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상황에서 드리는 최고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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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이 되면 오늘만 감사하자는 게 아니고, 평소에도 감사해야 하지만 잊어버리고 살기 때문에 이런 기회를 통하여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 마음을 드리며 나아가자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여러 가지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이든지 항상 감사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힘든 상황에도 감사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우리가 감사할 일이 있어서 감사하는 게 아니라 감사하며 살면 삶이 변화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감사하며 사십니까? 좋은 일이 벌어져서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괴로운 일이 벌어져도 감사하십니까? 우리가 감사하며 살지 못하는 이유가 많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지금 당장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에 일어나는 어떤 일이라도 우연히 일어나거나 우리에게 해가 되도록 허락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것을 깨닫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일이 벌어질 때, 특히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때 ‘이것의 좋은 점은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이 내게 하려고 하시는 게 무엇인가?’ 하고 물으며 감사하게 되고, 그렇게 감사하는 사람은 삶 자체가 달라집니다.
1. 세 가지 차원의 감사
하나님은 받은 은혜에 대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해주셔서 감사하는 거기서 머물지 말고 한 차원 더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뭔가를 받았기 때문에 감사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비록 힘들고 불행한 환경 가운데 있더라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될 때 그 인생이 참으로 아름다운 인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좋은 날이나 궂은날이나, 늘 감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한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합한) 사람’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어쩌다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다윗을 생각할 때 어쩌면 그가 위대한 왕이었기 때문에 물질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풍요를 누리는 가운데 감사 찬송을 많이 불렀으니 당연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다윗처럼 극심한 고난과 시련의 세월을 많이 보낸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당한 어떤 고난을 다 합쳐도 다윗이 당한 고난만큼 되지 않습니다.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막내였던 다윗은 여러 형들 밑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그저 아버지의 양을 치면서 살았습니다. 집안에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천덕꾸러기 아들이었습니다. 위대한 선지자이사 사사인 사무엘이 찾아와서 기름을 부어 자기를 왕으로 세웠는데, 그때까지는 집안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던 어린 막내였고 양치기 목동에 불과했습니다. 사무엘이 찾아왔을 때 아들들을 다 부르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그를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아예 제껴놓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린 나이와 여러 불리한 조건들에도 불구하고,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누가 보지 않아도 항상 성실하게 아버지의 양을 치는 가운데 거기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자기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맹수로부터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그분의 손길과 보호하심을 생생히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단련하며 준비하고 있던 다윗이 마침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그래서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면서 그의 인생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아 앞으로 왕이 될 것이라고 확정되기는 했지만, 그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화려한 왕궁이나 높은 권력의 자리나 부귀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온전히 왕위에 오르기까지 10년도 넘는 세월을 도망 다녀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20대 황금기에 그랬습니다. 20대에 도망만 다녔으니 얼마나 불행한 인생입니까? 우리 중 20대 때 누군가가 나를 죽이러 와서 20대의 10년 내내 도망만 다닌 사림이 우리 중 누가 있습니까?
다윗은 자기 민족의 대적인 블레셋의 엄청난 용사 골리앗을 쳐 죽임으로 민족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울 왕의 질투 때문에 자기를 죽이려 하는 그를 피해 도망자로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도 사울은 자기의 장인이었는데, 자기 장인이 자기를 죽이러 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인생입니까? 우리 중 장인이 자기를 죽이러 쫓아오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다윗이 위대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젊은 나이에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정말 놀라울 뿐입니다. 그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불평과 원망도 또 감사도 선택입니다. 나의 결정입니다. 그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감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사울을 향해 독기와 원한을 품거나, 그를 죽이려고 시도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감사의 노래를 지어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런 극심한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 속에서 말씀으로 자기를 다스리며 날마다 기도와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그분만을 의지했습니다.
성경에 다윗 이야기가 사무엘상하에 나오고 다윗이 쓴 시들이 시편에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엄청난 죄도 지은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극심한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고 찬양하여 감사하기로 결정하며 나아갔던 그의 믿음을 본받으라는 겁니다.
