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없이 헌신한 구속사의 주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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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17:17) 그 때에 요나단과 아히마아스가 사람이 볼까 두려워하여 감히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에느로겔 가에 머물고 어떤 계집종은 저희에게 나와서 고하고 저희는 가서 다윗에게 고하더니
아히도벨은 지붕에 장막 치고 후궁들과 관계하라 이런 모략을 내놓았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천인공노할 일이죠. 압살롬은 기꺼이.
왜냐하면 그 당시 자기가 새로운 왕이라는 것을 선포하는 방법.
그래서 삼하 16:22에 후궁들과 관계를 가졌던 것입니다.
(삼하 16:22) 이에 사람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지붕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 앞에서 그 부친의 후궁들로 더불어 동침하니라

(1) 아히도벨의 모략 - 당장 다윗만 죽이겠다(삼하 17:1-3).

두 번째 모략을 묻자 아히도벨은 오늘 12000명을 준다면 다윗의 사람들은 흩어지게 하고 다윗만 죽이겠다.
그 말씀이 삼하 17:1-3에 기록

(2) 후새의 모략 - 전 이스라엘 군사를 다 모아서 한꺼번에 공격(삼하 17:11-13)

그 다음에 후새에게 너의 모략은 무엇이냐.
후새는 다윗의 도망갈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었죠.
그리고 한꺼번에 치는 게 낫습니다.
다윗만 죽이는 게 아니라 싸그리 다 죽여야 합니다.
이렇게 얘기할 때 속이 시원해서 후새의 모략 따르게 된 것입니다.
이제 후새는 자신의 모략을 얘기 했지만 혹시 아히도벨의 모략이 받아들여질 수도 있잖아요?
오늘 피곤하다고 강에서 자지 마시고 오늘 밤 당장 건너가십시오.
혹시 아히도벨의 모략 받아들여 급습할 수도 있고 다 몰살합니다. 정보를 알려준 것입니다.
만약 다윗이 정보를 듣지 못하고 건너지 못하고 잠을 잤다면 그 밤에 다윗과 따르는 사람들 몰살 당할 수 있는 위기였어요.
그 소식을 전해줄 때 후새는 왕궁에 있는데 빠져나올 수 없잖아요. 그래서 여러 경로를 통해서 그 소식이 전해진 겁니다.
오늘은 이렇게 앞장섰지만 이름도 없는 두 여자에 대해 은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예루살렘 성 안에서 성 밖으로 나온 어떤 계집종이 있었습니다.

(1) 후새는 '빨리 강을 건너라'고 먼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전달하였습니다.

(삼하 17:15-16) 15 이에 후새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이르되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여차여차히 모략을 베풀었고 나도 여차여차히 모략을 베풀었으니 16 이제 너희는 빨리 사람을 보내어 다윗에게 고하기를 오늘 밤에 광야 나룻터에서 자지 마시고 아무쪼록 건너가소서 하라 혹시 왕과 그 좇는 자들이 몰사할까 하노라 하니라
이에 두 제사장에게 이르되
(삼하 15:35)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이 너와 함께 거기 있지 아니하냐 네가 궁중에서 무엇을 듣든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고하라
이것은 이미 다윗이 지시한 거죠. 너는 궁중 안에서 무엇을 듣든지 중요한 것을 두 대제사장에게 전해주라
그런데 사독과 아비아달도 궁중에 있잖아요. 나가면 눈에 띌 거 아니에요?
그래서 사독과 아비아달도 밖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2) 사독과 아비아달은 자신들의 아들들인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에게 이 소식을 전해야 했습니다.

사독의 아들이 아히마아스, 아비아달의 아들이 요나단인데 그 두 아들에게 전해서 소식을 전하게 한 거죠.
(삼하 15:36) 저희의 두 아들 곧 사독의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요나단이 저희와 함께 거기 있나니 무릇 너희 듣는 것을 저희 편으로 내게 기별할지니라
이렇게 분명히 두 아들을 통해서 다윗에게 소식을 전하라 알려준 거예요.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긴 거죠.
사독과 아비아달은 들었는데 마침 두 아들이 성 바깥에 있는 거예요.
그러니 눈에 띄는데 두 대제사장이 나갈 수도 없고 난감한 거죠.
그 때 누군가 성밖으로 나가서 두 아들에게 전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사람을 찾다 찾다 못 찾아. 계집종 찾은 거야.
두 대제사장이 네가, 빨리 가서 다윗이 오늘 밤에 빨리 요단강 건너야 하는데 에느로겔 가면 우리 두 아들이 있다 가서 알려주라 사명을 준 거죠.

