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로운 대제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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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1 대제사장은 뭐하는 분인가?
주제 1 대제사장은 뭐하는 분인가?
중보자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구약의 직분이 제사장이다.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전달한다. 선지자와는 다르지만 하나님의 뜻을 전하면서도 백성들 하나님 앞에 데려간다.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서는 분이다.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려면 얼마나 두려워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가르쳐 준다. 그의 존재 자체가 ‘두려워할 하나님'에 대한 계시이다. 죄인을 하나님 앞에 데려가면서 죄인들을 위한 제사를 드리면서, 그 백성에 대한 연민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같은 공동체, 교회의 일원으로서 하나님 앞에 서야 하지 않는가?모두가 죄인이며, 그 죄인 민족의 대표자로서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린다. 죄인에 대한 연민이 대제사장에게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선다는 두려움 다음으로 중요한 성품이다. 2. 진짜 대제사장죄는 각자가 회개해야 한다. 각자가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난다? 데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각자가 주님을 영접하고 만나야 한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신다. “우리 죄를 사해 주십시오.” 형제의 죄가 내가 회개해야 할 죄인 것처럼 하나님 앞에 결산하라고 하신다. 내 죄 때문에 고개들지 못할만큼 부끄러울 때 우리는 남의 죄를 말할 수 있다. 내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떨리던 그 심정으로 형제의 죄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한국교회 비판 받을 일 참 많다. 하지만 “네 놈 때문이다"는 주님의 정신과 맞지 않다. 주님의 기도를 주님과 함께 그 주님의 아버지께 드리는 사람만이 주님의 형제이다. 기억하자.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2:11이다. 주기도문은 주님의 기도이다. 주님께서도 하신 기도이다. 참고로 주님의 겟세마네 기도에서 주기도문으로 기도하신다. 마태복음 26:42 NKRV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Nestle-Aland Greek New Testament, 28th Edition Chapter 26γενηθήτω τὸ θέλημά σου이는 주기도문의 세번째 기도문과 동일하다. 마태복음 6:10 NKRV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Nestle-Aland Greek New Testament, 28th Edition (Chapter 6)10 ἐλθέτω ἡ βασιλεία σου·γενηθήτω τὸ θέλημά σου이처럼 주님께서도 주기도문으로 기도하셨다. 우리의 죄를 기도하신 주님주님께서 가르치신 그대로 기도하신 주님은 당신의 백성의 죄를 대신 기도하는 대제사장의 정신을 발휘하신다. “우리의 죄”를 끓어 안으신 주님은 긍휼의 대제사장이었다. 단순한 종교인, 직업인으로서 제사장과는 달랐다.
대제사장은 뭐하는 분인가?
중보자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구약의 직분이 제사장이다.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전달한다. 선지자와는 다르지만 하나님의 뜻을 전하면서도 백성들 하나님 앞에 데려간다.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서는 분이다.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려면 얼마나 두려워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가르쳐 준다. 그의 존재 자체가 ‘두려워할 하나님'에 대한 계시이다.
죄인을 하나님 앞에 데려가면서 죄인들을 위한 제사를 드리면서, 그 백성에 대한 연민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같은 공동체, 교회의 일원으로서 하나님 앞에 서야 하지 않는가?
모두가 죄인이며, 그 죄인 민족의 대표자로서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린다. 죄인에 대한 연민이 대제사장에게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선다는 두려움 다음으로 중요한 성품이다.
2. 진짜 대제사장
죄는 각자가 회개해야 한다. 각자가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난다? 데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각자가 주님을 영접하고 만나야 한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신다. “우리 죄를 사해 주십시오.” 형제의 죄가 내가 회개해야 할 죄인 것처럼 하나님 앞에 결산하라고 하신다. 내 죄 때문에 고개들지 못할만큼 부끄러울 때 우리는 남의 죄를 말할 수 있다. 내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떨리던 그 심정으로 형제의 죄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한국교회 비판 받을 일 참 많다. 하지만 “네 놈 때문이다"는 주님의 정신과 맞지 않다. 주님의 기도를 주님과 함께 그 주님의 아버지께 드리는 사람만이 주님의 형제이다.
기억하자.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2:11이다.
주기도문은 주님의 기도이다. 주님께서도 하신 기도이다.
참고로 주님의 겟세마네 기도에서 주기도문으로 기도하신다.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γενηθήτω τὸ θέλημά σου
이는 주기도문의 세번째 기도문과 동일하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γενηθήτω τὸ θέλημά σου
이처럼 주님께서도 주기도문으로 기도하셨다.
우리의 죄를 기도하신 주님
주님께서 가르치신 그대로 기도하신 주님은 당신의 백성의 죄를 대신 기도하는 대제사장의 정신을 발휘하신다. “우리의 죄”를 끓어 안으신 주님은 긍휼의 대제사장이었다.
단순한 종교인, 직업인으로서 제사장과는 달랐다. 형제로서 우리는 받으시고는 우리를 위한 속죄의 제물이 되신다.
3. 제사장이 친히 제물이 되심으로써 긍휼을 보여주심
우리와 같은 모습, 혈과 육을 가지고 같은 죽음에도 동참하신 주님, 그렇게 되어야 마땅하다고 17절은 말한다.
성육신의 목적은 죽음을 통한 우리의 속죄이다.
17절은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로 되어 있다. to make propitiation for the sins of the people.(ESV), atonement(NIV).
속량은 ‘묶인 상태'를 전제한다. 구속(救贖)으로도 번역되었다. redemption 이다. 속죄와는 다르다.
이 단어는 누가복음 18:13 에만 나온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속죄하다 자비를 베풀다는 뜻이다.
당신을 우리를 대신한 제물로 드려 우리 죄가 용서받게 하신다는 뜻이다. 자비로운 대제사장은 이제 대속의 제물이 되신다.
이 편지를 읽는 첫 독자들을 생각해보라.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의 주도 하에 재판을 받으신다. 대제사장은 자비도 없었다. 주님을 직접 손으로 쳤다 조롱했다. 남의, 자기 백성의 죽음에 대해서 아무런 죄책감도 없다. 죽어 마땅한 놈, 그런 말을 당연하게 한다. 하나님의 직분자가 말이다.
다른 오시범이 있다. 사무엘의 선임자 엘리였다. 사무엘의 어머니가 기도하다 지켜서 소리도 못내면서 성전에서, 하나님의 집에서 기도한다. 가련한 하나님의 백성, 곧 엘리 자신의 백성인 이 여인의 한을 이해하기는 커녕 어줍잖은 꼰대짓을 한다.
“야, 이놈의 여편네야, 술 좀 끊어! 천날만날 취해서 살 거야?”
대제사장은 자비해야 한다. 죄 때문에 대제사장을 찾아야 하는 백성의 죄를 안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길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엘리는 그런 태도에는 근처도 못갔다.
우리의 자비하신 대제사장께서는 우리 죄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실 뿐 아니라 마침내는 자신을 제물로 내놓으신다. 우리의 속죄를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자비를 얻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