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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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시 71: 1-16 구약 p.852
1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가 영원히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소서
2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 주시며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
3 주는 내가 항상 피하여 숨을 바위가 되소서 주께서 나를 구원하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이심이니이다
4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악인의 손 곧 불의한 자와 흉악한 자의 장중에서 피하게 하소서
5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내가 어릴 때부터 신뢰한 이시라
6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으며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 나를 택하셨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7 나는 무리에게 이상한 징조 같이 되었사오나 주는 나의 견고한 피난처시오니
8 주를 찬송함과 주께 영광 돌림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리이다
9 늙을 때에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나를 떠나지 마소서
10 내 원수들이 내게 대하여 말하며 내 영혼을 엿보는 자들이 서로 꾀하여
11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은즉 따라 잡으라 건질 자가 없다 하오니
12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 하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13 내 영혼을 대적하는 자들이 수치와 멸망을 당하게 하시며 나를 모해하려 하는 자들에게는 욕과 수욕이 덮이게 하소서
14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
15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공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
16 내가 주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을 가지고 오겠사오며 주의 공의만 전하겠나이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자란 교회는 시내 번화가에 있었습니다.
교회는 큰 길에 있었지만
옆으로 난 골목은 으슥하고 사람들 눈에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4-5 학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머리가 짧은 중학생 쯤으로 보이는 형들 두명이 어깨로 쓰윽
저를 골목으로 밀어넣는 것이었습니다. 위기였습니다.
잘못하면 돈을 뺏긴다거나 구타를 당하게 되는 피해를 입을 상황이었습니다.
마침 교회 옆에 쪽문이 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거기로 얼른 피해서 들어갔습니다.
그랬더니 그 형들은 투덜대며 그냥 가버리더라구요
그 때 문이 닫혀있었거나 문이 없었다면 분명 저는 피해를 입었을 것입니다.
그 쪽문이 저의 피난처가 되어주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인도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인생의 위기 가운데 있음이 분명합니다.
본문 1절, 3절, 4절, 7절을 보니까 ‘주께로 피하겠다’는 고백이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환난과 곤경에 처할 때마다 주님을 피난처로 삼겠다는 고백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그의 도움이 되시고 피난처 되실 것을 아주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과 같이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또는 “여호와여 나를 도우소서”와 같이 이렇게 시작되는 시편을 ‘탄식시’라고 합니다.
이러한 시편이 시편 전체 150(백오십)편 중에서 36(서른여섯)편이나 있습니다.
이러한 시편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상황을 하나님께 하소연하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마지막으로 가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마칩니다.
시인이 자신의 상황을 바라볼 때 한숨만 나오지만,
거기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지금의 상황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습니다.
2020년 1월 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질병이 끝날 것 같으면서도 끝나지 않고,
잦아들만 하다가도 다시 번져 확산되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더라구요.
고난이 찾아오면 이내 끝난 듯하다가도 또 다시 고난이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마다 우리는 좌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불평하며 낙심하기도 합니다.
시인은 오늘 말씀을 통해 그런 우리에게도 소망이 있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4절에 시인은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고난과 고통이 있지만 그로 인해 절망하지 않는다 말합니다.
오히려 소망이 있다 말합니다.
그 소망으로 더욱더욱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 말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소망의 이유를 찾으시고 함께 주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3절
주는 내가 항상 피하여 숨을 바위가 되소서
주께서 나를 구원하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이심이니이다
여기서 시인이 말한 '바위'는 '견고함', '변함 없음’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피하여 숨을 바위'란 인생 내내 결코 변하지 않는 안전한 피난처를 의미합니다.
결국 이 시인의 호소 속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반드시 보호하신다는 굳은 신뢰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의지하는 자에게 결코 변하지 않는 안전한 피난처가 되십니다.
다윗은 누구보다도 이것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오늘 시편71편을 학자들은 다윗의 시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71편 앞의 70편과도 이어지는 부분이 있고
71편의 문체가 다윗의 고백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참으로 험난한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그는 사무엘로부터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이후
단 한순간도 평탄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는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다윗이 백성들에게 인기가 높아지자
시기심에 휩싸인 사울왕은 틈만나면 다윗을 죽이려 했습니다.
자신의 왕권이 빼앗길까봐 두려웠던 것 입니다.
다윗은 그러한 사울의 위협을 피하여 광야로 도망하기도 하고
미친 사람처럼 행세하기도 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여러번 결정적 위기로 몰아 넣기는 하였지만
그의 생명을 해하지는 못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친히 보호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윗은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었다고 해서 평안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는 왕이 된 후에도 대내외적으로 끊임없이 대적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대적들은 다윗을 궁지에 몰아 넣기는 하였어도 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위기 가운데 있었지만 늘 안전하게 보존되었습니다.
이 역시 하나님이 그를 안전하게 지키신 결과였습니다.
