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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안에서 성장하기

유다서 17–23 NKRV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사랑합니다! 드림인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지난 주에 여러분과 추수감사절을 지내면서 감사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감사가 회복 되었는가? 아니면 여전히 불평과 살아가는 모든 순간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우리가 만약 작은 일상에도 감사하지 않는다면 기쁨으로 살아갈 수 없음을 기억하시라. 또한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방법은 오직 모든 일, 작고 사소한 일에도 감사하는 삶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계속해서 기도하겠다.
여러분은 영화 ‘암살’을 아는가? 그 영화를 보게 되면 일제강점기의 시대 배경으로 시작된다. 주인공의 미션은 1933년 친일파를 제거하기 위해 조직을 형성하였다. 거기서 수많은 친일파를 제거하기 위해서 여러 작전을 펼쳤으나 실패로 돌아간 것이 많았다. 그 중에 이완용을 죽이는 것 또한 실패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동료인 줄 알았던 염석진(이정재)이 중간에 마음을 바꾸어 친일파를 죽이려는 자신의 동료들을 죽이려고 마음을 먹고 많은 싸움과 함께 동료들이 죽게 되었다. 김구 선생도 이러한 일을 알고 염석진이 밀정이라면 바로 죽이라고 명령한다. 그렇게 광복이 찾아오고, 재판소에서 염석진은 오히려 자신이 독립운동가라며, 친일을 하기 전 자신의 총알 맞았던 흉터를 보여주며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게 되고, 나라에서 극진히 대접해주려고 했다. 그렇게 골목을 걷던 중 자신이 죽인 줄 알았던 동료가 눈 앞에 총구를 들고 나타난 것이다. 그때 대사가 지금도 뇌리에 박힌다. “동지를 왜 팔았나?”, “몰랐으니까,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냐?”이처럼 수많은 한국의 친일파도 독립이 올 것이라고 상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만큼 일본이 강력하게 전세계적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었고, 한국은 견줄 수 없는 약소국가였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의 저자는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가 아니다. 예수님의 친동생 유다이다. 오늘 17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고 시작한다. 이 말씀의 이야기는 단순히 어떤 사건이 있었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명심하고 마음에 새기라는 것이다. 마치 전쟁 영화에서 “이것은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너가 살아!”라고 이야기할 때, 그것을 끝까지 주인공이 지켜서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고 할 때, 보여주면 사는 것처럼 우리가 놓치지 말고 반드시 가지고 붙들며 살아 가야하는 말씀인 것이다.
유다서 18 NKRV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여기서 보면 마지막 때, 종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아시는가? 이미 종말이 시작되었다는 것 말이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시면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한 때부터 종말은 시작되었다. 그 때를 알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아무도 없다. 심지어 예수님 조차도 모르신다. 오직 하나님만 세상의 끝날을 아신다. 여러분 여기에서 ‘정욕’이라는 단어의 뜻이 무엇인가? 삶의 기준이 나의 마음대로, 감정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유명 개그맨의 블랙코미디, 강연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그가 말하기를 너 마음대로 살라는 것이다. 화나면 무조건 화를 내고, 욕하고 싶으면 거침없이 욕을 하라는 이야기다.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하지말라는 것이다. 아무 것도 안하는 당신이 존재가 무가치하냐고 자연스럽게 게으른 사람에 대하여 위로라고 하면서 인생에 아무런 발전이 없는 이야기를 한다. 또 어떤 대단한 세상의 성공을 이룬 인물을 닮아가라고, 그들의 교훈을 잘 들으라는 이야기와 혹은 배울 점이 없는 사람에게 반면교사 삼아서 그것을 롤모델 삼으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현재 수많은 컨텐츠와 여러 강연을 듣기 쉬운 SNS와 유튜브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오늘 유다는 이러한 여러 교훈이 넘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누구의 음성을 듣고 가는지 물어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에 수많은 이단들은 무엇으로 우리를 속이고 넘어뜨리려고 하는가? 구원에 대한 이야기와 종말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그들은 우리를 속이고 미혹되게 만든다. 14만 4천명이 수료하면 종말이 오는가? 예수님의 재림은 몇 번 오는 것인가? 구원은 예수님을 믿으면 좋지만, 착한 일을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이때 유다가 이 편지를 쓸 당시에는 절대 예수님은 다시 오시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만연했다. 현대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오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러분들에게 정확하게 짚어드리도록 하겠다. 우리의 삶의 기준은 나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 되어야한다. 우리의 삶의 롤모델은 세상의 성공을 이룬 사람이 아니라, 반면 교사도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처럼 완벽한 인간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여러분의 각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음을 기억하라. 주님을 따르는 자는 절대로 실망할 일이 없을 것이다. 꼭 붙들고 살아가길 소망한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14만 4천 명의 숫자의 의미는 구약의 대표성을 띄는 12지파와 신약의 대표성을 띄는 12제자를 곱하면 144이다. 이것은 구약과 신약의 성도를 뜻한다. 144에 무한의 의미를 가진 1000을 곱하면 몇인가? 14만 4천이다. 이것은 곧 구약과 신약,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까지의 모든 성도들을 포함한 숫자이다. 우리가 숫자 7를 보면 무엇을 떠올리는가? 행운의 숫자, 럭키 세븐을 생각한다. 이처럼 요한계시록에서 당시 성도들이 14만 4천을 보고 모든 성도를 떠올리는 것으로 의미를 생각한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은 몇 번이 있는가? 두번도 아니고 세번 오직 딱 한번의 재림이 있다. 많은 이단들이 이걸로 말장난을 하는 것이다. 많은 교주가 이미 이 땅에 왔는데, 그러면 새하늘과 새땅으로 새로워져야하는데, 왜 여전히 악이 존재하는가? 거짓, 즉 가짜인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하시면 완전한 아픔과 고통과 슬픔이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즐거움과 기쁨만 존재하며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새 하늘과 새 땅, 신천신지가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 여호와 증인, 통일교, 신천지, 구원파 또 최근에 경화여고에도 임마누엘서울 교회를 다니는 친구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 교회도 류광수 다락방이라고 하여 모든 죄는 사탄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곳이다. 