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감사
추수감사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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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6편 1-2절 / 영원한 감사
시편 116 (NKRV)
1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2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오늘 116편의 시인은 참 기도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고백이 들어가 있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이 이뤄지기 때문에 평생 기도하겠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을 읽고 묵상하는데 개인적으로 회개도 되고 제 안에서 마음이 새롭게 갱신됨을 경험했습니다.
위에 시편은 사실 아주 참 단순합니다. 단순하고 또 너무 단순해서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 내내 고심스러웠습니다. 설교 내용을 여러 묵상글을 적었다가도 또 지우고 여러번 반복하는데, 그 어려움이 오히려 이 시편이 너무 단순하니깐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이 1-2편에는 모든 기도의 핵심적인 원리가 다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기도하기를 참 어려워합니다. 상황이 어려운 가운데서는 더욱 막막함을 느낍니다. 보통 이런 기분을 느낄 때는 머리가 지끈지끈할 때이지요. 저 또한 때때로 이럴 때를 종종 만나기도 합니다. 최근에도 한번 머리가 띵 하더라구요. 사람이 생각이 너무 많으면 이런 현상이 생깁니다. 이럴 때는 그냥 저의 육신의 아버지께 전화를 드립니다. 그 날도 아버지한테 전화하면서, 살면서 처음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축복기도를 받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아버지시니깐 얘가 뭔가 또 고민스러운 것들이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셨겠죠. 한참 대화하고 그 가운데 제가 놓치고 있던 것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구나 깨달으니 머리가 맑아졌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님, 철저하게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겁니다. 내 생각 많지요. 내 계획 많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제게 들려주는 이야기들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머리가 복잡해지고, 때때로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을 만큼 답답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116편에서 말하듯 기도는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주파수를 맞추는 거지요. 사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겁니다. 너무 당연하기에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의 내용이지요. 그러나 이 당연한 것을 내 기도에 장착하고 있느냐, 내가 정말 실제로 그렇게 느끼며 기도하느냐는 다른 문제입니다.
기도는 그렇기에 먼저는,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며 기도해야합니다.
1, 기도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라!
1절에서 핵심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들으셨다’라는 겁니다. 단일한 한번이 아니고, 계속해서 들으시고, 지금도 들으시고, 앞으로도 들으실거라는 믿음이 여기에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에는 고난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환난이 오기도 합니다. 그럴 때에도 기도가 되겠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시인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듯이 자신의 경험을 들려줍니다.
<구체적으로 시인은 어떤 어려움을 겪었을까요?>
116편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사망의 위기가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3-4절에서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사망이 줄로 나를 마치 포로처럼 묶었다는 겁니다. 여기에 벗어나려 하지만, 저항할 수 없습니다. 그저 속수무책으로 끌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스올의 고통, 즉 죽음의 구덩이로부터 오는 사망의 고통이 내게 이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기도로 “내 영혼을 건지소서, 내 영혼을 건지소서!” 이렇게 절규하며 간구하는 겁니다.
6절과 11절을 살피면, 시인은 순진했던 것 같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모두가 자신을 속였다고 말합니다. 사망으로 끌려가는 상황이지만, 한편 더욱 절망스러운 것은 주변에 대한 배신감과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한탄이 동시에 있는 겁니다.
그러나 기도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건지시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으로 출발합니다. 여러분들이 고난과 괴로움 속에 있다면,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으신다는 믿음으로 나아가시길 축원합니다.
