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16 바이블 스터디 레위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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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거룩 - 정결 - 부정
제사의 종류 -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제사의 방법 - 화제, 요제, 거제, 전제
레위기 1-7장에는 5가지 제사에 대해서 나온다. 그런데 잘 보면 두부분으로 나눠진다.
1:1-6:7 , 6:8-7 5가지 제사가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순서만 달라지고 나머지는 같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같은 내용을 두번 기록한 것인가? (나눠드린 유인물에 제사법에 추가 보완적인 내용를 기록했다고 하는데 그것 지우시길 바란다. 수정한다고 했는데 수정이 안되어 있다.)
그건 본문을 보면 알 수 있다.
레위기 1:1-2
1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그러니깐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한 것이다.
레위기 6:8–9 (NKRV)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라 번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번제물은 아침까지 제단 위에 있는 석쇠 위에 두고 제단의 불이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 할 것이라
이것은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인가? 아론과 그의 자손이다. 다시말해 제사장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앞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했을 때 제사를 지내는 방법이고, 뒤에는 제사장이 죄를 범했을 때 제사를 지내는 방법을 말씀하신 것이다. 제사장이지만 부정해진 사람의 신분으로 또 다른 제사장 앞에 제사를 지내는 장면이다.
8장은 최초의 제사장 위임식이 나온다. 레위기 8장 이전까지는 제사장이 없었다. 이 세상에 처음으로 제사장이 세워지는 장면이다. 그러나 전에 이야기 한 것과 같이 그 순서와 절차는 레위기에 없고 출애굽기 29장에 언급 되어 있다.
참고로 알면 좋을 것이 관유라고 아는가? 관유는 기름을 부어 임명하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기름을 부어 임명하는 것, 기름부음을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인가? 혹시 아는가?왕, 제사장, 선지자 이다. 이 세직분을 기름부어 임명한다. 그래서 기를부음을 받은자 이것이 메시야의 원래 뜻이다. 따라서 메시야란 왕, 선지자, 제사장 이 세직분이 하나로 합쳐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 직분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9장은 최초의 제사이다. 위임받아 처음으로 제사를 인도하는 것이다. 처음으로 제사장으로 위임받아 처음으로 제사를 인도하는 감격스러운 장면이다.
1-6:7, 6:8-7장 두 종류의 제사법이 있는데 차이점이 있는데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이것이다.
6장을 한번 보겠다.
제사장들에게 요구되는 하나는 제단위의 불을 꺼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레위기 9:22–24 (NKRV)
22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함으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마치고 내려오니라
23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24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
아론이 첫 제사의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나서 백성들에게 축복하고 나서 하나님으로부터 불이 나와 제단위에 있는 재물을 다 태웠다. 그래서 이후부터는 재단의 불은 사람들이 만든 불이 아닌 하나님이 직접 주신 불이 있는 것이다. 내가 너에게 불을 줬으니 항상 그불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사람이 불을 만들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불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불을 꺼지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성막은 어떻게 생겼는가?
성막은 이스라엘 진 정 가운데 존재했다. 성막과 지성소와 성소만이 탠트인 것이다. 물두멍과 재단은 야외에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 불을 밤새 지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10장에 아론의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의 불이 아닌 다른 불을 사용하게 되어 죽게 된다. 그렇다면 왜 다른 불을 가져온 것인가? 그들이 생각 했을 때 합리적인 방법이었을지 모른다. 굳이? 꼭? 이렇게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그들에게 있었을 것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도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 보아야 한다. 성경에 많은 규례들이 있다. 그것을 지키기위해 발버둥치고 있는가? 를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하라 하지 말라는 규례를 내가 왜 지키지 못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우리 신앙생활에서 우리는 스스로 왜?를 수없이 물어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하나님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그 어느 것도 중요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는 말이 너무 많다. 분명한 것은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교회는 합리적인 곳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되는 곳이다. 우리는 너무 많이 이유를 묻는다. 어느 순간부터 이해 되야 행동한다. 그것은 잘 못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그어느것에도 권위를 주지 말아라.
사무엘상 2:30 (NKRV)
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나답은 아론의 장자이다. 그 말은 앞으로 아론을 대신해 대제사장 직을 이어갈 사람이 바로 나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죽이신다. 왜 그런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하나님의 명령보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레위기 10장에서 중요한 구절이 있는데 이 구절이 11-27장 전체를 구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은 한다.
레위기 10:8–11 (NKRV)
8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너와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영한 규례라
10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11 또 나 여호와가 모세를 통하여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
9절에서 회막에 들어갈 때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직후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기에 많은 학자들이 이것을 근거로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의 불이 아닌 다른 불을 사용한 것이 술취해서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이것이 정확하다고는 말 할 수 없다.
