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24 viewsNotes
Transcript
11/16(목) 잠언 17:13-28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랑의 주님 앞에 오늘도 나왔습니다. 올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크신 은혜와 자비를 어찌 다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지나온 모든 세월들을 생각해 볼 때, 그 모든 순간마다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희망찬 새해가 밝아오는 순간에도, 따뜻한 봄에 반가워 손을 내밀었을 때도, 무더운 여름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의 영적인 목마름을 아룄을 때도, 우리와 함께 하신 주님을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 주님, 이시간 겸손히 주님 앞에 우리의 몸과 마음을 드리오니, 주님의 형상으로 우리를 빚어주시고, 주님의 자녀로 온전히 살아가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지혜의 말씀으로, 생명의 말씀으로, 능력의 말씀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오늘 잠언의 말씀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 싫어하시는 것”에 대해서 나누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싫어하시는지, 무엇을 미워하시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무엇을 좋아하시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있으십니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알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일부러 하지 않으려고 하겠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언 8장 1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계속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겠죠. 그런 의미에서 오늘 잠언의 말씀은 우리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줍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도 값진 정보이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도 값진 정보입니다. 성경에서 그것들을 모아서 정리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을 알고 싶으십니까?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목록을 작성해 보는 것이 시작이지요. 그 사람에 대해서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렇게 이해하다보면 사랑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사랑은 강요가 아니라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잘못하면… 사랑의 이름으로 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사랑이 아니라 강요일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럼 오늘 본문 15절 말씀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사람은 다 여호와께 미움을 받으니라” 첫번째 정보가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이 혼동되는 세상을 싫어하십니다. 옳은 일을 했음에도 죄인이라고 잡아넣는 세상!, 악한 일을 했음에도, 비리를 저질렀음에도, 권력에 기대어, 유유히 빠져나가는 세상! 그래서 선을 악으로 바꿔도 하늘이 무서운 줄도 모르고, 떳떳하게 활보하는 것을 하나님이 미워하십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악으로 선을 갚으면 악이 그 집을 떠나리 아니하리라” 말씀하잖습니까!
선을 선으로 갚는 것과 선을 악으로 갚는 사회는 어떻게 다를까요? 선을 선으로 갚는 사회는 선을 권장합니다. 내가 선을 베풀면, 누군가에 의해 나도 선을 받게 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숨을 쉴 수 있는 여유로운 사회, 행복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선을 악으로 갚는 사회는 자기 살기에 바쁜 사회가 됩니다. 어디서 누가 뒤통수를 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올 것입니다. 사기를 치고, 이익을 얻은 것이 수치가 아니라 트로피가 됩니다. 속이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속는 사람이 잘못이 되버립니다. 마지막에는 모두가 모두의 적이 되는 순간만 남겠죠. “악이 그 집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결국 그런 곳에선 누가 의인이고, 누가 악인인지도 헷갈리게 돼버립니다. 의인과 악인이 혼동된 세상이 됩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세상이 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선과 악의 기준이 바뀌게 되면, 질서와 평화와 조화가 가득한 것이 아니라, 다툼과 분란과 파괴가 이어집니다. 권모술수만 팽배합니다. 그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짜 속마음을 감추며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게 유일한 살 길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보시며 애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들어보시겠습니까? 창세기 6장 5절, 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우리가 악할 때마다, 우리가 미련한 짓을 할 때마다, 하나님의 한탄하시고 근심하시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십니까? 로마서 8장 26절 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x2)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사람이 왜 악을 행할까요? 선악의 기준을 하나님에게서 자신에게로 가져오면서부터 악이 평범해졌습니다. 쉽게 악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악과 타협하기 쉬워졌습니다. 결론을 이미 정해 놓고 선과 악을 짜맞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선악의 기준을 우리 자신에게서 다시 하나님께로 돌려드려야 합니다. 선악과를 움켜쥐고서 나의 기준에 따라 선과 악이 바뀌는 것이양, 기준선을 앞뒤로 왔다갔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게 해서는 안됩니다.
대신에 우리는 십자가를 움겨쥐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선악의 기준을 다시 세우신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오늘 본문 2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음이 굽은 자는 복을 얻지 못하고 혀가 패역한 자는 재앙에 빠지느니라” 우리 하나님은 마음이 굽어지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곧은 마음과 굽은 마음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바른 마음과 삐뚤어진 마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우리 마음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면 소유욕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 것보다, 내가 무엇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살게 되면, 시기심과 질투와 우월의식과 열등의식에 지배받기가 쉽습니다. 그러다보면 악인들의 꾀에 귀가 솔깃해집니다. 죄인들의 길에 나도 들어가고 싶습니다.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나도 앉고 싶어합니다.
그러면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게 되고, 내가 무엇을 가졌느냐, 내가 무엇을 소유했느냐로만 나를 평가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세상이 볼 때 성공의 기준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하나님 보실 때는 복의 기준이 되지 않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시편 1편 1절과 2절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땅에서 얼마나 많이 가지고 살고 있는가보다,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를 보십니다. 디모데전서 6장에는 “자족하는 마음”이 나옵니다. 6절에서 8절입니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 이 자족하는 마음을 묵상하며,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의 열매를 맺으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또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오늘 본문 23절과 26절을 읽겠습니다. 23절 “악인은 사람의 품에서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느니라” 그리고 26절 “의인을 벌하는 것과 귀인을 정직하다고 때리는 것은 선하지 못하니라”
우리 하나님은 공정하지 않은, 굽은 재판을 싫어하십니다.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이 재판이 되어야 할텐데…, 그런 재판은 억울함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공정한 재판을 통해 일을 매듭 짓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다음 단계로 나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불공정한 재판으로 계속 과거에 매이게 만듭니다. 불쑥 불쑥 옛날의 억울함이 올라오게 만듭니다. 그래서 재판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의 재판으로 사회 전체가 뒤바뀌는 결과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불공정한 재판, 굽은 재판, 억울한 재판들이 이땅에서 사라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재판이, 정의로운 재판이 넘치기를 위해서 함께 간구하십시다. 미국은 배심원 재판이 미국 사회를 지탱하는 하나의 축입니다.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굽은 재판이 아니라, 공의로운 재판이 되도록 임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히브리서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땅의 심판이 마지막이 아니라, 끝이 아니라, 하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입니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 그 심판대 앞에서, 재판장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떤 음성을 듣게 될까요?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일까요? 아니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듣게 될까요?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잠언 6장 16절~19절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 일곱가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두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
왜 잠언은 이렇게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자세하게 열거했을까요? 우리 마음은 하나님이 좋아하는 길로 가기보다 싫어하는 길을 선택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매순간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고 어디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지를 살피며 살게 하기 위해섭니다. 또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반대로 생각하면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무엇을 좋아하시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찾아서 행하도록 하기 위해섭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리를 아는 첩경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선과 악의 기준을… 내가 가지고 있는 기준으로 끌고 내려와서 합리화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잠언의 말씀을 통해 돌아봤습니다. 아는 데서 끝나지 말고, 우리 삶으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드립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우리의 연약함과 교만함과 거짓들을 고백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기보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쫓아 살지는 않았는지…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의 기준으로 남을 평가하고 그것이 절대 선인양 남을 판단하지 않게 해달라고, 십자가를 붙잡고, 주의 은혜 안에 살기를 원한다는 기도를 드리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개인기도 하고 돌아가시겠습니다. 주여 한번 외치고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