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말하지만, 당신은 용서받았습니다.

히브리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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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히 10:1-18
제목: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당신은 용서받았습니다.
주제: 어떠한 방법으로든 살려고, 만회하려고 발버둥 칠 필요가 없다.
목적: 율법의 정죄로부터 자유하고 용서받았다는 믿음의 확신을 회복케 하소서.
평형깨기
여러분, 이런 말을 들어봤을 거예요. 기독교는 종교일까요, 아닐까요?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이런 말 들어보셨죠? 기독교가 종교가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세요?
종교는 종교 행위에 목적이 있습니다. 종교적인 법, 그러니까 율법을 지켜야 신의 만족을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신이 만족하면 나를 천국에 보내주던가 복을 주던가 하는 거예요.
그런데 기독교에서 모든 행위는요, 하나님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다 이루셨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왜 무슨 목적으로 교회에 나오고 찬양을 하고 헌금을 하고 성경 공부를 하고 또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고 굳건히 믿어야 하냐는 질문이 나오는 거예요. 이해가 되었어요? 더 이상 어떤 행동도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 필요하지 않다면, 우리가 왜 이렇게 신앙생활을 굳이 해야 하냐는 거예요. 빨리 천국에 데려가시지.
이런 질문이 왜 나오냐면 당시 히브리서 수신자들의 배경이 이러했습니다. 히브리서 수신자들의 상황을 잘 알아야 오늘 말씀이 잘 이해가 됩니다.
갈등심화
때는 64년입니다. 어느 날 고요한 새벽에 로마시 한복판에서 큰 화재가 났습니다. 이 불은 너무나 큰 불이어서 로마 시의 대부분을 태웠습니다. 모두가 자고 있던 밤에 불이 일어나서 초기 진압에 실패하게 되면서 불이 더욱 커졌어요. 이때 이러한 소문이 퍼집니다. “네로 황재가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서 일부러 도시를 불태웠다.” 사람들이 네로 황제를 비난하기 시작했어요.
네로 황제의 정치적 입지가 위태로워졌습니다. 실제로 네로 황제가 방화를 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자신을 향한 정치적 위기를 탈출해야 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무엇이냐면, 유대인들은 정치저 입지가 강하고, 로마인들은 자국민이니까, 가장 만만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누명을 씌우자는 것이었어요. 이때부터 전무후무한 그리스도인 박해가 일어나는데 이것이 바로 네로 박해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맹수에게 잡아 먹히고 화형을 당하는 그러한 잔혹한 일들이 벌어졌어요. 인간이 감당하기에 너무나 어려운 시련이었어요.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배교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들어진 편지가 바로 히브리서에요.
그들의 고민을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다 이루셨다면서요? 다 회복하셨다면서요? 그러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이뤄주셔야 하는데, 왜 가족도 버려야 하고 사회적 지위도 버려야 하고 심지어 목숨도 버려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인가요? 우리가 더 이상 뭔가를 안 해도 된다고 하셨는데, 왜 자꾸 뭔가를 바라시는 것 같은 상황들이 찾아오는 건가요? 지금 재정적으로 가난한데 헌금을 꼭 해야 돼요? 학원에 가야 하는데, 졸려 죽겠는데, 교회에 꼭 나와야 돼요? 그냥 혼자서 신앙생활 하면 되잖아요?
우리가 더 이상 하나님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할 것이 없는데, 왜 우리가 고난을 받아야 하는 납득이 안되는 상황이 온 겁니다. 하나님께 필요하지도 않는데 왜 우리가 이런 부담을 가져야 하는 것이죠?
히브리서 수신자들의 상황이 이처럼 매우 안 좋았어요. 내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억지로 고난을 받아야 하고, 억지로 우리 가족이 희생되어야 하고, 그래서 내가 불이익을 안 당하려면 억지로 마지못해 예수님을 부인하고 배교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배교를 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으면 내가 감당해야 할 고난, 고문, 시험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거예요.
히브리서 수신자들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냐면, 주님이 너무 원망스럽고, 결국 타협할 것 같고, 이러한 나의 모습이 너무나 싫은 거예요. 그래서 무슨 선택을 하냐, 어차피 내가 이렇게 연약하고 언젠가 또 흔들리고 넘어질 것 같으니까, 그냥 지금 배교하자, 교회를 떠나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죠.