죄는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는가? 사탄이 아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에 말씀에 불순종으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뱀, 곧 사탄은 유혹을 했을 뿐이지 억지로 죄를 짓게 한 것이 아닌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교만함으로 죄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 때에 이러한 이단들이 우리를 영원한 죽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온갖 거짓 가르침으로 학교, 교회, 사회에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세상에서 어떻게 구별하며 미혹으로부터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첫 번째로 경건의 삶에 목숨을 걸어야한다. 경건의 반대말은 무엇인가? 불신앙이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경건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큐티, 말씀 생활, 기도 생활, 예배 생활을 날마다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은 삶, 기도가 없는 삶은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가 호감이 있는 사람이 생기면 열심히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어떤 사람인지 찾아보는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말씀을 읽고 싶어지고 알고 싶어지는 것이다. 성경을 읽어보면 구원받지 못한 백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없고,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왜냐하면 삶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니라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유20-21
유다서 20–21 NKRV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는지를 먼저 점검해야한다. 우리가 경건 생활을 해야 구원을 얻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경건생활을 하고자 하는 갈망이 생긴다. 우리가 예배 드리기 싫어하거나, 말씀 읽기 싫거나, 기도하기 싫은 마음이 있는 것은 확실한 우리가 죄인이라는 증거이다. 어두움은 빛을 싫어하는 것처럼, 죄인된 삶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이 너무나 싫은 것이다. 혹여 우리 가운데 그러한 마음이 있다면 주님께 용서를 구하며 경건생활의 삶으로 살아가기를 목숨걸기를 소망한다.
두 번째로 예수님이 다시 오심을 의심하거나 신앙이 흔들리고 있는 사람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보통은 무언가 교회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 예수님은 가짜라고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우리를 신앙을 가지지 못하게 방해하는 사람들, 술 안 먹는다고, 조상에게 절도 안하고 제사 안한다고 욕하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에 화가 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화낼 것이 아니라, 너무 안타까운 것이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억만장자의 아들인데 평범한 누군가가 와서 나의 인생을 불쌍히 여기면 화가 날 것 같은가 아니면 재밌는 상황인가? 우리는 억만장자 그 이상으로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날마다 기억하며 살아가길 소망한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우리는 어떤 누구도 돈으로도 절대 가질 수 없는 것을 소유했다. 영생이다. 성도의 삶은 어떠한 삶인가?
고린도후서 6:9–10 NKRV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그리스도인의 모습, 성도의 모습은 아무 것도 없는 자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을 가진 자들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나에겐 날마다 이 사실이 기쁨을 주는 이유이다. 그래서 주님 다시 오실 날을 가슴벅차게 설레어 하며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영원한 죽음을 향하여 가는 사람을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해야 한다. 사실 이것은 쉽지 않을 일이다. 왜냐하면 생명의 길로 가자고 할 때, 좋아하는 사람보다 싫어할 사람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되려 우리를 조롱하고, 이유없이 싫어할 수 있다. 그들을 정말 안타깝게 여기며 그 사람을 미워하지말고, 그 사람을 영원한 지옥불로 이끌어가는 죄를 미워하여 그들에게 지금도 살아있는 복음 전하고, 그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해야한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면 전할수록 무엇을 모르는지에 대해 알게되기 때문에, 공부하게 되고, 전하면 전할수록 우리는 내 안에 복음에 대한 확신이 가득차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날마다 경건생활을 목숨걸고, 믿음이 없는 자를 연약하게 여기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유혹이 가득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란다.
오늘의 말씀의 제목은 ‘EXIT’이다. 뜻이 무엇인가? 탈출구, 비상구이다. [조명을 완전히 꺼버린다] 깜깜한 어두운 계단을 걸을 때 어떤 빛만 보이는가? 그렇다. 우리 말씀제목, 썸네일에 등장하는 저 초록빛이 보일 것이다. 만약 비상상황, 화재가 발생하면 우리는 무엇을 따라가야하는가? 초록색 비상등을 보고 탈출구를 찾아야한다. 그러나 저 비상구에 대한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자신만의 방법을 찾다가 결국은 가스에, 화재에 그대로 당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의미를 알았다고 화재현장에서 살 수 있는가? 아니다.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기숙사는 의무적으로 소방훈련을 학기마다 진행하는 것이 의무이다. 훈련되지 않으면 불 속에 삼켜질 것이다. 소방관도 마찬가지이다. 훈련이 없으면 화재를 진압은 커녕 본인의 생명도 위태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훈련이라는 것은 우리를 귀찮게 하는 것이 아닌 우리를 살리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다. 말씀으로 훈련이 없으면 우리는 주님의 때가 임박할 때 우왕좌왕하거나 오신지도 모르고 그대로 영원한 죽음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제자훈련, 경건생활에 목숨거는 것은 어떤가? 하나님의 때가 임박할 때 불 속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이 시대 가운데 불은 무엇인가? 세상의 쾌락, 음란, 술취함, 방탕함이다. 그것으로부터 우리가 탈출하여 세상 끝날 영원한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한다. 주님의 때가 임박하여 가까이 왔음을 기억하라.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때에 오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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