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교회를 함께 섬기는 동역자들입니다②(골 4: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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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가끔 우리는 동료들과 더불어 옛일을 추억하다가, 그 때는 그랬지... 누구는 그랬지 하면서... 과거의 기억들을 들추어냅니다.
그 때 일을 회상하면서 나의 부끄러움을 후회하기도 하고, 그 때의 누군가를 기억하면서 ‘참 좋은 사람이었어!’칭찬하기도합니다. 반면에 ‘좀... 아쉬운 사람이었어!’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영접함으로써, 새 사람이 된 우리는, 어떻게 살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어야 할까요?
오늘 본문 골로새서 4:12-18은 좋은 기억으로 남는 삶의 실마리를 말씀합니다. 좋은 기억으로 남는 삶을 살았던 사도바울의 또 다른 동역자들을 소개합니다.
<본론>
1.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도록 애써 기도하는 동역자(12-13)
먼저, 새 사람 된 성도로서 좋은 기억으로 남는 삶 살려면, 우리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도록 애써 기도하는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발견하는 사도바울의 또 다른 동역자는 먼저, 골로새교회 출신으로 지금 바울과 함께 갇혀 있는 에바브라입니다(12-13).
에바브라는 편지의 앞 부분인 골로새서 1:7-8에서 이미 소개된 바 있습니다.
7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8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
7절 8절은 에바브라에 대하여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합니다.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다’는 기술로 미루어 에바브라는 골로새교인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그를 바울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알린 자’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편지를 마무리하는 오늘 본문 4:12-13절을 통해 사도바울은 에바브라의 이름으로 안부를 전하며, 다시 한 번 에바브라가 어떤 사람인지를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12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13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이처럼 에바브라는, 무엇보다도 골로새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도록 애써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12b).
여기서 ‘애써 기도한다’는 것은, ‘운동선수가 경기에서 우승하기 위해 고통을 감수하며 힘을 다해 시합을 하는 것처럼 그렇게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바브라는 복음을 위해 골로새 인근의 라오디게아(서쪽으로 19km)와 히에라볼리(북서쪽으로 약 24km)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습니다(13).
이렇게 바울의 절친한 동역자 에바브라는, 복음의 일꾼이 되어, 여러 지역에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세워진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세워져 가도록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섬기던 교회를 떠나 로마에서 감옥에 갇혀 사도바울의 사역을 돕고 있지만, 그곳에서도 고향의 성도들을 잊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이 계속 신앙 안에서 성숙하고, 흔들림 없는 삶을 살도록 운동선수들이 온 힘을 다해 시합을 하는 것처럼 애쓰며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열방교회에도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도록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주님의 교회와 성도들을 염려하며,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하는 사람 이전에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사역에 앞서서도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부족하지만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저 김병기목사를 위해 기도하는 동역자가 되어 주십시오.
믿음이 연약하고, 건강이 약하고, 가정의 어려움을 겪고, 물질의 곤궁함을 당하고, 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의 동역자가 가장 훌륭한 동역자요,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는 동역자입니다.
이렇게 우리 모두가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도록 애써 기도하는 동역자가 되어 우리 열방교회를 더욱 든든하게 세워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끝까지 복음과 함께 끝까지 교회와 함께 길을 걷는 동역자(14)
두 번째로, 새 사람 된 성도로서 좋은 기억으로 남는 삶을 살려면, 우리는 끝까지 복음과 함께 교회와 함께 길을 걷는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이어서 소개하는 사도바울의 동역자들은, 사랑 받는 의사 누가와 데마입니다.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14)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입니다. 누가가 의사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본문이 오늘 본문 골로새서 4:14입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신약성경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며, 신약 교회의 시작과 폭발적인 성장에 대한 증거들을 기록하였습니다.
누가는 사도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에 드로아에서 환상을 보고, 마게도냐 지방으로 떠날 때부터 동행했습니다(16:9-10).
또한,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과정과 팔레스타인의 가이사랴에서 로마로 압송되는 동안 계속 함께 했습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바울 곁을 떠나갈 때도, 끝까지 바울 곁에 남았던 사람이 바로 누가였습니다(딤후 4:10-11).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딤후 4:11a)는 바울의 말은, ‘누가는 복음과 교회를 위해 끝까지 나와 함께 한 동역자이다!’라는 인증입니다.
끝까지 주님과 복음, 주님의 교회를 위해 동역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14절은 또 다른 인물 데마를 소개합니다. 데마는 빌레몬서 1:24에서도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며 바울의 동역자로 소개합니다.
그러나 조금 전에 읽은 디모데후서 4:10에 따르면,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감옥에 갇힌 바울을 버려두고 자신의 출신지 데살로니가로 되돌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데마는 바울의 동역자로서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지 못한 채, 자신의 신앙과 섬김의 결단을 포기했었습니다.
