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01 금요기도회: 갈라디아서 3: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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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도 저희를 금요기도회 자리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계시기에 저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감히 부를 수 있습니다. 이 은혜를 날마다 감사하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러나 이런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자꾸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못난 자녀가 되려고 합니다. 이런 저희의 연약함을 용서해주시고 다시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니 저희를 자녀로 받아주시옵소서.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저희를 자녀로 받아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고 기도를 통해 아버지와의 교제를 즐거이 누리는 자녀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갈라디아서 3:23-4:7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3:23–4:7 NKRV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도 금요기도회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은 12월 첫 날입니다. 2023년 남은 한 달도 하나님과 풍성한 교제를 누리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다들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이제 스마트폰은 아주 중요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통화는 물론이고 카카오톡, 유튜브 시청, 드라마나 예능도 볼 수 있고, 심지어 은행 업무도 이 휴대폰 하나로 다 할 수 있기 떄문입니다. 이제 현대인들에게 스마트폰은 뗼레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아주 편리한 생활을 가져다주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 스마트폰을 버리고 예전에 사용하던 폴더폰이나 슬라이드폰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스마트폰으로 아주 편리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는데 그것을 못하는 폴더폰이나 슬라이드 폰으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아주 큰 불편함을 느끼게 될 겁니다. 예전에는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 줄 몰랐지만 이제는 알고 누리고 있기 때문에 예전 생활로 돌아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와 비슷한 상황을 말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에는 율법과 관련된 문제가 생겼습니다. 율법보다 더 나은 것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율법으로 갈라디아 교회가 돌아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두고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게 편지합니다. 그리고 이 편지에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율법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줍니다. 앞에서는 우리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신칭의에 대해서 가르치고 율법은 약속을 폐기하지 못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율법이 구약 백성들에게 어떤 역할을 했는지 가르치는데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구약 백성들에게 율법은 어떤 역할이었고 신약 교회에는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는 또 어떤 의미를 주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구약 백성들에게 율법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구약 백성들에게 율법은 굉장히 중요한 위치였습니다. 율법은 그들의 전부였고 신앙의 중심이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심판을 받는 것은 율법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래서 구약 백성들은 이것을 비로소 포로가 되서야 깨닫고 포로에서 귀환한 후에 율법을 연구한 것이죠. 그런데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사실 이 율법은 어디로 인도하는 초등교사 역할이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 그 자체로도 좋은 것이지만, 이보다 더 발전되고 좋은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3장 24절을 보시면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의 역할이었다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율법의 역할을 더 깊게 알기 위해서는 초등교사가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은 단순히 우리가 학교 다니는 것처럼 율법은 초등교사이고 그리스도는 고등학교나 대학교 교사라는 그런 의미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바울이 사역하던 당시 ‘초등교사’는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교사의 의미보다는 어린아이를 보호하고 지키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 역할을 주로 한 집안의 노예들이 했는데요. 한 집안의 아버지가 노예 한 명을 세워 자신의 아이를 지키고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시켰습니다. 그래서 이 노예는 아이가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하는지, 그리고 학교를 안전하게 오가는지 등등을 살피면서 그 아이들을 돌볼 책임을 지녔습니다. 이 노예들은 선생님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을 잘 양육하기 위해 심지어 엄한 훈육을 하기도 했습니다. 현대에서는 서울대나 하버드대와 같은 고학력자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아이를 훈육하고 교육시키는 가정교사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 백성들에게 주어진 율법의 역할입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와 우상의 악한 영향력으로부터 보호하시기 위해 율법이라는 초등교사를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 율법을 통해 “아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은 잘못된 것이구나,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라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율법은 구약 백성들에게 울타리 역할을 함으로 구약 백성들이 그 안에서 마음껏 뛰놀 수 있도록 한 것이죠.
그런데 이 율법의 역할은 여기서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 율법은 울타리 역할에서 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데려가기 위한 역할도 있었습니다. 24절에서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고 하는데, 이 말은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라는 시간적인 의미가 아니라 율법이 이스라엘을 감독하고 보호했던 시대는 메시아가 올 때를 고대하며 바라보게 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구약 백성들은 율법을 통해 메시아가 오실 것을 바라봤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메시아를 바라보게 하는 율법의 이런 기능이 이제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끝났다고 말합니다.
