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라고 하실 때

다윗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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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로 이거야! 2. 방향을 바꿀 수 있을까? 3. 내 마음이 꺾였을 때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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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거야!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어요? 저는 참 여러모로 심란한 한 주를 보냈어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참 마음이 편했어요. 왜냐하면 우리 가온누리는 제가 없어도, 아름다운 아둘람 공동체가 될 것이라는 위로를 하나님께서 주셨거든요.
지난 주 적용처럼, 앞으로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과 동역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하나님과 동역자들을 겸손하게 섬기고 받아드림으로, 생각만해도 웃음과 위로가 되는 피난처가 바로 가온누리가 되기를 소망해요.
(쉬고)
아둘람 공동체를 넘어 결국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다윗을 세워주셨어요.
다윗이 왕이 되고 안정을 찾기 시작했고, 더 이상 환난 당한 사람들, 빚진 자들, 애통한 자들이 없어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함과 안정만이 가득한 시기가 찾아왔어요.
전쟁은 끝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제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나라의 모습으로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변해갔어요.
가장 좋은 곳에서 지내던 다윗에게 어느 날 한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딱 들어왔어요. 어쩌면 다윗이 이렇게 말했을지 몰라요.
“와. 나 진짜 쩌는 것 하나 생각했어. 나 진짜 천재인거 같아. 와 좀 치네?”
“와 이거 진짜 미친 아이디어다. 진짜 폼 미쳤다.”
“나 진짜 하나님 사랑한다. 와 이거 나만 생각하고 할 수 이는거야. 진짜 대박"
“바로 이거야!!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거야!!!”
(쉬고)
그리고 나단 선지자를 바로 불러서 “나 건축할거야!!”라고 말을 해요. 그리고 나단은 “좋아! 나이스! 진행시켜!”라고 이야기를 하죠.
나단은 다윗의 이 마음이 정말 위대하고 아름다운 결단이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진행시켜!”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 날 밤 하나님께서 나단을 찾아오셔서 “나단아. 응 그거 아니야. 성전 짓는거 난 찬성하지 않아" 라고 말씀하셨어요.
선지자로써 올바른 음성을 듣지 못했던 나단이었어요.
왜냐하면 그만큼 나단에게도 성전을 짓는 것은 정말 멋진 결단이었거든요.
(쉬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된 나단은 다음날 바로 다윗을 찾아가서 “진행 한 것 취소시켜!!”라고 말을 해요.
(쉬고)
이 때 다윗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정말 너무나 멋진 계획 아닌가요? 내가 사는 것보다 더 성전을 지어 하나님께 드리고 싶었어요. 그렇게 마음을 고백하고 싶었어요.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잖아요.
심지어 선지자조차 멋진 계획이라고 말을 했어요. 그래서 신나서 성전 준비를 시작했는데, 곧 이어 나단이 찾아와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셔"라는 말을 하고 있는거에요.
내가 원하는 것과 다른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고 계셔요.
여러분이 다윗이었다면 “하나님께 나의 것을 드리기로 결단"했는데 “그거 안 받아"라고 하신다면 어떤 감정을 느낄 것 같아요?
(쉬고)
저였다면 굉장한 실망감과 상실감을 느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자책했을거에요.
‘내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하나님께서 거절하셨을까.’
‘왜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지 않으실까. 도대체 왜' 라는 생각이 들었을거에요.
(쉬고)
그래서인지 하나님께서 바로 다윗을 위로하기 시작하세요.
“다윗아 내가 너를 왜 왕으로 세웠는지 아느냐?”
“내 백성을 잘 이끌어주는 것 그것만을 나는 원했다. 성전을 새로 지으라고 세운 것이 절대 아니다.”
“나를 향한 민감한 마음을 갖고 나를 생각해 주어 고맙다. 하지만 내가 너에게 원한 것은 성전건축이 아니야"
“너의 아들이 나를 위한 성전을 건축할거야. 아들을 통해 꿈이 성취될거야"
“고맙다. 너를 칭찬한다.”
이것은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배려였어요.
(쉬고)
다윗의 시대에 평화가 찾아오기는 했지만,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어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전쟁을 해야 했어요. 전쟁을 한다는 것은 백성들이 그 곳에 많이 투입이 된다는 뜻이죠.
전쟁을 하는 도중 성전을 짓기 시작한다면, 다윗에게도 이스라엘에게도 엄청난 부담감과 짐이 되었을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성전 건축이 아닌, 지금처럼 백성들을 잘 다스리기를 원한다.”라는 말과 함께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이죠.