(3)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후새가 두 제사장에게 정보를 알려줄 때,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이 예루살렘 성밖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삼하 17:17) 그 때에 요나단과 아히마아스가 사람이 볼까 두려워하여 감히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에느로겔 가에 머물고 어떤 계집종은 저희에게 나와서 고하고 저희는 가서 다윗에게 고하더니
어떤 계집종이 에느로겔에 와서 두 아들에게 알려주고 두 아들은 다윗에게 알려준 거죠.
이 어떤 계집종이 없었다면
그렇다면

(4) "어떤 계집종" 은 어떤 여자였습니까?

첫째, 대제사장에게 인정을 받은 여자였습니다.

이름도 없는 계집종이지만 대제사장에게 인정을 받은 여자였어요. 그래서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이 중요한 비밀을 알려준 겁니다.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영원한 대제사장이라 말씀하고 있죠.
(히 6: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
그러면 우리도
인정받았으니까
알려주면 압살롬 한테 가서 다 비밀 대줄 사람한테는 절대 안 알려줄 거 아니에요?
이 계집종은 대제사장에게 인정받고 비밀을 알려줄 수 있는 여자.

둘째, 사명을 완수한 여자였습니다.

어떤 계집종은 대제사장들에게 들은 내용을 그 아들들에게 정확하게 잘 전달하는 사명을 완수하였습니다.
왜 에느로겔, 샘터로 이 여자가 갔습니까? 여자들이 물을 긷잖아요. 이 여자가 물 긷는 척 하고 성밖으로 나갔다가 정보 제공해주고 물 길러 성 밖으로 싹 온 거예요.
이것은 자기 목숨을 내놓지 않으면 어려운 일입니다.
이 계집종은 이 긴박한 상황 속에.
다윗 왕은 황급히 도망가고 압살롬에게 첩자 알려지면 당장 목이 달아나는데
이름도 없지만 이 계집종은 구속사의 주역이 되었던 거예요.
사랑하는 직분자 여러분 우리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구속사 말씀을 전세계 전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우리가 불법적으로 교회를 점거한 사람들에게 쫓겨나서 전전하지만 어제 강화도에서 구속사 세미나.
나사렛 교단, 천안에 나사렛 대학교 있잖아요. 지금 총회장 바로 전 직전 총회장이 와서 축사다고 하시고 강의 들었는데 그분이 점심시간에 그래요.
제가 오전 강의만 듣고 가려 그랬는데 너무 은혜 받아서 오후 강의까지 듣고 가야겠습니다.
다른 교단은요 총회장 되려면 돈 몇 억씩 써야 됩니다. 돈 아님 안 돼. 나사렛 교단은 돈 안 써요. 믿음, 신망있고 존경받는 분이 감독 총회장 되는 거죠.
그 고백이 우리나라가 전부 물질주의 인본주의 황금만능주의로 점점 교회 무너지는데 이 무너져가는 한국 교회 살릴 것은 구속사 말씀 운동. 앞으로 자기가 앞장서서 일하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여러분 우리가 할 일은 내 생명 바쳐서 구속사 말씀 전하는 거예요.
(행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 바울은 생명 내놓고. 오늘 우리도 우리의 생명 내놓고 구속사 말씀 전해야 합니다.
이 계집종도 생명 내놓고 두 대제사장에게 들은 정보, 전했지 않습니까?
우리도 이름도 빛도 없는 계집종이 되어야.
내가 얼마나 수고하고 힘든데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년 하나도 없잖아요. 이건 이름도 빛도 없는게 아니잖아요. 스스로 영광 받아버린 거예요.
존귀 영광은 주님 홀로 받으소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게 우리 고백이 되어야죠. 자기 목숨 내놓고 서슬 시퍼렇게 감시자 있는 상황이에요. 조금 있다 보세요 에느로겔 샘터에 제사장 두 아들이 있었잖아요. 그럼 벌써 이상하잖아. 얼씬 거려.
그걸 ㅜ가 봐서 압살롬 한테 밀고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이 여자가 정보를 전해준 것은요 자기 목숨 내놓은 거예요.
이렇게 목숨 내놓고 일하는 분들 있을 때 구속사가 전진이 되고 그분들이 주역이 되는 것입니다.
알아주지 않는다 말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주의 이름 축원
(행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을 숨겨준 바후림의 여인이 있었습니다.

(1) 한 소년이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을 보고 압살롬에게 밀고하였습니다.

한 소년, 밀고자죠. 한 소년이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을 보고 압살롬에게 밀고하였습니다. 아~ 압살롬 왕이여! 저 에느로겔 샘터에 두 대제사장 아들들 둘이 얼쩡거립니다. 그거 볼 때 분명히 무슨 일이 있습니다. 빨리 군사들 보내서 잡으라고 알려준 거예요.
(삼하 17:18上) 한 소년이 저희를 보고 압살롬에게 고한지라
이때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이 잡혔다고 생각해보세요.
알지 못해.
아 그래? 꾸미고 있구나. 오늘 밤에 쳐라 그럼 다윗 다 죽는 거예요. 참으로 다윗과 그를 따르는 자들이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긴박한 상황.

