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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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사랑 속에서의 감사함

Notes
Transcript
오늘도 예배에 자리에 나오신 성도님들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다 같이 옆에 계신 성도님들께 이렇게 만날 수 있음에 반갑습니다로 인사 한번 나누시겠습니다. 제가 여기에서 배우며 섬기게 된 지 2달이 넘어가는데요. 부임설교를 12월에 하면 될 것 같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한 달 전이었던 것 같은데 이곳에 벌써 이렇게 서게 될 줄 몰랐습니다. 그만큼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는 의미겠죠. 제가 이곳에 오기 전에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목사님 사모님을 보고 긴장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사모님이 너무 좋으셔서 좋은 목사님 사모님 만날 수 있게 해주신 것을 감사하구요 우리 이건철 전도사님 찬양도 잘하시고 많은 모습을 배울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좋은 장로님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하고, 좋은 권사님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하고, 좋은 집사님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하고, 또 좋은 청년부 사람들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하고 제가 이걸 하면 아멘 하실 줄 알았는데...다시 한번 하겠습니다. (반복)
그래서 이 모든 관계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세상에 감사할 것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솔직히 지금 많이 떨리고 긴장이 되는데요. 그래도 이곳에 설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오늘은 먼저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 15장의 장면은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뿐만 아니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하나님 나라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이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것에 대해 설명하십니다. 이 시간 저는 여기서 더 나아가 먼저 주시고 베푸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십니다. 먼저 찾아와 베푸셨고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하나님께 늘 감사해야 할까요? 3가지 이유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다 아시는 내용처럼 둘째 아들은 아버지께 자신에게 상속될 유산을 미리 받아서 허랑방탕한 삶을 살았는데 당시 사회에서는 아버지가 죽지 않았는데도 자식이 자신에게 상속될 유산을 미리 요구한다는 것은 마치 이런 의미와 같습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가 죽어버리면 좋겠어요. 이처럼 둘째 아들의 요구는 매우 무례하고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잘 먹이고 키워놨는데 뜬금없이 둘째 아들이 찾아와서 아버지께 제게 상속될 유산을 미리 주세요 이렇게 말을 하면 마음이 어떨까요? 저는 아직 제가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이 소리를 들으면 자식 잘못 키웠구나 하며 억장이 무너질 것 같습니다. 마음이 찢어지겠죠. 아버지의 마음에 대못을 박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의 마음에 대못을 박고 백번 천번 생각해서 잘 살고 있었으면 모르겠는데 아들은 매우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돈을 다 써서 거지가 되고 거기다 나라까지 궁핍한 상황이 되어버려서 돼지를 치면서도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조차 구하지도 못하는 비참한 상황까지 오게 됐습니다. 그러자 둘째 아들은 스스로 돌이켜 자신의 죄와 잘못을 깨닫습니다. 누가복음 15:19, 21절을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같이 한번 읽어보시겠습니다.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그리고 하는 고백이 방금 우리가 읽은 구절입니다.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자기가 저지른 짓이 얼마나 큰 죄라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자기를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둘째 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 못난 아들이 아버지께 지은 죄에 대해서 진심으로 뉘우치며 회개하는 것은 실로 마땅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런 둘째 아들을 품에 안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첫 번째 이유의 증거인데요 바로 그 못난 아들조차도 여전히 귀한 아들이라 여겨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잘못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녀로 사랑하시기에 그분이 택한 백성을 내치지 않으십니다. 이렇게 자신을 아버지의 아들이라 감히 말하기를 부끄러워하는 둘째 아들을 아버지께서는 측은히 여겨 달려갔다고 본문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그럴 줄 알았다와 같은 잔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측은히 여기는 아픈 마음을 가지고 둘째 아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일 좋은 옷을 입히며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입니다. 여러분 아버지께서 왜 이렇게 행동하실까요?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못난 자식도 아버지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아들이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그를 사랑하시는 이유는 그가 아버지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사랑의 감사를 느낍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 여러분 육신의 부모에게는 잘난 자식, 못난 자식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큰 죄를 저질러서 용서받고 싶어도 용서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부모이신 우리 하나님께서는 못난 자식, 잘난 자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사랑은 공평합니다.
여러분 미운오리새끼라는 동화를 알고계십니까? 주인공인 못생긴 오리는 백조의 새끼였지만 오리 밑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정체성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못생긴 오리는 같이 함께하고 싶었지만 다른 오리들에게 조롱받고 놀림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오리는 살기 위해 끝까지 버텼고 결국 자라서 자신이 아름다운 백조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못생긴 오리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을 알려줄 동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온갖 시련과 역경을 견디고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뒤늦게 알아버리죠. 빨리 깨달았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자녀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정체성을 알게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어떤 상황 가운데 있을지라도 심지어 사단이 정죄할 때에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로 택하시고 베푸신 조건 없는 사랑을 잊지 않고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두 번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과 가까이 있음에도 감사를 잊기 쉬운 우리조차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방탕하고 돌아온 탕자도 사랑하시지만 첫째 아들과 같은 우리도 사랑하십니다. 누가복음 15장 28~30절을 다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첫째 아들이 밭에 있다가 돌아오는데 풍악 소리가 들리고 잔치가 벌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래서 첫째 아들이 종에게 물어봤습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 그러자 이 종이 둘째 아들이 돌아와서 아버지가 잔치를 벌이고 송아지를 잡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그때 첫째 아들이 보인 반응이 방금 우리가 읽은 말씀입니다. 형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분노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유산을 달라고 한 적도 없고 성실하게 아버지를 섬겼는데, 저한테는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안 주면서 어떻게 저렇게 방탕하게 살아온 동생에게는 잔치를 벌입니까? 라고 따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노하는 형에게 어떤 마음이 있을까요?