마태복음 21:22에서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이와 같이 이야기하십니다. 그러니 이 말씀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은 믿음으로 구하며 기도하는 것과 믿음이 결여된 기도는 그 역사함이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정말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신뢰하며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9:24에서는 간질에 걸린 아이의 아버지가 이렇게 소리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이 구절에서 우리는 진짜 믿음이 무엇인지 보게 됩니다.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측면에서 키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하실 수 있다라는 것이 믿음인데, 이는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사실 24절에서는 아버지가 믿음 없는 것을 도우소서라고 간구하는데, 이는 이것조차 도우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못하시는 것이 없음을 이미 믿음으로 보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대상을 주목하는 것이지요. 마치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뱀에 물려, 모세가 놋뱀을 장대에 달아 이를 쳐다본즉 살리라 말씀하신 것과 같이, 그 대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116편은 추가적으로 한 가지 더 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구를 들으신 이후에 믿음으로 기도한다면 또한 그에 상응하는 반응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12-14절과 같습니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이것은 신뢰의 기도를 드린 이후의 마땅한 반응입니다. 마땅한 반응은 감사입니다. 우리의 전인격을 울리는 감사입니다. 17-19과 같습니다. 감사제를 드리고, 모든 백성들 앞에서, 즉 성전의 뜰에서 구원하심이 여기 있다고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증언하는 것이죠. 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전하는 겁니다. 그 분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겁니다. 탁월하심을 전하는 겁니다.
신약에서는 요한복음 4장 29절에서 수치가 가득했던 남편을 여럿 두었던 사마리아 여인과도 같습니다. 구원자이신 우리 주님을 만나서 인생의 구원을 얻은 순간 마을로 뛰쳐들어가는 겁니다. 기다린 구원함에 대한 감격이 있는 겁니다. 정말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분이 오셔서 내 삶에 빛을 비춰주시고, 도와주심에 감격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혼자 이 구원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이 수치를 자극하고 더 크게 만들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면으로 돌파해 들어갑니다. 그리고 무엇을 증언합니까.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증언하는 겁니다.
이것이 믿음과 무슨 상관입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구한 것, 그것이 우연이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가 기도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들어주셨다는 겁니다. 기도했기 때문에 그 응답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아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은 놀라운 기쁨입니다. 우연이면 기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들으셨기에, 그 위대하신 존재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감격이 있는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했다면, 반대로 우리 삶에 감사가 얼마나 있는지 또한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신뢰와 감사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신뢰하며 기도했다면, 마땅한 감사가 또한 있는지 보아야 합니다. 이번 오는 주가 추수감사절입니다. 거의 한 해를 마쳐가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서 우리는 무엇을 감사하고 있습니까. 사실 이렇게 질문하는 저 또한 돌아보면, 그다지 감사를 많이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16편을 보면서 제 나름대로 충격을 받은 겁니다. 1-2절에서 마음에 깊은 여운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더 큰 충격이 12-14절에서 있었습니다. 나는 이 구원하심에 대해서 이토록 큰 감격이 있었는가. 깊은 반성과 회개가 있었습니다. 늘 하나님 앞에서 도와주세요. 하나님, 제발 도와주세요. 하나님 왜 이토록 제가 간절히 원하는 바가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까. 막막하고 너무 답답합니다. 이러한 심정만 토로했지. 진짜 기도한 세세한 내용들을 돌아보지 못했고, 그에 대한 합당한 감격과 감사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모든 것이 은혜인 겁니다. 여전히 상황이 조금 어려울 수 있지요. 그러나 기도한 것들 모두 들어주시고, 이뤄진 것들이 많습니다. 성은교회에서 오후 예배 때, 첫 설교를 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때도 하나님 여기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간구한 대로의 교회로 왔습니다. 이곳에서 “저를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가 더 유익되고 제가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미 그러한 첫 출발부터 하나님의 일하심을 맛보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긴 시간 동안 이야기할 수 있는 많은 도우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약 1년의 시간이 1년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굉장히 밀도 있는 시간처럼 느껴지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일하심의 다양한 측면들을 보았고, 거기에 대한 감사가 있습니다.
이처럼 감사를 헤아려보니 물밀듯이 감사함이 밀려오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 감사드리는 것이 조금 늦었지만, 헤아려보니 헤아릴 수 없는 감사함이 밀려오는 겁니다.