시편 18:2에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를 건지시는 자’, '나의 하나님', '나의 피할 바위',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뿔', '나의 산성'으로 고백합니다.
다윗은 그의 파란만장한 고난의 세월 속에서, 특별히 양을 치는 들판에서 그리고 전쟁터 속에서 적의 화살과 들짐승들의 공격을 피하면서 반석되시고 요새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다윗이 의지하는 하나님은 다윗이 그 치열했던 삶속에서 만난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면서, 막연한 하나님이 아니라
1:1의 구체적이고 정말 개인적인 만남 속에 찾아오신
하나님을 알게 되고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나의 ' 혹은 '나를 '이라는 의미의 일인칭으로 표현하게 되는 것 입니다.
오늘 본문 3절 하반절에 시인도
“주께서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이심이니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이러한 고백은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되 그분을 어떤 다른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닌
바로 나의 하나님이시요, 또한 나의 구원자이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입은 것은
그리스도를 어떤 다른 사람의 그리스도가 아닌
나의 구주로 영접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요 1:12).
예수 그리스도는 그 이름을 믿는 모든 자의 구주이십니다.
그러나 그 모든 사람들도 사실은 그리스도와의 일대일의 인격적인 만남 속에서
그분을 자기의 하나님, 자기의 구주로 고백하는데서부터
신앙의 기초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믿음으로가 아닙니다.
잘 믿는 아내나 남편이나 가족 , 친구의 믿음이 아닙니다.
내가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와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믿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사
도움과 은혜를 우리들의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둘째, 내 삶의 의미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5, 6절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내가 어릴 때부터 신뢰한 이시라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으며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 나를 택하셨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먼저 시인은 5절에 ‘주 여호와여’ ‘아도나이’ 라고 고백합니다.
원어적으로도 그렇고 이것은 시인이 하나님의 주되심을 고백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내 삶의 주인이시며 나는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은 나를 보호하시고 지키십니다.’ 라는 의미가 ‘주 여호와여’ 이 고백 속에 담겨 있습니다.
시인은 자기가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의지했다고 고백했는데
이것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켜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기기 전부터, 자의식이 없었던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서 자기를 붙들고 계셨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내 삶의 모든 의미는,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는
우리 자신의 공로와 전혀 상관없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존재하게 되었고, 또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 가운데 태어났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사실을 말해줍니다.
바로
하나님은 우리 삶의 중요한 원인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이 존재합니다.
여러분 인과의 법칙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보편적인 법칙 중의 하나입니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라는 속담도 있듯이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원인없이 생겨난 존재는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 뭐 있나?
느끼는 대로, 마음 가는대로 살라 합니다.
하고 싶은거 하세요
우리시대 그 마음을 한단어로 표현 한 것이 욜로(YOLO , You only live once) 라는 말입니다.
인생은 한번 뿐이니, 하고 싶은거 하면서 살라는 말입니다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도 같은 의미입니다.
현재를 좌절하게 만든 이 상황을 극복 할 수는 없고
아무리 노력해도 미래를 기대할 수도 없으니
지친 마음이 일단 현재로 부터 위로를 받고 싶어 발버둥 치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가 있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에 위로받곤 합니다
전인권 씨도 부르고, 이적 씨도 불렀던 “걱정말아요 그대”라는 곡입니다.
유명한 노래라 다 아실 거에요.
이 곡의 가사를 한번 보겠습니다.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 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에 깊이 묻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 하세요
후회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그대는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
새로움을 잃어 버렸죠
그대 슬픈 얘기들 모두 그대여
그대 탓으로 훌훌 털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우리 삶에 슬프고 힘든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라고 합니다.
꿈 잘꾸었다고 말하며 그런 의미 정도만 있으면 되는 거라고 위로합니다.
제가 이 노래가 비성경적이니 듣지 마세요 부르지마세요 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우리 실상이 이렇습니다. 우리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생에 어려운 일들이 벌어졌을 때 굳이 의미를 찾지말고 그냥 노래로 덮자 합니다.
우리 인생의 의미를 찾지못하고 슬퍼하고 있을 때도 노래로 덮자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사람들은 인생 뭐 있나 말하지만
하나님 앞에 우리 인생은 인생 뭐있다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의미있게 태어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발견되는 것입니다.
존재의 가치는 그를 위해 치러진 값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산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믿음은 그리스도의 희생과 수고로 이루어 졌습니다
하나님이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이미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을 작정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불러주시며
죗값을 대신 치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내 모든 의미가 사라질 뻔한 나의 잘못된 선택, 죄의 대가,
하나님을 거부한 대가들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나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의 존재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로 여기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소망없는 내 삶에 새 의미를 부여해 주셨습니다.
내 삶의 의미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발견된 내 삶의 의미를 통해 소망을 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은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15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공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공의와 구원을 ‘측량할 수 없는’ 것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공의와 구원이 무엇입니까?
