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회개

추수감사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86 views
Notes
Transcript
여러분 오늘은 무엇을 기념하는 주일이죠? 맞죠. 맞아요. 추수의 은혜를 기념하여 드리는 추수감사절이죠. 여러분들은 확 와닿지 않을 수 있을텐데, 청년부에서 앞으로 농사로 전도 유망한 지체가 있어요. 사과를 농사짓는데, 이 추수의 계절이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결코 불가능하거든요. 가령 남쪽 지방은 사과농사가 폭망했다고 해요. 일단 벌이 없고, 꽃이 폈는데 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우면 금방 떨어지죠. 그리고 꽃에 수정이 되지 않아서 열매를 맺을 수가 없는 거죠. 그러니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해서 절감할 수 밖에 없어요. 농사의 모든 순간의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해요.
이러한 추수와 더불어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미국에서 시작되었어요. 성경에서도 나름의 근거가 있는데, 수장절이 있어요. 추수한 것을 저장하면서 감사의 절기를 보내는 거죠. 그럼에도 우리가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미국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미국 사대주의 이런거 아니구요. 신앙의 깊은 교훈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들이 뮤지컬 <더북>을 봤다면 쉽게 이해될 수 있을텐데요. 종교개혁 이후에 카톨릭과 카톨릭에서 분리되어 새롭게 출발하는 개신교의 갈등이 극심했습니다. 즉 천주교와 우리 교회같이 일반적인 교회가 갈등이 극심했던거죠. 갈등의 근거는 개신교는 성경대로 살자라는 거예요. 성경을 놓고 같이 읽고, 성경대로 살자라는 거예요. 그런데 천주교는 어찌보면 우민정책을 펼쳤어요. 그러한 갈등 속에서 영국 청교들에게 박해가 극심하자 미국 대륙으로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이주하게 되어요.
지금이야 미국이 참 살기 좋은 곳이지만, 당시에는 정말 살아남기 척박했던 상황이었어요. 사실 박해를 피해서 급하게 왔기에, 제대로 된 준비를 하지 못했어요. 다행히 인디언들의 도움도 받았지만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죽었다고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추수를 했고, 살아남은 이들이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렸던 거예요.
여러분들도 올 한 해를 돌아보면, 다사다난한 일들이 많을 거예요. 그럼에도 우리가 아무리 슬퍼도, 내 부모가 죽었거나, 내 형제가 죽었거나 그랬습니까. 정말 여러분들이 직접적인 피를 나눈 이들이 죽었습니까. 물론 친척과 소중한 이들이 하나님 품으로 간 지체들도 있죠. 그런 아픔들을 다시 기억하게 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미국 대륙에 정착한 이들처럼 지독한 고난이 있었던 이들은 없을 거예요. 절반 이상이 죽었어요. 그럼에도 감사한 거예요.
아마도 이렇게 기도했을거예요.
“하나님, 이렇게 우리들 중 산 자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영국에 있었어도 우리는 죽었을 겁니다. 그렇기에 새로운 기회의 땅에 이렇게 많은 이들이 살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이 땅에서 허락하신 주님의 기회의 장소, 기회의 시간들 감사히 잘 사용하겠습니다.”
제가 이들의 기도를 깊이 살피진 못했지만, 저는 분명히 이러한 기도를 드렸을거라 믿어요. 그러니 이러한 교훈 속에서 우리는 상황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의 믿음으로 감사하는 거예요. 미국의 부패함과 불의도 많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세계 최강국의 위치할 수 있었던 그 출발은 하나님을 향한 이러한 믿음과 감사로 보여져요. 하나님의 일하심이 이 가운데 있는 거예요. 우리의 시작은 미약할지라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나아갈 때에, 그 분의 일하심을 보게 될 거예요!
오늘 우리가 살피는 달란트 비유도 우리로 하여금 중요한 교훈을 깨닫게 해요. 사실상 추수라는 것은 끝을 말하죠. 마태복음 13장 39절을 살피면,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라고 말해요. 사실 우리가 매년 마주하는 모든 추수는 세상의 종말을 상징하고 있는 거죠. 그렇기에 우리는 늘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마음이 새로워지잖아요. 어떤 지체들은 계속 상황이 비슷해서 새로울 것이 없다. 그렇게 말하기도 하지만, 늘 한 해를 끝내면서 아쉬움과 반성만큼은 남을 거예요. 그렇기에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서 모든 것을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한 층 더욱 나아가서 우리의 마지막 때를 돌아보고 오늘을 다시 새롭게 살아감이 필요한거예요!
