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본)성실한 일꾼인 디모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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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디모데(Τιμόθεος, 티모테오스). 루스드라 출신으로 바울의 동행. 3대 그리스도인. 그의 이름은 두 헬라어 단어의 조합이다:τιμή(티메) “명예, 위엄”을 의미하고θεός(테오스), “하나님”을 의미. 디모데는 유대인 어머니와 헬라인 아버지 사이에 아들이었다(행 16:1–2).

역사

디모데의 모친은 유니게, 조모는 로이스로—둘 다 신자였다—디모데후서 1:5. 디모데는 모계 원칙에 따라 유대인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지만, 그의 무할례 상태는 (비교 행 16:3) 그의 양육과정이 율법의 엄격한 준수로 특징되지는 않았음을 암시한다(딤후 3:15).

선교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디모데를 택해 자신의 2차 전도 여행에 대동한다. 그는 자신의 훌륭한 성품으로 인해 선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행 16:2). 바울과 디모데의 사역 영역이 유대인들의 관습과 믿음에 크게 영향을 받았었고, 사람들은 디모데의 부친이 헬라인임을 알았기 때문에, 바울이 디모데를 온전한 유대인으로 소개하기 위해서는 그를 할례 받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행 16:3). 디모데에게는 그 의식에 온전해야 했다.

여러 바울 서신의 그에 대한 수차례 언급에서 보듯이, 디모데는 바울의 핵심 동료들 중에서도 중요한 일원이 되었다(고후 1:1; 빌 1:1; 골 1:1; 살전 1:1; 살후 1:1; 몬 1). 디모데는 바울의:

• “동역자” (롬 16:21; 살전 3:2)

• “형제” (고후 1:1; 골 1:1; 살전 3:2)

• “함께 하는-종” (빌 1:1)

• “주 안에서 사랑받고 신실한 자녀” (고전 4:17)

• “아들” (딤전 1:2; 딤후 1:2)

• 주의 일에 동등한 자 (고전 16:10; 살전 3:2)

디모데전후서는 젊은 목사, 디모데에게 그의 멘토 바울이 보낸 편지다. 바울은 그의 목회 사역을 격려한다. 디모데전서는 디모데가 에베소에 있을 때 기록되었다. 에베소 교회에 만연한 거짓 가르침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거기 머물며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 것”을 권한다(딤전 1:3 NIV; 비교 4:1). 디모데는 또한 자격요건을 갖춘 장로들과 집사들을 선출해 교회를 감독하게 하는 임무를 받는다(딤전 3). 이들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부여한 임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거짓 가르침에서 교회를 지키는 임무를 받게 될 것이다. 디모데가 받는 권면은:

• 모든 신자들에게 탁월한 본이 되어야 한다 (딤전 4:12)

•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

•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선포하고 바울이 부탁한 것을 지켜야 한다 (딤전 6:20)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로마의 보호관찰에 있을 당시 보낸 것으로 긴박성을 특징으로 한다 (딤후 1:8). 디모데에게 주는 바울의 권면은 풍성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격려한다:

• 바울이 안수함으로 그에게 확증된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해야 한다 (딤후 1:6).

•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을 위해” 고난 받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켜야” 한다 (딤후 1:8, 13; 비교 딤후 2:3).

• 그가 배운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게 해야 한다 (딤후 2:2).

•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이해하고, 해석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자로서 하나님께 인정 받는 삶을 부지런히 추구해야 한다 (딤후 2:15).

• 사람들이 그를 듣지 않거나 바른 교훈을 듣지 않는 때가 곧 오기 때문에 모든 기회마다 말씀을 전해야 한다.

디모데전후서는 디모데가 다소 소심하고 그리스도의 사역자 역할을 지속하길 주저한다는 인상을 준다. 이러한 주저함 때문에 바울은 그에게 편지를 써 격려하고 “직무를 완수하라” 권한다(딤후 4:5). 바울은 곧 복음으로 인해 순교할 것이기 때문에, 그는 디모데가 계속 인내하고 믿음의 싸움을 싸우길 소망한다.

디모데에 관한 마지막 언급은 디모데가 로마의 수감에서 풀려난 것을 언질한 히브리서 13:23에 있다. 이 디모데에 관한 정확한 신원은 알려지지 않는다. 그는 바울의 서신들 속에 언급되는 디모데일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디모데는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갖길 바랬던 물품들을 전달하다가 수감되었던 것일 수도 있다(딤후 4:13).

