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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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이 가까워 올 때 있을 일들과 그것들을 마주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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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을 향해 가는 시대

<들어가는 말>
우리는 이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맞이하는 대림절을 맞게 되었습니다.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을 뚫고 유한한 세상 가운데, 인간의 몸을 입으신 날, 성탄절을 기다리며 우리는 네 번의 주일을 보내게 됩니다. 믿는 자들에게 성탄절은 진정 기쁘고 감사한 날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기쁨과 감사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통해 조금 더 고양시키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가 고백하는 바, 이 세상은 끝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세상의 소리와 모습은 거짓 없이 ‘이 세상’이 분명 끝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고 증거합니다.
세상이 주께서 다시 오실 그 날을 향해 가고 있지만 “그 날과 그 때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아시기에” 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해 세상 속에 나타날 일들만을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통해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의 기쁨과 주의 탄생을 맞이하는 자의 기쁨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상고하심으로 대림절기의 기쁨이 배가 되시길 바라며, 오늘 주께서 말씀하시는 구원을 얻는 자, 끝까지 견디는 성도님들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재난의 징조

본문 3절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재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라고 묻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물은 까닭은, 앞 절의 말씀에서 예루살렘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예언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예언은 제자들에게 세상의 종말의 때에 일어날 일로 생각되었습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이 바벨론 제국에 노예로 끌려갈 당시 성전은 무너졌고 그들의 나라는 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성전이 언제 무너지는지 그리고 그 일이 있기 전에 어떠한 징조가 있을지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께서는 제자들이 궁금해했던 날과 때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때가 이를 때까지 있을 일들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끝 날에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5절)이고, 난리와 소문을 듣겠고(7절), 민족과 나라 간에 전쟁이 일어나며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7절)하셨습니다. 기근과 자연 재해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나, 가깝게는 사도들이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던 시기에도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1:28 “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사도행전 16:26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그러나 이것들을 끝이 아니고 그저 재난의 시작이라고(8절) 말씀하십니다. 본문 8절의 말씀을 새번역 성경에서는 “이런 모든 일은 진통의 시작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마치 아이를 임신한 여인이 겪는 산통과 같다는 것입니다. 산통은 태어날 아이가 어머니의 몸 안에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지만, 그것이 정확한 출산일을 예견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는 마지막 날의 전조이자 시작이지 제자들이 여쭈었던 확실한 표증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계속해서 나타날 전조들을 말씀하십니다. 믿는 자들은 환난을 받고, 죽음을 당하며, 모든 민족에게로부터 미움을 받게 될 것이며(9절), 이 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고, 실족한 사람들이 서로를 넘겨주며, 그것으로 인하여 서로 미워할 것(10절)이라고 하십니다. 더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고(11절), 불법적 행동 즉, 악한 행동이 더 많아짐으로 사람의 사랑이 식을 것(12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전조들 속에서 견디는 자

4~12절 말씀의 재난의 징조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 이후에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1세기, 주후 30~70년 사이 초기 교회는 박해와 순교, 수 많은 배교자들, 거짓 선지자들과 그들의 거짓된 속임수와 거짓 가르침이 세상에 범람 했고, 주의 교회는 넘처나는 악한 일들을 정면에서 받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힘든 시기 속에서 믿음의 선진들은 서로에게 편지를 써서,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고 박해하는 세상을 향해 믿음의 저항을 권면하고 믿음을 굳건히 할 것을 격려했습니다.
시대가 악했고 상황은 믿는 자들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절망할 때,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통하여 일하셨는데, 그 열심의 결과가 바로 견디는 자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13절에 “견디는”의 헬라어 원어는 “휘포메노”입니다. 이는 “~아래 계속 남아 있다.” 라는 뜻으로, 이는 통해 13절의 말씀을 보면, 믿는 자가 구원을 얻음은 무거운 짐이나 견디기 힘든 시련이나 박해의 상황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끝까지 지켰음을 의미합니다.