우리는 이미 차고도 넘치게 받았다.
비유의 내용은 심플해요. 굉장히 부유한 주인이 있어요. 제가 보기엔 빌게이츠보다 더 부자같아 보여요. 그런 부자, 고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존재예요. 그러니 이 마태복음의 1차 청중이었던 사람들에게는 이미 이 주인은 하나님과 같은 존재라는 인식을 확 받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주인이 자신의 전체 재산이 드러나지 않아요. 그런데 종에게 맡기는 재산을 보면 엄청나거든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게 엄청난 거예요. 등장인물은 종 3명이죠. 이들에게 달란트를 주어서 관리하도록 하는 거예요. 한 명은 5달란트, 또 한 명은 2달란트, 또 한 명은 한 달란트를 줍니다.
여기서 달란트가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는지 계산해 볼 필요가 있어요. 무게로 따지면 당시에는 약 20kg 정도 되어요. 금덩어리는 아니구요. 동전 자루처럼 이해하면 좋을 듯 해요 그러니 20kg 짜리 금으로 된 동전 뭉치를 받은 거예요. 여러분 여기서 놀라운 것은 금이라는 거예요. 은이 아니예요. 당시의 화폐는 은이었어요. 은으로 된 1달란트는 6,000일 동안 일해서 모은 금액이라고 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대략 계산하면 20년짜리 노동력이라는 거예요. 엄밀하게 계산해도 16-17년입니다. 그런데, 금은 은보다도 15배의 가치를 가져요. 16년 곱하기 15에요. 친절한 제가~ 계산하기 힘든 여러분들 위해서 대신 계산해 줄게요. 240년 이상 모아야 하는 금액입니다. 일반인은 한평생 성실히 일해도 모을 수 없는 가치가 이거예요. 엄천난 금액이죠. 이런 금액을 주인은 최소한 주었다는 거예요.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요? 주인은 하나님이세요.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종은 곧 우리죠. 우리 모든 사람들이죠. 그런데 사람들 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어요. 재능의 차이, 또 집안과 환경과 배경의 차이가 있을 수 있어요. 그건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를 받은 것과 같죠. 어떤 이들은 출발 자체부터 달라 보일 수 있어요. 실제로 이런 부분에서 비교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건 우리들의 인식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내가 맡긴 만큼의 충성을 보겠다는 거거든요. 비교할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1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집중해볼 때, 그 또한 충분한 가치를 받았다 이거예요. 여기있는 그 누구도 하나님께 모자라게 받지 않았다는 거예요. 우리 모두 충분하게 받았어요.
저 또한 때로는 생각해보아요. 음악에 대한 재능을 좀더 받았으면 좋았겠어요. 영어를 좀더 잘 습득할 수 있는 환경이었으면 좋았거 같아요. 등등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나의 핑계이고, 나의 모자란 인식이라는 거예요. 정말 여기에 제가 전력을 다한다면, 지금이라도 결과는 천지차이처럼 달라질 거예요. 여러분들이 낼 수 있는 역량을 모두 합치면, 그것이 얼마나 강력할까요? 여러분들의 잠재력을 정말 100%까지 활용한다면 놀라운 일이 벌어질거예요.
정말 여러분들이 스스로는 한계가 너무 많다고 생각할지라도, 나를 가장 잘 아는 누군가가, 내 몸의 사용법과 내 인생의 사용법을 아는 누군가가 나를 온전히 사용한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 벌어질까. 여러분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겠어요? 요즘 웹툰을 보더라도, 인생을 다시 사는 회기 스토리가 엄청 많습니다. 약한데도, 고군분투하며 살았던 인물이 우연히 다시 삶을 살게 되면서, 자신이 가진 달란트를 온전히 사용하니 탁월한 삶을 살아간다. 이런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요. 오늘의 억울함이 있지요. 그러나 그런 어려움이 있기에 이겨나가는 자들의 삶이 아름다운 것 아니겠어요?
