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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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오늘 하루도 지켜주시고, 은혜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
능력과 믿음의 담대함을 주시옵소서.
말씀을 사모하여 주 앞에 나온 우리 영혼을 불쌍히 여기사
성령으로 기름부어 주시고, 내일을 살아갈 새 힘 허락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앞에 나오며,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과
주실 은혜를 사모하는 심령으로 귀한 예물 드리는 손길들 있습니다.
감사헌금, 일천번제, 00헌금, 00헌금을 올리오니
받으시고, 만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드릴 것이 차고 넘치게 부어 주시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성령의 지혜로 깨닫게하시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과 믿음도 부어주소서.
부족한 종이 말씀을 대언할 때, 나의 연약함은 감추시고
하나님의 지혜만 나타나게 하옵소서.
그렇게 일하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모든 말씀 오늘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열왕기하 1장 1~8절 말씀입니다.
열왕기하 1:1–8 NKRV
1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3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4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5 사자들이 왕에게 돌아오니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돌아왔느냐 하니 6 그들이 말하되 한 사람이 올라와서 우리를 만나 이르되 너희는 너희를 보낸 왕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고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네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고 보내느냐 그러므로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더이다 7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올라와서 너희를 만나 이 말을 너희에게 한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더냐 8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할렐루야~ 우리 앞뒤 옆사람들과 인사합시다.
잘 오셨습니다. 큰 은혜 받으세요.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오늘은 열왕기하 1장 1~8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없어서?”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합이 죽은 후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다는 기록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는 아하시야가 북이스라엘을 다스릴 당시의
정치 상황이 어땠는지를 보여줍니다.
아하시야 왕은 아합의 아들로서
북이스라엘의 8대 왕으로서 2년간 북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모압이라는 나라는 다윗 왕때부터 이스라엘의 속국이었습니다.
그 뒤로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이후에도
모압은 계속해서 북이스라엘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오므리 왕조가
아합 왕을 끝으로 아람왕 벤하닷에게 패하면서 막을 내립니다.
그러면서 북이스라엘의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는데,
이틈을 타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고 독립을 선언한 것입니다.
그러면,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빨리 군사를 일으켜
모압을 진압하고 다시 북이스라엘의 권위를 되찾아야 하는데
때마침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을 때에
왕궁 난간을 거닐다 떨어지면서
병을 얻게 되어 모압의 반란을 진압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실 이 모든 과정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북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조의 만행으로
하나님이 화가 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므리 왕조 때부터, 그리고 아합 왕 때에도
엘리야와 미가야 같은 수많은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수없이 경고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의 정치적 상황을 통해서,
그리고 아하시야에게 징계를 통하여 병을 주심으로
계속해서 북이스라엘에게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아하시야는 부모의 영향으로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습니다.
우상 숭배에 빠져 하나님께 돌이키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조차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답답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에그론의 신인 바알세붑에게 자신의 병 치유를 물으려 합니다.
정말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굳이 다른 나라의 신까지 찾아야 했을까요?
오늘 본문의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없어서?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했던 아하시야 왕의 최후를 살펴보며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깨닫고 스스로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배신하는 자는 하나님께 배신을 당합니다.
열왕기하 3:4 NKRV
4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
본래 모압은 북이스라엘에 새끼 양털 10만 마리분과
수양의 털 10만 마리분을 조공으로 바치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에서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신하였다는 것은
이 조공을 바치는 것을 중단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압의 배신은 모압에게 있어서는
자기들의 주권을 되찾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 입장에서는 큰 고통입니다.
왜냐하면 모압의 배신은 곧 북이스라엘의 국력이
그만큼 약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아하시야의 병으로 인해 즉각 대처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얼마나 무기력한 모습입니까?
이렇듯 나라간의 배신은 큰 재앙 중 하나입니다.
더불어 이웃에게 당하는 배신, 사람 사이에 생기는 배신은
더욱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배신, 사기, 폭력, 독재, 질투, 모함 등 관계의 문제는
나라의 큰 위기 또는 재난이나 사고보다
우리에게 더 가까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 깊은 상처를 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관계의 문제는 가까운 사이일 수록
더 자주 발생하면서도, 더 깊게 상처가 나기 때문입니다.