다 틀렸어, 다 망가졌어, 상황이 망가졌는데 내 믿음을 지킨다고 무슨 소용이야? 어차피 난 또 흔들리고 넘어질텐데, 이렇게 변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보니 난 교회를 다녀도, 예수를 믿어도, 믿음이 더 좋아지지 않겠구나, 변화되지 않겠구나, 이런 번뇌와 스트레스에 시달릴 바에는 그냥 배교하자, 내려놓자,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게 저와 여러분의 마음 아닐까요?
하나님의 극복
여러분, 잘 들으세요. 신앙생활이 힘든가요? 그래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죠. 그래서 떠나고 싶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세요? 아직 내가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율법의 정죄를 받고 있기 때문에 신앙을 포기하는 것이고, 신앙을 포기하는 것이 율법의 정죄를 받고있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수신자들이 예수님을 잘 믿고 예수님을 사랑하는데도 죽음을 두려워했던 이유는 내가 예수님께 합한 자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거든요. 이게 바로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다 해결하셨으니까 내가 배교해도 다 용서되겠지! 내 맘대로 해야지!” 이런 마음으로 배교하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는데 보통 이런 걸 배교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원래 그렇게 왜곡된 신앙을 갖고 있는 것이에요.
하지만 믿음을 저버리고 세상을 택한 사람들은 율법의 정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겁니다.
히브리서 수신자들 마음은 이런 마음이었어요. “지금 만약에 로마 군인에게 잡혀서 죽게 되면, 비록 나는 예수님을 사랑했지만, 나의 더러운 모습들을 주님이 받아주실까?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있는 게 아니라고 하셨는데, 나는 주여, 주여만 한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들로 나의 죄를 계속 묵상하는 거예요. 내 죄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왜? 아직 내 속에서 살아있잖아요. 내 일상생활이 변하지 않잖아요. 신자 답지 않게 살고 있잖아요. 내게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싶은 연약한 모습만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어차피 망한 거, 그냥 죄를 지으며 살면 안 될까?” 이렇게 허무한 삶을 선택하고 싶어지죠. 지금 내 모습은 교회를 안 다녀도 전혀 이상할 게 없어 보이잖아요. 내게 믿음이 없고 신앙이 없다고 내가 스스로 단정하는 거예요.
“만약 내가 정말 신자라면, 하나님께 합당하게 보이는 삶의 모습이 내게 1이라도 보였겠지?” 그런데 1도 보이지 않는 걸 보니 나는 틀렸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게 바로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지 못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 합당하게 보일만한 모습이 내게서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마치 죄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제사를 드려야 하는 구약 시대의 온전하지 못한 율법과 똑같다는 거예요. 이렇게 정죄받고 있는 우리에게 죄를 모두 해결하신 예수님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려고 히브리서가 증언하는 거예요. 이게 바로 히브리서 10장이 말하는 것입니다. 그중에서 8-10절 읽어볼까요?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율법은 매년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그 이유는 율법이 우리를 완전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단번에 그 모든 일을 이루시면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았다. 더 이상 너가 죄를 해결하기 위해 해야할 행위는 없어. 너의 죄는 없어졌어! 넌 거룩해졌어!” 15-18절도 읽어봅시다.
15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16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17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그런데 죄를 왜 계속 묵상하니? 하나님이 다 없다고 하셨는데, 죄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너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민할 필요도 없고 뭔가를 해야할 필요도 없는데 왜 자꾸 걱정하고 고민하니? 너가 지금 죽게 되더라도, 나와 같이 낙원에 있을 거란다. 너가 이전에 어떻게 살았던지, 나는 너와 영원히 함께할 거야. 너는 용서받았어.”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죄가 남아있다고 스스로 단정해서 죽는 것을 두려워서 배교하지 말라는 거예요. 죄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고난을 피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내 모든 죄를 해결하셨으면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내 안에 죄가 보이고 스스로 더럽고 연약하게 여기면, 고난이 은혜가 아니라 심판으로 느껴져요. 그러니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았으니 그 은혜에 감사하며 고난을 받아도, 죽임을 당해도, 예수님을 떠나지 말라는 거죠.
