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이 임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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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역사에 대한 많은 명언이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싸우면 미래를 잃는다.’(윈스턴 처칠).
‘과거를 지배하는 사람이 미래를 지배한다. 그런데 현재를 지배하는 사람이 과거를 지배한다.’(조지 오웰).
‘과거와 싸우지 말고 미래를 만들어라. 그러면 미래가 과거를 정리해줄 것이다.’(앨빈 토플러).
‘역사란 과거의 정치이며 정치란 현재의 역사다.’(존 로버트 실리).
앨빈 토플러의 말에서 저 “싸움”은 현재를 의미 하는 것입니다. 과거도 미래도 사실은 현재의 우리의 삶이 결정 합니다.
과거에 과오가 많던 사람도 현재를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고 더욱 더 성장하기 위해 살아간다면 더 훌륭한 미래를 기약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과거에 화려한 업적이 있다하여도 현재의 나의 모습이 어떠한가에 따라 미래의 모습은 결정 됩니다.
과거는 부도수표,
미래는 약속어음,
오로지 현재만이 현금 이다
장차 10년 후의 나의 모습을 알고 싶다면 최근 10년의 나의 모습을 성찰해 보라
이렇게 우리의 현재는 곧 우리의 과거로 기록 되고 우리의 미래는 현재의 모습의 결과로 나타납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이렇게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장차 임하실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느냐는 바리새인들의 미래지향적 질문에 대한 주님의 답변 입니다.
주님의 답변 속에는
‘이미와 아직 (Already but not yet)’
이라는 신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개념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곳이 어디이며, 어떤 영적 상태가 요구 되는지 살펴 보실 때 큰 영적인 깨달음과 유익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 깨달음이 과거에 대한 회심의 원동력과 현재의 변화의 힘이 되고 미래에 대한 소망이 되시기를 소망 합니다.

1.이미(Already), 여기에...