별로 친하지 않으면 오히려 상처받을 일이 없습니다.
특히 부부 사이에 서로 오가는 말다툼, 관계의 상처가
생각보다 크게 남을 때도 있습니다.
어떤 통계에 따르면
남자들은 아내의 잔소리로 받는 스트레스 치수가
전쟁 때 총알이 날라드는 상황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 치수와
거의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가끔 관계의 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때
큰 사고가 났으면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왜냐하면, 큰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까운 사람들끼리 더 단합하고 힘을 합치느라
오히려 관계의 문제들을 작게 생각하고
그냥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관계의 상처, 배신이라는 것은 사람 뿐만 아니라
나라 간에 관계에서도 정신적, 물질적 큰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배신의 아픔을 우리 주님께서도 겪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제자였던 가룟 유다의 배신.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배신.
그리고 예수님이 무죄인줄 알면서도 십자가형을 선언했던
총독 빌라도의 배신.
이렇게 배신은 그 일을 당한 사람에게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을 배신한 자는
하나님도 그 사람을 배신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의 북이스라엘과 아하시야는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길로 행하다가 모압으로부터 배신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을 배신한 사람은
자신도 하나님께 배신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에스겔 16:59 NKRV
59 나 주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가 맹세를 멸시하여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네 행한 대로 네게 행하리라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할 때만 상대하고,
우리가 없다 생각하고 무시하면 그냥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겪는 모든 감정과 아픔을 알고 계시며
느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반역한 자는 하나님께 버림받습니다.
즉 하나님이 그 사람을 배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무시하고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열왕기하 21:22–23 NKRV
22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그 길로 행하지 아니하더니 23 그의 신복들이 그에게 반역하여 왕을 궁중에서 죽이매
북이스라엘의 역사는 한마디로 ‘배신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유다가 오직 다윗 단일 왕조로 지속될 때,
북이스라엘은 무려 9번의 왕조 교체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북이스라엘은 남유다보다 140년이나 더 짧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그 원인은 한가지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왕들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각종 우상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왕들이 하나님을 배신하자 신하들은 물론 백성들까지
부도덕과 불의에 물들어 탐심과 기회주의로 행하였기 때문에
배신이 성행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배신이 아니라 신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신뢰하는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그런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진 이유도
솔로몬과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하나님을 배신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징계로서 나라를 분열시킨 것이었습니다.
주님을 배신하고 은 30에 팔아넘긴 가룟 유다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룟 유다 역시 종교 지도자들에게 버림을 받아
자살하지 않습니까?
배신한 자의 최후는 배신을 당합니다.
하나님을 져버린 자는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람을 잡기 위해 사람을 신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붙잡을 때, 하나님께서 사람을
우리에게 붙여주십니다.
전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면, 전도한 사람이 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전도하지 않았던 사람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전도하는 모습을 보고
영혼을 사랑하는 교회에 하나님께서 영혼을 맡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사람에게 배신당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면, 사람에게 신뢰를 받습니다.
둘째, 하나님을 떠나면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열왕기하 1:2 NKRV
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오늘 본문 2절 후반부를 보면,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은 아하시야는
자신의 병이 나을지 여부를 묻기 위해
에그론의 신인 바알세붑에게 사신들을 파견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하시야가 얼마나 다급했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분명 아하시야는 당시의 의술로는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생명이 매우 위독한 상태였을 것입니다.
아하시야의 상태가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면, 갑자기
굳이 에그론까지 사자를 보내어 자신의 병에 대하여
물으려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하시야가 자신의 병에 대하여
물으려고 했던 에그론의 신이 바알세붑이었다는 것입니다.
바알세붑은 ‘주’를 뜻하는 ‘바알’과
‘파리’를 뜻하는 ‘세붑’이 합쳐진 말입니다.
그러니까 바알세붑은 ‘파리의 주’라는 말입니다.