2. 최악의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다윗
다윗이 도망자 시절의 초기에 사울의 추격을 피해 아둘람이라는 동굴 속에 숨어 지냈는데, 그때 지은 시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다윗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고의 감사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며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시가 바로 오늘 본문인 시편 57편입니다. 이것을 읽을 때 단순히 감사와 기쁨의 찬송으로 생각할 게 아니고, 앞에 달린 부제를 잘 읽어야 합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 비를 피해서 동굴에 있었다는 차원이 아니라, 죽이려고 쫓아오는 사람을 피해 두려움 가운데 굴에 숨어 있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그런 가운데 나온 노래입니다. 그러니까 놀랍습니다.
“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2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1-2절)
그런 상황에서 간절히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여기에 무슨 원망이나 불평이 느껴집니까? 전혀 없습니다. 다윗은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그분을 향해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참으로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 영혼이 주님께로 피합니다. 이 재난이 지나가기까지, 내가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합니다.” (1절, 새)
다윗은 엄청난 용사였고 음악가였으며 시인이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람입니다. 다윗은 여기서 하나님을 “지존하신(지극히 높으신) 하나님”(2)이라고 부르면서 그분께 부르짖습니다. 그가 왜 그렇게 합니까?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기가 왜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지, 왜 이렇게 도망다니며 살아야 하는지, 왜 하나님이 자기를 이렇게 죽음의 위기에 몰아넣으시는지, 도저히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기에 분명히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그것을 반드시 이루실 날이 올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우리도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가 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어렵다고 원망하며 불평할 게 아닙니다. 여러분, 내가 어려움을 당하면 보통 어떻게 반응합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희생양을 찾습니다. 뭔가 비난할 상대를 찾습니다. ‘내가 이렇게 어렵게 된 것은 저 사람 때문이다.’ 또는 ‘환경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조금 더 나아가면 부모 탓이 되고 조상 탓이 됩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원망하며 불평만 하고 있을 게 아닙니다. 괴롭다고 낙심하며 좌절할 게 아닙니다. 그럴 때 할 일은 오직 하나님 앞에 무릎 꿇으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간절히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 바로 그것이 고통 중에 우리가 할 일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하도 기도를 안 하니까 그런 걸 통해서 기도를 좀 하라고 이야기하시는 게 됩니다. 사실 고통스러운 상황은 하나님이 우리 귀에 대고 메가폰으로 ‘야!’라고 외치시는 것과 같다고 누군가가 이야기한 것이 기억납니다. 하도 이야기해도 안 들으니까, 엄청나게 큰소리로 ‘야!’ 하시고 그제야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보도록 하시는 게 고통의 상황이라는 겁니다.
이 시편에서 정말 놀라운 것은, 다윗이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고 자기를 죽이려는 자들에 대해 아뢴 다음에 그가 어떤 결론을 내리는가 하는 점입니다.
“3 그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 (셀라) 하나님이 그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4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으니 곧 사람의 아들들 중에라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3-5절)
다윗은 지금 상황에 대해 별다른 것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을 찬양합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합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 들어 쓰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다윗이 지금 편안한 가운데 노래하는 게 아닙니다. 죽음의 위협을 받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뭐라고 노래합니까?
“6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중에 빠졌도다 (셀라) 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8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6-8절)
“9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10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11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9-11절)
어렵고 힘든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먼저는 마음을 확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마음이 확정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정하지 않기 때문에 더 어렵습니다. 마음을 주님께로 확실히 정하면 괜찮아집니다. 자꾸 다른 데로 눈을 돌리면서 ‘저기가 더 나을까? 아냐, 저기가 더 나을까?’ 하면서 마음을 고정하지 못하고 다른 데로 마음을 두는 게 아니라, 하나님 편에 서겠다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드리기로 마음을 확정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마음만 확정하는 게 아니고 확정한 대로 행동하는 겁니다. 실제로 나아가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새벽을 깨우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어떻게 보면 불평하고 원망할 만한 일들로 가득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번에 오랜만에 한국에 다녀왔더니 한국이 그렇게 발전했고 살기가 정말 좋아졌습니다. 너무 편안해졌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불평불만에 가득하고 만족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음을 하나님께로 정하고 살지 않으면 그렇게 불평하고 원망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렇게 살면 그것이 어떻게 제대로 믿는 것이 되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는 감사할 제목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우리 삶을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감사할 일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잘 보십시오.
