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어도

다윗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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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것이 사라지다 2. "의지하는 자들"을 위한 경고 3. "의지하는 자들"을 위한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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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사라지다

지난 주 “내 한계를 넘어"를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셨던 은혜들로 행복했던 지난 주였기를 소망해요.
여러분을 생각하면서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 ‘공동체’에 대한 마음을 주셨어요.
어떤 상황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오직 예수님만 붙잡고 살아가는, 그래서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공동체에 대한 마음을 갖게 하셨어요.
오늘 설교는 앞으로 이어줄 3주 동안 나누게 될 “아둘람 공동체" “내가 원하는 공동체가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동체" “함께 지어져가는 공동체"를 준비하는 에필로그와 같아요.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 앞으로 올 한해 여러분은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왔는지를 생각해보고, 앞으로 어떤 공동체를 여러분들이 만들어 가야 하는지를 깊이 고찰해보는 한달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요.
(쉬고) 여러분은 다윗을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나요?
아마 여기엔 다윗을 닮고 싶다라고 생각해서 영어 이름을 David라고 지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어렸을 때 다윗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해!라는 이야기들도 여러번 들었을 것이라 생각해요.
다윗은 정말 멋진 믿음의 사람이죠.
비록 여러 실수들을 하기는 했지만, 그것들을 덮어버릴만큼 강력한 서사가 다윗에게 있어요.
골리앗과의 싸움, 이스라엘의 이대 왕, 다양한 전투에서의 승리,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는 사람 등. 그가 담고 있는 이야기들이 너무나 강력해서 우리는 그의 결과들에만 주목할 때가 있어요.
어쩌면 그래서 다윗의 이미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붙들고 믿어낸 멋진 사람. 내가 본받아야 할 사람이 되었을 수 있어요.
(쉬고) 다윗이 처음 성경에 등장했을 때 정말 강렬했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나오니까요. 이런 수식어가 붙었기 때문에, 그의 인생은 정말 행복했을 것만 같았다라는 인식을 줄 수 있어요.
하지만 다윗의 인생은 어렸을 때부터 우울했어요.
오히려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고민과 불안이 가득할 수밖에 없는 삶”“혼자서 살아내야” 했어요.
(쉬고)
작년 여름수련회 때 나누었던 것처럼 다윗은 가정에서 거의 내놓았던, 투명인간 취급을 받던 사람이었어요.
양을 치는 이 소년의 집에 정말 중요한 손님이 찾아왔죠.
그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온 집안의 사람들이 싹 모였는데, 이 소년은 부름받지 못했어요.
단순히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양을 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에요.
양을 칠 하인이 없어서 양을 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에요.
그 아버지가 그를 “막내”라고 불러요. 사실 우리에게 막내는 굉장히 좋은 의미이지만, 여기에서 사용된 ’막내’라는 단어 “하카톤"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요.
(쉬고)
‘막내가 양을 치고 있습니다.’를 직역하면
“하찮은 녀석 하나가 있는데요. 양을 치고 있어요. 굉장히 하찮고 쓸모 없는 녀석이라 이 자리에 와도 아무런 의미가 없을거에요.”라는 뜻이에요.
모든 아들들을 불러 오라는 사무엘의 명령에도 초대조차 받지 못했던 양치기. 막내 아들이었어요.
아버지만 막내를 무시하고 하찮게 여긴 것이 아니에요.
아버지가 막내를 없는 사람 취급하면서 무시하니까 모든 가족들도 그를 막대해요. 모두가 다윗을 싫어했어요.
(쉬고) 다윗은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는 들판에 혼자 앉아 양들을 치며 대부분의 유년시간을 보내야 했어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누구도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어요.
오로지 혼자의 시간을 보냈을 뿐이에요.
(쉬고) 정말 절망스러워 보이는 그 때에, 다윗이 놓지 않았던 것이 하나 있었어요.
바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붙들고 그 분에게 소망을 두는 것. 그 것을 놓지 않았어요.
지금 내 삶은 어렵고 이해할 수 없지만, 헛된 시간이 아닐 것이다.라는 믿음이 그에게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나를 이대로 두지 않으실 것이란 기대감이 그에게 있었어요.
양을 공격하러 오는 수많은 맹수들 앞에 목숨을 걸고 싸우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되었거든요.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정말 광야에서 누구보다 강력하게 경험했거든요.