달란트 비유에서 나타나는 비극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남들과 비교했을 거란 거예요. 분명 이 사람도 그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을 거예요. 그런데, 주인이 맡긴 거에 대한 감사가 결여된 거죠. 주인이 다른 사람에게는 5달란트, 2달란트를 주면서, 내게는 왜 이것만 주냐 이거지요. 이러한 의식 속에서는 내게 맡기신 그 가치의 크기를 전혀 들여다 볼 수 없어요. 진정으로 생산적인 삶이 나올 수 없어요.
내게 주신 것을 헤아려보니, 참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주셨구나. 정말 엄청난 것을 주셨구나. 여러분들에게 이런 깨달음이 와야만 해요. 저도 제 자신에 대한 한계를 느끼지만, 그건 나의 인식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인식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것을 믿음으로 볼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다 활용할 수 있어야 해요.
특히나 이 이야기가 비극처럼 우리에게 주어지는 이유는, 지금 여러분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오늘을 달리 살아가라는 의미에요. 우리가 이것을 놓치는 순간, 우리는 한 달란트 받은 자와 같이 살아갈 거예요. 그리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우리는 울며 이를 갈게 될 거예요. 주님께서 맡기신 것을 충성되게 섬긴 5달란트, 2달란트 받은 사람은 주님의 기쁨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데, 우리는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는 거예요.
2. 문제의 핵심은 주인이 누군지 크게 오해했다.
보통 문제의 핵심은 오해로부터 시작되어요. 우리들의 관계에서도 오해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참 많아요. 진짜 상대가 누구인지, 이 친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듣지 않고, 판단하는 거예요. 우리는 알아가는 것에 참 게을러요. 이 한 달란트 받은 종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평가 받아요.
이 또한 무엇에 대해서 이런 평가냐 묻는다면, 주인에 대해서 알기를 게을리 한거예요. 자기 나름의 삶은 열심히 살았을 거예요. 해가 뜨기 전에 일하러 나가고, 해가 지고 나서 집에 들어온다 해도, 주인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았아요. 혼자 멋대로 판단하고, 더 알려고도 하지 않았아요. 주인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해하지도 않았지요. 그 결과 혼자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 거예요.
여러분들 또한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려고 도전하고 있나요? 하나님은 날마다, 날마다, 여러분들을 향해서 자신을 알리시길 원하고 계세요. 그러나 우리는 도무지 그를 알아가려고 하지 않아요.
성경을 봐야해요. 말씀을 씹어먹듯 먹어야해요. 우리 내년 여름 수련회는 이러한 비전으로 갈거에요. 정말 말씀을 먹고 살아야해요. 말씀을 먹지 않으니깐,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계속 오해하고, 길을 자꾸만 잃는 거예요. 목사가 여기에 왜 있나요?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말씀을 먹이려고 존재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도무지 말씀을 먹으려는 의지가 없으면, 아무리 저라도 도울 수가 없어요.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어요. 우리로 하여금 너희가 자유롭게 의사 결정해. 정말 너희가 마음으로 내게 돌이켜서 나를 찾기를 바래.
이렇게 우리에게 선택권을 주시며, 오래 오래 참으시죠. 정말 여러분들을 엄청 사랑하시는데, 오래 오래 긴긴 시간 참으셔요. 계속 기회를 주셔요. 여러분 우리는 종말의 비유를 통해서 반드시 돌이켜야 해요.
마태복음 25:24–25 (NKRV)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여기서 말하는 바가 뭐예요.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주인을 아주 심각하게 오해했다는 거예요. 주인이 언제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뿌리지 않은 것에서 모으는 줄 알았어요. 자기만의 착각이에요.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서 사실 이런 생각으로 모두 살아가는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께 여러분 자신을 도무지 맡기지 못하는 거예요. 너무 두려운 거예요. 하나님은 그처럼 굳은 존재처럼 보이는 거예요. 성경을 어디를 읽어봐도 그런 하나님이 전혀 아니신데, 하나님을 아주 굳은 존재로 보는 거예요. 아니에요. 여러분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들이 자원하는 마음들 그것이 참 중요해요. 그 분께 여러분들의 삶을 충분히 맡겨도 괜찮다는 믿음이 바로 하나님을 알고자 할 때 오는 거예요. 우리 모두가 여호와를 힘써 알기를 간절히 소원해요. 여호와를 힘써 알기를 간절히 소원해요!
3. 아직 기회가 있다.