구약 백성들은 메시아가 오실 것은 알았지만 정확하게 누구인지는 몰랐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통해 오실 메시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신약에 와서 메시아가 오심으로 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25절에서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구약 백성들은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어도 오실 메시아를 믿었다면 그것은 곧 그리스도를 믿은 것이 됩니다. 율법은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구약 백성들과 신약 교회 모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아래에서 의롭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의롭다고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까지 바꿔주셨습니다. 두 번째로 율법보다 더 발전된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 어떤 역할을 하셨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율법 시대에 있었던 구약 백성들은 율법 아래에서 종 노릇했다고 말합니다. 4장 1-3절입니다.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구약 백성들은 어린 아이와 같은 상태였습니다. 1절에서 ‘어렸을 동안에는’이라고 말하는데, 바로 율법 아래에 있던 백성들은 어린 아이와 같은 자들이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법적으로 성인이 되지 않은 미성년자를 뜻하는 법정적인 용어입니다. 그래서 구약 백성들은 율법 아래에서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 것처럼 율법이 훈육하는 대로 따라야 하고, 율법 아래에서 종속되어 종 노릇을 해야 했습니다. 2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3장 23절에서 우리는 매인 바 되고 갇혀있었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이 평생 어린아이일 수 있겠습니까? 나이가 지나고 점차 성장하면 어린아이는 이제 성인이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4-7절에서 신약 교회가 어떻게 성인이 되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율법 아래에 자신의 아들을 보내시는데, 왜 율법 아래에 나게 하셨는지에 대한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4-5절입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바로 이제 때가 되어 율법 아래에서 종 노릇하던 자들을 속량하시고 아들로 삼으시기 위해 율법이라는 초등교사 아래에 자신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여기서 아들은 단순히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유업을 잇는 상속자입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여자에게 나게 하신, 즉 사람이 되게 하셨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셔서 율법에 종속된 자로 보내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에 종속된 사람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께서는 율법 아래에 있던 우리를 자신의 피로 사셔서 자신과 동등한 지위, 즉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역할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 아래에서 모든 율법을 지키시고 자신의 피로 우리를 사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구약 백성들이 신약 교회보다 연약하고 모자라서 어린 아이의 상태로 하나님께서 두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 안에서 의도적으로 구약 백성들을 초등교사 아래 있게 하셨기에 구약 백성들은 율법 아래에서 어린 아이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때가 차매’라고 말하듯이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이제 속량하실 때가 되었기에 자신의 아들을 보내신 겁니다. 구약 백성들과 신약 교회 모두 하나님의 선하신 경륜 안에 있었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속량하신 결과를 6절과 7절에서 무엇인지 여기에서 놀라운 것을 선포합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서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바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된 우리는 이전에는 오로지 “주님”이라고만 부를 수 있던 종의 신분이었지만 이제는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심으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고, 그리스도 그분만 받으실 수 있던 하나님의 유업을 같이 받는 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율법 아래에서 우리의 정체성은 종이었고 노예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우리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아들, 유업을 잇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율법의 가르침을 받아야 했던 어린아이였지만 그리스도 덕분에 이제 당당하게 하나님의 유업을 받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구약 백성들보다 더 큰 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구약 백성들은 율법 아래에서 가르침을 받고 그 안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실체가 아닌 그림자를 바라봐야 했습니다. 그것이 안 좋은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그것이 복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보다도 더 큰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구약 백성들이 율법을 통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이신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우리는 율법이 가리키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우리의 정체성이 율법 아래에서 종 노릇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고 유업을 잇는 자가 되었습니다. 구약 백성들은 실체의 그림자를 보는 복을 누렸지만, 신약 교회는 그림자가 가리키는 실체를 보는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이 사실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은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주셨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을 정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은 행위에 따라, 그리고 겉모습에 따라 정체성을 결정합니다. 좋은 집이나 좋은 차를 사고 화려한 옷을 입거나 유명한 회사에서 근무하고 높은 위치에 올라야 훌륭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합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없어도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를 통해 의인이고 하나님의 유업을 잇는 아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잘 사는 사람이든 못 사는 사람이든 맏형이신 그리스도의 동생들입니다. 오늘 본문인 3장 2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우리는 모두 우리의 겉모습이나 어떤 행동으로가 아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인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가 된 자들입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너 그 꼴이 뭐냐. 그렇게 초라하게 살면 되겠어?”라고 손가락질하고 낙망시키려고 할 때 오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신의 피로 사셔서 의인과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기억할 때 우리는 세상 속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누군가가 손가락질 하더라도 “나는 의인이야.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야. 이 일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오셨어.”라며 위로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살아갈 때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시고 우리의 정체성을 바꿔주신 삼위 하나님께 날마다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을 두고 같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율법은 구약 백성들을 보호하고 지키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율법은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이제 교회는 그분을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두고 같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그리스도를 통해 의인이며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합시다. 또한 살아가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흔드는 세상 속에서 말씀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고 말씀에서 위로받고 세상 속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이 시간 같이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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