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은 사람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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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구원받은 사람을 누구라 부르나요? 그리스도인이라 부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믿는 사람일까요?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사상이나 교리의 체계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믿음에는 분명한 대상이 있는데 그 믿음의 대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어떤 교리 체계에 동의합니다 하고 예수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대상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상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이며, 동행하는 것입니다. 양이 목자를 따라가듯이 예수님을 목자로 믿고 우리가 이 땅에서 천국까지 따라가는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까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따라간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을 단순히 고백정도로 생각합니다. 지적 동의 정도로만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삶에서는 다른 것을 따라갑니다. 무엇을 따라가나요? 세상을 따라갑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진짜 예수님을 믿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마음에 염려와 두려움이 다 사라졌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데 여전히 염려와 두려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구원에도 증거가 나타나듯이, 믿음에도 증거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믿음으로 살아야 할까요? 사람마다 삶의 방삭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그리스도인도 각자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체적인 감각에 의존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이라는 영적인 감각에 의존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라고 말했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왜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까?
먼저 하나님의 모든 은혜는 믿음으로 받기 때문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구원은 믿음으로 받고 다른 것들은 노력해서 받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은혜와 복은 믿음을 통해서만 받습니다.
우리의 받은 구원은 믿음으로 받고, 우리의 삶에 다른 어떤 주님께서 주신 약속들은 노력으로 받을까요? 다 믿음으로 받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혜가 필요하면은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요? 야고보서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말씀합니다. 그런데 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야고보서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 지혜를 어떻게 얻습니까? 노력으로요? 아닙니다. 믿음으로 얻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치유를 받을까요? 우리 육신은 연약하고 질병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 1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 치유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도다라고 하는 이사야 53: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의 말씀을 마태복음 기자 마태가 인용한 것입니다. 치유도 뭘로 받을 수 있읍니까? 믿음으로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병을 대시 짊어지시고 고치셨다라고 하는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반응할 때 치유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약속과 은혜를 믿음으로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번째로 믿음으로 살아야 하나님이 세상에 증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자기의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우리는 대부분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는 돈이나 능력 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여 일을 처리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삶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없도록 만드는 이유입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으니까 돈이나 다른 것을 의지하고 바라보고 따라가니 하나님이 우리 삶 가운데 이루시는 기적과 능력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인지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얼굴의 표정과 분위기를 통해서 나타낼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신 사람들은요 그냥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생명과 풍성한 삶을 누리면 표정에 다 드러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이 되게 어려움 가운데 있는데 여전히 얼굴에는 평안과 기쁨이 가득한 사람을 보면 뭐라고 하시나요? 당신 뭐 믿는 거 있지? 이야기 하지 않습니까? 그 사람의 환경이나 삶을 보면 저렇게 기쁘고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기뻐하고 평안해요.
그리스도인은 진짜 우리 안에 믿음이 있음으로 상황과 환경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과 환경을 이기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믿는 것을 하찮고 별볼 일 없게 생각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한결같은 증거는 성령받은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담대하다는 것입니다. 드러나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보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해야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큰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큰 믿음을 갖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원한다고 모두 큰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은혜이고 선물입니다. 믿음은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을 선물로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몇 가지 일이 내 안에서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먼저 믿음으로 살지 못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돈이나 사람을 더 의지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서 침무하실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큰 믿음을 가지려면 자신이 믿음으로 살지 못했던 것부터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 위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로마서10장 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이 어디에서 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들음에서 난다고 합니다. 그러면 들음은 무엇을 들어야 된다고 합니까?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신념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자기의 생각이나 꿈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이 신념이라면,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읽고, 듣고, 묵상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거기에서 올바르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잘 듣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묵상하며, 묵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합니다. 만약 말씀을 가까지 하지 않고, 묵상도 하지 않으며, 순종하지 않고서 큰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성경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말 한마디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민수기 14장 2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민수기 14: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무슨 말씀인가요? 하나님께서 귀에 들린대로 행하신다는 말씀은 불신의 말을 한 사람들에게는 저주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정탐을 갔다 왔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죽이려고 여기 데려왔다고 악평하며 불신의 말을 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결국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말한 여호수아와 갈렙만 약속의 땅에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입에서 하는 말을 하나님께서 듣습니다. 우리가 말한 대로 주님은 듣고 계시고, 그 믿음의 말을 듣고 우리의 삶에 그대로 응답해 주십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세상과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매 순간 예수님을 바라보기를 힘써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 말씀을 표준 새 번역으로 다시 함께 읽겠습니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상반절을 보시게 되면,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서 믿음을 창조하시는 분도 예수님이시고, 그것을 완성하실 분도 예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즉, 우리의 마음에 믿음의 씨앗을 심어주시는 분도 예수님이시고, 그 믿음이 자라도록 그래서 완성해서 큰 믿음을 주게 하시는 분도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은 예수님을 의식적으로 범사에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집에서 설거지를 하든지, 운전을 하든지, 일을 하든지, 업무를 보든지, 잠을 자든지 등 계속 예수님을 의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오신 것은 우리와 동행하시기 원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왜 할 일 없이 우리한테 오셨어요? 동행하기 원하시는 거죠? 에녹과 같이 노아와 같이 동행하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본질이에요.
신앙의
동행이 없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점검해 봐야 돼요.
우리보다 예수님이 더 원하셔야 동행하기를.
그래서 동행 일기를 쓰면 예수님과 친밀한 동행을 시작하게 되는 겁니다.
프랭크 루박 선교사님이 선교지에서 실패했어요.
열매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리고 선교지에 이제 다 접고 돌아가려고 했었는데 결단을 했어요.