(2)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은 빨리 달려서 바후림에 있는 어떤 집의 우물 속으로 내려갔습니다.

(삼하 17:18下) ... 그 두 사람이 빨리 달려서 바후림 어떤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서 그 뜰에 있는 우물속으로 내려가니
우물 속으로 피신하였습니다.
그 아들들 둘이가 한 계집종 통해서 정보를 들었어요. 다윗에게 가려하는데 벌써 한 놈이 후다닥 뛰는 게 보이는 거야. 야 이거 들켰다. 빨리 가자.
다윗한테 가려면 바후림 지나야되거든요. 군사들 오는 것 같으니까 우물 속으로 숨은 거야. 그 당시 우물은 계단식으로 파고 들어가잖아요. 만약 잡혔다 꼼짝 없이 잡히는 거야. 우물 속 땅속에서 어디로 도망갈 거야? 꼼짝 없이 잡히는 거예요.

(3) 이때 어떤 집의 한 여인이 우물의 아구를 덮고 그 위에 찧은 곡식을 널었습니다.

이제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이 잡혀서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 직전이에요. 그런데 그 바후림 그 집의 여자가 얼마나 현명한지 몰라. 갑자기 두꺼운 널 것을 가져와서 우물을 삭 덮어버려. 곡식 찧은 것을 널어.
이스라엘 우물은 땅하고 평지잖아요. 그러니까 땅 위에 두꺼운 널 것을 가져와서 넌 다음에 곡식 찧은 것을 널었어. 보면 우물이라고 전혀 생각이 안 돼. 아, 땅 위에 널어놨구나 느끼게끔.
(삼하 17:19) 그 집 여인이 덮을 것을 가져다가 우물 아구를 덮고 찧은 곡식을 그 위에 널매 도무지 알지 못할러라
아무도 모르게 한 거예요. 지금 뭐 연속극 보는 것 같지 않아요? 얼마나 연속극이 재미있냐 말이죠.
군사들이 닥쳤어! 아, 아히마아스, 요나단 왔는데 시냇가로 갔습니다. 그 말 듣고 막 갔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지. 왜? 우물 속에 들어가있는데

(4) 압살롬의 부하들이 이 집에 찾아 왔을 때 한 여인은 그들이 시내를 건너갔다고 따돌렸습니다.

(삼하 17:20) 압살롬의 종들이 그 집에 와서 여인에게 묻되 아히마하스와 요나단이 어디 있느냐 여인이 가로되 그들이 시내를 건너가더라 하니 저희가 찾아도 만나지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니라

(5)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은 다윗을 만나서 그 날 밤에 빨리 요단강을 건너도록 후새의 메시지를 전달하였습니다.

(삼하 17:21) 저희가 간 후에 두 사람이 우물에서 올라와서 다윗 왕에게 이르러 고하여 가로되 당신들은 일어나 빨리 물을 건너가소서 아히도벨이 당신들을 해하려고 여차여차히 모략을 베풀었나이다
(삼하 17:22) 다윗이 일어나 모든 백성과 함께 요단을 건널새 새벽에 미쳐서 한 사람도 요단을 건너지 못한 자가 없었더라

(6) 다윗은 도망쳐 나올 때 바후림에서 시므이에게 모진 저주와 모욕을 받았습니다.

시므이는 사울 집안 사람이에요. 그러니 다윗에 대해서 원수같이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다윗에게 저주를 퍼붓는 거예요. 네가 왕이었는데 신발도 못신고 쫓겨났는데 니가 무슨 왕이냐.
우리 청년들 가운데 길거리 가다가 우리 목사님 만났는데 목사 님자도 안 해 이름 부르면서 야, 니가 명부 조작한 놈이냐? 청년이. 그게 말이 돼요 그게?
시므이가 다윗을 그렇게 저주하면서 돌까지 던졌어.
다윗이 참았잖아요. 우리 목사님도 끝까지 참았대. 참는게 잘하는 거지.
(삼하 16:5)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집 족속 하나가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저가 나오면서 연하여 저주하고
(삼하 16:6)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복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똑같은 바후림이라는 지역이잖아요. 그런데 시므이 한 사람은 다윗 반대 편에 섰어. 그런데 이름 없는 한 여자는 다윗 편에 서서 보호해준 거 아닙니까?
이렇게 구속사의 각 시점마다 분리되는 역사가 있습니다.
다윗 편에 서느냐 압살롬 편에 서느냐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 거예요.
시므이는 나중에 다윗이 돌아올 때 편인 것처럼 엎드렸잖아요.
솔로몬에게 너 절대 시므이 믿지 마라.
시므이에게 예루살렘에서 나오지 말라 그랬는데 자기 종 도망간 거 잡으려다 나왔잖아요.
브나야한테 죽었잖아요.
(왕상 2:46)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에게 명하매 저가 나가서 시므이를 쳐서 죽게 한지라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
시므이가 죽었는데 솔로몬의 나라가 견고해졌대.
그건 보이진 않지만 계속 솔로몬 왕 되지 못하도록 지원도 해주고 없는 말도 만들고 얼마나 방해했는지 알 수 있잖아요. 그런데 시므이가 죽으니까 솔로몬의 손에서
시므이 같은 사람은 반드시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바후림의 한 여자처럼 이름도 없어 빛도 없어. 그러나 자기가 발각되면 죽을 수밖에 없는데 목숨을 내놓고 다윗 편에 섰기 때문에 요단강 건너서 하나님의 구속사 이룰 수 있던 거예요.
나 알아주지 않는다 그런 거 신경쓰지 않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충성해서 아버지께 인정받는 모두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바후림의 우물은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하신 피난처였습니다.