율법에 따르면 “성전은 전쟁이 없고 평안한 시대에 지어져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다윗 다음에 왕이 되는 사람이 누구죠? 솔로몬의 이름의 뜻은 무엇일까요? 평안이에요.
그러니까 평안이라는 이름을 가진 솔로몬의 시대에 성전이 지어지게 될 것이다. 라는 것이죠.

방향을 바꿀 수 있는가?

만약 하나님께서 다윗처럼, 내 마음과 다르게 NO라고 하시면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일건가요?
다윗은 하나님의 거절 앞에 굉장한 상실감을 느꼈지만, 이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기쁜 마음으로 받아드려요.
자신이 잘못해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따스한 마음과 사랑 그리고 배려를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저와 여러분은 굉장히 많은 일들에 대해 “하나님의 거절을 경험"해 왔어요.
기도 할 때마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갖고 싶은 것들을 하나님께 강요해 왔어요.
그러면서 이것이 있어야 더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 것처럼, 나의 논리가 하나님의 논리인것처럼 생각해 왔어요.
우리가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너무나 많은 상황과 상실감을 경험하며 살아왔어요.
(쉬고)
그 때 여러분은 어떻게 행동했나요?
하나님이 거절하시고 응답하지 않으실 때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해왔나요?
(쉬고)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살아가기를 바래요. 하지만 오래 기다리지 못해요. 왜 일까요?
“빠름"에 익숙하기 때문이에요.
(쉬고)
제가 인도에 있었을 때 학교를 다녔잖아요?
과제가 정말 많은데 할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ID 카드가 없어서 자료가 있는 도서관에 들어갈 수 없었거든요.
우리나라는 엄청 빠르게 발급해서 주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느려도 너무 느린거에요.
심지어 수업을 도서관에서 하는데, ID카드가 없어서 저만 들어가지 못했어요.
학생처를 찾아가서 이야기하면 “Oh no problem” “Tomorrow you come and get it. trust me”라고 해요. 다음 날 찾아가면 또 똑같은 말을 했어요.
전 인내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삼일, 일주일, 한달을 참았어요.
그 학생처 직원도 참 대단한게 한달 내내 “no problem” “Tomorrow you come and get it. trust me”를 외쳐대더라구요.
한달이 되었어요. 받았을까요 못받았을까요.
당연히 못받았죠. 제 인내심에 한계가 왔어요. 그래서 저만한 등치의 사람의 손목을 잡고 강제로 자리에서 일으켰어요. 그리고 바깥으로 끌어냈어요.
“당장 나와 함께 발급하는 사무실로 가자. 그리고 ID 카드 받아와!”라고 하면서 그를 끌고 갔어요.
한 2분 30초 걸었을까요? 발급 사무실에 도착했어요. 그리고 카드를 받았어요.
제가 그 직원에게, “이 쉽고 간단한 것을 왜 한달이나 걸렸냐!”라고 했더니 그가 저를 보면서 한마디 했어요
너 너무 성격이 급해.
(쉬고)
황당함을 넘어서 진짜 어이가 없었어요.
진득히 기다렸으면 줬을텐데, 그게 뭐라고 계속해서 한달 내내 찾아와서 자신을 괴롭혔냐고 하더라구요.
(쉬고)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그 나라의 문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저는 수업도 듣고 과제도 해야 했지만, 다른 접근법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들의 업무 처리를 기다렸여야 했는데, 너무나 무례하게 제가 손을 낚아채서 끌고 나가서 강제로 카드를 발급을 받아 온 것이죠.
인도의 늦은 행정처리를 기다리지 못했던 것이에요.
왜냐하면 저는 “빠름의 민족. 대한민국 국민"이니까요.
(쉬고)
그것처럼 우리는 “빠름에 익숙"하기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길 원하지만, 오래 기다리지 못해요.
우리는 기다리는 것이 굉장히 어색하거든요.
(충분히 쉬고)
여러분은 기도했는데 원하는데로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어떻게 반응하나요?
하나님께서 “그거 아니야" “올바른 길이 아니야"라고 하실 때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해왔나요?
(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그분이 이끄시는 삶을 정말로 살아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매일 매일 주의 깊게 하나님의 말씀을 한절 한절 씹고 뜯고 읽어야 해요.
다윗처럼 민감하게 반응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반드시 기도해야 해요.
(쉬고)
사역을 시작한 이후 제가 매년 빼먹지 않고 하는 기도 제목이 있어요.
“하나님의 부르심과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해주십쇼”라는 기도제목이에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늘 제가 원하는데로 해주지 않으셨거든요.
