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03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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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1:21–23 (NKRV)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골로새서는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 기록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옥중서신이라고 말하는데 바울의 옥중서신은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빌립보서 이렇게 4권이다. 그래서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의 내용이 많이 비슷하다.
오늘 본문은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라고 말하며 시작한다. 이것은 골로새 교회 교인들에게 하는 말이다. 이들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이었다. 그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했을 때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골로새서는 에베소서와 많은 부분이 비슷하다. 그래서 오늘 에베소서를 같이 보며 말씀을 하겠다.
바울이 말하는 악한 행실은 무엇인가?
에베소서 2:1–3 (NKRV)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먼저 구원받기 이전의 우리의 모습을 말하는데 그것은 바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허물과 죄가 아니라 “죽었던" 이다. 성경은 우리를 향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거의 죽은, 지금 죽어가고 있는” 이라고 말하지 안는다. 어떻게 이야기 하는가? “이미 죽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말장난이 아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과 이미 죽은 것은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죽어가공 씨는, 거의 죽은 이라고 말하면 말 그대로 이 상태는 죽은 것이 아닌것이다.
다시말해 죽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희망이 있는 것이다. 아주 작을지라도 그곳에는 희망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를 향해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를 향해 “이미 죽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것은 그 어떤 기대도 가질 수 없는 상태이다.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 끝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 아니라 “이미 죽은" 존재인 것이다. 그 어떤 소망도 없고 그 어떤 가능성도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떠난 삶은 이미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단절 된 삶은 죽은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자체가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에게는 소망이 없는 것이다. 누가 죽은 사람에게 소망을 가지겠는가? 죽었는데 그 사람에게 무슨 가능성을 기대하겠는가? 그러기에 그냥 끝난 것이다.
그래서 소망없는 가능성 없는 사람이기에 2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2. 그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여기서 한가지 단어의 원어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행하여"로 번역된 단어인데 이것의 원뜻은 “이리저리 두루 살피다, 어떤 것을 찾아 헤메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단순히 행한 것이 아니라 마치 시장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 헤메이는 모습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매우 능동적인 단어이다.
그래서 이런 말은 맞지 않는다.
“나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나는 죄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죄인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성경은 우리가 죄를 적극적으로 찾아 다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죄를 너무나 좋아하는 존재인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그 죄를 찾아 얻을 때까지 찾아 헤메다가 그 죄를 찾아 그 죄를 끓어 앉고 그 죄를 범했다고 성경은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런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세상의 풍조를 따랐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 우리가 돈을 쓰는 방식과 다른 살마을 대하는 방식 이 모든 것들이 세상의 방식과 너무나도 똑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랐다"고 말한다.
공중 권세 잡은 자가 누구인가? 사탄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받기 이전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하는데 바로 사탄을 따랐던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사탄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는가? 뿔 두개 있는 무서운 표정의 빨간색 피부를 생각 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만든 이미지 이다. 성경이 말하는 사탄의 특징은 참수하는 자이고 거짓의 영이라고 말한다. 쉽게 말해 거짓말 하기를 너무 좋아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간질 하고, 험담하고, 자기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고, 자신의 잘못을 가릴 수 만 있으면 무슨 수라도 쓰는 존재,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면 거짓말을 해서라도 그것을 이루는 존재가 바로 사탄이다.
우리가 그런 사탄을 따랐다는 것이다. 그 말은 사탄처럼 행동했다는 것이다. 혹지 지금도 그러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내 유익을 위해서라면 작은 거짓말을 괜찮지 않은가? 내가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른사람의 약점을 크게 부각시켜 천하의 못된사람을 만들어 자신이 높아지지는 않는가? 세상이 딱 그렇지 않는가? 선거때 토론회를 보면 그렇다.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그 모습이 딱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는 사람의 모습이다.
혹시 여기에 있는 사람중에 사탄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가? 사랑까지는 아닌데 혹시 좋아하는 사람들은 있는가?
