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위한 시간
고난과 믿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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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2023.11.26
욥기 21:7–14 (NKSV)
7 어찌하여 악한 자들이 잘 사느냐? 어찌하여 그들이 늙도록 오래 살면서 번영을 누리느냐?
8 어찌하여 악한 자들이 자식을 낳고, 자손을 보며, 그 자손이 성장하는 것까지 본다는 말이냐?
9 그들의 가정에는 아무런 재난도 없고, 늘 평화가 깃들며, 하나님마저도 채찍으로 치시지 않는다.
10 그들의 수소는 틀림없이 새끼를 배게 하며, 암소는 새끼를 밸 때마다 잘도 낳는다.
11 어린 자식들은, 바깥에다가 풀어 놓으면, 양 떼처럼 뛰논다.
12 소구와 거문고에 맞춰서 목청을 돋우며, 피리 소리에 어울려서 흥겨워하는구나.
13 그들은 그렇게 일생을 행복하게 살다
가, 죽을 때에는 아무런 고통도 없이 조용하게 스올로 내려간다.
14 그런데도 악한 자들은, 자기들을 그냥 좀 내버려 두라고 하나님께 불평을 한다. 이렇게 살면 되지, 하나님의 뜻을 알 필요가 무엇이냐고 한다.
1. 인내를 배우기
1. 인내를 배우기
아이들은 어릴 때 부모가 아기의 요청사항을 다 들어줍니다.
아이는 울기만 해도 엄마, 아빠는 그 소리가 어떤 의미인 줄 알고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서 애씁니다.
아기의 유일한 요청방법은 울음입니다.
아기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협상방법 같습니다. 울고 소리만 지르면 다 해결이 됩니다.
하지만 그 방법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과 살아가는 방법들을 배워야합니다.
그렇기에 아이는 커가면서 자신의 요구를 표현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말을 못할 때는 손짓을 하기도 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르키는 방법도 배웁니다.
그리고 더 커가면 아이들이 배워야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다림' 다른 말로 ‘인내'입니다.
아이들은 커가면서 지금 하기 싫고, 때로는 이해되지 않아도 따르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합니다.
그리고 기다릴 때 결국 내가 원하는 것들을 얻게 되거나, 더 좋은 것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물론 이것은 부모를 자녀가 얼마나 믿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는 합니다.
마시멜로 이야기의 반전
사진) 마시멜로를 더 먹기 위해 기다리는 아이들
마시멜로이야기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실험이 있습니다.
한 방안에 아이와 어른이 들어가서 어른이 설명을 해줍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마시멜로 두개가 있습니다.
어른은 방을 나가며 아이에게 약속합니다.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15분동안 먹지 않고 있으면 두개 다 먹을 수 있을거라고 알려줍니다.
하지만 너무 먹고 싶다면, 옆에 놓여진 종을 우리가 하나만 먹으라고 합니다.
대신 미리 먹으면, 한 개 밖에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기다린 아이들과(2/3), 그러지 못한 아이들(1/3)을 오랜 기간동안 추적해서 통계를 내어보니,
참고 기다린 아이들은 기다리지 못하고 먹은 아이들보다 미국 대입시험인 SAT에서 평균 210점 이상을 더 받았다고 발표했습니다. .
결국 참고 기다리는 아이들이 삶에서 더 많은 성취와 성과를 이룬다는 내용입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기다림을 배운 아이들이 분명히 자기 절제력과 통제력을 가진 것은 분명하다.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 참을 수 있는 능력’을 ‘만족지연능력’ 이라고 말합니다. 이 실험이 이 능력을 보여주었다고 많은 사람이 이 실험을 인용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이 실험의 헛점에 대해서 지적받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아이들이 참을 성이 없다기 보다, 말한 어른을 믿지 못해서 였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실험에 참가한 아이가 자라서 한 말이다.
자신에게 말한 어른에 대한 믿음이 없기에 기다릴 수 없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어른들에 대한 기억이 많은 아이일 수록 기다리는 것 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을 지금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다릴 수 있는 능력은 사실 ‘믿음'에서 나옵니다.
2. 악인의 형통, 의인의 고통
2. 악인의 형통, 의인의 고통
사람 삶을 평가할 때, 어느 순간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을 어렵습니다.
예) 만난지 몇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우린 친구라고 하고, 갑자기 친구들을 소개해줍니다.
진짜 좋은 친구라고… (기질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너무 생각만해도 도망가고 싶은 상황입니다.)
잠깐 만나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짧은 시간동안 우리가은 누군가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 합니다.
한 사람이 삶 가운데 고난과 좌절의 때도 있고, 또 남부럽지 않은 성공을 이루는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도 너무 중요합니다. 하지만 과거의 살아왔던 삶도 역시 사람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가를 평가할 때,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만 볼 수 있습니다.
조금더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현재도 모릅니다. 지나간 모습으로 현재를 추측할 뿐입니다.
뉴스에 나오는 사건사고를 보고 놀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변에서 일어나는 범죄들을 보고 놀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사람일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욥의 친구 소발과 욥은 전혀 다른 말을 한다.
- 욥의 친구 소발은 악인의 멸망을 말한다. (어제본문)
욥기 20:5 “악한 자의 승전가는 언제나 잠깐뿐이었으며, 경건하지 못한 자의 기쁨도 순간일 뿐이었다.”
욥기 20:5 (NLT) the triumph of the wicked has been short lived and the joy of the godless has been only temporary?
그런데 욥은 반대로 악인의 형통을 말한다.
욥기 21:17 “악한 자들의 등불이 꺼진 일이 있느냐? 과연 그들에게 재앙이 닥친 일이 있느냐? 하나님이 진노하시어, 그들을 고통에 빠지게 하신 적이 있느냐?”