그래서 한동안 제 마음 속 고백이 하나님의 사랑은 태양의 빛과 같이 늘 나의 삶을 비추시고, 바다의 파도처럼 늘 내 마음에 밀려옵니다. 그와 같은 고백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시간 이후로,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도 이처럼 감사함을 한번 찾아보십시오. 분명 그 감사의 내용은 여러분들께서 기도하신 내용에 잇닿은 감사일겁니다.
두 번째로 시편 116편의 내용은 우리로 하여금 평생 기도를 사랑하게 만듭니다.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기도 안에 머물라는 겁니다.
2. 어떠한 상황이든 기도 안에 머물라.
2절에서는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발견하게 되면, “그건 내가 평생할거야.” 이렇게 말합니다. 가령, 밥 먹는 것 우리는 평생합니다. 숨쉬는 것 평생합니다. 사랑하는 삶 우리는 평생할 겁니다. 말씀 보는 삶 우리가 평생할 겁니다. 그와 같이 기도 또한 우리가 평생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평생이라는 것은 어떨 때는 기도할 맛이 나지 않을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도무지 입도 안 떨어지고, 기운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도 기도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은 명령이 아닙니다. 2절에서 고백하는 시인의 고백입니다. 체험적으로 안다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를 놓칠 수 없다는 겁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저 또한 요즘 복음의 풍성함을 깊이 맛보고 있습니다. 복음의 풍성함은 우리 주님께서는 불타는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너무나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분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여기에 성도의 성화의 비결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주님의 거룩하심과 우리를 향한 사랑하심이 우리로 하여금 성숙되어져 가는 성도가 되게 하신다는 겁니다.
가령 이런 것입니다. 요즘 저희 아이는 기저귀와 이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소변은 제법 잘 가립니다. 그런데 아직 배변은 조금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저희 부부의 숙제는 아이가 배변을 하기 직전에 말하게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계속 실패합니다. 이미 다하고 나서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 부부는 늘 잘했다. 하지만 다음에는 꼭 미리 말해줘. 긴긴 시간을 이렇게 함께 노력하는 겁니다. 아이 또한 저희가 때때로 미리 말하지 않았을 때, 속상함을 아니깐 보다 노력하는 겁니다. 여기서 핵심은 저희 부부가 아이가 실수했다고 해서 그 아이가 결코 미운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어차피 기저귀에 싸나 팬티에 싸나 똑같습니다. 싸고 싸도 너무나도 사랑하는 아이입니다. 다만 아이가 다음에 조금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예수님 또한 동일하십니다. 우리가 범죄하고, 수치가 가득하다고 하여서, 그 분을 멀리하고 있으면 그것은 주님께서 굉장히 고통스러워하실 부분입니다. 너무나도 속상하실 부분이라는 것이지요. 오히려 우리는 죄와 수치가 가득하지만, 주님께서는 즉각 내게 나아와라. 내가 너의 그 어려움을 즉각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어. 내가 그거 치워줄게. 이리와. 이렇게 다정하고 온유하신 목소리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2절에서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우리 사람과 같이 표현하는 겁니다. 이 의미를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존재가 우리에게 기울어져 있다는 겁니다. 우리에게 기울어져 있다는 것은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우리를 향해 자연스럽게 오신다는 겁니다. 늘 우리의 어떠함을 떠나서 사랑하여 주시고, 가까이 다가오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1장 28-30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사실 우리는 우리 중심성으로 살기 때문에 괴롭고 힘이 많이 듭니다. 그러나 죄라는 것은 곧 우리 중심성입니다. 죄의식과 수치심이 가득한 것은 그것도 죄라 할 수 있지만, 실상은 우리의 인식입니다. 오히려 더욱 무서운 것은 우리 중심성이 무서운 것이지요. 주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싸우셨듯이, 자기 중심성이 훨씬 더 무서운 죄인 겁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마약과 같이 우리의 중추신경을 마비시키고, 죄가 죄인줄 모르게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자기 중심성으로 스스로 살아가지만 너무 고되고, 너무 힘이 드는 겁니다.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 분 앞에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십시오. 죄된 마음들, 수치심들 다 내어놓으십시오. 또한 자기 중심성도 내려 놓으십시오. 여러분들의 계획과 생각도 일단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여러분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듣는 것에 집중하십시오. 기도는 이처럼 주님을 신뢰하며 계속적으로 머무는 겁니다. 365일 계속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는 겁니다.