바후림의 한 우물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피난처였죠.
한 여인과 남편이 그 우물을 팠죠. 그러나 하나님은 만세 전에 그 우물에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이 숨을 것 다 아시고 집사람들 통해서 파게 만드신 거예요.
그러므로 바후림의 한 우물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피난처였습니다.
바후림의 뜻은 청년이라는 뜻입니다.
'바후림'은 무슨 뜻입니까? '바후림'(בַּחֻרִים)은 ‘청년들’이란 뜻입니다
대제사장의 아들들 청년들이 자기들의 우물에 들어간 거예요.
바후림의 우물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피난처라는 것.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종말에 피난처를 마련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계속 쫓기다가 거기서 드디어 해방되어 지은 시가 삼하 22장이잖아요 22:3이잖아요.
(삼하 22:3)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흉악에서 구원하셨도다
(삼하 22:4)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우리도 찬송받으실 아버지께 간절히 아뢰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내 원수들의 손에서 우리를 건져주신다는 거예요.
다윗은 하나님만이 나의 피난처라고 고백하고 있잖아요.
바후림의 한 우물도 하나님이 예비하신 한 피난처였습니다.
그렇다면 후삼년 반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숨겨주시는 피난처가 있는 거죠. 계 12:14 보세요.
(계 12: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피하여. 뱀의 낯을 피하는 곳 아닙니까?
이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은 계 11:3-4에 나오는 두 증인의 그림자죠.
(계 11:3-4) 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4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두 증인이 말세 복음을 증거했듯이다윗에게 마지막에 살 수 있는 복음을 전하러 가는 것 아닙니까?
오늘날 우리도 구속사를 전하는 증인으로 부름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을 지켜주신 것처럼 우리에게 피난처 주셔서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너무 서두르지 마시고 조급하지 말고 기도하면서 우리는 잠잠히 하나님의 때 기다려야
미국 신발 회사에서 아프리카에 두 사람 보냈어요.
한 사람이 그 당시 전보밖에 없었잖아요. 무슨 이메일 있어요. 전보가 왔는데 여기는 신발 신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빨리 철수 바람.
또 한 사람은 전보를 쳤는데 여기는 한 사람도 신발 안 신습니다. 무궁무진하게 팔 수 있습니다 빨리 투자해야 합니다.
똑같은 상황인데 한 사람은 부정적, 한 사람은 긍정적.
한 번 신어보니까 좋거든 그래서 엄청나게 아프리카 신발이 팔렸잖아요. 부정적으로 보면 끝이 없어요. 그러나 분명히 지난 금요일에도 평강의 날 말씀 받았지만 쫓겨난 자들이 반드시 예루살렘 들어가게 되어 있고 말씀대로 이루어지게 되어있잖아요. 신경쓸 필요 없고 걱정할 필요없어요. 기도하고 맡기면 다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는 거예요.
맨날 한숨 쉬고 걱정하고 뚜껑열리고 해봤자 늙기만 해요. 맡기면
때가 되면 반드시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삼하 17:20) 압살롬의 종들이 그 집에 와서 여인에게 묻되 아히마하스와 요나단이 어디 있느냐 여인이 가로되 그들이 시내를 건너가더라 하니 저희가 찾아도 만나지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니라
찾았잖아요?
'찾아도'- '바카쉬'(בָּקַשׁ)의 강조형
그러나 찾지 못했어. 왜? 하나님께서 예비처에 숨겼기 때문에. 결국은 못 찾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이 승리한 것처럼 말세 복음을 증거하는 두 증인은 승리하게 되어있습니다.
그 날을 소망 가운데 바라보고 이름 없는 계집종 우물 덮은 여인처럼 생명바쳐 충성하는 모두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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