머물고 싶으면 떠나라 하시고, 떠나고 싶으면 머물라 하시는 등 제가 원하는 것들에 대해 다 반대로 응답하시더라구요.
가만두지 않고 계속해서 제 삶을 잡고 계속해서 흔드세요. 안정적여질만 하면 자꾸 등을 미세요.
그래서 때론 “이 기도제목을 버릴까?”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버릴 수 없더라구요.
“왜냐하면 전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쉬고)
저에게 허락하신 공동체와 더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공동체에 대해 마음이 커져가고,
더 함께 하고 싶다고 고백하면 할수록 ,
하나님은 저에게 “노" 그 곳은 너가 있을 곳이 아니다. 라고 하시더라구요.
너무나 아름답게 세워져가는 공동체를 보면서, “조금만 더 있고 싶어요" “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라고 고백하면 할수록 하나님은 “더 이상 제가 있을 곳이 아니다"라고 하시더라구요.
하나님은 제가 있어야 할 자리를 분명히 제한하시더라구요.
제가 아니어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일하시는데 제가 그 것을 잊다는 것을 깨닫게 하세요.
다시 말해 하나님은 저에게 “제가 만들고 싶은 가온누리를 만들라"라고 하지 않으셨다는 거에요.
(쉬고)
나단의 말을 들은 후 다윗이 바닥에 주저 앉아요. 그리고 위를 올려다 보아요.
자신의 결단과 마음의 고백에 대해 하나님께서 “내 대답은 No. 허락할 수 없다"라고 대답하세요.
“그 꿈은 실현 불가능 한 것이다"
“내 계획 안에 너가 성전을 짓는 것은 있지 않다.”라고 하셔요.
(쉬고)
다윗은 나단을 통해 분명하고도 단호한 하나님의 거절을 들어요. 그리고 또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해요.
“제가 무엇이길래 이렇게까지 복을 주십니까?”
“그 꿈을 누가 이루던지 저는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합니다.”
거절에 대한 실망감보다, 그를 기억하고 위로하시는 하나님께 기쁨과 감사를 올려드려요.

내 마음이 꺾였을 때

다윗이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잘 풀리지 않았음에도" “노라고 단호하게 대답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딱 한가지에요.
(쉬고)
“내 생각보다 더 좋은 계획과 길을 갖고 계시는구나.”하고 받아드린거 에요.
나는 이 길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다른 길을 원하고 계시는구나.
그 것이 나에게 훨씬 더 좋은 길이라고 말씀하시는구나.
그렇다면 나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길을 끝까지 걸어야 한다. 라 결단한거에요.
(쉬고)
만약 이 때 다윗이 “왜 하나님 거절하십니까? 저는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건축 할 것입니다.”라고 하고 밀어붙여서 건축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지어졌을거에요. 정말 크고 아름답고 성대하게 지어졌을거에요.
하지만 그만큼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을 것이고, 다윗은 사명, 소명, 목적을 상실한 사람이 되었을거에요.
(쉬고)
아는 청년들은 알고 있겠지만 저는 다음주가 마지막이에요.
다음 주일을 마지막으로 여러분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사임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번 달 말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한인교회로 향해요.
여러분과 헤어지는 것이 정말로 달갑지 않아요. 싫어요. 더 함께 있고 싶어요.
재작년에 비해 분위기도 정말 많이 바뀌었고, 여전히 대답은 잘 안하지만 그래도 그 때보다 더 능동적으로 변한 여러분과 함께 시간을 더 보내고 싶어요.
아직 해야 할 것도 많고, 해보지 못한 것도 너무나 많아요.
여러분을 향한 마음이 더 커졌고, 함께 정말 멋진 공동체,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를 함께 세워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년에 너가 이 곳에 있는 것은 내 계획이 아니다.”라고 하시더라구요.
(쉬고)
정신없지만, 물 흐르듯이 진행되어지는 상황들이 지나고 나니, 여러분과 이별을 해야하는 순간이 다가왔더라구요.
(쉬고)
하나님께서 “가온누리를 향해 세워 놓은 24년의 계획에 너는 없다.”라고 말씀하실 때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결국 “네 하나님.” 밖에 없더라구요.
(충분히 쉬고)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에 의해 창조된 작품들이에요.
하나님은 당신들을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 분명히 있어요.
그래서 우리의 삶에 고난과 어려움, 만남과 헤어짐 등이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만큼 성장하기를 바라고 원하고 계셔요.
(쉬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바로 우리 인생 아닌가요?