이러한 상황을 아가서에서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인공 술람미 여인은 자신에게서 사랑스러운 구석이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남자주인공의 사랑을 원망하죠. 왜 나를 사랑하셔서 내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아야 합니까? 그러면서 상사병에 걸립니다. 하지만 결국 남자주인공의 사랑에 설득되는 이야기가 아가서이죠. 내가 손가락질 받고, 신앙 때문에 고난을 당해도 주님이 나를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사랑에 보답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이 삶과 신앙으로 인한 고난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다 해결하셨다면 우리가 해야할 것이 없어야 하는데, 우리는 신앙생활을 위해 왜 교회를 다니고 말씀을 공부하고 묵상하고 그러는 걸까요?
복음선포
얼마 전에 한국시리즈가 끝났습니다. LG트윈스가 우승했어요. 제가 오래 전부터 LG 팬입니다. 서울 송파구에서 초, 중, 고를 나왔으니까 자연스럽게 팬이 되었어요. 그런데 야구를 잘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LG 별명이 무엇이었냐면 “꼴쥐”였습니다. 만년 꼴찌만 한다는 뜻이죠. 여기서 ‘쥐’라는 표현이 약간 LG를 비아냥하는 표현이에요. 그래서 LG를 ‘엘쥐’라고 하면 LG 팬들이 화를 냅니다. 그러한 조소와 비아냥을 LG 팬들은 무려 29년 동안 들었어요. 저는 대학생 때까지는 야구를 챙겨보다가 사역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절제하려고 경기를 다 챙겨보지는 않게 되었어요. 그래도 야구 소식이 보이면 항상 LG는 어떻게 됐나 먼저 찾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LG가 우승했어요. LG 팬들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29년 동안 들었던 비아냥과 비웃음들이 한 번에 사라지게 되죠. 29년동안 LG를 믿은 내 자신이 뿌듯한 겁니다. 만약에 내가 LG를 배교했다면 지금의 우승이 뼈아프게 다가왔겠죠? 제가 어떤 기사를 보니까 한국인들은 약간 잘 못하는 팀을 더 응원하는 경향이 많다고 합니다. 왜냐면 못하니까 동정심이 생겨서 더 응원해주고 싶고, 만약 우승하게 되면 그 희열이 엄청날 테니까요. 그래서 한화 팬들이 골수팬으로 유명하죠. 만약 한화가 우승하게 되는 날이 오면 어떻게 될까요? 그 팬들은 난리가 나겠죠. 오래 참음의 미학을 아는 거예요. 오래 인내할수록 내게 오는 영광이 엄청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위해서 어떤 행위도 할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은 이미 완전하세요. 모든 영광을 이미 받고 계시기 때문에 그분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가 시간을 내어 교회에 나오고 찬양을 하고 성경공부를 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가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불이익을 당하고,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처럼 핍박을 당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세요? 인내할수록 영광이 크기 때문이에요. 살아낼수록 우리가 누리는 영광이 크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이 이걸 원하시는 거에요. 선물이 너무나 큰데 왜 거부하냐는 것이죠. 하다못해 야구 꼴찌팀에게 동정심이 생겨서 골수팬이 되는데, 왜 신앙생활에는 그렇지 않을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모든 율법의 제사를 ‘단번에’ 이루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만족시키기 위해 종교적으로 뭘 더 해야 할 게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용서받았어요.
다만 우리에게 행위가 요구되는 이유는, 피곤한데도 교회에 ‘억지로’ 나오는 이유, 학원을 빼고 교회에 나오는 이유는,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만드신 은혜의 방편을 누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끝까지 참고 인내하고 견디세요. 배교하지 마세요. 교회를 떠나지 마세요. 죄를 묵상하지 말고, 연약함을 계속 생각하지 말고, 은혜를, 말씀을 묵상하세요. 여러분이 어떠한 모습을 갖고 있던, 여러분의 모든 죄가 단번에 용서받았음을 믿으세요. 여러분은 용서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주님과 영원히 낙원에 있게 될 것입니다.
비전제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포기하고 싶은 이유는 율법의 정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모든 죄를 해결하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신앙으로 삶을 살아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인내와 고난이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더욱 빛나게 하기 때문이에요.
이 한 구절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롬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이 믿음을 끝까지 붙들면 그 어떤 부귀영화보다 큰 하나님의 영광이 여러분의 삶에, 그리고 영원히 함께 있게 될 줄 믿습니다. 용서받은 자로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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