10-11절에 하나님이 제사장에게 임무를 주시는 것이다. 대제사장과 제사장에게 주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임무 첫번째는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거룩하고 속된 것, 부정하고 정결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사장의 첫번째 역할은 이것은 되고 이것은 안된다는 것을 구별해주는 것이다.
두번째는 모세를 통해 준 율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래서 제사장인 레위인들이 해야 할 것은 첫째 분별하는 것. 둘째 가르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두 구절을 근거해서 11-27장을 구분한다.
11-27장은 두 파트로 나누어진다.
11-16장 - 10장에 근거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별 할 것들을 기록했다. 다시말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정한 것이 무엇이고 부정한 것이 무엇인지 구별하는 기준이 나오는 것이다. 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래서 당시에는 이런 것들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들에게 왔어야 한다. 와서 물어야 한다. 무엇이 맞는지
17-27장 - 모세를 통해 알려주신 규례를 가르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 입장에서는 배워야 하는 것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레위기는 1-27장으로 구별되어 있다. 레위기를 두 파트로 나누라고 한다면
1-10장 - 어떻게 제사를 드릴 것인가?
11-27장 -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러기에 레위기의 구조를 보면 어떻게 제사를 드리고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로 나누어 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삶과 제사, 예배는 분리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모든 삶은 예배가 밑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고, 나의 모든 예배는 나의 일상의 삶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삶이 뒷받침 되지 않는 사역, 삶이 뒷받침 되지 않은 예배는 심하게 말하면 죽은 예배 이다. 다시말해 예배와 일상의 삶이 분리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것은 레위기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말하고 있다. 성경은 기도만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에베소서가 가장 대표적이다. 1-3장까지 하나님의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분의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4장 1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 고 말한다.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르게 아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자리에 있는 것이다. 바르게 살기 위해서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서 그래서 구약을 배우던 신약을 배우던 우리가 이 시간이 지난 후에 똑같은 리액션이 나와야 한다. 그래 앞으로 내가 이렇게 살아야지… 어느 성경이 좋았다 누가 좋았다가 아니라 그런 것들은 다 잊고 그래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지!! 라는 것이 남아야 하는 것이다.
에베소서가 대표적인데 1-3장까지는 하나님에 대해 넘치게 알려준다. 그리고나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적용해야 하는 곳을 이야기 하는데 그곳이 어디인지 아는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내 은사와 성령충만이 어디에 적용되어야 하는가? 에 대해 바울은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부모는 자녀에게 다시말해 가정에서 먼저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목사님은 가정이 먼저라고 이야기 한다. 가정이 무너졌으면 사역을 내려놓으라고 말한다.
나의 성령충만함이 적용되어야 하는 곳은 다른 곳도 아닌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녀, 내부모이다.
11-16장 구별된 백성 즉 거룩함은 구별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탁월한 것이 아니다. 성경에 성공이라는 단어는 나오진 않는다. 하지만 거룩하라고 신실하라고 수없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어느 목사님은 부름받지 않은 것에 애쓰지 말고, 부름 받은 것들을 위해 애쓰라고 한다. 이것은 실패하라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단지 도구와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삶의 목적을 성공에 두지 말고 거룩에 두라는 것이다. 성공을 도구 삼아 내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또, 실패를 겪고 있다면 그 실패로 신실함을 이루면 되는 것이다.
19장에 거룩한 삶에 대해 나열하고 있다.
그 거룩한 삶의 첫번째도 무엇인지 아는가? 부모를 경외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이다. 성경을 볼 때 중요한 것은 반복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순서도 중요하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보다 부모를 경외 할 것을 먼저 이야기 하신다. 그 뒤에 이것 저것을 이야기 하시는데 그중에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은 9-10절이다.
레위기 19:9–10 (NKRV)
9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10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이것이 구별된 삶 중에 하나이다. 다시말해 거룩한 삶이라는 것이다. 포도원에서 열매가 떨어지면 얼마나 떨어지겠는가? 그러니깐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은 대단한 삶이 아니라 이런 삶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모퉁이를 좀 남겨줘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궁금한 것이 생긴다. 그렇다면 모퉁이는 얼마나 남겨야 되는가? 그것은 각자 알아서 하면 되는 것이다. 10cm 해도 되고 10m를 해도 된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삶에 이러한 모퉁이를 남겨 놔야 한다는 것이다.
나만을 위해 우리 가족만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주위를 돌아보는 삶을 사는 것이다.