그러할 때에 우리에게 구원이 임합니다!
그렇기에 기도는 구원의 통로이자 구원 자체를 맛보게 합니다. 영생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거듭나던 때를 기억할 수 있습니까? 어떤 분들은 그러한 경험을 선명하게 기억하실 겁니다. 그리고 그 경험 속에서 반드시 따라오는 것은 ‘내가 주님의 것입니다’라는 겁니다. ‘내 삶을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제 삶을 드립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청년들 중에서도 이러한 지체들을 만납니다. 그 고백을 들으면, 제 안에 오래 묵은 때가 날아가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신자로서 살아있는 느낌을 함께 받는 것이지요. 사실 우리의 신자된 삶에서 늘 고백되어야할 고백이 이러한 고백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험은 사실 기도를 통로로 경험되어집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의 기도를 통해서 그러한 영적인 은혜와 감격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 안에는 이러한 영적 DNA가 다 있는 겁니다. 그리고 작든 크든 모든 기도 안에는 사실 이러한 DNA가 살아서 움직입니다. 즉 우리가 드리는 모든 기도 속에 구원함을 경험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우리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마다 이러한 구원함을 경험하며,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주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십니다. 내 삶을 주님께 드립니다.’ 이러한 감격이 있는 겁니다. 그렇기에 기도의 자리에 신뢰함으로 머무십시오. 우리의 평생의 기도 속에 만나와 같은 구원의 감격이 함께하길 소원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도함을 통해서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가 깊이 기도할수록 바로 이것이 나타나야 합니다. 여기서 사랑한다는 것은 주님과 연합함이 나타나야 합니다.
3. 기도하며 주님과 깊이 연합하라!
우리가 기도가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알 때,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의 인격적인 교류임을 알게 됩니다. 1절에서 그래서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의 결론이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라는 겁니다. 기도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의 기도함에 이러한 은혜가 나타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는 일곱교회가 아주 다양한 양산으로 나타납니다. 남자와 여자 안에 모든 사람들의 분류가 들어가듯, 이 일곱교회는 모든 지상교회의 면모들이 다 발견될 것입니다. 그 중에 유독 신랄한 책망을 받은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이렇게 책망받았습니다. 또 “너는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 멀었고, 벌거벘었다.” 이렇게 실체를 까발리기도 하십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주시는 회복의 말씀이 무엇이냐면,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기도가 깊어질수록 그분과 식탁의 교제를 누림과 같이 친밀함을 누리게 되는 겁니다. 단순히 기도가 대화가 아니라, 이처럼 친밀한 식탁 교제를 누리는 교제이며, 대화와 같습니다.
여러분들 중에서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집을 오픈하고, 자주 식탁의 교제도 나누십니까. 사실 우리들이 행하는 목장의 모임이 이와 같아야 합니다. 각자의 삶을 보여주고, 우리의 신앙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말씀을 기반하여 믿음의 말들을 많이 나눠야 합니다. 물론 우리의 생생한 현실들도 많이 나눠야하지요. 하지만 현실 속에 말씀이 파묻혀서 진흙에 감추인 진주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불을 방 안 높은 곳에 두어서 온 집안이 환하게 비추이듯이 말씀을 그렇게 높게 두고서, 우리는 그 말씀의 빛 아래에서 많은 믿음의 말들을 나눠야합니다. 그러할 때에, 우리의 생각들이 서로 교차하고, 날줄과 씨줄이 엮여서 아름다운 옷감을 만들어 내듯이 그렇게 믿음 안에서 하나로 엮여갑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교회 안에 교통하게 하시는 역사입니다.
