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29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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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280 천부여 의지없어서
본문 : 레10:1-2
한없는 자비를 베푸시는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크신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베푸신 놀라운 사랑을 기억하며 오늘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되게 하시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과 성결의 열매를 맺어가는 우리의 삶이 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레위기의 가장 핵심 단어, 가장 중요한 단어를 2개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거룩”과 “성결"이다. 레위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에서 어떠한 수준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아주 잘 드러내고 있는 본문 말씀이다. 많은 사람들이 레위기에 주된 내용이 제사장에 관련된 내용이라 생각하지만은, 실제로는 제사장들보다 이스라엘 공동체에 대하여 훨씬 더 강조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출애굽기 후반부부터 성막에 대한 말씀이 등장한다. 성막의 기구들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출애굽기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여주신대로 성막의 모든 기구들이 완공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성막의 기구들을 사용하면서 하나님께 어떠한 방법으로, 어떠한 절차에 따라 제사를 드려야 하는지에 대해 레1-7 장까지 구약의 5대 제사를 통해 말씀하신다. 그러면 이제 제사에 사용될 모든 기구들이 완성되었고, 어떻게 제사를 해야 하는지도 알려주셨다면 이제는 가장 중요한 제사장만 준비되면 된다. 그래서 레위기 8장부터 보면 제사장 위임식을 준비하게 하신다. 이러한 제사장 위임식 준비는 이미 출29장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일러 주셨던 그대로 시행하게 된다.
이 순서를 잘 보면, 먼저 제사장 위임을 받을 아론과 그 아들들을 물로 씻기고, 예복을 입히고, 관을 씌우고, 관유를 붓고, 정결하게 하는 제사를 드리고, 위임식 제사를 드리며, 제사장이 될 아론과 아들들에게 관유와 피를 뿌리고 저들이 위임식에서 사용된 떡과 고기를 먹고 남은 것은 불사르게 하였다. 그리고 성막과 그 안에 모든 기구들에 관유를 발라 거룩하게 하고, 제단과 물두멍에도 바르며, 피를 뿌리고 발라 거룩하게 하였다. 이 과정을 7일동안 하는 것이 제사장 위임식의 과정이었다.
지금 모세는 왜 제사장이 될 자들에게 피를 뿌리고 기구들에 피를 바르고 있나? 왜 모세는 하나님께 드린 고기를 그들로 먹게 하고, 아직 제사장 위임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왜 벌써부터 제사장 예복을 갖춰 입게 하는가? 성경을 보면 이에 대해 두 가지 문장이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레8:10 부터 보면, “모세가 관유를 가져다가 성막과 그 안에 모든 것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레8:11 “제단에 일곱 번 뿌리고 또 그 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13절 말미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 15절에 “그 피는 제단 밑에 쏟아 제단을 속하여 거룩하게 하고”, 17절 말미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더라”, 또한 21절 말미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더라” 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모세가 행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바이며, 이렇게 행할 때에 그 모든 것들이 거룩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모든 것들이 거룩을 위한 의식이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거룩을 위하여 성막을 만들게 하시고, 성막을 거룩하게 하시고, 또한 제사를 드릴 제사장을 세우게 하시고, 제사장의 옷과 함께 거룩하게 하셨다. 그렇게 하나님께 드릴 모든 것들이 거룩해지고난 이후에 이어지는 9장을 보면 총 7일간의 위임식이 끝나고 8일째 되는 날, 이스라엘의 제사장으로서 아론이 첫 제사를 드리게 된다. 이 때에 먼저 제사장인 아론을 위한 정결예식으로 송아지를 잡아 드리고, 또한 번제를 드리게 된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그들을 위한 정결예식으로 속죄제의 염소를 잡아 드리고,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되며, 9:22에서 아론이 백성들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함으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마치고 내려 오게 된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24절을 보면 불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나와서 제단 위에 번제물과 기름을 불사르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오해하면 안되는 것이, 시간의 순서를 살펴 보면 아론은 하나님께 불을 사용하여 제사를 드린 후였다. 그런데 제사를 드리고 내려왔을 때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또 다른 불이 나와 그 제물을 불살랐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위하여 드리는 제사에 사용되는 모든 것들, 성막의 기구들, 제사장의 예복, 심지어 제사장까지도 거룩하게 하셨고, 이제는 제사에 사용되는 ‘불’까지도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사장은 이제 이 거룩해진 불을 절대로 꺼뜨리지 말아야 할 사명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이 불은 사람이 만들어낸 불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불이기 때문이다. 이 불을 통하여 번제단의 불을 꺼뜨리지 말아야 하고, 거룩한 향단으로 불씨를 옮겨야 하며, 성막 안의 등잔대의 불을 환하게 밝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드리는 어떠한 예배와 절차까지도 모두 거룩하기를 원하신다. 왜인가? 레11:45 에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노래하고 영광과 존귀를 올려드릴 때에도 거룩함을 잃지 않고 주님을 예배하기를 원하신다. 어느 하나 사소하게 여길만한 것까지도 용납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다 지켜 거룩한 상태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오늘 본문 레10:1-2 말씀을 보라.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각기 향로에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분향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그들이 행했던 두 가지 일을 주목해야 한다. 첫째는 그들이 “분향하였다”는 것이고, 또한 저들이 “다른 불을 담았다”는 것이다. 먼저 그들이 분향하였다는 것은 저들이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놓인 유일한 분향단을 통해서가 아니라, 즉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방식으로 하나님께 나아간 것이 아니라, 자기가 준비한 향로로 하나님께 나아갔다는 점이다. 출30 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갈 때 반드시 분향단을 거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나답과 아비후는 자기들이 하고 싶은대로, 자기들 마음대로 하나님께 나아갔다.
