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24 금요기도회: 고린도전서 8: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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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고린도전서 8:1-13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8:1–13 NKRV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도 말씀과 기도라는 은혜의 방편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위로와 소망을 받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인 고린도전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서신입니다. 당시 고린도교회 안에서는 아주 문제가 많았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앞에 있는 본문들에서만 해도 성도 중 음행한 자를 판단하는 문제, 세상 법정에 동료 성도를 고발하는 문제, 결혼과 관련된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선 많은 문제들 중 우상에 바친 제물에 대한 문제가 고린도교회 내에서 발생했습니다. 바로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논쟁이었습니다. 당시 고린도 지방은 상업적으로 아주 잘 살던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에는 많은 신전들이 가득했고 이 신들을 섬김으로 고린도가 잘 사는 도시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신들을 위해 동물을 잡아 신들이 이 제물을 맛있게 먹고 복을 베풀어 주기를 비는 것이 고린도의 문화였습니다. 그리고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남은 고기는 사람들이 축제를 벌여 먹었습니다. 이때 이 고기를 그리스도인들이 먹고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게 맞냐는 문제가 생긴 겁니다. 왜냐하면 우상의 제물을 먹는다는 것은 이 신을 섬긴다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주로 두 개의 반응이 생깁니다. ‘먹을 수 있다’와 ‘없다’입니다. 오늘날에도 충분히 이와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때 여러분은 어느쪽의 의견이 더 타당하시다고 생각하십니까? 고린도교회에선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사람들도 인해 실족하게 된 사람이 발생하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만일 이런 문제가 생기면 먹는 사람들을 향해 단순히 먹으면 안된다고 주장하거나, 실족하게 된 사람들을 향해 “실족한 너희의 믿음이 문제다”라고 주장하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이 두 주장 중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었을까요? 사도 바울은 아주 놀랍게도 두 쪽 다 편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바울은 단순히 먹을 수 있다고 하거나 먹으면 안된다 중에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제3의 길을 고린도교회에 제시합니다. 그 제3의 길이 무엇이었을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지식은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당시 고린도 지방에서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고 그 제물을 먹는 것에 대한 지식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당시 고린도 지방에 있는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아주 보편적인 지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이것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이죠. 모두가 알긴 하지만, 먹어도 되냐 안되냐를 놓고 싸운 것이 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먹어도 된다는 사람들의 논리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습니다. 4-6절에서 이 사람들의 주장이 간접적으로 드러납니다. 4-6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는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바로 우상은 존재하지 않는 신이기 때문에 우상을 섬기는 자들과 함께 우상에 바쳐진 제물을 먹는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세상에는 오직 유일한 참 신이신 하나님만 계신 것을 알기에 신전에 가서 제물을 먹는다 해도 그 신을 예배하는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죠. 이들에게 우상의 제물은 그저 일반 음식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된다는 사람들은 믿음이 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6절까지만 보면 바울이 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7절을 보시면 바울은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라고 말하며 반전을 일으킵니다. 여기서 지식이라는 단어가 등장해 1절과 똑같은 의미의 지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7절의 지식은 1절과는 달리 4-6절에 대한 지식을 가리킵니다. 바로 우상은 존재하지 않는 가짜 신이고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시니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된다는 지식을 가리킵니다.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라고 바울이 말하는 것이죠. 그래서 고린도교회에는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곧 우상을 섬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우상의 제물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먹는 사람들을 향해 “아니, 하나님을 믿는데 어떻게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 있어? 저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이방신을 섬기나? 아니면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이방신을 섬겨도 되나?”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바로 이 지점이 사도 바울이 염려한 지점입니다. 바울은 이 지식으로 인해 이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는, 즉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고르는 것이 약하여져 헷갈리게 되고 결국 우상숭배를 해도 된다는 결론으로 나아가 이 사람들이 더러워질 것을 염려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8절에서 “그래, 음식을 먹는 것은 먹어도 된다고 주장하는 너희 말처럼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은 맞다. 우리에게는 무엇이든지 먹을 자유가 있는 것은 맞다. 또한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 사는 것도 아닌 것도 맞다.”라고 말하면서 먹어도 된다는 사람들의 말을 인정하면서도 9절에서 “그러나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라고 말하는 겁니다.