그래서 그는 “현실에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소망”을 둘 수 있었던 것이에요.
(쉬고) 사무엘이 찾아와서 그에게 기름을 붓죠. 제가 다윗이었으면 전 울었을 것 같아요.
가족조차 찾지 않고 버렸는데, 자신을 기억하는 이가 없다 생각했는데,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제사장 사무엘이 그를 찾아왔어요. 그리고 그에게 “하나님이 너를 택하셨다.”라고 하며 기름을 부어요.
자신의 모든 아픔과 슬픔들을 다 보상받는 느낌이지 않았을까요?
현실은 최악이고 시궁창이지만,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더니 기억하시는구나.
가족들이 악하게 대해도, 나는 선으로 대하고 있었는데 알고 계셨구나.
선을 행하면서 낙심치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구나!
(쉬고) 그 이후 다윗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되죠.
골리앗과의 전투도 있었고 사울 왕의 사위가 되기도 하는 등 삶이 완전히 달라져요.
하나님이 그를 택하셨어요. 그는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더 신뢰하려고 노력해요.
그럼 앞으로 다윗의 인생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무조건 잘되어야죠. 하나님과 다윗 서로의 마음이 딱 찜콩했는데, 이제 행복한 일만 가득해야죠.
실제로 다윗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대해 최선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기 시작해요.
기름부음을 받았기 때문에 열심히 산 것이 아니에요.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더니" “진짜 삶에 소망이 생기게 된 것을 경험”했잖아요.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소망의 의미가 너무 커서 감사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그는 정말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기 시작해요.
(쉬고) 그런 다윗의 삶을 하나님께서 잡고 흔들기 시작해요.
혼자 들판에 있던 다윗이 세상으로 나왔어요.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붙들어요. 더 좋아진 것 같아 보이죠. 그런데 달라진 것이 또 있어요.
바로 혼자 였던 다윗 곁에 수많은 사람들이 생겼다는거에요.
혼자였을 땐 하나님만 오롯이 볼 수 있었는데, 주위에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다윗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의지하게 될 가능성들이 굉장히 높아”진거에요.
하나님은 다윗이 의지하고 있는 혹은 의지하게 될 것들을 다 제거하기로 마음 먹으셨어요.
(쉬고) 실제로 다윗은 모든 것들을 다 잃어버리게 되어요.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살았는데, 그는 도망자가 되어요.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죠.
순전히 질투에서 시작된 살인 충동이에요.
나가는 전쟁마다 승리를 경험해요. “사울은 천천이고, 다윗은 만만이다"라는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하면서 사울의 시기 질투가 시작되어요.
더 이상 사울의 군대에서 섬기지 못하게 되어요.
사울은 다윗에게 자신의 딸을 주면서 블레셋 사람 백명을 죽이라고 해요.
결혼지참금으로 100명의 목을 따오라고 한거에요. 다윗이 그 곳에서 죽기를 바랬어요.
백명을 죽이고 돌아오자, 사울은 다윗을 다른 방법으로 죽이려고 해요.
결국 아내가 다윗에게 아버지의 살해 계획을 알려주고 도망가게 만들어요. 아내와 헤어지게 되었어요.
도망을 치던 다윗이 사무엘을 만나 나욧으로 도망을 가요.
스타워즈를 봤는지 모르겠는데, 주인공이 살던 집을 보면 사막 한가운데 구멍이 막 뚫려있어요.
바위에 구멍이 뚫린 집들이 위 아래로 계속 이어지는 것을 스타워즈를 보면 볼 수 있는데, 나욧이 바로 그런 곳이었어요.
숨으면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이에요.
그런데 누가 사울에게 다윗이 있다고 제보를 해서, 사무엘과 떨어지게 되어요.
점점 평안함을 잃어가던 다윗이 요나단을 찾아가요. 그리고 물어요.
“왜 당신의 아버지는 나를 죽이려 하는가?”
가장 친한 친구에게 “왜 너희 아버지는 나를 죽이려고 하는거야!”라고 절규하는거에요.
요나단은 다윗을 살리려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요나단과도 헤어지게 되었어요.
(쉬고) 다윗에게 이제 아무 것도 남지 않았어요.