불교에서 극락정토(極樂淨土)에 가기 위해서는 적선량(積善量)이 필요 합니다. 그런데 이 적선량의 적정량은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무조건 선행을 많이 쌓아야 좋다고 주장 합니다.
기독교에도 우리의 의가 얼마나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라는 주제는 아주 단순한 논쟁 같지만 오랫동안 신학계에서는 치열하게 논쟁하던 주제 였습니다. 인간의 의는 온도가 올라가고 내려가듯이 그 수치가 시간에 따라 환경에 따라 오르내릴테니, 종말의 날, 인자의 날에 그 의의 양이 얼마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이미 얻었다 할 수도 없고 아직 얻지 못했다 할 수도 없다는 주장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런데, 이 질문은 자체가 틀린 질문 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은 의의 양이 아니기 때문 입니다. 누구를 믿어야하며, 그 믿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믿는 사람은 이미 천국에 백성이기 때문 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예수를 우리의 생명의 구원자 이심을 믿으신다면 오늘 여러분은 이미 천국의 백성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혹이, 아직도 주님을 구주로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결신하여 구원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구절은 ‘소묵시록' 이라고 불립니다. 마지막 때에 대한 주님의 묵시의 말씀이시고 예수님이 그 심판자 이시라는 강력한 기독론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작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때"에 대해 바리새인들이 질문 하면서 시작됩니다.
누가복음 17:20 (KRV)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
주님께서는 그들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누가복음 17:21 KRV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무슨 말씀 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가 생각하듯이 언제 임하냐 어디에 임하냐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씀 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개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마치, 선문답 처럼 들리는 이 문장을 해석 할 때,
원각경에 “극락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너의 마음 속에 있다"는 말처럼그 어떤 명상철학적 종교의 관점으로 해석 해서는 안됩니다.
이 두문장은 같아 보이지만 같지 않은 문장 입니다.
이 구절을 해석하기 위해서 우리는 “너희 안에...”
라는 구절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의 심령 가운데 임하는 것을 의미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생각했던 메시야의 나라는 아주 환타지적인 강력한 군사력과 온 세계를 호령하는 통치력으로 상징되는 지극히 세속적인 나라의 도래였습니다. 현재 자신들을 속박하는 로마보다도 강력한 나라가 메시야를 통해 이루어질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세계의 틀에 가둘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능가 하는 우주적인 통치 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통치를 의미 합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의 하나님나라, 메시야의 나라에 대한 개념에 대해 “너희 안에…(이미) 임했다고 말씀 하십니다.
“이미”는 기회
첫째, 말그대로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것을 의미 합니다.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자유의지를 내려 놓고 하나님의 통치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 당시에 주님이 말씀 하시는 하나님의 통치가 임한다는 것은 세속적인 가치관과 생각을 내려 놓고 바로 눈앞에서 말씀 하시고 계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씀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가지고 있던 강력한 선입견과 세계관은 무너뜨리기 힘든 철옹성과도 같았습니다.
전성민(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학장, 세계관 및 구약학 교수)
성경을 읽는 이유,
“자신의 세계관과 성경적 세계관의 충돌을 위해...”
자신의 세계관과 가치관과 생각을 자꾸 성경의 세계관과 하나님의 뜻가운데 충돌을 시켜서 모난 부분을 절차탁마하여 다듬는 것이고 나아가 영적 캐미스트리를 일으켜 전혀 다른 존재로 승화 되는 것이 목적이 되야 합니다.
우리는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믿고 배우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조금만 깊히 읽고 신앙에 대해 진중하게 성찰 하다보면 죽어서 가는 천국 만큼이나 오늘의 삶 속에 누려야 할 천국이 거대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나이가 들어서 머리가 희끗 희끗 해져도 여전히 마음의 평화를 찾는 방법을 몰라 허둥데는 심령들이 생각 보다 많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자식들에게 하도 치이고 힘들어서 교회권사님 까지 하시다가 불교의 마음수양하는 곳으로 개종을 하신 분도 계십니다.
누가 어떤 말로 마음을 다치게 하면 밤새 끙끙 앓고 천장에 비극적인 온갖 드라마와 소설을 쓰며 불면의 밤을 보내며 분을 사키지 못해 괴로워 하는 이들이 왜 없겠습니까?
신앙이 있다 하여도 내 마음이 이런 상태로 방치되고 악한 영의 통치 아래 스스로 들어가다보면 천국이 아니라, 지옥을 살게 됩니다.
사실은 자신의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 했나요?
오늘 받을 은총 위해 기도했나요?
맘에 분노 가득할 때 기도했나요?
내 앞길 막는 친구 위해서 기도 했나요?
오늘 주님은 거대한 제국을 기다리는 바리새인에게 너희 안에 천국이 임하도록 기도하라
주 예수를 영접하라 라고 말씀 하십니다.
신앙생활은 이처럼 끝없는 수양의 연속 입니다. 나를 부인하고 주님의 통치에 순복하는 삶으로, 나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가운데로 성경적 세계관 가운데로 이끌고 가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이 여정 가운데 걷고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구주 예수를 영접 하시고 천국의 풍요와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
의미는 우리들 사이에, 우리들 중에 임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헬라어 표현을 살펴 보면,
“너희 안에”(entos hymōn)
“너희 마음 속”, “너희 가운데”, “네 손이 닿는 곳에”
개인적이고 영적인 의미와 별개로 관계의 의미도 포함 되어 있다는 것은 신학적으로 흥미로운 부분 입니다.
“In my heart” 일뿐 아니라,
“Among us “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들 중에 임한다 라는 의미 입니다.
단순히, 영적인 수양의 의미 뿐만 아니라, 신앙의 공동체와 폭넓게는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세상에서의 모든 관계를 의미 합니다.
현재 내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 합니다.
나 혼자 잘 믿고 의롭게 선행을 하며 살다가 죽으면 가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뤄지기를 소망하고 실제로 무엇인가 행동하는 자에게 이미 하나님의 나라는 이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좋은 관계도 있지만, 냉냉한 관계와 파괴적인 관계들을 수없이 목도 합니다.
저는 얼마전에 학교 앞에서 아주 평범하게 행색의 어떤 엄마의 위협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주 작은 아이를 코너에 몰아넣고 무서운 눈으로 아이를 노려보며 몰아치며 폭언을 내뱉고 있었습니다. 언듯 언듯 들리는 큰 목소리와 욕설은 그 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위협으로 들렸습니다.
나라가 나라를 대할 때나 개인이 개인을 대할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은 숫자가 많거나 힘이 쎈 사람의 뜻데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반문명적이고 비인륜적이고 비이성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알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등등 수많은 사건들을 통해 실제로 이세상을 통치하는 방법으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이웃을 대할때, 어떻습니까?
내편이 아니면 외면 하지는 않나요?
또는 무관심 하지 않나요?
이제 기독교인들은 사회적으로 소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을 의롭게 이끌기를 요구하실까요?
왜 우리가 조금 껄끄러운 소금의 역할을
또한 좀 덮어두어도 될것을 들쳐내는 빛의 역할을 하기를 원하실까요?
예수님의 생애을 통털어 전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하신 이유를 생각해봅시다.
이사야 53:3 NKRV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우리가 의롭게 살아야 할 이유와 주님이 고난을 감수하고 이 땅의 삶을 선택한 이유는 같습니다.
그런 일종의 핍박과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길이기 때문 입니다.
마태복음 5:3 NKRV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5:6 NKRV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아메리카 원주민 원로의 명언 입니다.
“내 안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있습니다. 이들은 항상 싸웁니다. 한 마리는 어둠과 절망이고 또다른 한 마리는 빛과 소망 입니다. 어느쪽이 이길까요? 네 맞습니다. 당신이 먹이를 주는 쪽 입니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데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의 의지를 꺽고 환경을 조성하는 노력을 영성훈련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영적인 소망과 빛으로 의도적으로 나아갈 때,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 합니다.
내안에 죄악된 삶과 분노와 미움을 굶겨죽이고 빛으로 소망을 먹이를 양육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미 우리 안에, 우리들 사이에, 우리의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방법 입니다.