또한 그들은 “다른 불을 담았다”. 레9:24 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예배할 때에 사용할 불조차 거룩하게 바꿔주셨는데, 지금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불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만든 불, 도처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불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다. 쉽게 말해서 그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형태로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았다. 하나님을 예배함에 있어서 어느 분별력도 없었고, 구별됨도 없었고, 거룩함도 없었다. 그저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 자신들이 좋게 보이는 형태,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하나님께 나아갔던 것이다.
여러분, 이러한 모습이 과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까? 이런 모습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식한 태도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의 행태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함이 나타나는가? 그들이 진정 하나님을 하나님 답게 예배했다고 할 수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겉으로 보여지는 면으로 그들은 제사장이었고, 예배를 수종드는 자였으며, 가장 하나님께 가까이 있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더라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당시 이방 땅의 수많은 우상들 중 하나로 여겼다. 그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늘상 예배의 자리 안에 머물며, 늘상 교회의 울타리 안에 머물며, 늘상 여러 봉사와 헌신과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것 같아도, 그의 삶 가운데 거룩에 대한 의식이나 구별됨이 없다면, 그의 예배 가운데 하나님 경외함이 없다면, 이것은 바른 신앙의 태도가 아닐 것이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같다. 그저 십자가와 은혜, 사랑의 하나님만을 생각하며 살기 때문에 어쩌면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죄를 향한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질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인식하며 살고 있는가? 여러분,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저주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깨달아야 한다. 죄인을 향한 불붙는 하나님의 진노, 저주와 심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깨닫지 못한다면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은혜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우리는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답과 아비후가 왜 죽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께 나아갔기 때문이었다. 거룩하게 하신 것들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내 소견에 좋아 보이고 편해 보이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다는 점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식을 거부하고 내가 편한 대로, 내 생각에 옳게 보이는 대로 행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거짓된 예배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거룩과 성결의 모습이 아니다.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러한 인간중심적이고 구별되지 않으며, 세상의 오만 잡다한 것로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모인다 할지라도 절대로 기뻐하시지 않으신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책망하시며 그에 합당한 심판을 내리실 뿐이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을 예배하는 데에 얼마나 거룩을 강조하시는지를 살펴보았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기 때문에, 거룩하게 구별되지 않은 것들을 사용하는 예배를 기뻐하지 않으신다. 또한 우리의 마음의 생각까지도 꿰뚫고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나아갈 때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를 하는지, 하나님께 드릴 거룩한 예배를 어떠한 마음자세로 드리고 있는지, 그 마음의 중심을 살피신다.
무엇보다 주님은 택하신 자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불러주셨다. 로마서를 보면 저와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요, 이 시대 가운데 찾으시는 영적 예배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우리가 태생적으로 거룩한 자들이 아니다. 우리가 원래부터 성결했던 자들이 아니다. 부정하고 더럽던 저와 여러분들을 거룩하고 성결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하여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피값이 흘려지지 않았던가? 거룩하지 않던 자들을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부정한 자들을 정하게 하기 위하여 친히 자신의 피로 값을 지불하신 크신 은혜를 기억하자.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하나님 원하시는 거룩을 이뤄낼 수 없지만,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며 주님께 은혜를 구할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거룩과 성결의 은혜를 부어주실 것이다.
오늘 한 주의 중반부를 지나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다시금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자.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나아가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는 삶의 거룩이요 예배의 거룩인데, 우리는 이를 위하여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고, 이를 위해 어떻게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는가? 이 새벽의 시간에 다시 한번 마음을 모아 주님께 은혜를 구하자. 함께 기도하실 때,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붙들어주셔서 속에 있는 것이나 바깥으로 나오는 것이나 모두 거룩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나아가는 우리의 예배와 우리의 모든 생활을 성결하게 하여주셔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여주시기를 이 시간 주여 함께 외치고 기도하자.
하나님, 다시금 우리의 마음에 거룩과 성결을 향한 갈망을 더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늘 인식하며, 거룩하신 하나님을 예배함에 힘쓰게 하시고, 온 마음과 정성과 뜻과 힘을 다하여 주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우리 마음을 거룩하게 회복시켜 주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