-청년교회 선교 후원-
그래서 사도바울은 즐거워 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고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이렇게만 살면 된다.
그러기에 우리는 구별된 삶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11장은 정결예법 36가지의 짐승 이름이 나온다. 그런데 현재 보수주의 랍비 들은 이중 40%만 지금 명확히 발견되었다고 하고 진보주의 랍비들은 70% 발견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오늘날 어느 랍비들도 11장에 언급된 36가지 짐승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절대 진리 - 모든 상황 모든 사람 모든 장소에 적용되는 것 (시대가 달라진다고 과거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는 것, 사람이 달라진다고 달라지면 안되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예수는 그리스도이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을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절대 진리이다.)
상대 진리 - 특정한 상황, 사람, 시간, 장소에만 적용되는 것이다.
성경에는 절대진리와 상대진리가 섞여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레위기 17:3–4 (NKRV)
3 이스라엘 집의 모든 사람이 소나 어린 양이나 염소를 진영 안에서 잡든지 진영 밖에서 잡든지
4 먼저 회막 문으로 끌고 가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아니하는 자는 피 흘린 자로 여길 것이라 그가 피를 흘렸은즉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개별 도축은 가능하지 않다. 반드시 짐승은 성막으로 가져가서 제사에 사용되는 용도로만 허락이 되었다.
신명기 12:15 (NKRV)
15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복을 따라 각 성에서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축을 잡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나니 곧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막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는 것 같이 먹으려니와
개별 도축이 가능한가 아닌가? 같은 모세 5경인데 레위기에서는 금지가 되고 신명기에서는 허락이 된다.
그렇다면 개별도축은 절대진리 인가? 상대 진리 인가? 상대 진리 이다.
레위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이고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 왔을 때이다. 그러니깐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성경은 절대진리도 있지만 상황과 환경이 변하여서 바뀌는 상대진리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구분 할 수 있어야 한다.
11장에 나오는 짐승들 중에 가나안 땅에 들어갔는데 없는 짐승이 있었다. 그러기에 11장에 법은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절대진리가 아니라 상대진리 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그안에서도 절대진리가 있는데 바로 구별된 삶이다.
12장은 아이를 낳는것, 13-14장은 나병에 대해서 나온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나병은 히브리어로 짜라트 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짜라트 라는 원어의 뜻은 ‘내려 치다' 이다. 그래서 이것을 하나님의 벌, 저주 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짜라트 라는 단어의 적절한 번역은 나병보다는 ‘전염성이 있는 악성 피부병'으로 보면 좋다. 그래서 나병의 종류는 21 개이다. 그런데 오늘날 랍비들은 60개 70개로 확대 해석한다. 그러기에 이것도 절대진리가 아니라 상대진리 인 것이다.
피를 먹지 말라는 말은 가나안 종교 의식과 연관이 되어 있다. 가나안에는 판신이라고 불리는 염소의 형상을 한 신이다. 그런데 당시 가나안 종교의식이 대부분 그랬지만 성관계와 연결이 되어 있다. 그래서 헌금을 많이 하거나 하면 신과 직접 접촉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데 그 과정중에 염소의 목을 칼로 그어 피를 마신다. 그래서 피를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학자에 따라 해석이 다르긴 하다. 위생적으로 보는 관점도 있다.
레위기 핵심은 16장 이다. (대속죄일)
일년에 단 하루이다. 이 날은 가장 거룩한 날이다. 7월 10일이다. 이 날은 지난해 지었던 죄를 용서 받는 날이다. 그리고 대속죄일은 매년마다 지키는 날이다.
7번째 달은 우리가 생각하는 7월이 아니다. 이것은 양력이 아니라 종교력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할 때가 3-4월 정도 되었는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출애굽 한 날을 아빕월 다시말해 1월로 하라고 하신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살면서 달력이 두개가 되었다 양력과 종교력이다. 그런데 가나안땅에 들어갔는데 거기에는 음력을 사용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달력이 3개가 된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7번째 달은 양력으로 9-10월이 된다.
7월 1일 나팔절 이다. 이 날이 이스라엘의 한 해가 시작되는 날이다. 이스라엘은 7번째달 1일에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10일이 대속죄일 이다. 그러니깐 새해에 대속죄일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초막절 15-21일(7일절기) + 1일 8일절기가 된다.
대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유일하게 지성소에 들어가는 날이다. 한루 들어가는데 3번 들어갔다 나온다.
로마서 4:25 (NKRV)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15:17 (NKRV)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우리의 구원은 십자가에서 시작되어 구원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부활절이 소중한 것이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주일에 예배 드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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