여러분 우리는 아직 기회가 있어요. 종말의 비유를 들려주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어요. 종말의 비유는 우리로 하여금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찾아오셔서, 그 분의 것을 찾으려 하실 때를 미리 준비하도록 하는 거예요. 그래서 25장에는 달란트 비유도 있지만, 열처녀 비유도 있는 거예요. 다섯 처녀는 기름이 준비되어 있었고, 다섯 처녀는 기름이 없어서 구하러 간 사이에 신랑이 들어오고 성문은 굳게 닫혔어요. 모두 주님의 때를 미리, 그리고 항상 준비해야 한다는 거예요. 물론 열처녀 모두 잠들었어요. 우리도 육신적으로 잠자도 됩니다. 우리 일상생활 열심히 살아도 되어요. 그러나 주님 앞에 늘 영적 추수의 때를 기억하며 살아야 하는 거예요. 주님 오신다는 믿음 안에서 기름이 준비되어 있어야 해요!
이와 같이 이 말씀이 경고로 듣고, 우리 현재의 삶을 고치기 원한다면, 우리는 한 달란트 받은 종에게 대입해야 해요. 우리는 한 달란트 받은 사람들이예요. 저도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구요.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는게 맘 편해요. 그렇지만 여러분들에게 주신 것이 엄청나다는 것은 변함이 없어요. 여러분들 안에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들이 있구요. 시간이 있구요. 젊음이 있어요. 무엇보다도 열정 있게 살아가야 해요.
이런 점에서 우리는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들을 눈 여겨봐야해요. 왜 이들이 한편으로는 한 달란트 받은 자와 같이 나타나는 거예요? 배우라는 거잖아요. 이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 감사함과 하나님의 절대적으로 선하심을 믿으면 사는 이들이에요. 내게 맡기신 것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주신거라고 믿는 거예요.
때로는 누군가를 통해서 아픈 소리, 또 상처를 받는 일들도 생길 거예요. 그런데, 그것조차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받는 거예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다 사용해야해요. 모두 다 활용해야해요. 전부 하나님을 돌려드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사는 거예요. 주인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 분이 내게 더 큰 것을 맡기기 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아는 거예요. 나로 하여금 계속해서 자라게 하시고, 훨씬 인격적으로 다듬어지고, 훨씬 더 다양하고 많은 일들을 능숙하게 다뤄내도록 우리를 성장시키길 원하신다는 거예요.
정말 주님을 깊이 사랑하는 거죠. 여러분들이 단 한가지 이 순간 간절히 기도해야한다면, 주님을 더 깊이 사랑하게 해달라는 기도예요. 그 분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모든 삶을 열정있게 살게 되어요.
여러분 만약에 인생을 다시 산다고 했을 때, 좋은 분을 만나서, 열심히 여러분들에게 집중 과외해줘서 서울대로, 또는 하버드로 여러분들이 원하는 대학으로 무조건 보내준다고 해봐요. 엄청 하드한 트레이닝을 거치더라도 반드시 거기에 도달할 것을 믿는다면 어때요? 따라가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이다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지요. 그렇지만, 지금 여러분들이 걷고 있는 그 길,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에요. 거기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되도록, 우리 주인이신 주님께 모든 것을 드리기 위해서 하루하루를 살아보아요. 육신의 피로를 덜 느낄 거예요.
저 어제 거의 밤 11시까지 임원들이랑 대화하고, 예산안이 긴급해서 함께 논의하고 집에 들어갔어요. 최소한으로 논의했는데도 그랬어요. 그리고 들어와서 부족한 설교 준비한다고 밤 2시 30분까지 준비했어요. 그래도 부족해요. 그리고 일어난 시간이 6시쯤이에요. 여러분이야 생생할지 몰라요. 그런데 저는 거의 매일 새벽을 나와야하잖아요. 또 부족한 시간 쪼개서 사람들도 만나고, 또 책도 읽어야해요. 밤에 일찍 자기가 어려워요. 특히 이번주는 다소 분주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 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힘을 주세요. 분명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감격하며 살아가는 순간과 또 그렇지 않은 순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활력 자체가 달라요.
오늘 본문에서 마지막 포인트만 나누려고 해요.