2.아직(Not yet)

주님이 우리의 내면의 통치자가 되시는 순간 우리는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이 메세지는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보여줍니다.
주님은 이어지는 구절에서 장차 올 “인자의 날" 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알려 주십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그 날을 주님은 “주님의 날" “인자의 날" 이라고 명명 하십니다.
주님의 첫 임재는 구원자로
주님의 재림은 심판자로 임하실 것입니다.
심판자로 임하시는 그날이 “인자의 날" 입니다.
그날의 특징은
1.번개 치듯이 온다 (23-24절)
2.선택과 심판은 분명히 나타난다(26-)
누가복음 17:24 NKRV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아직 (Not yet) 임하지 않은 날에 대한 경고가 어떤 영적 유익이 있을까요?
노아는 그날을 고대하며 인생의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가장 가치 있는 일에 투자했습니다.
노아의 인생이야 말로 군더더기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방주를 짓고 전도하는 두가지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그날은 갑작스러운 불행이었지만, 노아에게는 고대하고 고대하던 날이었습니다.
“아직”의 의미는 고대하는 노아와 같은 이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고대하고 준비하고 하나님의 주신 사명에 전념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 입니다.
누가복음 17:26–28 KRV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아직” 임하지 않았다고 사명을 멀리하고
다른 일에 열중하는 이들은 결국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히 아직 오지 않은 나라로 남지만 노아에게는 드디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 가는 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이 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집을 짓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손에 닿는 날을 맞는 사람은
아직 오지 않은 날을 고대 합니다.
반면에 아직 오지 않았다고 안일하여 신앙의 고삐를 느슨하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렀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하는 일에 열중 합니다.
심지어는 유황불이 비처럼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깨닫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누가복음 17:32 KRV
롯의 처를 생각하라
그리고 그 “인자의 날" 심판은 진정한 종말의 날입니다. 마치 어벤저스 엔드게임의 한 장면 처럼 손가락을 튕기면 인류의 절반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듯이, 내 옆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데려감을 받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17:34–35 KRV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이렇게 인자의 날의 심판은 엄혹한 현실로 나타납니다. 그때는 자비와 긍휼이 아닌 절대적인 의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러면 그 심판이 있을 곳은 어디 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누가복음 17:37 KRV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가라사대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주검이 모이는 곳에는 죽음의 악령이 모일 것입니다. 반면에 구원의 잔치집에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모여 찬송하고 있을 것입니다.
세상이 악하여 질 수록 우리는 선하고 의로운 자리에 가야 합니다.
근묵자흑(近墨者黑)
하나님을 영적으로 깊히 섬기는 곳으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나보다 더 신앙이 깊은 사람들 사이로 더 깊히 들어가야 합니다.
나보다 신앙이 좋은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면 자존심도 상할 일도 있고 처음 부터 배워야 할 것도 있겠지만 그것을 참고 더 배우고 더 훈련 해야 합니다. 주검이 모이는 곳이 아닌 오히려 구원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가까이하고 노아처럼 자기 사명을 찾아 전념 해야 할 때가 마지막때를 준비하는 자세 입니다.

결론

우리는 지난 시간 설교를 통해 천국과 이 땅과 지옥 간에는 극복할 수 없는 깊고 넒은 간극이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주님은 구원자로서 우리에게 긍휼과 자비를 배푸시고 아직 임하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도록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아직 멀었다고 단정 짓기에는 너무나 큰 도박을 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 입니다.
오늘, 아직 임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고대하고 나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데로 살아가야만 이미 임한 천국을 누릴 수 있습니다. 천국은 바로 예수와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와 살아가려면 오늘 내가 예수님의 고귀한 삶을 한절이라고 배우고자 실천하고 훈련 해야 합니다.
오늘도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굶주린 사자 처럼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수 많은 악당과 분노를 자아내는 이웃들과 상처를 주는 이들을 통해 우리를 어둠과 절망으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이 짜잘하고 하찮은 감정의 쓰레기들을 다 내다 버리고 빛으로 소망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럴때, 밉던 이가 친구가 되고 나를 분노하게 하던 이를 포용하게 되고 이해하게 됩니다. 그렇게 예수의 사랑의 마음을 배우다 보면 이미 나의 오늘은 하나님 나라가 될 줄 로 믿습니다.
아직 오지 않았기에 고대하고
이미 내 안에 천국을 이루시며 오늘을 살고 미래를 소망하며 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넓으신 은혜와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하심과 성령의 감동감화 역사 하심이 우리교회와 주님의 귀한 자녀들과 그들의 생애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찌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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