지금 아하시야가 에그론에 있는 파리의 신에게
자신의 병이 나을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당시 바알세붑의 우상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파리 우상의 동상이 아파트 만할수도 있겠죠.
그러나 우상의 크기와 관계없이, 우리가 아는 파리는
곤충 중에서도 지극히 작은 곤충입니다.
심지어 파리는 우리에게 해만 끼치는 해충입니다.
더러운 곳에 항상 있는 곤충이고, 똥을 먹고 사는 곤충입니다.
그래서 흔히들 ‘똥파리’라고 부릅니다.
파리가 날개가 있어서 날아다니기는 하나
사람들에게 쉽게 잡혀서 죽습니다.
저는 파리 하면, 아직도 아프리카에 있는 파리들이 생각납니다.
아프리카 케냐에 한 달 정도 단기선교를 갔던 적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위생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물이 귀하기 때문에 흙탕물을 정수해서 바로 먹고,
그 물조차 없어서 죽는 사람이 허다합니다.
그곳에서는 파리를 쫓을 힘도 없습니다.
그래서 상처가 나면 그 곳에 파리들이 붙는데
굳이 힘들여 내쫓지도 않습니다.
그런 광경이 펼쳐지는 곳에서 한달을 사는데
선교사님 집에서 지켜야 할 중요한 룰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람부는 쪽으로 음식물을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쪽으로 음식물을 버리면, 바람을 타고
파리들이 집안에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실수로 음식물을 바람 방향으로 버렸다가
파리떼가 집에 가득차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곳 파리들은 직접 몸에 닿지 않는 이상 도망치지도 않습니다.
파리채로 허공에 한번 휘두루면 5마리 10마리씩 파리가 떨어집니다.
그렇게 힘없이 축축 떨어지는 파리를 보면
참 쓸데없고 더럽기만 한
쓰레기같은 곤충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하시야가 하나님을 떠나니깐, 판단력이 흐려졌습니다.
보잘것없는 파리의 신에게 자신의 생명을 맡깁니다.
생각만 해도 웃기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어리석은 행동을 아하시야만 하지 않았습니다.
고대 시대에 하나님을 알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바위를 섬기고, 큰 고목을 섬겼습니다.
그래도 그런 것은 조금 낫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탈출할 때
모세를 통해 보여주었던 10가지 기적은
이집트의 10가지 신을 상징한 것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그 당시에 개구리도 섬기고,
몸에 붙어 사는 이도 섬기고, 뱀도 섬겼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은 스스로를 굉장히 지혜롭고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며 자신들을
만물 위에 높입니다.
그런데 그런 인간이 자기들이 지배한다고 생각하는
파리, 개구리, 이, 뱀, 바위, 나무 등을 신이라고 섬기고 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모습입니까?
그렇다면, 이러한 어리석은 모습은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일까요?
우리들도 알게 모르게 미신, 징크스 들을 많이 믿고 있습니다.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죽는다.
시험볼 때 미역국 먹으면 미끄러진다.
다리 떨면 복 달아난다.
특히 운동선수들에게는 징크스가 많이 있습니다.
시합 전 날에는 몸을 안씻는다던지
큰 승리를 거두었을때 입었던 속옷을 입는다던지
어떤 테니스 선수는
운동화 끈을 항상 왼쪽부터 묶어야 하고
한세트 끝날 때쯤 라켓을 교체해야 경기가 잘 풀린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서장훈 선수는
자유투 할 때 5번 튀기고 해야 잘들어가고
4번 튀기면 안들어가는 징크스가 있다고 합니다.
경기 당일에 이런게 안지켜지면 계속 불안해합니다.
그만큼 미신, 징크스를 의지하고 믿는 것입니다.