요나단과 헤어진 후 놉을 찾아가는데, 여기는 사울이 통치하는 동안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적 중심지였어요.
아히멜렉이 대제사장으로 있던 곳인데, 그는 더 이상 제사장이 없을 것이고, 모든 가문이 멸족할 것이다! 라고 했던 엘리 집안에 남은 제사장이었어요.
놉을 찾아간 이유는, 그 곳에서 “자신의 일에 대해 하나님께 여쭤보기 위해서"였어요.
(쉬고) 여기에서 우린 다윗의 이 모습을 기억해야 해요. 본받아야 해요.
모든 것을 잃고 도망자가 된 그 시점. 하나님을 위해 충성스럽게 살았는데 돌아온 것이 망함이라는 이 절망 앞에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하나님께 욕을 하면서 침을 뱉었을거에요.
하나님을 저주하고 원망하고 떠나도 말릴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그는 . 지금. 하나님을 찾아가고 있어요.
삶이 아무리 피폐하고 평안이 없어도, 그에게 우선순위는 하나님이었던거에요.
세상의 어려움이 그의 우선순위를 바꾸지 못한거에요.
(쉬고) 대제사장이 사울이 얼마나 다윗을 싫어하는지 알기에 무서워 하면서 “왜 혼자 왔냐” 물어요.
다윗은 “왕이 시킨 일을 하고 있다.”라고 말을 해요.
사울이 시켰다. 가 아니라 “왕. 나의 하나님이 시킨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거에요.
이 상황에서조차 그는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고백하고 있어요.
(쉬고) 여러분의 우선순위 최상단에는 무엇이 있나요?
여러분은 상황과 환경 앞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었나요?
우린 다윗의 이 모습을 기억하고 반드시 본받아야 해요.
(충분히 쉬고) 저도 여러분도 하나님을 영원한 왕이라 고백했다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 받았음을 믿는다면 우리의 우선순위는 최상단에 늘 하나님이 존재해야 해요.
상황에 따라 밀려난다면 그 것은 그 분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쉬고) 아히멜렉은 좀 이상했지만, 그래도 다윗은 여전히 사울 왕의 사위였기 때문에 그에게 필요한 것들을 내어주어요.
거룩한 떡인 진설병 몇개다윗이 골리앗을 죽여 얻은 칼을 전달해요.
진설병과 골리앗의 칼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거에요.
다윗은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이기게 되었죠.
그가 잘해서 이긴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고, 그분이 주시는 힘과 능력과 보호하심이 있었기에 승리할 수 있었던 거잖아요.
대제사장에게 무기를 받았다는 것은, 다윗이 무기를 챙길 시간적 여유도 없이 도망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거잖아요?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들고 길을 나서면서, 하나님께서 그 때처럼 나를 지켜주시겠구나! 라는 은혜를 받아요.
거룩한 떡 진설병은 성막 안에 들어가는 것인데, 일주일에 한번씩 새것으로 교체를 해요. 일주일이 지난 오래된 빵은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었어요.
성막과 진설병은 출애굽 시대 때 생긴건데,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었던 광야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거룩한 떡을 만들었어요.
지금 당장 나에게 먹을 것이 없다해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믿습니다.
나를 거두시고 먹이시는 분이 하나님 되십니다. 라고 고백을 하는 것이죠.
이 것들이 항상 하나님 앞에 있었던 것처럼, 진설병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 라는 믿음의 고백이 이스라엘에게 있었어요.
다윗은 진설병을 들고 길을 나서면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그 임재가 나에게 있구나!는 위로를 받아요.
그런데 다윗이 받은 은혜와 위로와 무관하게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요.
아히멜렉 대제사장이 있던 그 곳 도엑이라는 에돔 사람이 있었던 거에요.
도엑은 다윗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예전에 다윗이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전쟁포로로 끌려왔거든요.
다윗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그가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사울에게 다윗의 소재를 바로 고발해요.
그 결과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아히멜렉과 그 곳에 있던 제사장들 85명이 몰살을 당하게 되어요.
(쉬고) 이제 다윗이 갈 곳이 없어요. 이스라엘 어디에도 안전한 곳이 없어요. 그래서 그는 적국이었던 나라 블레셋을 찾아가요.