할렐루야. 오늘도 사랑부 예배에 나오신 성도님들, 선생님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우리 앞뒤 옆 사람과 이렇게 인사해 봅시다.
“기도 응답 많이 받으세요.”

본론

그런데 이번 장의 본문은 전체 흐름과 다소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디모데와 병이 들었다가 회복한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 성도에게 보내기를 원한다는 내용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전체 흐름과 관계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기독교와 복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을 잘 담은 본문입니다....
"사랑을 더 풍성하게 하라" 중에서
화종부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에서 연단은 ‘도키메’이다. 동전의 함량을 재어 판정한다는 뜻이다. 시련을 통하여 인격이 성숙되는 과정을 말할 수 있는데 이 단어가 당시의 에클레시아에서 공직자 후보를 검증한다는 의미로도 쓰였다. 오늘날의 인사 청문회를 상상해 볼 수 있다. 본문이 디모데에 대한 추천이라는 점, 특히 사적 추천이 아니라 에클레시아라는 공적기관에의 추천이라는 점에서 ‘이미 검증을 통과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디모데는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개척할 때 함께한 멤버입니다. 누구보다 빌립보 교회를 가장 잘 압니다. 그래서 빌립보 성도를 바울과 똑같은 마음으로 생각하고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 디모데라고 소개하는 것입니다. 이 디모데를 누구와 비교하고 있습니까?

“바란다. 희망하고 있다”라는 말을 두 번이나 쓴 것(19, 21절), 그것도 “속히”라는 말로 강조한 것은 디모데에 대한 빌립보 공동체의 인정을 보여 준다. 말하자면 디모데를 보낸다면 굳이 추천이 필요 없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그를 보내지 않거나, 보내는 것이 늦어진다면 양해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빌 2:21-22).
22절에서 바울이 디모데에 대해 뭐라고 말합니까?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연단’은 시험을 통해 검증된 성품이라는 뜻입니다. 디모데는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의 시험 과정을 통과해서 검증된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어쩌다 한 번 그런 것이 아니라, 귀한 복음의 원리를 따라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인생의 참된 본분인 줄 알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이웃의 복지와 유익을 자기 일보다 더 우선적이고 중요하게 여기며 사는 사람이 디모데였습니다. 디모데의 삶은 이미 검증되고 입증되고, 충분히 많은 사람이 보고 증언하는 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자기의 일을 구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의 핵심은 이런 세상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이웃의 복지를 우선으로 여기며 사는 것입니다...
"사랑을 더 풍성하게 하라" 중에서
화종부
22절에서 ‘수고하였다’는 너무 약한 번역입니다. 이 단어가 원래 가진 강세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습니다. 이 단어를 ‘종노릇하였다’로 번역하면 더 정확한 번역이 됩니다....
"사랑을 더 풍성하게 하라" 중에서
화종부

디모데가 바울을 위해 “수고했다”(둘로오, 22절)는 표현은 ‘종노릇하다’, ‘노예로서 섬긴다’는 뜻이다. 이 역시 “자기를 비워 종(둘로스)의 형체를 가지신”(2:7) 그리스도의 모범을 연상시키는 의도적인 단어 선택이다. 바울은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둘로오)”(갈 5:13)라고 권면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진정한 자유인이다. 진정한 자유인이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종노릇할 수 있다. 강요된 섬김은 노예적이다. 거기에는 기쁨이 있을 수 없다. 바울 스스로 성도들을 위하여 종과 같이 되었지만, 그 삶에서 큰 기쁨을 고백하고 있다(고전 9:19). 그것이 그리스도의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기쁨을 채워 주신다. 그 기쁨이 그 길을 계속 갈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종처럼 섬기면서도 기쁠 수 있다면 그 기쁨은 우리가 자유인이라는 내적 확신이 된다. 종노릇으로서의 섬김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제대로 누리는 길이다.