내가 이제 예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바라보기 예수님 의식하기 내가 훈련을 해봐야겠다.
훈련을 했는데 일기를 쓰셨어요. 일기는 거창한 게 아니에요.
내가 오늘 예수님과 동행하는데 몇 퍼센트 했다? 10%
10% 처음에는 1시간마다 알림을 설정해놓고 올릴 때마다 예수님 바라보고 의식하기를 연습했어요.
그러다가 더 많이 자주 30분마다 15분마다 그러면서 내가 하루 종일 예수님 몇 번 의식했는지 퍼센테이지를 적기 시작했어요.
10% 30% 50% 80% 100% 여러분 그렇게 연습하는 거예요.
그게 예수 동행 일기의 핵심이에요. 내가 오늘 몇 퍼센트 예수님을 의식했나
내가 아이에게 혼내면서 예수님 없이 막말을 하지 않았나 내가 다른 사람에게 나를 화내게 한 사람이 있다고 해서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데 함부로 말하면서 함부로 싸우고 그랬지 않았나 내가 죄 지으면서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신데 의식하지 않아서 죄 가운데에 빠지고
있지는 않았나 점검하는 거예요.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동행하는 훈련을 하는 거라는 겁니다.
세 번째 예수님을 바라보면 삶이 바뀝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내 눈앞에 계시다면 죄짓고 혈기부리고 걱정하고 염려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여기 옆에 있는데 어린아이가 아빠가 손잡고 있어요.
그런데 아빠 무서워 이럴 수 있어요
아빠가 있잖아 걱정하지 마 배고파 막 걱정해요.
아빠가 있어. 여러분 아빠가 함께 있으면 어린아이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예수님을 의식하면은요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니깐요.
주님을 바라보는 삶을 통해서 예수님의 임재가 실제가 되면 우리 안에 있는 죄가 끊어지게 됩니다.
자신도 다스리기 어려웠던 혈기와 분노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습관처럼 따라다니던 걱정과 염려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어려운 상황과 여건이 달라지지 않아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누리는 복입니다.
이 복을 누리고 계십니까? 환경과 상황에 휘둘리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네 번째 보면은 염려가 맡겨질 때까지 예수님을 바라봐야 됩니다.
예수님 나도 한두 번 바라봤는데 기도해봤는데 마음에 평안이 없는데요 맡겨질 때까지 바라보라는 거예요.
24시간 365일 많은 성도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염려를 붙잡고 살아갑니다.
실제로 그래요.
예수님 붙잡고 살아가지 않고 믿음으로 믿음을 붙잡고 살아가지 않고 염려를 붙잡고 살아가요.
염려가 왜 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래요.
염려한다는 사실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염려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염려는 첫 번째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려버립니다.
염려해 보세요. 믿음이 사라진다니깐요 믿음과 염려는 동시에 있을 수 없어요.
마태복음 6장 27절에 보면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 할 수 있겠느냐 마음에 생활의 염려가 가득한 사람은 아무리 의뢰놓은 말씀을 들어도 소용없어요.
말씀으로도 그들어도 그것이 삶에 열매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신앙생활 10년 20년을 해도 성숙하지 못해요.
염려가 우리 안에 말씀이 뿌리를 내리고 잘하는 것을 가로막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염려가 있는 한 믿음이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우리 안의 믿음의 대적은 염려입니다.
두려움입니다. 근심입니다. 걱정입니다.
염려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사탄의 전략입니다.
대부분 여기에 넘어가요. 믿는다고 하면서 염려를 동시에 품어요.
그럼 믿음이 역사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많은데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한 사람은 적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생활의 염려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을 바꿔주시면 그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게요 아니요 우리의 환경이 어려워도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오히려 염려 때문에 내가 오히려 염려가 있으면 아무리 천국과 같은 삶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누리지 못해요.
그게 사단에게 우리가 늘 속고 살아가는 문제입니다.
2번은요 그래서 염려를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염려를 그렇게 맡겨서 해결해야 돼요.
염려가 어떻게 해야 돼요? 맡기세요 주님께 많은 사람이 염려를 내려놓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노력한다고 염려가 사라지지 노력한다고 염려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해서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아예 처음부터 염려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5장 7절에 보면은요 함께 읽습니다.
시작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맡기래요.
빌립보서 4장 6절과 7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의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도하라는 거예요.
주님께 토스하는 거예요. 이렇게 염려가 있습니까? 주님께 이렇게 넘겨드리세요.
어떻게 기도로 넘기시는 거예요?
여러분 염려거리는 기도 제목입니다. 염려거리는 기도 제목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품고 있는 거는요 절대 해결 안 됩니다.
더 큰 염려가 됩니다. 염려를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함께 공존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 맡기고 내 안에 성령님이 임하시면 어둠이 사라지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믿음은 그냥 생기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 생깁니다. 맡기는 건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넘겨드리는 겁니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마다 우리의 믿음이 더 커지게 될 것이고, 그분의 음성을 들을 때마다, 친밀하게 교제할 때마다 우리의 믿음은 더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염려가 줄어들고 믿음이 더 성장해서 결국 우리가 정말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누리며 하나님의 그 나라를 선포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24시간 주님 의식하시는 거예요.
그게 핵심이에요.
그게 믿음이 성장하는 비결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요 우리가 함께 주님과 죽고 함께 살아났어요.
이게 침례를 통해서 우리가 처음부터 그렇게 믿음의 고백을 했던 거거든요.
함께 살아가는 거예요. 이제 나 혼자 살지 마세요.
계속 주님을 의식하는 거예요. 그리고 물으세요.
그리고 동행하세요.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럴 때 여러분의 믿음이 날마다 성장해 가는 것을 경험하게 될 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