놉에서 남서쪽으로 35km 정도 떨어진 블레셋 가드를 찾아가요. 아기스왕에게 자신의 망명을 받아달라 요청는거죠.
다윗은 블레셋의 자랑거리였던 골리앗을 죽인 사람이에요.
그리고 수많은 전투에서 블레셋이 이겨보지 못했던 사람이에요.
그가 갑자기 망명하겠다고 나타났는데, 더 충격적인 것은 그들의 자존심인 골리앗의 칼을 딱 들고 왔어요.
엄청나게 시끄러워지기 시작해요.
블레셋에게는 이스라엘 왕 사울보다 다윗이 더 크고 무섭고 두려운 존재였거든요. 그가 골리앗의 칼을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망명을 한다?
이 것은 우리를 죽이기 위한 계략이다.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라는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해요.
그러면서 블레셋 사람들이 “그 땅의 왕 다윗이다!”라고 말해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다음 왕 다윗을 죽이려 하는데,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먼저 다윗이 왕이라고 인정하고 있어요.
다윗은 굉장히 눈치가 빠른 사람이죠.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을 바로 눈치채요.
그래서 그는 바로 침을 질질 흘리면서 미친 사람의 흉내를 내기 시작해요.
그런데 이게 얼마나 리얼했던지, 가드 왕 아기스가 보자마자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해서 또 데려왔냐?”라고 하면서 암묵적으로 다윗이 그 땅에서 살 수 있도록 해주어요.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해서 또 데려왔냐?”라는 뜻은 나에게 데려오지 말고 니들이 알아서 해라.라는 거에요.
(쉬고) 여러분 왜 다윗이 미친 사람의 연기를 했을까요?
그 당시에 미친 사람을 해치지 않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다윗은 살아남기 위해서, 하나님을 모르고 저주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목숨을 의탁하면서, 미친 척까지 하고 있다는 거에요.
(쉬고) 여러분이 이 지경까지 몰린 다윗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 것 같으세요?
다윗이 잘못한게 뭐가 있어요.
집에서 무시 당했어도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고, 그분에게 소망을 두었어요.
하나님이 그를 광야 변방에서 무대 중심으로 옮기셨고, 다윗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열심히 살았어요.
그런데 지금 그의 곁에는 의지하던 모든 사람들이 다 떠나갔어요.
그를 만나는 사람마다 몰살 당해요. 어디든 갈 곳이 없어요.
적국의 땅에 와서 이젠 미친척까지 하면서 목숨을 구걸했어요.
일반적이라면 이럴 때 어떤 반응이 나오겠어요?
(충분히 쉬고) 현타가 아주 씨게 오겠죠. 허탈하지 않겠어요?
하나님께 한바탕 쏟아내야죠.
“내가 하나님께 소망을 둔 결과가 이것입니까?”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 것 맞습니까?”
“도대체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당신을 믿은 댓가가 이런 것이라면 난 당신을 믿지 않겠습니다.”
“사울에게 가서 무릎 꿇고 용서해달라고 빌겁니다. 더 이상 당신에게 소망을 두지 않겠습니다!”
(쉬고) 일반적인 반응 아니겠어요?
(쉬고) 그런데 저는 다윗 때문에 더 현타가 와요. 진짜 오지게 현타가 와요.
이 지경까지 왔으면 한번쯤 소리 지르고, 하나님께 따지고 대들면 좋겠는데, 다윗의 반응은 완전 달라요.
여기까지 삶이 몰렸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놓지 않아요.
불과 얼마전까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그들의 위에서 군림하며 내려다 보던 사람인데, 이제는 구원받지 못한 백성들 앞에 가서 미친척하면서 침 줄줄 흘렸잖아요.
그런데도 하나님을 놓지 않아요.
진짜 다윗에 대해 묵상할수록 현타가 너무 심하게 와요.
그만큼 이 사람은 찐인거죠.
(쉬고 쉬고) 여러분은 누구를,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면서 23년을 지내왔나요?
우리는 본능적으로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을 붙잡아요.
하루에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쏟고 보고 있는 것이 내 선택과 삶의 방향에 큰 영향을 주어요.
이 것은 절대 부정할 수 없어요.
그렇기에 23년을 마무리하면서 내년을 준비하고 있는 이 때에 우리는 반드시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더져야 해요.