바울이 본 절에서 ‘데마’에 대해 단지 이름만 언급한 것에 대하여, 「라이트 후드라」는 주석가는 데마가 세상을 사랑함으로써 사역에 대해 실패했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바울에게는 신실한 동역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데마와 같이, 어려운 형편에 처한 자신을 버려두고 세상으로 되돌아가버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디모데전서 1:20에 따르면, 후매내오와 알렉산더 같이 오히려 사역을 방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끝까지 복음과 함께 길을 걷는 누가와 같은 동역자로 설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사랑하여 복음과 동역자를 떠난 데마와 같은 동역자가 될 것인가는 저와 여러분의 선택의 몫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복음을 위해, 교회를 위해 누가처럼 끝까지 다른 지체들의 동역자로 그 곁에 늘 서 있게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삶이 바로 후회가 없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의 선택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는 제자의 자리를 벗어나 배신의 자리에 섰습니다. 그러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마 27:4a)라며 곧 후회했으나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믿음의 동지들이 언젠가 우리를 다시 기억할 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위해 끝까지 충성을 다한 동역자들로 기억되어 후회 없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사역의 현장에서 한 결 같이 맡은 바 직분을 감당하는 동역자(15-17)
세 번째로, 새 사람된 성도로서 좋은 기억으로 남는 삶을 살려면, 사역의 현장에서 한 결 같이 맡은 바 직분을 감당하는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소개하는 사도바울의 또 다른 동역자들은, 지역 교회를 지키는 라오디게아교회 성도들과 골로새교회의 지도자 아킵보입니다(15-17).
사도바울 주변에는 함께 선교지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쓰는 동역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지역에 남아 있으면서 지역교회를 꿋꿋이 지키는 동역자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라오디게아교회는 골로새로부터 서쪽으로 약 19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또 다른 지역교회였습니다.
라이디게아는 무역활동이 활발한 로마제국이 닦은 도로 상에 위치하면서 상업과 산업으로 크게 번창했던 도시였습니다.
그 도시, 라오디게아에 믿음의 성도들이 있었고, 눔바라는 여자 성도의 집이 교회의 처소로 사용되었습니다(15).
자신의 집을 교회로 내어주고, 그곳에 모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이루며, 함께 달려가는, 지역교회 성도들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라오디게아의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인의 집에 있는 교회에 안부를 전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권면한대로, 바울의 편지를 골로새 교인에게도 읽게 하고(16a), 라오디게아교회에도 읽게 하고(16b), 또 라오디게아교회에 보낸 편지를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도 읽게 하며(16c) 한 결 같이 교회를 든든히 세워갔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특별히 골로새교회를 섬기는 아킵보를 언급합니다.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17)
바울은 빌레몬서 1:2에서 이 아킵보를 ‘우리와 함께 군사 된 아킵보’(몬1:2)로 소개합니다.
‘함께 군사된 자’라는 표현은 ‘전쟁에서 함께 목숨을 바쳐 전투를 벌이는 전우와도 같이 소중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믿을만한 동역자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아킵보를 통하여, 골로새 교인들에게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직분을 삼가 이루라’는 것은 ‘직분을 눈여겨보라’ 또는 ‘직분에 주의하라’는 뜻으로, ‘주 안에서 자신이 받은 직분에 대한 시선과 관심과 헌신과 열정을 늘 놓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집사로서의 직분을 완수하라’는 의미일 수도 있고, 교회의 ‘리더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라’는 그런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그 직분을 온전히 완수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라고 말해 줄 것을 당부했던 것입니다.
아킵보는 바울의 동역자로서, 골로새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일들을, 한 결 같이 감당한 골로새교회의 지도자였습니다.
교회가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이름도 없이 묵묵히 교회를 섬기는 형제들과 자신의 집을 교회의 처소로 제공하는 눔바와 같은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함께 섬기며, 교회의 영적 리더로서 자신의 맡은 바 직분을 잘 감당하는 아킵보 같은 동역자들도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열방교회가 진주 땅의 지역교회로 온전하게 세워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사역의 현장에서 한 결 같이 맡은 바 직분을 감당하는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형제들과, 자신의 집을 교회의 처소로 제공한 눔바, 사역의 현장에서 한 결 같이 맡은 바 직분을 감당하는 아킵보와 같은 동역자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함 없이 주님의 기쁨이 되는 아름다운 교회를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한 결 같이 맡은 바 직분을 감당하는 동역자들로 세워지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열방교회가 이 지역의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는 구원의 방주로 우뚝 서게 되길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바울은 골로새서 끝 부분을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18)
구지 직접 자신의 친필로 문안인사 한다는 것을 밝히며, 자신의 매인 것을 기억하라고 요청합니다. 이는 감옥에 갇힌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사역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편지의 시작이 있고 끝이 있듯이, 우리도 언젠가는 사랑하는 공동체를 떠나고,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곁을 떠나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과연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어야 하겠습니까?
에바브라처럼,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동역자로 기억되어야 합니다. 지금부터 매일 새벽을 깨우고 금요 밤을 새우며 기도하는 기도의 동역자가 됩시다.
데마처럼 우리 곁을 떠난 사람이 아니라, 누가처럼, 끝까지 복음과 함께 교회와 함께 길을 걷는 동역자로 기억되어야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과 눔바, 골로새교회의 아킵보처럼, 사역의 현장에서 한 결 같이 맡은 바 직분을 감당하는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기억에 남는 삶을 사는 새 사람 된 성도의 삶을 살아서, 이 땅에 주님의 교회, 우리 열방교회를 더욱 견고하게, 아름답게, 건강하게 세워가는 동역자가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