저는 자기 의라고 하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는 둘째 아들처럼 세상에 나가 방탕하지 않고 모범이 되는 아들처럼 살았다. 라고 생각하는 첫째지만 정작 그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 모습은 마치 그 당시 자기 의에 빠져 있던 바리새인들의 모습과 같아 보입니다. 그들은 열심히 말씀도 읽고 구제도 하고, 그리고 금식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첫째처럼 자신들의 의로움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했고, 그들 자신의 의를 인정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5장 1~3절 말씀을 통해 세리와 죄인들뿐만이 아니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도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알게 하셨습니다. 다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그들이 예수님을 적대하더라도 심지어 자신이 그들에게 십자가로 죽임당하실 것을 아시면서도 예수님은 그들마저도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감사함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셨습니다. 첫째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한 채 원망을 쏟아냈지만, 아버지는 그런 아들에게 31절에서 자애롭게 말합니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그렇습니다. 첫째는 항상 아버지와 함께 있었습니다. 다만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진정한 아버지의 아들로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이미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누리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교회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신 아버지의 설교를 유년시절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듣고 자라면서 어느새 제 맘속엔 자기 의라는 죄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 맘속에 있던 것은 감사가 아니라 그냥 형식적인 예배였습니다. 간절함과 은혜는 없었고 그냥 아버지께서 늘 하시던 것을 하시는구나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한 번도 빠지지 않았으며 이것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하나님에 대한 마음은 멀어졌던 것 같습니다. 인로 인해 대학교를 다니면서 마음은 점차 공허해졌고 삶이 우울해졌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교회도 한 번도 안 빠지고 잘 갔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공허하고 힘들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돌이켜보니 이제껏 드렸던 예배에 대한 마음이 감사가 아니라 형식적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기 위해 기도했고, 참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 알게 해주셨고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제가 우리 담임목사님 다음으로 존경하는 분인데요.
요한복음 주석의 저자인 권해생 교수님의 말에 따르면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사랑을 이렇게 설명한다고 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그리스도인의 삶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 사랑, 예수님 사랑에 대한 반응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 사랑, 예수님 사랑에 대한 반응 즉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어서 독생자 예수를 주셨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게 하시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한마음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찾으신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 중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데 자기 의라고 하는 죄에 빠진 분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런 여러분조차도 사랑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묵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자기 의에 빠진 죄인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감사로 하나님께 돌이키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먼저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우리가 오해하시면 안 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값싸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우리도 사랑하시니까 적당하게 이래저래 타협하면서 살아도 되겠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값싸게 여기면 우리 안에 진정한 회개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무겁게 생각해야 됩니다. 앞서 우리는 아버지께서 돌아온 둘째 탕자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갔다는 표현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고대 사회에서 신분이 높은 아버지가 길에서 달려가는 것, 뛰어가는 것은, 굉장히 수치스럽고 모욕스러운 행동이었습니다. 아마도 주변의 동네 사람들은 아버지가 달려가는 것, 뛰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조롱했을 겁니다.
그래서 케네스 베일리라고 하는 학자는 아버지가 아들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십자가의 예수님과 연결시킵니다. 아버지께서 수치와 모욕을 당하면서까지 아들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수치와 조롱을 당한 것과 연결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같은 죄인이 하나님께 용납될 수 있는 결정적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의 희생 덕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시면서까지 그분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는 결코 값싸지 않습니다. 은혜는 우리에게 값없이 선물로 주어지지만 그것은 결코 값싸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죄를 위해서 죽임당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믿고 계십니까? 여러분 우리는 이 복음의 진리를 결코 가볍게 여기면 안 됩니다. 만약 이 복음의 진리를 가볍게 여긴다면 우리는 또 다시 넘어질 수 있고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돌아온 탕자처럼 하나님께 돌아온다고 해도 다시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 계신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값싼 은혜가 아님을 믿고 십자가의 은혜에 감사하여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성도로 자라가게 되시길 소망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택하신 자녀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잊지 않고 돌이키며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잊은 우리조차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아들처럼 돌이켜 돌아와도 첫째 아들처럼 언젠가 감사를 잊고 살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조차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로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독생자 예수를 주셨고 그분의 큰 계획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여러분 이 희생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그 사랑과 은혜를 값지게 여기며 이 시간 찬양하고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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