다윗은 벼랑 끝까지 몰리면서도, 이제 떨어져 죽기 직전임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붙들었어요.
지금 여러분 스스로에게 질문하세요. 그리고 받아 적을 수 있다면 적어보세요.
(쉬고) 올 한해 나에게, 당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올 한해, 나에게, 당신의 삶에 나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올 한해 나에게, 당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올 한해, 나에게, 당신의 삶에 나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의지하는 자들"을 위한 경고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 불안함을 느끼거나 혹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유는 세가지 때문이에요.
첫째, 내가 의지하는 무엇인가로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세요. 우리 지난 두달 동안 살펴본 야곱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죠?
야곱이 헛발질하고, 멋대로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돌베개를 베고 잘 때 하셨던 말씀 “임마누엘 -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라는 말씀을 신실하게 지켜내셨잖아요.
동일해요.
저와 여러분에게도 “내가 너를 붙들겠다.” “나만이 너의 유일한 해답이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고 매일 우리에게 속삭이고 계셔요.
하지만 저와 여러분이 그 것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거에요.
그래서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그 무엇인가로,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려고 매일 시도하게 되는거에요.
내가 다른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를 의지하게 된다면, 미안하지만 여러분은 절대 하나님을 의지할 수 없어요.
머리로는, 말로는 의지한다 하겠지만, “진짜 믿고 의지하는 삶”의 실체를 절대 알 수 없어요.
둘째, 내가 의지하는 것들은, 나의 시야를 인간적인 것에 고정하게 한다.
요즘의 삶 속에서 여러분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것은 무엇이었나요?
생각하면 웃음이 나거나 평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올 한해 경험했던 어떤 좋은 일에 대한 추억이 될 수도 있을거에요.
우리가 세상의 것. 나의 것에 마음을 두기 시작하면, 절대 하나님을 볼 수 없어요.
인간적인 버팀목들은 믿음의 삶을 완전히 마비시켜 버리거든요.
다윗은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고 그 분에게만 소망을 둔 삶을 살았던 사람이에요.
하지만 그의 곁에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그를 따르고 믿는 무리가 생기면서,
또 다윗이 신뢰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면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이 틈탈 틈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쉬고) 도망자였던 다윗이 도움을 요청하려고 사무엘을 찾았고, 요나단을 찾았잖아요.
믿음 좋은 다윗이었지만, 그의 시야 역시 인간적인 것에 고정된 순간들이 있었어요.
상황과 삶을 대하는 여러분의 시선은 하늘에 있었나요. 아니면 땅. 인간적인 것에 고정되어 있었나요.
(충분히 쉬고)
셋째, 내가 의지하는 것들은 일시적으로 고통을 잊게 만들 뿐이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게 되면, 우리는 더 자극적인 매운 맛을 갈망하게 되어요.
이 상황을 잊어야 하니까,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하던지 넘어가야 하니까 그 것을 잊을 수 있는 강렬한 것을 찾게 된다는거에요.
저는 제가 왜 그렇게 웹툰을 많이 보나 생각을 해봤거든요?
처음엔 청소년 사역을 할 때, 청소년 애들과 소통하기 위해 웹툰을 읽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냥 웹툰 그 자체에 빠지게 되더라구요.
왜냐하면, 웹툰을 읽을 때는 아무 생각을 안해도 되거든요. 100여개를 보는 그 때만큼은 아무 것도 나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없어요.
제가 답장이 늦는 경우가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웹툰 볼 때, 하나는 여러분을 만나고 있을 때에요.
제가 답이 늦으면 웹툰 보냐고 물어봐도 돼요.
웹툰을 보다보면, 때론 쿠키를 좀 더 구어서 뒷 내용을 볼까?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고민하다가 쿠키를 구워요. 그리고 미리보기 3주치를 땡겨서 봐요.
그리고 나면 너무 허무해요. 3주치를 미리 봤기 때문에, 그 다음 내용을 보려면 3주를 기다리던지 아니면 또 쿠키를 구워야 해요.
이제 무한굴레에 빠지게 되는거에요.
일시적으론 궁금증이 해결이 되었어요. 그런데 그 뒷내용이 또 궁금해져요.