바울은 이들이 제물을 먹을 수 있는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이 자유로 인해 믿음이 약한 자들을 실족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어선 안 된다고 말함으로써 자유의 사용에 대해서는 일정한 제한을 둡니다. 그 이유는 바로 다음 절에 등장합니다.
10,11절입니다. “지식 있는 네가 신전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먹어도 된다고 여겨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그렇게 되면 니가 가지고 있는 그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우상숭배하는 죄를 범해 명망하게 되니”
바로 바울이 말하는 것은 믿음이 약한 자들이 우상숭배를 해도 되는 것으로 여기게 되어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게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을 바울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들이 가지고 있던 지식을 바울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보다도 가장 중요한 지점인 믿음이 약한 자가 죄를 범하게 될 수 있다는 지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을 이야기합니다. 11절 하반절과 12절입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한다면 그것은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바울은 먹어도 된다는 사람들로 인해 믿음이 약한 형제들이 우상숭배라는 죄를 범하게 만드는 것은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먹어도 된다는 사람들은 이 지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을 겁니다. 이들은 자신이 먹을 자유의 권리가 있었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원리적으로도 이들의 행동은 맞습니다. 하지만 이들로 인해 믿음이 약한 자들이 우상숭배를 죄를 범하게 되고 더 나아가 이들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단순히 먹어도 된다와 먹지 말아야 된다는 결론이 아니라 나에게는 합당한 자유가 있지만, 이 자유로 인해 형제 그리스도인들이 실족하여 넘어지지 않을까 하는 민감성을 가져야 된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나의 자유와 권리보다 형제 그리스도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 형제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오늘 본문을 시작하면서 “지식은 교만하게 만들지만 사랑은 덕을 세운다”라고 말한 겁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먹으면 안된다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 형제를 위해 죽으셨으니 우리가 먹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 그리스도와의 관계성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어떤 선택까지 할 수 있다고 13절에서 말합니까? 바로 나에게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그리스도께서 내 형제 그리스도인을 위해 죽으셨으니 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는 선택을 하겠다 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을 통해 고린도교회에 사도 바울이 말하고 싶은 핵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자유가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도 누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할 수 없는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비춰서 한번 생각해봅시다. 나의 조그마한 행동들로 인해, 나의 선택으로 인해, 나의 자유로 인해, 나의 권리로 인해 우리 교회에 있는 형제가 실족하여 죄를 범하게 만들진 않았는지, 아니면 교회를 떠나 하나님을 믿지 않게 되지는 않았는지 한번 돌아봅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 있는 형제들도 똑같이 그리스도께서 사신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만일 우리의 자유로, 우리의 권리를 내세워 형제 하나를 실족하게 만든다면 우리는 그 형제에게 죄를 짓는 것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고린도교회 내에 있던 믿음이 강한 자들처럼 우리의 언행들이 잘못된 언행이 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채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죄를 피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어떻게 이 죄를 피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가 계시기에 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2:5-8 은 이렇게 말합니다.
빌립보서 2:5–8 NKRV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 그 자체이신 분이십니다.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리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그 권리를 모두 버리셨습니다. 왜 버리셨습니까? 바로 우리를 얻기 위해 버리셨습니다. 그분의 자유와 권리보다 우리를 향한 사랑이 더 중요했습니다. 심지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말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먼저 하셨기에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사도로서의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버리시고 오신 그리스도라는 복음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지금도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이로 인해 형제 그리스도인을 실족하게 만들면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 형제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형제를 실족하게 만든다면 그리스도께 죄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 주변을 돌아보고 나의 자유와 권리로 내 형제를 실족하게 만들진 않았는지 돌아보고 바울의 마지막 고백처럼 내 형제를 위해 나의 자유를 포기할 수 있게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기억하며 같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형제 그리스도인을 위해 자기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오늘 본문 뒤에 등장하는 9장에서 바울은 자신이 사도의 권리가 있지만 자신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처럼 되고 율법 없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율법 없는 사람처럼 된다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들을 위해 죽으셨으니 이들을 위해 나의 자유와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말합니다. 이 시간 함께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보면서 기도합시다. 혹여나 나의 자유와 권리로 인해 내 주변에 있는 형제 그리스도인이 실족하진 않았는지 돌아봅시다. 그리고 그런적이 생각났다면 회개하며 나의 자유를 포기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또한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도 앞으로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렇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이 시간 이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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