사람의 심장은 하루에 10만 번 정도나 뛴다고 합니다. 참 놀랍습니다. 또 우리 몸속의 피는 하루에 약 2억5천6백 키로미터 이상을 달린다고 합니다. 우리가 가볍게 숨을 쉬는데, 하루에 숨을 쉬는 횟수가 무려 2만 3천 번 정도라는 겁니다. 참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 각자가 열심히 노력해서 심장이 뛰고 있습니까?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피가 2억5천6백 키로미터를 흐릅니까? 결코 아닙니다. 폐도 멈추지 않고 자기가 알아서 호흡을 계속합니다.
이 모든 것들에 약간의 문제만 생겨도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노력하거나 수고하지 않아도 심장이 뛰고 폐가 호흡해주는 것이 당연한 일 같아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이게 안 되어서 병원에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심장이 뛰는 것만으로도, 폐가 산소를 공급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 아닙니까?
우리가 들이마시며 사는 공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부러 산소 호흡기를 사용하는 환자들이 병원에 내는 돈이 엄청납니다. 코로나 사태 초기에 산소 호흡기가 없어서 사망자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협력하던 선교사님도 인도에서 코로나 때문에 순교하지 않으셨습니까? 산소 호흡기만 있었어도 사는 건데, 그게 부족해서 돌아가셨습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다 공짜로 공기를 마시며 살고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감사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감사할 제목이 없습니까? 그런데도 매일 똑같습니까? 그런데도 ‘나는 별로 감사할 일이 없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많은 것을 주시고 누리게 하시는데도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불만과 원망 속에 살아간다면 그 인생은 진짜 불행하고 불쌍한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있는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더 가지려는 욕심을 계속 부리면 결국은 부족한 것만 보이게 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감사의 눈으로 보면 내 삶에 감사 제목이 아닌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삶 속에서 우리가 할 일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다윗과 같이 주님을 향해 찬양하며 경배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9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10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11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9-11절)
죽음의 위협을 당하면서 이런 노래를 했다는 것, 그것도 20대 때 그랬다는 것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도 이런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도 감사할 이유가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고 느끼십니까? 그래도 지금 삶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전부 다 감사의 제목이라는 것을 알려 주는 <평생 감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내용을 읽어드리며 마칠까 합니다.
* 지금 당신의 집에 전기가 들어온다면, 세상에서 전기의 혜택 없이 사는 20억이 넘는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 당신의 집에 식수 시설이 되어 있다면, 그렇지 못해 아무 물이나 마시는 10억이 넘는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 당신이 하루에 천 원 이상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다면, 천 원 미만으로 살고 있는 12억의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 당신이 하루 한 끼라도 따듯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8억 명의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 당신의 몸이 건강하다면, 당신은 이번 주를 넘기지 못하게 될 100만 명의 환자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 당신이 한 번도 전쟁의 위험, 수용소의 외로움, 고문의 고통, 굶주림의 쓰라림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5억 명의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 당신이 체포, 협박, 학대, 고문, 그리고 죽음의 두려움 없이 교회에 나갈 수 있다면, 당신은 이 세상 30억의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 당신의 냉장고에 음식이 있고, 당신의 몸에 옷을 걸치고 있거나, 잠을 잘 수 있는 집이 있다면, 이 세상 75%의 사람들보다 더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 당신이 은행에, 그리고 지갑에 약간의 돈이 있고, 어딘가에 있는 작은 통에 동전을 모아 놓았다면, 세계 상위 8%의 사람들 안에 드는, 감사할 이유가 있는 부자다.
* 지금 이 글을 읽고 당신이 축복받은 존재란 사실을 알게 된다면, 글을 읽을 줄 모르는 20억의 사람들보다 더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얼마나 감사할 일이 많습니까? 그런데도 감사할 게 없다면 참 불쌍한 인생일 것입니다. 이렇게 감사의 비결을 깨닫고 어떤 상황에도 감사할 줄 알았던 다윗처럼, 최악의 상황에서 최고의 감사를 드릴 줄 아는 믿음의 사람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복을 누리고 또 그것을 나누어주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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