우리 모두는 사탄을 사랑하거나 좋아해서 숭배하는 사람은 없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는 사탄을 미워하고 싫어한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경이 그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3절에 이렇게 말한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3절에 의하면 우리는 우리의 육체가 시키는대로 하던 사람이었다. 우리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었다. 내 감정 내 생각이 시키는대로 하길 좋아했던 사람이 바로 우리였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다. 그래서 기준이 내 마음이 되는 것이다. 모든지 내 마음에 기준삼아 좋지 않으면 그것은 틀리고 잘 못된 것이다.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던, 성경에 어떻게 쓰여있던 그것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그때그때의 내 감정에 충실했던 사람이 바로 우리라는 것이다. 모든지 내 마음이 중심이다. 그래서 뭐든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우리였다. 그래서 내가 좋으면 하는 것이고, 내가 싫으면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3절에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다.”
그러기에 그런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진노이고 심판이다.
내가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고 내가 사탄을 따르던 사람이고 내가 적극적으로 죄를 찾아 헤메던 사람이기 때문에 나를 기다리는 것은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와 엄중한 심판이다. 그누구도 피할 수 없는 진노와 심판이다.
그런데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난다. 누구도 감히 구할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났다.
에베소서 2:4–5 (NKRV)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4절에 빠진 단어가 있는데 바로 “그러나” 이다. 그래서 4절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가 예상 했던 하나님의 모습은 내가 지은 죄에 대해 분노를 주체 할 수 없는 그런 하나님이었는데,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그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모습 바로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긍휼이 가득하신 하나님의 모습으로 오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일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소망이라고는 단하나도 찾을 수 없는 우리를 위해, 가능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우리를 향해 긍휼이 풍성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사랑때문에 우리에게 오셔서 살리시고 구원하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인 골로새서를 한번 보겠다.
골로새서 1:21–22 (NKRV)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우리는 우리의 죄로 죽어 마땅하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그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계셔서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와 하나님과 다시 화목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받아야 하는 그 수치와 조롱과 심판과 진노를 예수님께서 다 받으시고 돌아서서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이야기 하시는 것이다. “애야~ 다 됐다" 그리고 그분이 받아야 할 영광과 존귀와 거룩함과 의를 아무 자격없는 나에게 거져 주신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감히 하나님 앞에서 흠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서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다.
그러기에 구원은 선물이다. 구원은 내가 그 무엇을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의 합당한 반응은 자랑이 아니다. 무엇이겠는가? 감사다. 구원받은 자의 올바른 반응은 자랑이 아니라 감사다.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과거 이스라엘이 여기에서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선택받은 존재임을 감사한 것이 아니라 자랑하였다. 그래서 선택받은 자신들과 선택받지 못한 이방인으로 구별하고 무시하고 멸시하였다. 자신들은 구원받은 선택받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혹시 우리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는가? 내가 이런 은사를 가지고 있지, 내가 교회 안에서 믿음이 좋아 임원도하고 동산지기도 하고, 쓰임터 리더도 하고 있지, 물론 그러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신명기 7:7–8 (NKRV)
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신 이유이다. 그들이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다. 그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있어서 구원받은 자의 반응은, 은헤받은 자의 반응은 자랑이 아니라, 무조건 감사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때때로 자신의 자랑이 되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이것을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혜에 우리는 감사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그리고 이러한 구원을 은혜를 선물로 받은 우리가 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 23절을 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믿음에 튼튼히 터를 잡아 굳건히 서 있어야 하며, 여러분이 들은 복음의 소망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메시지 성경은 “그 같은 선물을 버리고 떠나가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은 신실한 결속에 터를 잡고 든든히 서서, 끊임없이 메시지에 주파수를 맞추고,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주의를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다른 메시지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미 소망이 없고 가능성도 없는 이미 죽었던 존재였다. 그런 우리에게 긍휼로 다가와 우리의 죄를 씻겨주신 그 주님의 은혜로 우리가 이자리에 이렇게 있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가치 없는 우리를 위해 가장 가치 있는 분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 이것만큼 기쁜소식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복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존재이다. 그러기에 구원을 선물로 얻은 우리는 늘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선물을 버리고 떠나서는 안되고 튼튼히 터를 잡아 끊임없이 주님의 말씀을 집중하여 살아가며 복음의 소망에서 떠나지 말아야 한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안되는 것이다. 구원받은 자 답게 그 감사함으로 나의 삶 속에서 오직 말씀을 기준삼아 살아가는 그 싸움을 포기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구원받은 자의 합당한 삶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세상에서 무엇을 원하든 그것이 여러분들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 주신 그 말씀만이 기준이 되어 세상속에서 구별된 자로 빛나는 자로 살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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