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이해가 되지 않는 순간,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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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기도회
금요기도회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가라 하고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그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갈지니라 하니라
사랑합니다! 지난 주에 여러분과 여호수아 첫 번째 장에 대해서 나누었다. 기억나는가? 내 어릴 때 사진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가실 여호수아의 이야기를 기억하시라. 여러분은 지난 주 동안 답이 없어보이는 상황 가운데서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였는가? 오늘 이 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기도의 자리로 인도하신 이유는 반드시 여러분을 사용하기 위함인 것을 반드시 기억하시고, 믿음으로 반응하는 시간되길 소망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여호수아에 대해서 여러분과 나누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여러분들이 속한 학교를 정복하고자 한다. 무엇으로 말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복음이다. 지지난 목요일에 확신하였다. ‘The Light’ 집회 때 학교에 기도모임을 만들자는 슬로건이 등장하기 전에 나는 이미 광주사랑의교회에 오기 전부터 경기 광주에 있는 학교에 기도모임을 만들고자 올해 3월부터 기도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신이 사라질 것 같은 상황이 올 때, 목요집회를 통하여서 강한 확신이 들었다. 당장에 나에게 어떠한 부흥은 없지만, 학교에 기도 모임이 생기면 반드시 기도모임과 예배가 세워지고 여러분의 학교가 예배의 처소가 될 것을 기대하며 꿈꾸고 있다. 지금 당장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반드시 이 땅의 모든 중고등학교가 예배하는 학교가 될 것을 믿는다. 여러분도 나와 이 믿음의 여정에 함께 동참하길 소망한다. 기도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음을 기억하시라.
오늘의 말씀은 여호수아가 첫 번째로 무슨 성을 정복하려고 왔는가? 그렇다. 여리고 성이다. 6장 이전에 5장에서 이스라엘의 군사들이 할례를 받는 장면이 등장한다. 할례란 무엇인가? 현대에서는 포경수술의 모습으로 진행되었다. 왜 이스라엘은 할레를 받았는가? 창세기/17장에 보게 되면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명령하는 여호와 하나님이 등장하신다. 창세기17:10-11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여기서 아브라함의 언약의 표징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씀하신 언약이 무엇인가? 첫째로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고, 둘째로 아브라함을 통해 심히 번성하게 하여서 그를 통해 민족들이 나고 왕들이 아브라함으로부터 나오게 된다는 것, 셋째로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후손들에게도 언약이 유효하기에 아브라함의 하나님 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의 하나님이 되겠다고 약속한 내용이다. 이것은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들, 오늘 읽은 여호수아에서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화장실 갈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생각하며 큐티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여호수아도 여리고를 정복하기 전에 아브라함의 약속의 말씀을 근거로 삼아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할례를 진행한 것이다. 현대에서는 할례를 할 필요가 있을까?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은 주님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셔서 성전되어주시는 것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기 위해 몸부림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삶 가운데 말씀을 암송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것이고, 우리는 할례를 할 필요는 없지만, 예수님께서 말씀을 순종하고 복음을 전하는 모든 순간에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말씀을 굳게 붙들고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언약을 기억함으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러 갔다. 그곳에 갔을 때 여리고 성을 어떻게 함락하라고 명령하시는가? 군사전략을 잘 세워서 이전의 전투 경험, 타국의 전술을 기반으로 싸움을 준비하라고 하신 것이 아닌 여리고 성을 돌라는 명령이다.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명령인가? 군인들이 머리를 맞대어서 완벽한 계획과 기가막힌 전술을 짜도 모자랄 판에 성벽을 6일 동안 돌고, 마지막 7일에는 일곱 바퀴를 돌면서 마지막에 소리를 지르라는 것이다. 여리고 성을 돌기 전에 돌아버릴 것 같은 말씀이다. 내가 실제로 이스라엘을 직접 가보았는데, 여리고 성은 엄청나게 두꺼운 성벽으로 둘러쌓여있다. 그것이 어느 정도냐면, 마차가 두대를 갈 수 있을 만큼, 요즘으로 표현하자면, 승용차 두 대가 여유롭게 지나갈 수 있는 만큼의 두께가 여리고 성벽의 두께이다. 얼마나 단단한 철홍성과 같은 곳인가? 그러나 여호수아와 군대는 하나님의 약속을 분명하게 믿고 걸어갔던 것이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 전쟁을 바라보았을 때, 어떤 게임인가? 이미 이긴 게임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기만 한다면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은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 길을 걸었는가? 모세가 전쟁에서 승리할 때와 패배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을 때 승리하였고, 그렇지 않았을 때 패배했다는 것을 부모님을 통해, 할아버지 할머니를 통해 들었기 때문이다. 믿음은 어떻게 자라는가? 들음으로 자라는 것이다. 우리가 예배를 사모해야하는 이유, 말씀을 가까이하고 성경을 공부해야하는 이유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보다 우리의 감정이 앞서게 되면 절대 믿음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감정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가로막기 떄문이다. 그렇기에 여리고 전투에서 특이하게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나아가라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지 않고 나아가는 전투는 실패일 수 밖에 없다. 설사 그것이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실패인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열왕기를 읽어보면 북이스라엘에 정치를 아주 기가막히게 잘했던 왕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여론이 아주 좋았고 사람들이 좋아했으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우상을 동시에 섬겼기에 하나님의 평가는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하였더라’이다.
우리가 열심히 성공을 이루어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린다고 시상식에서 고백하거나 대학 합격하거나, 취업에 성공하거나, 결혼을 잘하여서 아이들 잘 길러서 노년의 생활을 잘하였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거둔 성공은 복이 아닌 저주의 삶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조심해야하는 것이고, 날마다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추어 점검해야한다.
그렇게 여리고 성을 돌았을 때 어떠했는가? 한 바퀴를 돌았을 때 벽이 조금 스크래치가 나고 두 바퀴 돌았을 때 벽돌 하나가 떨어지고 그랬는가? 아니다. 육 일동안 한 바퀴씩 돌았을 때도 여리고 성은 그대로 있었고, 마지막 날에 7바퀴를 다 돌았을 때도 성은 견고하게 있었다. 그러나 나팔 소리와 함성을 불렀더니 어떻게 되었는가? 성벽이 와르르 무너진 것이다.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이 순간이 얼마나 짜릿한가? 하나님의 일을 이루신 것을 느낄 때 경험되어지는 황홀감이 어마어마하다. 내가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를 다녀왔을 때 일이다. (설교본문 생략)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느낄 때 너무나 짜릿하고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여러분을 이 자리에 부르신 이유가 무엇인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시는 신실한 하나님을 기대하며 앞으로 여러분들의 학교와 속한 모든 공동체가 하나님의 복음으로 완전히 승리하게 되는 일들을 경험하기를 소망한다. 이 일을 위해 오늘 여러분과 이 자리를 함께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에 대해 이해되지 않는 순간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나의 감정인가, 믿음으로 나아갈 것인가? 그것은 여러분에게 달린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