끝까지 견디는 교회

그렇습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박해와 핍박, 거짓과 속임수 속에서도 주께서 맡기신 자신의 자리에 끝까지 남아 있던 견디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견디었다면 이제 우리도 믿음 안에서 견뎌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모습 그대로 하늘에 오르신 예수 그리스도 이래, 마지막 날의 징조들은 지금도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더욱 교활한 거짓말과 미혹으로 무장한 거짓 선지자들은 자신의 세를 끊임없이 확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평화의 시대라는 말이 무색하도록 세계 곳곳에서 민족과 민족이 그리고 나라와 나라가 서로 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은 어떠합니다. 악한 이들은 악한 방법으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고, 누군가에게 온정과 사랑을 베푸는 행동은 때로는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되려 나를 공격하는 부메랑이 되어 피해를 보게되는, 사랑을 베풀 수 없는 시대, 사랑을 받을 줄도 모르고 사랑을 할 수도 없는, 사랑이 식은 시대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주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바, 끝까지 견디라는 것입니다.
이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작은 일에도 마음이 상하고, 상황의 어려움에 직면하면 두려움으로 인해 앞으로 걷지도 못하고 뒷걸음질 치는 것이 사람의 본 모습인데, 어떻게 이것을 견디고 구원 받은 자의 삶을 살아 낼 수 있겠습니까? 우리로서는 절대 할 수 없으나 우리를 믿음의 장성한 분량으로 이끄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으실 줄 믿습니다.
앞서 본문 13절의 “견디는”의 본래 뜻이 “계속 남아 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의미를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그의 몸된 교회인 성도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앞서 말씀 드렸지만 인간의 유한함과 그 유한한 개인은 끝까지 ‘견디는 것’이 불가하지만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 만들어진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는 그것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먼저는 박해와 핍박과 수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교회로서 자신의 자리에 남아 있는 자들에게는 우리가 의지할 절대적인 분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에베소서 4:4–6 NKRV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부름 받은 주님의 교회는 절대적으로 의지할 피난처가 있습니다. 우리의 주는 한 분이시고 우리의 믿음도 하나입니다. 세상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주께서 몸된 교회로 모인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우리에게 맡기신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킬 수 있는 것은 우리 주님이신 예수께서 교회의 각 지체들의 머리가 되어 주시고 믿음의 근원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노력하고 수고할 때, 그것이 우리를 견디게 하는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함께 세움을 받고 있는 사랑하는 믿음의 지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4:16 NKRV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양 옆의 계신 형제, 자매,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을 한번 바라 보시겠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성령 안에서 하나로 연결된 교회입니다. 주께서 각 분량대로 역사하게 하시고 또 자라게 하십니다. 주님의 한 없는 사랑 안에서 그 몸을, 우리를 세워 가십니다.
그러나 이 지상의 교회가 완전하지 않기에, 때론 다른 지체로 인해 화가 나고 마음이 상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반대로 내가 다른 지체를 화나게 하고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서로의 차이와 다름이 서로를 상처 입힐 수는 있으나, 그것이 내가 다른 지체를 사랑하지 못할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사랑 안에서 서로 세움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먼저 용서를 구하시고 기꺼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의 교회로서 온전히 세워져 갈때,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고 서로를 보듬어 줄 때, 우리 안에 나타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그 사랑이 몸된 교회를 끝까지 견디게 할 것입니다.

주의 재림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은 스스로 범죄하여 가장 좋은 하나님의 품을 떠났습니다. 그로 인해 생육과 번성을 위한 수고와 고통이 갑절이 되었습니다. 이런 인간에게 세상에서 풍파를 겪는 것과 삶의 고통의 여러가지 문제는 억울하다면 억울하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앞에 믿음 없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불평일 것입니다. 영문도 모른 체 고난 받던 욥은 이렇게 불평하였습니다.
욥기 7:11 NKRV
11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영혼의 아픔 때문에 말하며 내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리이다
그러하던 욥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가 들은 것은 영문 모를 고난에 대한 답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욥은 더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 후에 욥은 불평이 아닌 믿음을 고백합니다.
욥기 42:5 NKRV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저는 욥의 고백을 품고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저에게 주어진 모든 일과 믿음의 여정을 마치고 주님의 품에 안겨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고백할 그 날을 소망합니다.
이렇듯, 현실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세상의 풍파 속에 있고, 그 속에서 믿는 자들은 가까운 듯하지만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주님의 재림의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삶에 지치고 힘들어 불평이 입 밖으로 나올 듯 말 듯 할 때 쯤, 대림의 절기, 예수께서 탄생하신 성탄은 우리를 찾아옵니다. 그리고 다시금 나를 위해 오신 예수님, 나의 죄를 위해 오신 예수님,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그 예수님을 기억하고 기뻐하고 감사할 마음을 얻게 합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성곡의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서 하나로 부름 받은 거룩한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서로 굳건히 사랑하시고, 넘치는 사랑 안에서 몸으로써 세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에게 패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세상을 이기셨듯이, 주께서 주신 믿음으로 책임을 다하며 승리하는 자들입니다. 또한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오직 믿음입니다. 그 믿음 안에 굳게 서서 끝까지 견디는 자, 구원을 소유하는 자가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오신 아름다운 12월 풍성한 사랑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깊이 교제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함께 찬양하시고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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