하나로 합쳐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 직분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9장은 최초의 제사이다. 위임받아 처음으로 제사를 인도하는 것이다. 처음으로 제사장으로 위임받아 처음으로 제사를 인도하는 감격스러운 장면이다.
1-6:7, 6:8-7장 두 종류의 제사법이 있는데 차이점이 있는데 그것만 하고 오늘 시간을 마치겠다.
제사장들에게 요구되는 하나는 제단위의 불을 꺼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레위기 9:22–24 (NKRV)
22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함으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마치고 내려오니라
23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24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
이 땅에서 처음 제사를 드렸을 때의 불은 인간이 만든 불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불인 것이다. 그래서 재단 위에는 사람들이 만든 불이 아닌 하나님이 직접 주신 불이 있는 것이다. 내가 너에게 불을 줬으니 항상 그불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사람이 불을 만들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불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성막은 어떻게 생겼는가?
성막은 이스라엘 진 정 가운데 존재했다. 성막과 지성소와 성소만이 탠트인 것이다. 물두멍과 재단은 야외에 있는 것이다.
10장에 아론의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의 불이 아닌 다른 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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