일시적으론 고통을 잊었는데, 그 뒤에 돈을 계속 써야 한다는 고통 뒷 이야기가 궁금하다는 고통 그리고 돈이 아까워서 쿠키로 미리본 웹툰을 또 보려고 하는데, 본건데, 이미 구매한건데 또 쿠키 구으라고 할 때 현타가 겁나 심하게 와요.
(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시적은 약을 주지 않으시죠. 영원히 해결되는 약을 주셨어요.
사마리아 여인에게 찾아가셔서 “마르지 않은 샘물"을 주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구원의 은혜를 주셨어요.
(쉬고) 우리가 불안함을 느끼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바로 나도 모르게 의지하고 있던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것들은 내가 기대하는 것을 충족시켜주지 못해요.
세상의 시야를 고정하고 내가 만들어낸, 하나님을 대체하는 모조품이기 때문이에요.

“의지하는 자들”을 위한 교훈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에요. 그렇기 때문에 바른 것 정말 중요한 것을 의지하고 붙잡아야 해요.
(쉬고) 여러분은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왔어요?
앞으로 무엇을 붙들고 살아가기 원하세요?
아니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23년을 달려왔어요?
(충분히 쉬고) 어느덧 11월 중순이에요. 23년을 마무리하면서 24년을 준비해야하는 시점이 왔어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세요.
(쉬고)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고 지금까지 열심을 냈을까?
나는 무엇을 의지했던 것일까?
(충분히 쉬고 그리고 웃으면서) 그리스도를 대신할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그리스도를 선택하면 내가 손해 볼 일도 많아지고, 양보하고 섬겨야 하는 순간들이 계속해서 찾아와요. 내가 바보 같아 보일 때도 있어요.
하지만 여러분 절대 아니에요.
예수님은 신인데, 하나님인데 인간이 되어 오셔서 정말 많은 손해를 보셨어요.
자신이 목숨보다 아끼는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결국 십자가에 달리셨어요.
바보 같아 보이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이죠.
하지만 그 죽음으로 인해, 하나님이 보신 손해로 인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어요.
(쉬고) 그리스도를 대신할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내가 겪고 있는 모든 일들은 미안하지만 그 때, 그 순간에만 힘든거에요.
예수님은 그 어려움을 자신과 함께 믿음으로 극복해 내기를 우리에게 요청하고 계셔요.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를 대체하는 것으로 만들지 마세요.
그리스도 외에 어떤 우상도 만들지 마세요.
그 우상이 여러분의 시야를 고정하고 마음을 낚아채도록 하지 마세요.
(쉬고) 다윗은 그 상황에도 하나님을 붙들었어요.
당시 이스라엘엔 사울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다윗이 사울을 공격한다고 하면 따라올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스스로 의지할 것들을 찾아 만들어 엮어낼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어떤 일이 닥쳐도, 그는 하나님께 둔 소망을 거두지 않았어요.
사랑하고 소중했던 사람들과 헤어졌고, 그들과 만날 수 없는 상황까지 내 몰리면서 침까지 흘리며 미친 척 해야 했지만 그는 세상이 아닌, 인간이 아닌 하나님에게 시선을 두었고 소망을 붙들었어요.
(쉬고) 앞으로 우리에게도 여러 일들이 생겨날거에요.
여기에는 내년에 다른 지역으로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올해 처럼 새로운 사람들이 와서 함께 하게 될거에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게 하는 선택의 순간들이 찾아올 것이고, 우리는 또 다양한 믿음의 도전 앞에 서 괴로워하게 될거에요.
그 때 여러분 이 찬양을 떠올리고, 묵상하면서 부르세요.
“나의 가는 길 주가 인도하시네"
“그는 보이지 않아도 날 위해 일 하시네"
“주 나의 인도자 항상 함께 하시네"
“사랑과 힘 베푸시며 인도하시네”
(쉬고) 도망치던 다윗이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며 이 고백을 했을 것이라 생각해요.
다윗의 믿음은 한순간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저와 여러분처럼 다양한 고난과 어려움, 만남과 헤어짐, 배신 등 다양한 일들을 차근차근 지나오면서 믿음이 단단해진거에요.
그 믿음 “우리도 가질 수 있고 이미 가졌어요.”
“나의 가는 길" 이 찬양이 이번 한주 여러분의 삶 가운데 평안함과 위로 그리고 살아낼 힘이 되어주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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