인간은 분명 하나님에 의해 만물의 영장으로
지혜롭게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과 함께 하나님을 떠나면서
어리석은 존재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다스려야 할 자연 만물을 향해 경배하고,
심지어 파리와 같은 해충까지도 자신을 구원한 신이라고 여기며
섬기는 어리석은 판단을 하고 마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 NKRV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이것이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의 실상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들은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롭고, 놀라운 업적을 쌓았어도
정작 하나님을 모른다면, 우상에 빠지고, 이단에 빠지고,
말도 안돼는 논리에 현혹되는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진리,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은
하나님 한분 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온전한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온전한 지혜와 분별력을 얻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지혜의 근본이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본문 6절은 아하시야가 보낸 사자들이 되돌아와 아하시야에게
엘리야가 전한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를 전하는 내용입니다.
열왕기하 1:8 NKRV
8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병든 아하시야가 자신의 병 치유를 묻고자 보낸 특사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생명이 아닌 ‘죽음의 선고’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은 아하시야에게 청천벽력같은
‘절망의 통첩’이었습니다.
아마도 아하시야의 눈에는 자신의 신하들이
‘죽음의 사자’로 보였을 것입니다.
잠언 29:1 NKRV
1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 아하시야를 병들게 하신 것은
그가 아버지 아합의 악한 길로 가는 것을 막고
회개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런데 아하시야는 회개하기는 커녕
파리의 신을 섬기며 하나님을 경멸하는 길로 갔습니다.
그 결과, 갑자기 죽음을 선교받는 불행한 자가 되고 맙니다.
애굽의 바로 왕도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고, 완악하게 행동하다가
결국 유월절 날 장자가 죽는 죽음의 재앙을 맞이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서울제일교회 성도 여러분,
회개할 줄 모르고, 계속 악을 행하는 자들의 운명이 이렇습니다.
그들에게는 재앙이 홀연히 임합니다.
잠언 6:14–15 NKRV
14 그의 마음에 패역을 품으며 항상 악을 꾀하여 다툼을 일으키는 자라 15 그러므로 그의 재앙이 갑자기 내려 당장에 멸망하여 살릴 길이 없으리라
노아의 홍수 심판도,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도
갑자기 이루어진 재앙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과거에만 일어난 것일까요?
장차 있을 하나님의 최후 심판도 예기치 않게
홀연히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회개의 사인을 주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홀연히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예상하지 못하는 기쁜 일을 만나는 것처럼
즐거운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갑자기 재앙을 만나는 일처럼
충격적이고 끔직한 일 또한 없습니다.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롯의 가족처럼,
오늘 본문의 아하시야처럼 홀연히 재앙의 소식을 듣는
불행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불현듯 하나님의 천사로부터
축복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하시야는 하나님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고, 다른 신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깨어서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나도 모르게 완악해지는 마음을 경계하고
작은 죄라도 돌아보며 하나님께 회개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잠언 1:7 NKRV
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이 말씀 속의 미련한 자가 바로 아하시야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회개로 이끄시고자 징계로
병을 주셨음에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길로 행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교만한 자의 최후는
하나님의 심판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속 메시지를 보내고 계십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또는 상황과 환경을 통해,
혹은 주의 종들을 통해, 주변의 이웃들을 통해
그리고 우리의 신앙 양심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아하시야처럼 완고하고 교망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교만하여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받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지혜롭고, 또 큰 명예를 가졌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종일 뿐입니다.
우리가 늘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고, 그분과 함께 동행하며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하는 거룩하고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며 하나님 한분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굳건한 믿음을 주시옵소서.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세상을 진리의 눈으로 바르게 볼 수 있는 영적인 분별력을 주시옵소서. 세상의 논리와 방법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늘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과 환경, 만나는 사람들과 말씀의 진리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영적인 눈과 귀를 열어주시옵소서. 때마다 겸손하게 하시고, 교만할 때마다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연말 연시 지나온 한해를 돌아보며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계획들이 잘 준비되게 하시고, 지난 주에 수능봤던 수험생들 위해서 아직 남은 일정들이 많이 있는데,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학생들 되어지도록,
우리교회 몸과 마음, 영혼의 병든 자들이 치유되고, 잃어버린 영혼 돌아올 수 있도록, 각자의 기도제목을 위해서
“주여” 세번 부르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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