우리의 기도 안에서도 이처럼 주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의 좌소를 환하게 비추시게 하시고, 그 가운데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현실들 모두 과감없이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동시에 주님의 음성도 우리가 충분하게 듣는 겁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점차 주님의 말씀에 우리의 생각들이 일치되어가고, 동일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에 우리 마음이 감화되는 겁니다.
주님과 우리가 기도하면서, 기도의 친밀한 식탁의 교제를 나눌 때에, 우리는 주님의 말씀과 우리가 하나로 연합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사실상 주님과 우리가 하나로 연합되는 것이지요. 조금더 우리에게 적용의 편의를 위해서 우리가 말씀과 하나로 연합된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말씀에 연합되기에 우리는 이후 의사를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들이 모두 순종함이 되게 됩니다.
빌립보서 4:6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여기서 왜 미리 선행적인 감사를 외치고 있습니까. 우리가 구하는 기도가 이미 선행적으로 이뤄질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연합된 삶을 살아가게 되면, 사실 이미 우리는 믿음 안에서 ‘영광의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영광들이 우리 눈앞에 성큼 앞 당겨져 있음을 보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기도를 사랑하게 됩니다. 시편 116편 1-2절에서 우리는 이미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반드시 들으시며, 또한 우리를 위해서 준비해주신 하나님의 영광의 때를 믿음 안에서 미리 맛봄과 같이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베드로전서에서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고도 말합니다. 우리가 이미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했다고 말하는 겁니다. 믿음 안에서 그때를 미리 바라보고 즐거워함으로 오늘을 사는 겁니다. 우리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는 겁니다. 영원히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겁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모든 가능성이 사라지는 겁니다. 온전히 주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이 우리가 기도하면서, 반드시 하나님께서 들으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또한 어떠한 상황이든 기도 안에 머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할수록 주님을 더 깊이 사랑하며, 주님과 연합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시편 116편 1-2절의 말씀이 곧 우리 각 사람의 고백이 되길 소원합니다. 우리 성도들의 동일한 고백이 되길 소원합니다. 함께 다시 1-2절의 말씀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아멘. 늘 기도함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맛보며, 영원한 감사를 올려드립시다. 찬양하시겠습니다.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게 하소서.
어떠한 상황과 고난 속에 있을지라도 기도 안에 머물게 하소서
죄와 수치 가운데 있을지라도 기도하게 하시고,보지 못한 자기 중심성이 있다면
이 또한 깨닫게 하시고,회개하며 기도하게 하소서
그리고 역사하시는 주님의 구원하심을 보게 하소서.
주님과 연합하여 사랑하며 미리 성취된 기도를 맛보게 하소서.
환우들을 위하여
김우금 권사님 다음주 월요일 11월 20일에 대장암 개복수술
김영식 집사님 재활치료를 받고 계시는데, 걷지 못하고 계심
장정순 권사님 척추수술을 앞두고 계심
교회를 위한 기도
추수의 계절을 보내며, 우리 삶의 임한 모든 은혜를 감사하게 하소서.
주님께서 주신 은혜를 깨달아 넉넉한 마음을 주시고,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웃을 넉넉한 사랑으로 사랑케 하소서.
내년은 준비하며 교회 각 기관과 목장과 부서를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바라보고 소망하며 세우게 하시고,
성령의 하나되게 하시는 역사가 힘있게 하소서.
가정과 개인을 위한 기도
우리 삶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하시고,
나의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기뻐하고,
또한 우리 가정이 주님의 가정됨을 선포하게 하소서.
우리의 각 가정에 주일과 각 예배에서 주시는 말씀으로 풍성하게 하소서.
우리의 목장 또한 영적 가족됨을 동일하게 누리게 하시며,
주님의 말씀과 연합하는 영적 가족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