먼저 공의는 선한 자들을 자유케하고 변호해주시며 보상해주시는 의입니다.
반대로 악을 행한 자에게는 벌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 입니다.
그리고 전적인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인간의 힘이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를 행하기에는 전적으로 무능한 존재입니다.
오직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으로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랑할 것이 있다면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뿐입니다.
시인은 이 놀라운 은혜를 ‘측량할 수 없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야곱은 비열하고 저급한 사람이었습니다.
형 에서가 가장 연약해진 순간 팥죽으로 장자권을 가로채버렸습니다.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그 이름은 발뒤꿈치를 잡는 자라고 불리웠습니다. 그런 야곱을 하나님은 떠나지 않으시고 지키시고 인도하셨습니다.
야곱은 속이고 빼앗고 가로채고 욕망을 따라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붙잡고 계셨습니다.
삶의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보여주셨고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얍복강 나루터에서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빚어가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때로는 시험에 들고, 때때로 하나님을 의심하고 불신하기도합니다.
때로는 내 욕심따라 살고,
변덕스러운 선택과 결정으로 가득한 것이 바로 우리의 삶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그리고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함께 해주십니다.
바로 그 사랑이 우리로 살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 은혜로 하나님은 우리를 빚어가십니다.
제가 최근에 시편 말씀을 묵상하다 가사를 하나 쓰게 되었습니다.
나를 택하시고 부르신 아버지 은혜
오늘도 나를 빚어가시길 기도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자녀라 하시고
부족하고 연약해도 사랑한다 하시니
주의 사랑이 날 빚어 가십니다
나를 떠나지 않으시고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
주의 사랑이 날 빚어 가십니다
이 가사에 우리 교회 청년이 곡을 붙여주었습니다.
제목은 날 빚어가십니다. 입니다.
은혜 날 택하시고 부르신 우리 아버지 은혜
오늘도 기도합니다 나를 빚어가시길 기도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주님의 자녀 삼아주시고
부족하고 연약한 나에게 사랑한다고 주님 말씀하시네
나를 떠나지 않는 주님의 사랑이
나를 빚고 빚어 가십니다
나를 지켜주시는 주님의 품 안에서
빚어 가십니다 그 사랑으로
오늘도 기도합니다 나를 빚어가시길 기도합니다
제가 이 찬양 들려 드리겠습니다. (영상 mr)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 때 흙 덩어리에서 유용한 그릇으로 쓰임받게 되기까지
만지고 다듬고 하면서 빚어갑니다.
이렇게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돌보시고 만들어가시고 빚어가셔서
하나님 앞에 영화롭게 되기까지 이끌어가십니다.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는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빚고 빚어가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지켜주시는 주님의 품 안에서 그 사랑으로 저와 여러분을 빚어가실 것입니다.
여러분 거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측량할 수 없는 은혜로 우릴 빚어가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를 빚어가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전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우리 삶 특별히 영적인 삶이 많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익숙해져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자신도 모르게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면
우리 삶을 깨워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 해야 하는 것은 바이러스보다 하나님의 임재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무서워 해야 하는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도 환경오염도, 대기 오염도 아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오염되는 것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다시 하나님의 임재로 나아갈 때입니다.
위기입니다. 이 질병이 언제 사라질지 그리고 내게 닥친 고난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장담할수도 알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인은 지금 도무지 소망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입술에 도저히 찬송이 흘러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14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자신의 현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처할 위기에서 구원하실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과거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이 피할 바위와 구원의 반석이 되신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 앞에 나아갑시다
하나님은 소망없는 나의 삶에 새 의미를 주시고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님께 피하겠습니다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님을 의지하겠습니다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님을 더더욱 찬양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절망적인 상황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으로 인해 소망을 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어느 누구의 하나님이 아닌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할 때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발견된 내 삶의 의미가 우리에게 소망이 됩니다.
측량할 수 없는 은혜로 우릴 빚어가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그 소망으로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소망과 찬송이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그들도 함께 소망과 찬양을 올려드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함께 찬양 하겠습니다.
<예수 늘 함께 하시네>
📷
이시간 함께 기도합시다
내 삶에 있는 고난으로 낙심하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하게 하시고
하나님으로부터 내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하시고
측량할 수 없는 은혜로 우릴 빚어가 주시옵소서
그 소망으로 우리 입술에 찬양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한 목소리로 기도합시다.
기도>
우릴 택하시고 부르신 우리 아버지 은혜를 찬양합니다.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온 주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하게 하시고
하나님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하시고
측량할 수 없는 은혜로 우릴 빚어가 주시옵소서
그 소망으로 우리 입술에 찬양을 회복시켜 주시고
그 소망을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축도>
이제는
우리를 빚어가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우리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과 성령님의 함께하심이
이 시간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님께 피하며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을 더더욱 찬양하기 원하는
모든 성도들 머리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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