저는 제가 원하는데로 뭐 이루어진게 진짜 거의 없어요. 그런데 하는 것마다 정말 다 좋은 결과를 맺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계획한데로 다 이루셨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와도, 생각지 못한 만남과 이별의 상황 앞에 섰을 때,
굉장히 괴롭기 힘들지만 “네 하나님"이라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더라구요.
(쉬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좋더라구요.
힘들지만, 그래도 그 길이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바른 길이라는 뜻임을 보여주시거든요.
(충분히 쉬고)
에벤에셀.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말도 안되게 이끌어 가시더라구요.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멀리 있는 것 같을 때도 있고, 기도해도 응답하지 않으셔서 의아할 때도 분명 있지만, 그 누구보다 가까이 계시면서 우리를 돕고 세우고 계셨어요.
시편 23편을 보면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하나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날지라도 나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기록이 있죠.
세상 그 누가 “영혼을 소생시켜야 하는 그 참혹한 자리를 경험”하고 싶겠어요.
세상 그 누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걷고" 싶겠어요.
모두가 편한 길, 안전한 길을 가고 싶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때로 우리에게 “NO. 그 길이 아니야"라고 말씀하신다는거에요.
(쉬고)
“내 영혼을 소생시킨다"라는 말의 뜻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양을 길러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 문장의 의미가 확 다가오지 않아요. 하지만 이 본문을 처음 확인한 성경의 1차독자들은 목축업을 해보았기 때문에 바로 이해할 수 있었어요.
이차 독자인 우리가 “내 영혼을 소생시킨다"라는 말을 이해하려면, 지금부터 제가 말하는 것을 상상하면서 들어야 해요.
양은 굉장히 편한 것을 추구해요.
마치 제가 집에만 가면 거의 바닥과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양들은 우묵한 곳을 만나면 몸을 기대고 쉬려고 하는 습성이 있어요. 이렇게 기대고 있다가 미끄러지면서 뒤로 엎어지는거에요.
그리고 양털에 불순물들이 붙으면 무게를 잡지 못해서 곧 넘어져요.
양이 뒤로 엎어지면 바로 일어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못 일어나요.
뒤로 엎어진 양을 바로 일으켜 세워주지 않으면 얼마 가지 못해 배에 가스가 차서 죽어버려요.
뒤로 엎어져서 가스가 찬 양을 발견하면 바로 일으켜 세워서 가스가 다 빠져나갈 때까지, 그리고 굳어진 근육들이 풀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마사지를 계속해 주어야 해요.
일으켜 세웠어도 마사지를 하지 않으면 근육이 굳고 가스가 찬 채로 양이 죽어버려요.
죽을 고비를 넘긴 양은 우묵한 곳이 보이면 또 달려가서 기대고 미끄러져서 뒤집어져요. 그 것을 계속 반복해요.
학습이란 것이 없을 정도로 죽음을 향한 편안함만을 찾아가요.
(쉬고)
양은 본인이 위험한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몰라요. 그 부분에 대해 지독히도 무감각해요. 뒤로 넘어져도 그냥 있어요. 가스가 차고 곧 죽어가지만 몰라요. 그만큼 무감각해요.
양털에 불순물이 붙어서 걷는게 힘들어지고, 움직이는 것이 어려워도 양들은 몰라요. 그대로 더러운 것들을 묻히고 걸어가다가 뒤로 넘어져요.
(쉬고)
“내 영혼을 소생시킨다.”라는 말의 의미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죄로 인해 부패로 썩어져가는 우리의 몸을 일으켜 세우고 마사지를 하며 모든 것들을 제거하고 계신다는 거에요.
즉, 우리 몸에 붙은 모든 죄를 깨끗하게 제거하심으로, 죽어가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었다.
우리를 구원하셨다.라는 뜻이에요.
(쉬고)
우리를 살리는데 모든 관심과 마음을 쏟으시는 그 분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는 우리를 지켜주신다.”라고 말씀하세요.
당시 그 땅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었어요.
비가 내리면 석회암이 녹게 되는데, 그 것이 깊고 어두침침한 골짜기를 만들어내요.
수천개나 되는 좁게 갈라진 틈과 작은 동굴들이 정말로 많이 생겨나요
몸을 숨기기에 딱 좋은 장소에요.
그래서 많은 맹수들과 도둑들이 그 곳에 숨어 있었어요.
그래서 양 떼를 데리고 다니는 선한 목자들은 1.8m나 되는 곧은 지팡이를 늘 지니고 있었어요.
