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하나님의 은혜로 하루를 살라(욥25:1-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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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3년 12월 1일 금요일 새벽
1.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2. 찬송가 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3. 성경봉독 : 욥기 25장 1절 - 26장 14절
4. 말씀선포
1. 도입
1) 빌닷과 욥, 하나님을 표현하다
우리 성도님들은 하나님을 표현해보라 묻는다면, 어떻게 표현하실 것 같나요? 각자의 표현이 다 다르겠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과 경배하는 것’에는 어떤 표현에서든 포함될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 이 질문에, ‘창조주 하나님’이 제일 먼저 떠올랐는데, 이 또한 이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경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한다는 것은 참 긍정적입니다.
그런 취지에서 수아 사람 빌닷이 욥에게 하나님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보십쇼. 2절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으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는 주권과 위엄이 있으시다. 그분은 하늘 나라에서 평화를 이루셨다.”
틀린 표현 하나 없습니다. 욥 입장에서 빌닷의 표현은 아주 옳은 말입니다. 그리고 뒤이어 이렇게 말합니다. 4절을 보니,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여자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하나님 앞에 정당한 사람이 누가 있냐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의인이 어디 있겠냐는 겁니다. 그러자 욥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26장 2절입니다. “네가 힘없는 자를 참 잘도 도와주는구나 기력 없는 팔을 참 잘도 구원하여 주는구나”
욥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긍정적입니까 부정적입니까? 매우 부정적입니다. 왜요? 빌닷이 말한 4절을 통해 욥은, ‘너의 고통? 그건 너의 잘못이 만들어낸 결과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는 없어. 너도 그렇고. 그런데 너가 고통 가운데 있자나? 그건 너의 본성이 의롭지 않기 때문에 죄를 범해서 그래!’ 를 느꼈던 겁니다. 그래서 욥은 빌닷의 말을 듣자 부정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나 같은 지혜 없는 자를 참으로 잘도 가르치는구나. 너의 큰 지식을 잘도 전하는구나.” 라 말하며, 위로는 없는 지식에 그친다 부정적인 표현을 보여줍니다.
뿐만 아니라 욥은 이렇게 마무리 하는데, 14절 입니다. “보라 이런 것들은 그의 행사의 단편일 뿐이요 우리가 그에게서 들은 것도 속삭이는 소리일 뿐이니 그의 큰 능력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헤아리랴”
2.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1) 나를 부인하라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말하며 마무리 합니다. 우리가 아는 지식이 결코 전부가 아니라 빌닷에게 한 번 더 말해줍니다. 이런 빌닷과 욥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오늘 하루 이렇게 살아가길 소망해보는데, 첫번 째는 “나를 부인하라”는 것입니다.
나를 부인한다는 것은 내 존재를 부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 주권을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나의 생각과 나의 의견을 앞세우기 보다 우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앞세우라는 것입니다.
빌닷은 자기가 아는 지식에 여전히 그친 자 입니다. 그 지식에 하나님을 가두어 보며, 또 본인의 지식으로 이해한 하나님이 전부인 세상을 사는 자 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역시 하나님을 우리의 지식에 가두어 바라보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대화를 하다 “너가 지금 힘든건 말씀을 소홀히 하지 않았나 생각해봐.” 라던가, “요즘 기도 안하지? 영적으로 나태해져서 너의 가정이 조금 어려운거야.” 같은 말을 하지는 않으십니까? 그렇게 표현한다면 우리 또한 우리가 아는 지식에 하나님을 가둬두는 것은 아니겠습니까? 말씀을 소홀히 하고, 기도의 나태함이 우리의 영적인 아픔을 줄 수는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고난이 찾아온다. 역경이 온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삶을 점검해보는 오늘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내 지식에 가둬두지는 않았는가. 만약 내 안에 가둬둔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면, 자유하게 하십쇼. 그리고 그 하나님 아래 우리가 속량되어지는 시간이 우리 안에 주어지길 소망합니다.
2) 은혜를 사모하라
두번 째는 “지식대신 은혜를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지식으로만 아는, 문자적으로만 바라보는 실수가 우리 안에 벌어지지 않도록 깨어있길 바랍니다.
시대가 흘러가면 흘러갈수록 똑똑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분들 앞에서 목회자로서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얼마나 부담이 큰지 모릅니다. 그러던 중에 한 방송을 보며, 한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나름의 위로가 되었습니다. 설교는 지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나게 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참으로 위로가 되었습니다.
사실 진짜 위로가 되었던 것은 저 역시 계속 지식에 그쳤던 지난 날들을 보게 하시고 은혜를 사모하도록 결단케 했기에 더 위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성도님들은 어떠신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지식에 그치십니까? 또는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계십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어떤 은혜를 보셨습니까?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빌닷처럼 머리가 큰 그리스도인이 되기보다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예비하사 허락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뜨거워지는 그리스도인이 되자”는 결단을 해봅니다.
기독교는 지식을 나누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가지고 사랑을 전하는 곳입니다. 말씀을 나누는 곳이 바로 교회 공동체 입니다. 바라옵기로는 저와 여러분들의 하루가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이 뜨거워지길 소망합니다.
5. 기도제목
1) 말씀을 가지고
- 하나님을 앞세우게 하소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게 하소서
- 허락하신 은혜를 사모하게 하소서
2) 삶을 위해서, 그리고 각자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 말씀과 기도로 2024년을 준비하는 12월 되게 하소서. 섬김과 봉사에 순종하는 자가 넘치는 교회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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