사람들이 주의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순간이 오면 자신의 작은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너무나 쉽게 저버리고, 실효를 좇아 세상과 야합하고 타협하는 것을 주변에서 많이 봅니다. 그러나 디모데는 그런 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종노릇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종이 되고 낮아지고 희생하기를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인물인 것입니다....
"사랑을 더 풍성하게 하라" 중에서
화종부
하나님을 정말 영화롭게 하는 삶의 방식은 무엇입니까? 모두가 자기의 일을 구하는 이 시대에 옆에 있는 이웃의 복지와 유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성도를 향한 주님의 보편적인 요구입니다. 디모데가 그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 성도를 바울과 똑같은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복음을 위해 종노릇하기를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바울이 마음에 품은 소원을 위해 그 먼 빌립보까지 자발적으로 가서 바울의 마음을 담아 빌립보 성도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 디모데의 모습입니다....
"사랑을 더 풍성하게 하라" 중에서
화종부

빌립보 교인들의 사정, 바울의 사정이라는 두 축을 연결하는 기능을 디모데가 담당한다.

디모데를 보내는 목적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었다. 이 번역에는 주어가 생략되어 있지만, 원어에는 “나도”가 있다. 대부분의 영어성경에는 이 어구가 반영되어 있다. “so that I too may be cheered by news of you”(ESV)에는 디모데의 방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도 위로가 될 것이라는 말이 전제되어 있다. 그는 “너희 사정”(타 페리 휘몬), 곧 빌립보 교인들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자이고, 또 “나의 사정”(타 페리 에메, 개역개정 “나의 일”) 곧 바울의 사정도 진실히 돌볼 사람이었다.

결론

우리의 삶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바르고 건강한 염려와 걱정을 갖고 사는지 한번 보십시오. 우리와 함께하는 사랑하는 교우들의 삶에 대한 염려가 마음속에 있습니까? 그들의 복지와 유익을 위한 건강한 염려를 갖고 있습니까?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체를 일궈 가고 있는데, 남이야 어떻게 되든 아무 관심도 없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남이야 어떻게 되든 아무 관심이 없고, 내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만 맺으면 되는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자리에 있는지, 아닌지를 무엇이 보여 줍니까? 이웃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보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른지, 그렇지 않은지가 드러납니다. 아무리 신령한 체험을 하고, 하늘이 쪼개지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눈으로 봤다고 해도 이웃을 대하는 자세를 보면 그 체험의 진정성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웃의 복지와 유익에 대한 건강한 염려와 걱정이 없다면, 우리는 신앙생활의 대부분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
"사랑을 더 풍성하게 하라" 중에서
화종부
에바브로디도의 자기희생
두 번째로 나오는 인물은 에바브로디도입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에 대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된 자이고, 복음을 위해 함께 수고하는 동료 사역자이며, 그리스도의 대적들과 싸우는 군사 된 자이고, 빌립보 교회가 자신들을 대신하여 바울을 섬기도록 보내어 바울의 쓸 것을 돕는 자라고 소개합니다. 그런데 그를 소개하면서 특정 부분을 부각해서 보이고 있습니다.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빌 2:26).
병이 든 사람은 에바브로디도입니다. 그런데 그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병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병들었음을 빌립보 교회가 들었다는 사실 때문에 근심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훌륭하게 살아갈 수 있지만, 병이 들고 몸이 약해지면 자동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의기소침하기 쉬운 것이 인생의 보편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에바브로디도는 병이 들었음에도 자신이 병든 것을 염려하지 않고, 자신이 병들었다는 사실을 빌립보 성도가 들은 것에 대해 근심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참 재미있는 책입니다. 성경을 보면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 6:25)....
"사랑을 더 풍성하게 하라" 중에서
화종부
염려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얼마나 많이 나옵니까? 빌립보서에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고 말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렇게 근심하는 사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믿음의 원리를 적용하고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걱정하고 염려하는 사람을 등장시킵니다. 그뿐 아니라 바울 자신도 염려합니다.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빌 2:27).
에바브로디도가 병들었기 때문에 바울도 근심합니다. 그리고 그가 병든 소문을 빌립보 교회가 들었기 때문에 근심하고 염려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어떻게 살까?” 하는 것은 염려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목자이시며 우리 삶의 참된 구주가 되시는 그분이 책임지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미래에 대한 염려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주님께 맡겨 놓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염려해야 합니까? 하나님 나라와 몸 된 교회와 이웃의 복지와 유익을 위한 근심은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더 풍성하게 하라" 중에서
화종부
너무나 많은 사람이 예수 믿고도 자기 일을 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구합니다. 생명을 드리면서까지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 내겠다고 결단하고, 어떤 대가 지불이나 수고나 고난이나 어려움이 있어도 믿음의 길을 충성되게 달려가려고 하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랑을 더 풍성하게 하라" 중에서
화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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