산을 오를 때나, 곁길로 가는 염소나 양떼를 치면서 바른 길로 가도록 안내하기도 하고, 짐승들이 먹을 수 없는 곳에 잎을 쳐서 떨어뜨리데 사용해요.
그리고 0.8m의 막대기를 들고 가까이 다가오는 맹수들을 때려서 내쫓곤 했어요.
하나님을 몰라, 하나님을 알지만 세상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우리들에게 바른 길을 지팡이로 알려주시고, 우리 몸에 붙는 악한 것들을 막대기로 쳐서 물리치고 계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요.
(쉬고)
죄를 막아주시는 막대기를 들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지팡이를 들고, 우리 몸에 붙은 죄와 부패를 닦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하는 삶"을 우리는 매일을 살아내고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NO. 그 길을 걸어라"라고 해도 걸어야 하고, 그 길이 맞다고 인정 할 수밖에 없는거에요.
(쉬고)
성전을 짓고자 하는 다윗 역시 우리처럼 여러 고비들을 견뎌 왔어요.
뒤집힌 양처럼 죄 앞에 빠져들기도 했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며 여러 생명의 위협을 경험하기도 했어요. 짙은 어두움이 깃든 캄캄한 골짜기에서 좌절했던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다윗은 이렇게 고백해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지만, 내가 바라는 길이 아니지만, 당신이 가라시면, 통과하라시면 ‘기꺼이 가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길과 마음이 아니어도, 의심하지 않고 그 길을 기꺼이 가겠습니다.”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지켜줄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나와 함께함을 내가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쉬고)
우리의 삶은 밝고 화창한 일보다 우울하거나 혹은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지나갈 때가 더 많아요.
그래서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나를 지켜주고 계시는 하나님을 느끼지 못할 때”훨씬 많다는 거에요.
(쉬고)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의 길을 막고 예상치 못한 상황을 주시는 이유는, 시험에 들게 하려는 목적이 절대 아니에요.
역경과 환난 그리고 거절은 우리를 망하게 하지 않았잖아요.
(충분히 쉬고)
지금 내 마음의 감정을 미친듯이 흔들어대는 것은 바로 “은혜와 축복의 직전 단계에 다다랐음"을 뜻해요.
(쉬고)
여러분 벌써 12월이 되었어요. 2023년도 이제 다 끝났어요.
여러분 진짜 한해 고생 많았어요.
“한해가 왔구나 하면서 마무리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사실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요.
내가 어떻게 살았던지간에, 선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한해를 마무리 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돌아보면 내가 원하는데로, 내 마음대로 된 것보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더 많았음을 알 수 있을거에요.
내가 원하는 것을 해야, 내가 이 것을 성취해내야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여러분은 더 많이 훨씬 성장했어요.
그 것이 바로 은혜에요.
(쉬고)
우리는 올 한해 하나님에게 ‘수많은 거절의 시간’을 경험해 왔어요.
그런데 여러분의 삶. 망했나요?
내가 원하는데로 되지 않았던 순간이 좀 더 많았는데, 이상하게 여러분의 믿음이 더 성장하지 않았어요?
(쉬고)
이 곳에 있는 모든 청년들은 다르지만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수많은 거절을 당했어요."
그리고 역설적으로 “거절 속의 성장"을 경험했어요.
(쉬고)
앞으로 여러분은 또 다양한 ‘NO! 그 길이 아니야!”라는 거절을 경험할거에요.
그 때마다 여러분 괴로워하거나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기를 바래요.
오히려 “하나님께서 더 선한 길로 인도하시겠다는 사인이구나!”라고 받아드려주세요.
그리고 그 길을 걸어가면서 주위에 있는 동역자들에게 “거절의 길을 걷는 기쁨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세요.”
그렇게 서로에게 도전을 던져주세요.
(쉬고)
서로가 당한 거절을 보고 웃어주기도 하고, 울어주기도 하면서 그 길을 걸어가세요.
그렇게 웃고 울고 도전을 주면서 걷다보면 어느새 결승선에 함께 서 있는 서로를 발견하게 될거에요.
그리고 그렇게 걸어서 제가 있는, 혼자라서 외로울 자카르타에도 와주세요.
(쉬고)
정말로 사랑하는 가온누리 한사람 한사람이 “더 많은 거절을 경험"하기를 “그래서 더 많은 은혜를 경험”하는 남은 23년 그리고 앞으로 다가 올 24년이 되기를 정말 간절히 바래요.
나처럼 “NO”라는 거절의 은혜를 겪고 있는 이들이 있음을 기억하고,
함께 손 잡고 걸으며,
서로를 위해주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꼭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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