욥기 21:17 (NLT) “Yet the light of the wicked never seems to be extinguished. Do they ever have trouble? Does God distribute sorrows to them in anger?
누가 옳은가?
우리는 욥기를 읽고 있기 때문에, 욥은 의인이기 때문에 욥이 맞다고 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도 알고 있고, 믿고 있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벌하시고, 의인을 기뻐하시고 복주신다는 것을...
사실, 욥도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욥도 큰 시련과 고통 앞에 그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악인은 벌하시고, 의로운 자에게 축복을 주시는가?
그래서 욥은 오늘 본문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 상황을 보면 아닌 것 같은데… 의롭다 하지는 못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흠이 없도록 살기 위해 애썼는데…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있는 것인가?”
욥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보여주는 현실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오늘 욥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꼭 알아야하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3. 사람의 판단에는 한계가 있다
3. 사람의 판단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 삶의 시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시편 90:4–5 “주님 앞에서는 천년도 지나간 어제와 같고, 밤의 한 순간과도 같습니다. 주님께서 생명을 거두어 가시면, 인생은 한 순간의 꿈일 뿐, 아침에 돋아난 한 포기 풀과 같이 사라져 갑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시간 앞에서 우리의 삶은 비교할 수도 없는 찰나의 순간 같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시간 안에서, 우리의 삶은 점 하나로도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런 우리가 죄인이 형통한다고 하나님이 불의하시다고 결론내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의인을 왜 고통받게 하시냐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합당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그 긴시간들을 우리가 다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죄인을 멸망시키실지, 내가 볼 수 없으면서도, 결론을 내서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의인을 어떻게 회복시키시고, 더 성장시키고 회복시키실지 다 볼 수도 없으면서 “하나님은 의인에게 고난을 주신다.”라고 결론을 낼 수 있습니까?
우리는 긴 시간동안 사람을 봐도 잘 판단하지 못합니다.
오래 사귀었다고 그 사람을 다 알지도 못합니다.
커플들이 몇 년간을 연예하고 결혼을 해도, 결혼 후에 나타나는 알지 못했던 모습에 서로 당황하기도 하기도 합니다.
또한 부부가 함께 살아온 날이 길어도 서로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갈라서기도 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다 안다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들도 ‘신앙고백'에 가까운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낳은 놈인데, 도대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 자녀들도 다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의 일을 결론내고,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그분을 다 안다고 말하며,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판단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욥이 깨달은 것이 이것입니다. “나의 한정된 시간과 지혜로 하나님을 판단할 수 없다.”
4. 하나님의 선함을 보라
4. 하나님의 선함을 보라
왜 인내하고 기다려야하나?
짧은 생각과 판단으로 하나님의 영원하시고 선하심을 다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
이유 없이 기다릴때 너무 힘들다.
이유를 알고 기다려라 고백해라 그것이 믿음이다.
아파서 누워 아무 힘이 엏고 무능력하지만 그 비참하고초라한 모습으로, 현실로 하나님이 나를 판단하지 않으신다.
영원한 하나님도 나를 짧은 시간동안 판단하지 않는데,
왜 찰나의 시간을 사는 우리가 영원하신 그분을 판단하는가.
우리는 고백해야한다.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선하십니다.
의롭다고 여겨주신 자를 돌보시는 영원하고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라.
내가 원망하는 것이 당연한 권리인가?
내게 이렇게 할 수 없다고 주를 판단하는가?
아들을 우리에게 내어주신 ,
십자가에 죽게하신 그 사랑 앞에서 내 권리와 소유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원망이다.
거저 받은 자가 자신의 권리가 먼저리고 말하는 것이 주를 향한 원망이다.
오늘 욥이 하는 절망과 원망은 어쩌면 너무 당연합니다.
그러나 욥은 그런 원망 가운데서, 하나님이 선하시고, 영원하신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이는 자라면서 부모를 이해하는데 믿음의 시간이 필요함을 깨닫는.것이다.
지금 다 이해못해도 부모가 옳았음을 나중에 알게 됩니다.
행여 지금 이해하지 못해도 그 뜻을 따르고 믿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간다.
그러면서 그런 믿음의 시간동안 부모의 선함을 깨닫는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데에 시간이 필요하다.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여러번 경험하면서 그것들이 쌓여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시간으로 하나님을 다 이해하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아야 한다.
하물며 영원하신 하나님을 믿고 이해하고 싶다고하면서
순간을보고 말할 수 있을까?
절대 없다.
우리의 할 바는 그분을 향해 나의 믿음을 보여드리고
신뢰하며, 깨닫게 될 날을 기대하는 것이다.
나의 원망에 대해 주의 용서를 구하고
고난 가운데 두려워 떨지말고 주의 선하심을 신뢰하라
고린도전서 13:12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마는,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마는,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짧은 시간 안에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해야 한다.
누구보다 고난과 광야를 길게 고백한 다웟도 이렇게 고백한다.
역대상 16:34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하시다.”
다윗이 어려운 때를 이겨낼 수 있는 이유도, 지금의 고난이 전부가 아니며, 반드시 하나님께서 자신을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은혜와 축복으로 갚으시고 회복시키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런 고백으로 고난의 때를 견디며, 우리의 믿음을 주께 보여드려야합니다.
환난의 때가 아닌 축복의 때를 보내고 있다면, 다시 내게 고난이 올 때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영원하심’을 기억하겠다고 다짐하며 기도하십시요.
그렇기에 고난의 시간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믿음을 위한 시간’ 이 된다는 것을 마음에 품으십시오.
우리는 믿음을 고백해야하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끝나면 우리가 믿음을 보여드릴 기회도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우리 삶을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선하심을 고백하는, 믿음의 시간으로 만들어가는 축복된 자녀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