마태복음 25:28–29 (NKRV)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여러분들 중에서 때로는 왜 나만 일하고 있나. 왜 저 친구보다 나는 더 수고해야하나 이러한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거예요. 저도 듭니다. 군대 있을 때에도, 나는 자주 야근하는데, 심지어 나는 군에서 길게 있을 생각도 없는데, 뼈을 묻을 생각도 없는데 이렇게 하는데, 장기로, 길게 있겠다는 놈들은 왜 다 일찍 퇴근하는거지.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사실 비교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비교하는 순간 여러분들이 아무리 5달란트, 2달란트 받았다고 해도 다시 한 달란트 받은 종으로 떨어지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내게 충성을 바라시지, 다른 종의 충성을 비교하며 충성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세요. 오히려 게으르고 악한 종의 것을 빼앗아서 충성된 종에게 주시는 거예요. 그런데 그 순간에 왜 내가 부당하게 담당하는 것들이 더 많아지지,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주인에 대한 신뢰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아요.
여기서 두 달란트 받은 종도 하나님께 충성했어요. 그런데 그에게 한 달란트는 쪼개어서 나눠주지 않으셨어요. 이것이 영적인 원리예요. 두 달란트 받은 자도 다섯 달란트 받은 자처럼 똑깥이 충성했고, 똑같이 배수의 이윤을 남겼어요. 사실 칭찬까지도 완전히. 완전히 똑같아요. 완전 동일해요. 그러나 한 달란트의 종의 것을 빼앗아 줄 때에는 두 달란트 종에게 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영적으로 계속해서 도전받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두 달란트 받은 종에게도 메시지가 있는 거지요. 하나 더 받고 싶니? 그러면 조금 더 열심을 내어야 해. 너가 5달란트 받은 종과 똑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건 너의 착각이고 나는 5달란트 받은 이에게 줄거야.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이 달란트 비유가 아주 냉혹하게 들렸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것이 목표하는 바는 하나님 안에 있는 풍성함을 아는 것과 깊은 연관을 가져요. 내 이기심을 자극해서 쟁취하는 것이 아니에요. 만약 이기심을 자극해서 쟁취하는 거라면, 냉혹한 겁니다. 약육강식이예요.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한 없는 사랑함을 아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어요. 그렇다면, 이것은 은혜에 대한 간절한 사모함이에요. 내 안에 있는 죄됨과 싸우는 거구요. 내 중심성과 싸우는 거구요. 반대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더욱 깊이 아는 것과 연관이 있어요. 이런 하나님을 알 때, 그 분에게 내 모든 것을 바치는 거예요. 나는 종이고, 모든 소유는 그 분의 것이지만, 그 분이 나를 존귀히 여겨주시고, 내게 모든 것을 맡기시니 이에 대한 감격으로 참여하는 거예요.
여러분 사실 이번 23년도는 그다지 열매가 풍성하지 않은 청년부의 해입니다. 저 또한 좌충우돌하구요.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만큼은 리더진들이 이해했다고 믿습니다. 또 이 은혜가 우리의 평생의 가장 핵심이어야 한다는 것도 알거예요. 마치 이 원리는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종들이 자원하는 기쁨으로 충성되게 섬긴것과 같아요. 내 주인이 너무 좋고, 내 주인과 함께 함이 좋아서, 마치 내 유익을 위하듯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이들이 어떠한 삶도 동반되는지 우리는 배우고 도전하고, 또 깨어지고,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우리 또한 이러한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자들의 삶과 같이 나아가야 해요!
냉정하게 우리는 한 달란트 받은 공동체예요. 이 비유의 끝은 끔찍해요.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이에 합당한 자세로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종으로서 신실하게 반응한다면, 그 분은 우리로 하여금 당신에 잔치에 참여시키실 거예요. 우리 내년 5월에는 예배 인원을 50명을 늘려봅시다. 우리가 믿음으로 선호하며 나아가 봅시다. 저도 설교를 발전시킴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도 구하지만, 피를 짜내는 훈련을 해 나갈겁니다. 그리고 길거리 전도도 청년들을 타켓팅으로 계속 나갈 거예요.
어제 리더진들과 우리 청년부의 이름을 기드온300 청년부로 하자고 말했습니다. 300명의 용사로 하나님께서 수십만의 미디안 군대를 격퇴시키셨어요. 우리 모두 하나님의 열방의 일꾼으로, 또 용사로 부르셨어요. 우리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여러분들이 300명 안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분들이 우리 청년부가 양적, 질적으로 성장하는 300명이 됨에 있어서, 핵심과 같은, 생명력 있는 씨앗과 같은 여러분되기를 소망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의 교훈을 기억하며, 우리의 실제 믿음의 영역에서는 모두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자 되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